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발치

(1)

by 은 선

매년 치과 검진을 간다. 어릴 때부터 치아가 별로 좋진 않았다. 개인적으로 치아는 관리도 중요하지만, 유전적인 부분 또한 크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건강한 치아를 가진 집안은 아니기에, 조금이라도 아프면 빨리 치과에 가고, 꼭 아프지 않더라도 정기적으로 치과에 검진을 간다.


그해에는 어금니가 아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어금니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었고, 엑스레이를 통해 사랑니의 존재를 발견했다. 위쪽 두 개는 잇몸 깊숙이 있어서 아직은 괜찮지만, 아래쪽 사랑니 두 개 모두 쑥 자라있었다. 문제는 내가 잇몸이 좁고, 그래서인지 사랑니가 어금니의 뿌리 쪽을 향하여 옆으로 자랐다는 것이다. 어금니가 아팠던 건 그 때문이었다. 이른바 ‘완전 매복 사랑니’다.


그런 사랑니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뺄 수가 없다고 했다. 사랑니의 크기가 커서 잇몸을 절개한 후 치아를 조각내어 빼야 한다고 했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곧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사랑니 발치 수술은 우선 마취로 시작한다. 마취 주사는, 경험해 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리라 생각하는데, 따끔하고 아프고, 마취의 전 과정의 느낌이 죄다 별로다. 그냥 기분이 나쁘다고밖에는 표현을 못 하겠다. 입술이 세 배쯤 커진 것 같은 느낌도 싫고. 마취가 되면 사랑니 위치를 절개하고 버 (surgical bur)라는 외과수술 천공기로 치아를 조각조각으로 나누어 이를 뽑는다. 그리고 절개한 부분을 꿰매어 봉합한다.


당연하게도 출혈이 발생하기 때문에 수술이 끝나고 나면 거즈를 물려주는데, 최소 2시간은 물고 있어야 한다. 얼음찜질을 해주고, 소독약으로 가글도 해야 한다.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함은 물론이다. 뜨거운 것, 맵거나 자극적인 것은 먹을 수 없다.


수술하는 동안 입을 오래 벌리고 있었던 데다 솜을 2시간 넘게 악물고 있었기 때문에 턱이 아팠다. 게다가 마취가 풀리면서 수술 부위의 통증도 시작 되었다. 욱신욱신하고 열감이 있는 데다, 수술 부위와 그 주변이 퉁퉁 붓는 것이 느껴졌다. 얼음찜질을 멈출 수가 없었는데, 이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얼음팩을 손수건으로 감싸서 찜질하는데도 너무 차가워서 그건 그것대로 힘들었던 거다. 얼굴에 닿는 부위는 너무 차갑고, 안에는 열이 나고.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불편함….


아플 때는 항상 밤이 문제인데, 그날도 밤에 사달이 났다. 출혈이 멈추었다고 생각했는데 입안에서 자꾸 피 맛이 났다. 거즈를 대보니 한쪽에서 다시 피가 나고 있었다. 거즈를 다시 물었다. 출혈이 멈췄으려나 하고 보면 또 피가 나고, 한참을 또 물고 있다가 빼면 또 피가 나고, 나중에는 선지 같은 핏덩어리가 거즈에 딸려 나오기도 했다. 그쯤 되니 거즈를 물고 있다는 표현도 적당하지 않았다. 거즈는 상처 부위에 대는 즉시 피로 젖어 질척거렸다. 병원에 다시 가야 했다.


그날 집에는 엄마와 나 뿐. 하필이면 폭우까지 내리는 밤이었다. 수술했던 치과는 당연히 아침까지는 문을 열지 않으니 응급실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 엄마는 밤에, 그것도 비가 그렇게 쏟아질 때 운전하는 것이 두려웠지만, 옆에서 핏덩이를 뱉어내는 나를 보며 용기를 내셨다. 겨우겨우 응급실에 도착했고 치과 선생님이 호출되어 왔다.


출혈의 이유는 간단했는데, 봉합했던 부분이 터진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도 만났겠다, 출혈의 이유도 알았겠다, 안심이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문제는 의사 선생님이 당시 고등학생이던 내가 보기에도 뭔가 초보티가 폴폴 나는 아주 젊은 선생님이었다는거다.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듯 바늘에 실도 잘 못 꿰고, 꿰매는 중에도 자꾸 살이 뜯겨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봉합했다. 마취를 했는데도 살이 뜯기고 너덜거리던 그 불쾌한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봉합을 마친 의사 선생님은 안도하듯 한숨을 쉬었고, 나도 덩달아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응급처치를 마친 뒤, 다시 폭우를 뚫고 집에 도착하니 거의 해가 뜰 무렵이었다. 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 피로와 통증이 모두 섞여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 후 며칠간 양쪽 볼이 심하게 부어있었다. 정확히는 안쪽이 부은 거겠지만. 볼과 턱 쪽을 만져보면 불룩했다. 상처 부위는 여전히 욱신욱신, 두통까지 동반되어 머리가 지끈지끈. 수술 후 초반 며칠은 특히나 괴로웠다. 응급실에 가서 꿰매야 했던 쪽은 아무는 시간도 더 오래 걸렸다.


나는 사랑니 수술을 핑계 삼아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서 요양모드에 들어갔다. 내 소식을 들은 친구 몇 명이 방과 후에 문병을 왔다. ‘수술’이라는 말에 잔뜩 겁을 먹고 걱정이 태산이던 내 친구들은, 우리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나는 턱이 원래도 짧은 편인데, 양쪽 볼이 너무 붓다 보니 얼굴이 삼각형이 되어버렸던거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겼다나. 그래서 한동안 별명이 ‘삼각김밥’ 이었던 (슬픈) 기억.


시간이 약이라고, 부기도 가라앉고 수술 부위도 아물었다. 2주 정도 지나고 꿰맨 실을 제거하러 다시 갔다. 실을 뽑는 건 아프지는 않지만 썩 좋은 느낌도 아니었다. 그렇게 두 개의 사랑니를 뽑았다. 사랑니가 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예쁘게 잘 나는 사람도 있다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둘 다 아니어서 요란스럽게 이를 뽑았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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