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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Sep 30. 2021

공황장애 1년 차, 최애 연예인을 만나다

레드벨벳 예리 혹은 자유로운 영혼 김예림을 만난 오후

1.

건강상의 문제로 급 귀국한 지 한 달. 병원 검진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고, 불안장애 때문에 생긴 자율신경 기능 이상으로 진단이 났다.


이제는 가까운 지인이 된 유튜버 썸머와는 백신을 맞은 5월부터 몇 번이나 만남을 추진했지만 내 상태가 좋았다 안 좋았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번번이 미루다 결국 8월 말 한국에 왔다. 마침 썸머도 약 2년 만에 한국에 오게 되어 우린 같은 시기에 한국에 있게 됐다. 미국에 살며 미국 지인들과 같은 시기에 한국에 있는 건 귀한 일이다.


곧 출국을 앞둔 썸머를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은 이유가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내 몸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해서였다. 백신 접종 후 알 수 없는 증상들로 건강 밸런스가 깨지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게 그녀였다. 예전처럼 맛있는 걸 먹고 떠들다 보면 몸이 좋아졌다는 게 비로소 실감 날 것 같았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만나고 와서 남은 기간 더 열심히 회복하자 싶었다.


두 번째는 "반가움의 법칙" 때문이었다. 호주의 작가 피터 피츠사이먼스는 "걱정 총량의 법칙" 등 재미있는 법칙들을 정의한 "인생의 작은 법칙들"이란 책에서 반가움의 법칙에 대해 정의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반기는 정도는 현재 만난 장소와 두 사람이 자주 만나는 장소와의 거리에 정비례한다. 즉 현재의 만남이 늘 만나는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반기는 정도는 더 커진다.


언젠가 읽은 짧은 구절이 뇌리에 깊게 남은 이유는 나 또한 미국 친구를 한국에서 보거나 한국 동창을 뉴욕에서 만났을 때 반가움과 기쁨이 배가 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우리가 여기서 보다니!” 하는 걸 느끼고 싶었다..


일정을 논하던 중 문자가 왔다. 원래는 썸머부부와 나 이렇게 셋이 만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예리도 온다는 것이다.


케이팝 걸그룹 중 특히 레드벨벳 노래를 좋아한다고 브런치에도 글을 썼던 바 있다.라고 쓰고 성덕이라 읽는다.


유튜버 썸머와 레드벨벳 예리는 몇 년간 연락하며 친해진 사이로, 이번 방문 중 여러 번 만나며 더 가까워졌다고 했다. 약속이 3일 후에서 하루 앞으로 당겨진 것도 철렁했는데, 갑자기 레드벨벳 예리를 만난다고 하니 긴장이 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커피와 술도 안 마신 지 오래됐고, 죽만 먹다 일반식을 시작한 것도 한 것도 얼마 안 됐는데 약속은 바로 내일이라 걱정이 됐다.


내일 만날 사람들이 너무너무 어리고 예쁜 동생들이라고 하니 엄마는 아직 젖은 머리도 안 마른 나를 눕혀 오이 마사지를 해줬다.


2.

약속 장소는 종로3가역.


순라길이 예쁘다고 들었다며 썸머가 제안한 곳이었다. 처음 가 본 종로3가역은 보석 매장들로 가득했다. 정오의 거리는 흐린 날씨 때문인지 마치 이른 아침처럼 한산했다.


드디어 만난 썸머 부부와 돌담길을 걸으며 근황을 나눴다. 그러다 맛집을 찾아 들어간 익선동은 조용한 순라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토요일 낮의 익선동은 맛집을 찾아온 인파로 북적였다. 팬데믹 후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몰려있는 곳은 처음이었다.


거미줄같이 뻗은 골목들은 양팔을 뻗으면 벽에 닿을락 말락 좁았다. 덥고 후덥지근한 날씨와 수많은 사람들의 열기와 말소리.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여기 정말 길이 좁구나"라고 하니 썸머가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언니 불편하면 언제든 말해요. 바로 나갈 수 있어요."


작년 4월 처음 공황발작이 온 날 911을 부르고 앰뷸런스에 타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썸머였다.


공황장애가 생긴 후 썸머가 이웃에 살던 시절, 가까운 곳에 언제든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이 됐다. 썸머는 나보다 어리지만 같이 있으면 언니처럼 든든하다. 공황 경험자가 아닌데도 이해심이 깊고, 순간 상황 판단과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 그걸 알기에 오늘도 큰 걱정 없이 나올 수 있었고, 전혀 예기치 못한 익선동 좁은 골목에서 숨이 가빠져 오는 상황을 썸머는 바로 인지하고 안심시켜줬다. 나도 그렇게 든든한 언니이길.


우리는 아늑해 보이는 프렌치 식당에 들어갔다.

썸머를 통해 얘기로만 들었던 예리.


레드벨벳의 음악을 사랑하는 나에게 예리는 레드벨벳의 막내, 아는 형님에 나와 빵빵 터뜨려서 아형 멤버들이 입 모아 예능 에이스라고 인정했던 걸로 기억된 정도였다. 케이팝 걸그룹 노래들을 좋아하지만 음악을 듣는 것뿐 가수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예리는 곧 도착했고 대각선 자리에 앉았다. 방금 일어나 옷만 대충 입고 왔다는 그녀는 메이크업, 헤어도 하지 않았는데도 80%는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비주얼이었다. 나는 눈을 뜨면 일단 0%에서 시작한다. 살짝 립스틱만 바르면 화보 촬영이라도 할 수 있을 듯 말끔한 모습이었다. 늘 관리가 되어 있는 컨디션이란 저런 거구나.

 

TV에서 본 메이크업 한 얼굴보다 예뻐 보였던 건 더 싱그럽고 풋풋해 보여서였을까. 아침에 눈만 떠도 80%인 상태로 사는 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떨려서 잘 못 먹을 줄 알았는데 호록 호록 잘도 먹었다

미국에서 하는 우스갯소리 중에 "I woke up like this"라는 말이 있다. 헤어, 메이크업 완벽하게 꾸민 상태에서 누군가 예쁘다고 칭찬을 하면 꾸민 거 없고 원래 이렇게 완벽하다고 너스레를 떠는 거다. 예리의 첫인상에 그 말이 떠올랐다. She woke up like that.


3.

유명인들과 보낸 오후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과 처음 밖에서 식사를 하며 느낀 건 1) 본인들은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2) 주변 사람들도 크게 신경 쓰거나 쳐다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드라마에서 유명인들이 공공장소에 있으면 대놓고 쳐다보고 수군거리는 것만 봤는데 현실은 달랐다. 크게 웃고 얘기하는 우리처럼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신들의 식사를 즐기며 집중할 뿐 신경 쓰지 않아서 편안한 분위기였다.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젊은 여자분이 썸머에게 다가왔다.


방해해서 죄송하다며 말을 걸어온 그녀를 썸머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기쁘게 반겼다. 이렇게 알아보고 다가와주는 한 분 한 분이 반갑고 신기하단다. (맞아 너도 엄청 유명한 사람이었지) 벅찬 마음에 울먹이는 구독자분을 다독이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예리는 얼굴에 흐뭇함이 가득했다.


"썸머 언니 스타라니까요."


뉴욕에서 대부분 집에서만 썸머를 봤던 나에 비해 예리는 썸머의 깜짝 구독자 만남을 몇 번 본 듯 신나 했다. 썸머언니 알아보면 너무 너무 뿌듯해요, 라며 웃었다.


썸머의 채널이 빠르게 성장하며 때론 걱정과 마음고생도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유명인으로 성장했구나 싶어 내가 한 일도 없으면서 대견하고 축하하는 마음에 온몸이 찌릿했다.

슈퍼 에너자이저들과 보낸 오후

구독자분의 기쁘고 벅찬 감정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도 스티비 원더를 엘리베이터에서 봤을 때 1초 만에 울었던 적이 있었다. 예리 말로는 원래 이렇게 마주치는 팬들 중엔 순간 감정에 격해져 우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그녀는 전 세계를 돌고 공연을 하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얼마나 빨리 성장해야 했을까. 나로선 영원히 알 수 없을 그 세계를 잠깐 상상해 봤다. 나이가 한참 많은 나보다 어쩌면 더 많은 걸 봤을지도 모를 그녀의 눈엔 썸머를 향한 뿌듯함과 어린 나이부터 다져진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썸머는 그날 대여섯 번이나 더 구독자분들이 가던 길을 돌아와서, 차에서 내려서, 어디선가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 다가와서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순수하고 애정 어린 감정을 옆에서 보니 나까지 행복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썸머는 원래 털털하고 꾸밈없는 성격인 걸 알았지만, 예리는 또 어나더 레벨이었다.


대범하고 시원시원하다고는 들었지만 그 정도일 줄 몰랐다. 그 골목에서 목소리가 제일 크고 에너지가 넘쳤다고 하면 과장같이 들리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붙임성도 좋고 말도 재미있게 하는 한편 내 (건강관련) 상황을 공감해주는 성숙함과 상냥함도 있었다.

4.

그녀들은 어찌나 깔깔대며 웃던지, 그냥 호호 웃는 게 아니라 정말 자지러지게 숨이 컥컥 막혀 멈춰 서야 할 정도로 웃었다. 입담에 리액션까지 좋은 둘은 서로 한 얘기에 빵빵 터지다 쓰러질 지경이었다.


유명인 둘이 대낮에 술도 안 취하고 저렇게 자지러지게 웃는다고? 놀라움을 넘어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그게 뭐 대수냐 할 수도 있겠지만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나에겐 "life-changing"한, 그야말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편하고 자유롭게 다니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뭐랄까. 나는 뭐라고 그렇게 혼자 긴장하고 웅크리고 살았지? 싶어 긴장이 풀리며 현타가 왔다.  


Moment of clarity.

생각이 명료해지는 순간.


무라카미 하루키는 야구장에서 공이 하늘로 시원하게 날아가는 걸 보고 불현듯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쓴 첫 소설을 서른에 발표하고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 앞에 얼굴이 알려진 두 사람이 누구의 눈도 신경 쓰지 않고 깔깔대며 웃는 걸 보니 정신이 또렷해졌다.

언니! 힘 빼고 살아도 큰일 안 나요. 긴장 그만하고 편하게 살아요,라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춥고 어두운 내 안에 빛나고 강력한 희망의 씨앗이 하나 툭 던져졌다.



처음 불안 증세가 발현한 건 부동산 일을 하던 시절이었다.


고객과 집을 보러 갔는데, 나이가 많은 상대편 중개인이 억지를 부리며 면박을 주었다. 일 시작한 지 일주일은 됐어? 그래서 이렇게 여러 사람 시간을 허비하고 다니는 거야? 각각의 업무 스타일은 다른 것이고 내가 실수를 한 것도 없었다. 적어도 그는 누구를 훈계할 만큼 경험이 많거나 잘 나가는 위치가 아니었던 건 확실하다.


내 고객들 앞에서 면전에 모욕을 당했지만 같이 싸우지 않고 나름 우아하게 대응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 며칠 동안 가슴이 떨리고 팔다리가 저리고 어지러운 증상들이 계속됐다.


때로는 우아한 대응보다 미친 x처럼 물어뜯는 게 "미국에선 특히" 더 효과적일뿐더러 정신 건강에 유익하다.


일시적인 불안 증상을 겪었지만 큰 문제없이 살다가, 작년 팬데믹이 시작되며 공황발작으로 폭발한 것이었다. 공황장애는 결국 걱정을 많이 하고 긴장하며 생긴다. 공황발작은 너무 공포스러워서 또 그런 일이 생길까 봐 전전긍긍하다 못해 그냥 죽는 게 편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괴롭다.


이유 없는 염려와 걱정은 나를 점점 옥죄고 병들게 했다.


코로나에 노출되는 것도 무섭고, 이력서를 넣으면서 막상 인터뷰 연락이 올까 무섭고, 밖에 나가는 것도 무서웠다. 집에만 있다가는 또 공황발작이 올까 봐 무서웠다. 사실 코로나와 상관없이 불안증이 시작된 후 위축된 난 지난 몇 년 간 극도로 조심하며 몸을 사렸다. 튀지 않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경직된 채 살았고 차츰 그런 나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남의눈을 신경 쓰지 않고 신나게 웃으며 거리를 걷는 그녀들을 보니 몇 년 간 나를 옥죄던 족쇄가 풀어져 산산조각 난 느낌이었다. 거대한 자유로움이 나를 들어 올린 듯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다시 자유롭게 살 시간이 됐어! 하고 정신이 번쩍 드는 알람이 울린 순간이었다.

상큼한 동생들 뒤에서 고군분투해 봅니다

맞아, 나도 저렇게 자유롭고 호쾌하던 때가 있었지.

신기할 정도로 속이 다 후련했다.


뉴욕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친구가 있었다. 윌 아이엠 등 이름을 대면 알만한 세계적인 뮤지션, 프로듀서들과 어울리며 나름 우리 사이에선 셀럽으로 통하던 그녀가 어느 날 밤늦게 이메일로 받은 노래를 녹음해서 불러야 했는데, 도무지 고음을 어떤 식으로 불러야 할지 난감해했다.

"네가 딱 한 번만 불러줘. 도저히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래.
"가수는 너잖아. 내가 불러줘 봤자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 그냥 한번 잘해봐."
"너는 음악을 잘 알잖아. 진짜 이렇게 빌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딱 한 번만 불러봐 줘. 제발 부탁이야"

가수 앞에서 내가 뭐라고 시범을 보이는 게 말도 안 돼서 한참을 옥신각신했다. 그녀는 가수 체면도 없이 한 번만 불러달라고 싹싹 빌었다. 결국 포기하고 가수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운 실력으로 짧게 불러봤다. "뭐, 이런 식으로 하는 거 아닐까?"

"아! 그거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30분 가까이 입씨름한 게 허탈할 정도로 그녀는 바로 원하는 바를 캐치했다. 두 번 세 번 불러보더니 훌륭하게 소화해서 다음날 녹음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날 내가 한 게 무엇이고 그녀가 캐치한 게 뭐였는지 몰랐다.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그녀는 가창력이나 자신감이 부족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예시가 필요한 것뿐이었다.


주변에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다른 사람들도 많지만 이날 유난히 크게 와닿았던 건 (썸머와 예리의 자유분방함이 남달랐기도 하지만) 유명인이라 나보다 훨씬 더 조심할 거란 예상을 완전히 깬 반전이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알려져서 신경 써야 할 것도, 압박도 더 많을 그녀들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처럼 행동하는 걸 보니 강력한 자신감과 자유가 느껴졌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을 눈으로 본 느낌? 어떤 위로나 응원보다 강력한 해피 에너지로 치유받은 기분이었다.


나도 자신만만하고 당차던 때가 있었다. 영원히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이제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만든 속박에서 벗어날 시간이 왔다.


5.

카페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레드벨벳의 신곡이 흘러나왔다.


어? 우연인가? 긴가민가 할 때쯤 나온 다음 곡도, 그다음 곡도 레드벨벳 노래들이었다. 연달아 네다섯 곡쯤 들었을 때서야 아까 마스크를 꼈던 예리를 알아본 사장님이 레드벨벳 곡들을 틀어주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레드벨벳 노래에 안무로 화답하는 유쾌한 그녀들

알고 보니 예리의 팬이었던 유쾌한 사장님 덕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와 관광객 모드로 거닐어 본 창경궁에서도, 다시 목을 축이러 돌아간 익선동 카페에서도 그녀들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텐션으로 즐거운 에너지를 채워줬다.


이해심 많은 세 사람의 배려 덕에 예정보다 훨씬 길어진 일정도 큰 문제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실로 오랜만의 약속이라 긴장했는데 이렇게 행복 에너지를 가득 충전하고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점심때 만난 우리는 밤이 되어서야 헤어졌다. 집에 와서 보니 누군가 찍은 사진이 인스타그램 팬 계정에 올라와 있었다. 아는 척은 안 했지만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마스크를 쓰고 꽁꽁 싸매도 어차피 알아볼 사람은 알아보더라.


결국 아무리 걱정하고 긴장해도 일어날 일을 막을 순 없다. 사람들이 죽기 전 하는 가장 큰 후회가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생을 허비하며 더 행복하게 보내지 않은 거라고 한다. 어차피 완벽할 수 없는 인생이라면, 마음 편하게라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병보다는 건강을, 남의 시선보단 나에게 집중을, 걱정보단 행복과 긍정을 택하고 크게 웃으며 살고 싶다.

나도 한때 특정 가수들에 빠져 열정적으로 살았던 적이 있지만, 팬들의 사랑은 정말 진실되고 아름다운 감정이다. 사진에 달린 댓글 하나가 정말 사랑스러웠다.


"퀸덤과 블루 버스데이로 열심히 일한 예리가 이렇게 친구들과 좋은 곳에 가고 놀면서 휴식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행복해."라는 내용이었다. 동경하는 누군가의 휴식과 행복에 기뻐하는 건 얼마나 순수한 마음인가? 애정이 담긴 댓글에 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실제로 예리는 최근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어 매일 정신없이 지내다 오랜만에 휴식할 틈이 생긴 거라고 했다. 최근까지 이렇게 바쁜 사람이었다면서 스케줄을 보여주는데 정말 한 달 내내 매일 일정이 빽빽하게 차 있었다.  


"요즘 맨날 맨날 너무 놀아서 사람들이 나보고 뽀로로래." 라며 까르르 웃는 그녀는 처음 만난 사람도 편하게 해주는 에너지로 빛났다.  

세 사람 덕분에 행복했던 하루

같이 맛있는 것들을 먹고, 보면 기분 좋아질 곳들을 다니며 보여준 따뜻한 세 사람과의 하루는 감동이었다. 살다 보니 이렇게 선물 같은 시간이 온다. 좋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아 얼른 건강해지자는 의지가 샘솟는다.


6.

경험자들은 알겠지만 우울증이 깊을 땐 아무리 노력하고 원해도 희망적인 생각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 좋았던 시절과 추억이 기억나지 않고 안 좋은 생각, 자괴감, 후회들만 머리를 채운다.


5월 초 안 좋아진 이후 이렇게 희망으로 가득 찬 날이 없었다. 다시 행복하고 활기차게 살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실제로 그날 이후 컨디션이 조금씩 나아져 15층 계단 오르기도 다시 시작했고 그날의 감동이 잊히기 전에 쓰고 싶어 바로 한자씩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약 6개월 만에 처음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생긴 것만으로도 놀라운 회복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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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했던 "머릿속 생각 정리"가 가능해지는 중이고 긍정적인 생각도 잘 떠오른다. 한의원, 정신의학과, 위장내과 등을 거쳐 병원 치료는 포기하고 혼자 마음 다스리기 중이었는데, 새로운 치료 옵션을 찾아 열심히 다닐 병원도 정했다.


희망과 행복의 예시를 생생하게 보여준 두 사람처럼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희망의 씨앗을 틔워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뇌는 웃어서 행복한지 행복해서 웃는지 구분을 못해서, 억지로라도 웃으면 행복한 걸로 인지하고 치유 호르몬을 내뿜는다고 한다.


그러니 어깨의 긴장을 풀고, 오늘만 사는 듯 크게 웃고 떠들며 신나게 살자. 대충 적당히 살자. 완벽하게 말고 80% 정도만 하자.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스타일로 자유롭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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