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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Aug 11. 2018

준비 없는 시작은 '독'이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청계 화훼단지에 다녀왔다. 예전에 엄마를 따라 꽃을 보러 갔을 때, '온라인으로 꽃화분 장사나 해 보라'는 말이 3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해볼 만할 것 같아졌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해볼 걸 하지 말고 지금에라도 알아봐. 엄마가 도와줄게."


엄마가 도와준다는 말에 괜히 없었던 자신감도 솟았다. 그 길로 아이xx스를 비롯해 평소 눈여겨봤었던 마켓과 인터넷으로 많이 거래되는 식물과 가격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집에 작업에 필요한 도구도 모두 있었다. 바위솔이 큰 판 하나에 얼마. 화분 몇 개가 얼마. 초보 사업자들이야 덤터기도 써 보고, 이곳저곳 방황도 많이 하겠지만, 나는 달랐다. 엄마가 20년 이상 거래한 집에 가 가져오기만 하면 됐다. 아무 바탕 없는 사람도 시작을 하네 마네 하는데, 베테랑 야생화 전문가가 곁에서 도와준다니, 첫걸음 떼기도 전에 성공한 것만 같았다. 


우리 집 정원을 수놓은 나보다도 오래된 엄마의 꽃들.


"엄마, 직장인도 고용계약서에 겸업금지 조항 같은 것만 없으면 사업자를 낼 수 있대. 더구나 나는 크게 키울 생각 없이 부업으로 작게 할 거잖아. 간이사업자로 하면 세금도 많이 안 오른대. 계약서 꺼내 보고, 원장님한테 겸업 가능하냐고 물어볼까 봐."

"일단 좀 더 알아보고 준비한 후에 시작할 거니까 나중에 물어봐."


청계로 향하는 길, 황금 같은 주말 아침에 당장에라도 원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볼 거라고 생각하셨는지 엄마가 진정하라며 등을 토닥였다. 흥분하지 말고 꽃집 사장님에게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듣고 난 다음 행동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나의 마음은 이미 꽃밭에 가 있었고, 내 머릿속에는 성공한 사장님이 된 20대 사장님이 된 내가 웃고 있었다. 물건을 가지러 올 땐 어느 길로 올 것인지, 주업보다 부업이 잘 되면 큰 차로 바꿔야 할지 쓸 데 없는 상상을 하면서 오다 보니 40여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 워낙에 요즘 하는 사람이 많은 데다, 온라인으로 주문받아 배송해주다 보면, 이게 화분이라 흐트러지고 꽃이 망가지는 경우도 있고 해. 사람들이 항의 전화하고 그런다고."


희망찬 마음으로, 시작만 하면 다 될 것 같았던 마음도 여기까지였다. 온라인으로 장사를 해보겠다는 나의 말에 난색을 표하는 사장님의 얼굴에 풀이 죽었다. 본인도 하도 인터넷으로 팔아보라고 해서 하긴 했는데, 배송 중에 흔들리면서 흙이 넘치는 경우도 있고, 도자기 화분을 쓰는 경우에 깨질 수도 있고. 식물인지라 같은 종이어도 모양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사진이랑 다르다며 항의 전화도 여러 번 받다 보니 안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식물인지라 대량으로 가져다 놓으면, 바로 팔지 않는 한 훌쩍 자라거나, 말라죽는 경우가 많고, 그렇다고 조금씩 주문받는 대로 심자니 왔다 갔다 기름값도 나오지 않고 손해일 것이란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사장님의 조언에 꽃밭에 가 있던 내 정신도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장사라는 걸 너무 쉽게 생각하는 과오를 저지른 것이다.


예뻐라만 했지, 낙엽 한 번을 내가 치워 본 적이 있던가?


나도 장사를 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믿음이 생겼던 건, 어쩌면 언젠가 갔었던 작은 개인 카페에서 더럽게도 맛이 없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고 난 뒤였던 것 같다. 그렇게 맛없고 형편없는 커피와 음식을 팔면서도, 수년간 카페를 했었다는 젊은 사장을 보면서, '아, 나도 부업으로 장사나 하면서 대학원이나 다녀야지' 하고, 어쩌면 직장을 그만두는 달콤한 환상에 빠져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분야에 전문성 있는 사람들이 벌려도 말아먹는 판에, 꽃 심기라고는 그저 엄마 옆에서 몇 번 따라 하는 게 전부였던 피라미가 잉어가 되겠다고 날 뛴 양이다.


아침 8시 반에 출근해 6시 반 까지 일을 하고, 대학원에 가는 날에는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내가, 또 무슨 일을 벌이겠다는 것인지, 꿈에서 깨어난 지금에야 냉정을 되찾았다. 방학인 지금이야 평소보다 여유가 있는 삶을 살고 있지만, 지금의 여유는 고작 20일 후 9월이 되면 다 사라질 한 여름밤의 꿈같은 것임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어야 했다. 학위 논문을 위한 준비를 할 시간도 없으면서, 뭣도 모르고 장사를 시작할 생각을 하다니, 갑자기 나 자신이 한심해졌다. 스페인에 살고 있던 스무 살 무렵, 유학 중에 요리를 배워 한국에 가면 엄마와 스페인 음식점을 차릴 거라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적어도 '배울'생각을 먼저 했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지를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퇴화. 생각이 이렇게 짧을 수가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사장님들을 그렇게 욕했으면서. 자영업은 아무나 하냐며 불만을 토했던 장본인이, 이렇게 멍청한 생각을 했었다는 것이 그저 믿기지 않았다.


"엄마, 나 안 할래."

"그래, 그럼 그러자."


안 할 거라는 나의 말에 엄마는 그렇게 하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렇게 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온 김에 필요했던 마사를 싣고 가자는 말에 가게 앞으로 차를 끌고 오는데, 힘이 센 성인 남자도 힘겹게 드는 무겁디 무거운 마사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뭣도 모르고 무턱대로 시작했으면, 제풀에 지쳐 쓰러졌을 것이 분명했다.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안된다고 하면 더 고집부릴 내 성격을 알기에, 다만 가만히 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준 것일지도 모른다.


자고로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다고들 한다. 아무 준비 없이 무턱대고 시작했었다면, 일도, 공부도, 야생화도, 그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미끄러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렇게 자영업에 대한 꿈을 접었다. 하지만, 이것을 생각하느라 허비한 지난 몇 주의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 준비가 없는 시작은 독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인생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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