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05. 아리랑

100번째 생일을 축하해!

by 환한

Intro: 제2의 국가가 된 천만 영화의 OST

한국인이라면 '아리랑'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애국가 4절은 모를 수 있어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이어지는 아리랑의 후렴과 '나를 버리고~'로 시작하는 1절 가사는 절로 흥얼거릴 수 있으리라. 어쩔 땐 '애국가'나 '태극기'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사실상 '제2의 애국가'처럼 느껴진다.


https://ich.unesco.org/en/RL/arirang-lyrical-folk-song-in-the-republic-of-korea-00445

아리랑은 2012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2015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등재되어 국제적인 관심과 국가적인 보호 아래 다음 세대로 전승되고 있다. 유네스코는 아리랑의 등재 이유를 창의성과 다양성, 그리고 한국인들을 하나로 묶는 '화합의 힘'을 등재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단순한 후렴구에 누구나 즉흥적으로 가사를 붙일 수 있는 구조 덕분에 60여 종의 서로 다른 아리랑과 3,600여 개의 변주가 탄생했고, 그 과정에서 이 노래가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의 도구로 기능해 왔다고 봤기 때문이다.


반 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의 대표 민요이자 무려 삼천 개가 넘는 변주를 가진 국가 유산. 위상으로 따지면 그 모든 아리랑들의 원조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이 노래가 사실... 짜장면(1905년생) 보다 어린 그 시절 천만 영화(1926년생)의 OST라면 믿겠는가?


2. <아리랑>의 탄생

100살 생일을 축하해! (1926~2026)


# 짜장면 형님, 아리랑 동생

우리가 중국집에서 즐겨 먹는 '짜장면'은 1905년에 인천의 '공화춘'에서 처음 탄생했다. 반면, 우리가 가장 흔하게 알고 있는 '(본조) 아리랑'이 이 세상에 나온 것은 이보다 21년 뒤인 1926년이다. 아리랑이 가진 위상만 보면 마치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만든 몇 백 년 역사의 산물 같은데, 짜장면이 아리랑보다 무려 21살이나 많은 형님인 셈이다.


1926년생인 이 노래는, 2026년인 올해로 딱 100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렇다면 100년 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노래가 탄생했을까?

# 1926년 10월 1일: 단성사의 눈물

시곗바늘을 1926년 10월 1일로 돌려보자. 장소는 경성의 단성사. 영화감독 나운규가 각본, 연출, 주연까지 도맡은 흑백 무성영화 <아리랑>의 개봉일이었다.


<아리랑>은 식민지 조선의 아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주인공 '영진'은 서울에서 공부하던 중 3.1 만세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당해 정신을 놓아버린 인물이다. 고향으로 돌아와 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지내던 영진은, 친일파 앞잡이 '기호'가 여동생을 겁탈하려 하자 환각 상태에서 낫을 휘둘러 그를 살해하고 만다. 붉은 피를 본 순간 영진은 제정신을 되찾지만, 살인 혐의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된다. 포승줄에 묵인 영진이 마을 사람들의 오열 속에 고개를 넘어 끌려가는 모습 뒤로 '아리랑'이 흘러나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나운규가 서양식 음계를 빌려 다듬은 이 슬픈 멜로디는 삽시간에 관객들의 눈물샘을 터뜨렸다. 영화 <아리랑>은 당시 조선 인구가 2천만 명도 안 되던 시절, 전국을 울린 '블록버스터'였고, 그 주제가는 조선의 모든 차트를 석권한 '국민가요'가 되었다.


# 강원도 산골에서 경성의 영화관으로, 아리리랑의 기원

앞서 말한 것처럼 <아리랑>에는 60여 종의 서로 다른 노래와 3,600개 이상의 변주가 존재하는, 한민족이 모인 곳에서는 그곳이 어디라도 만들어지고 연행될 수 있는 노래다. 영화의 주제곡으로 등장한 이 (본조) 아리랑도,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서 1926년에 뚝 떨어지듯 생긴 것이 아니다. <아리랑>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말 다양한 설이 있지만 (무려 신라시대까지 올라가는!) 그중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강원도를 대표하는 모심는 소리'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이다.


아라리는 '논매는 소리', '밭 매는 소리', '풀 베는 소리' 등의 노동요뿐만 아니라 유희요로도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다양한 상황에서 가창되어 왔으며, 주로 강원도 '정선'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 지역에서 전승되었지만,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경기도, 충청남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경상북도 등 다양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태백산맥을 타고 흐르던 <아라리>가 서울과 경기 지역으로 올라와 <아리랑>이 된 데에는 흥선대원군의 역할이 크다. 19세기 후반 경복궁 중건 당시, 경복궁 중건에 사용될 목재의 운반을 위해 정선 사람들이 한양을 왕래하게 되었고, 이들을 따라 <아라리>가 서울과 경기 지역으로 전해졌다. 그렇게 강원도의 향토 민요였던 <아라리>가 다양한 지역의 <아리랑> 형성의 모체가 된 것이다. <(본조) 아리랑>의 탄생 이전인 1910년대 경기 및 서울 지역에서는 <구아리랑>이 탄생했다. 경기 지역의 <긴아리랑>에 영향을 받아 발생한 악곡이자, '경토리'의 색을 곁들인.


1931년 일본에서 발간된 아리랑 음반 사진 (출처: 연합뉴스, 한국영상자료원)



그리고 1926년, 나운규가 가사를 쓰고 단성사의 악단장이자 바이올리니스트 김영환이 완성한 <아리랑>이 탄생했다. 진주 출신의 청년 음악가였던 그는 토속적인 민요 가락에 1920년대 중반에 가장 트렌디했던 전통 음악과 서양 음악, 그리고 일본 음악의 혼종인 '왈츠풍 4분의 3박자'를 입혔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서양 악곡을 어설프게 입었다고 비판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근대적인 편곡 덕분에 아리랑은 특정 지역의 색채(토리)에 구애받지 않고 계급, 신분, 성별, 세대의 구별 없이 전국에서 모두에 의해 불리는 노래가 될 수 있었다.


3. <아리랑> 가사 톺아보기

이제 <아리랑>의 가사를 살펴보자. 부끄럽게도 이 노래의 탄생 배경에 대해서 알기 전에는 다른 노래들처럼 '남녀 간의 사랑 노래'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우리는 이 노래가 식민지 조선의 수많은 '영진'이들이 일본의 경찰에게 끌려갈 때, 그걸 바라볼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울먹이며 부르던 노래라는 걸 안다.


게다가 <아리랑>이 식민지 조선의 '암묵적 애국가'였다는 것을 알고 나면, 마냥 단순해 보였던 가사가 비밀스러운 암호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번역: Arirang, Arirang, Arariyo, Crossing over Arirang hill.


'아리랑' '아라리요'는 한자도 없는 순수 한글이다. 얼싸, 얼쑤! 같은 것들과 같이 음역해 국문을 그대로 유지했다.


<아리랑>의 스토리를 알기 전의 나는 이 '아리랑 고개'가 나를 버리고 가는 남편 또는 연인이 '내가 따라갈 수 없는 머나먼 곳'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 영진이 경찰에게 끌려가던 언덕에 대조해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넘어가는 (Crossing over) 아리랑 고개는 식민이 조선이 헐떡이며 넘어야 했던 시대의 시련이 아닐까. (하지만,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끝내 '넘어가고 마는' 강단을 가지고 있기도 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번역: Leaving me, dear? Leaving me here? You won’t go far, with your feet so sore.


<아리랑>의 시그니쳐 가사이자 노래의 얼굴이기도 한 소절이다. 사실 <아리랑> 이전에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의 구절을 가지고 있는 민요가 있었다. (시기상으로 아리랑보다 먼저 태어났으니, 아리랑의 가사가 이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19세기말, 전국을 돌아다니던 사당패에 의해 만들어져 풀린 <사설난봉가>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고 / 이십 리 못 가서 불한당(不汗黨) 만나고 / 삼십 리 못 가서 되돌아오누나


사설난봉가의 노랫말은 사랑과 관련된 내용을 재치 있고 익살스럽게 풀어냈다고 알려져 있다. 가사를 잘 보면 노래의 화자는 청자에게 십리쯤 간 임에게 발병이 나고, 이십 리쯤 간 임은 불한당을 만나고, 삽십리를 채 못 가서 되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얼핏 보면 떠나는 연인에게 '다리나 부러져라' '발 아파라!' 하고 악담을 퍼붓는 것 같지만, 다시 보면 '먼 길이야, 다리 아플 거야. 제발 가지 마! 가면 발병 날 거야!' 하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리는, 남겨진 자의 처절한 호소 같다.


'dear'를 사용해 마치 '사랑하는 그대' 같은 느낌을, 'here'로 라임을 노렸다.



청천 하늘에 잔별도 많고 이내 가슴엔 희망도 많다.

번역: Countless stars fill up the sky. Countless hopes fill up our hearts.


어린 시절 배웠던 '청천 하늘' 구절엔, 사실 '희망' 대신 '수심'이 있었다. 하늘에 가득한 별만큼이나 걱정(수심)이 많다는 뜻이었다. 아리랑의 가사를 찬찬히 뜯어보면 사실 '희망' 보다는 '수심'이 더 어울린다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매정하게 등을 돌리던 1절의 그 임은, 사실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억누른 채 등 떠밀려 가고 있었음이 3절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자의든 타의든 이별의 순간이라면, '희망' 보다는 '수심'이 더 어울리기도 하고, <아리랑>이 태어난 식민지 시절 청년의 가슴에도 '희망'보다 '수심'이 더 많았을 테니까. (영화 속 <아리랑>에서 나온 가사는 '청천 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사린 말도 많다'이다. 정말 다양하지 않은가?)


하지만, 풍년이 오기를(5절) 기원하는 마지막 구절을 생각하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존재감을 뽐내는 '희망'이라는 것이 썩 나빠 보이지는 않다. 맑은 밤하늘을 수놓은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처럼, 우리네 가슴에 셀 수 없는 꿈과 희망을 품는 것도 낭만적이지 않은가?


원곡의 가사가 '희망'이었다면, 식민지 청년들의 가슴엔 어떤 희망이 있었을까? 언젠가 되찾을 '독립'에 대한 희망일까? 아니면, 나라의 광복과 같은 거창한 꿈은 모르겠고, '예쁘고 멋진 애인을 만나 끝내주는 연애를 하겠다'거나 '동생과 나눠 먹을 맛있는 간식을 살 수 있는 돈을 벌고 싶다'와 같은 어제 보다는 살짝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었을까?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나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가고 싶어 가나

번역: Setting sun, does it fade by choice? Leaving me now, is it truly your voice?


앞서 언급했던 '사실은 떠나고 싶지 않았던 임'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3절. '사실은 가고 싶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걸로 들리기도 하고, '나를 왜 떠나가는 건지 궁금'해하는 걸로 보이기도 하고. 부르는 사람에 따라 정말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소절이 아닌가 싶다.


이 가사를 번역할 땐, 떠난 임을 그리워하며 지는 해를 바라보고 선 사람을 상상했다. 산 중턱에 걸린 해를 보며 나지막이 내뱉어보는 한 마디인 것이다. "해가 지는 것도, 자기 선택은 아니잖아. 지금 날 놓고 가는 것도, 아마 당신이 진짜 바라는 건 아닌 거지?" 질문에 대한 답을 영원히 들을 수는 없겠지만.


가자 가자 어서 가자 백두산 덜미에 해 저물어 간다

번역: Let us go, let us move. Sun sets on Baekdu, night is on the move.


지리산도 있고, 태백산도 있는데, 왜 하필 '백두산'일까? 이 소절은 '남겨진 사람' 보다는 '떠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조선의 광복이란 희망을 품고, 백두산을 넘어 만주로, 또 상해로 먼 길을 떠나는, 아니,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이야기. 발걸음이 떨어지진 않지만, 애써서 '가자! 가보자!' 힘을 내야만 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조국에 남겨두고, 백두산 덜미에 저물어가는 해를 보면서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남편이거나 아내일 수도, 누군가의 형이나 누나일 수도 있다. 부모님을 뒤로한 채, 먼 길을 떠나는 자식 부부일 수도, 정든 친구들을 떠나는 청춘일 수도 있다. 펜을 잡던 손으로 도시락 폭탄을 들고, 밥을 짓던 손에 총을 쥘 수도 있다.


흔한 남녀 간의 사랑인 줄 알았는데, 사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화자와 청자가 될 수 있는 가삿말이었구나. 누구나 아리랑 고개를 넘어 끌려가는 '영진'이도 될 수 있고, 떠나가는 그를 보며 울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될 수도 있는 가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 소절이다.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와요 이 강산 삼천리 풍년이 와요

번역: Good times are coming, good times are near. All across the land, we will bloom.


아리랑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 구절을 마주하고 나는 펜을 든 채 한참을 머뭇거렸다. 공연의 마지막 곡이나, 앙코르곡으로 아리랑을 부른다면, 전체 공연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할 수도 있는 소절이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고 싶었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전적인 의미로만 따지자면 '풍년'은 'A year of abundance', 또는 'rich harvest' 정도로 옮기는 것이 적당하다. 농경사회에서 보통 '풍년'이라 함은 농사가 잘 되어서 수확이 넘쳐나는 해를 말한다. 하지만 아리랑이 만들어졌던 시기를 떠올려보면, 사람들이 기다리던 '풍년'은 고작 쌀독 하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들판에 찾아올 봄, 즉 '광복'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머리로는 그 해석을 받아들였지만, 번역가이자 소리꾼으로서의 내 입술 끝에 걸리는 단어의 맛은 묘하게 달랐다. 2026년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이 노래를 전할 때, '풍년'을 그저 '1945년의 광복'이나 '농사의 성공'으로만 가둬두고 싶지 않았다. 그건 박제된 역사 거나, 우리와는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 테니까.


나는 이 노래가 품은 희망의 주어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풍년이 온다'는 외침 속에 숨겨진 주어는, 너도 아니고 그들도 아닌 바로 '우리(We)'다. 누군가는 사랑의 결실을, 누군가는 커리어의 도약을, 또 누군가는 긴 투병 끝의 회복을 기다린다. 각자의 척박한 땅에서 간절히 기다리는 그 '좋은 시절(Good times)'이 바로 현대의 풍년이 아닐까.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는 결실도 좋지만, 웅크렸던 생명이 마침내 껍질을 깨고 자신의 색깔로 피어나는 그 벅찬 순간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풍년'을 수확(Harvest)이 아닌, 만개(Bloom)로 해석했다. 'We will bloom'이 앞으로 나오는 것이 문법적으로는 더 적합하지만, 이 또한 '시적 허용'을 노리고 뒤로 빼냈다. '마침내, 비로소, 끝끝내 찾아올 행복'이라는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


Outro: 2026년, 다시 쓰는 아리랑

이 글을 쓰는 지금, 2022년 이후 3년 9개월 만에 발매되는 방탄소년단(BTS)의 신보 제목이 공개됐다. 제목은 바로 '아리랑'. 정확히 100년의 시차를 두고 우리 곁에 찾아올 새로운 <아리랑>이라니. 특별히 방탄소년단의 팬은 아니지만, 그 제목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것 같다.


# 우리가 넘어야 할 고개

수년 전, 대학원생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하와이에 방문했을 때였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행사에 참여하고 있던 나의 귀에 익숙하지만 어딘가 색다른 박자와 멜로디가 들려왔다. 겉으로는 진도아리랑이나 영남가락과 꼭 닮았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가사이거나, 묘하게 다른 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가만히 교민들의 공연을 바라보다가, 나는 그것을 '하와이 농악' 또는 '하와이 아리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들이 부르는 아리랑에는 머나먼 타지에 뿌리를 내린 이들의 고유한 정신과 정서가 담겨 있을 터였다.



과거 강원도 산골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에게 <아라리>가 있었고, 일제강점기엔 '독립군 아리랑'이, 산업화 시대에 '광부 아리랑'이 있었던 것처럼, 각 시대마다, 상황마다 여러 사람들의 삶이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있었다. 각자의 아리랑을 부르면서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아리랑 고개'를 넘고, 저마다의 '해넘이'를 하고, 저마다의 '희망'을 찾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넘어야 할 '아리랑 고개'는 무엇일까? 취업난이라는 고개일 수도, 치솟는 물가에 외식 한 번 하기 힘든 현실일 수도, 또는 극심한 세대 갈등이라는 고개일 수도 있다. 100년 전보다 나라는 부강해졌을지 몰라도, 개개인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


하지만 <아리랑>의 4절과 5절까지 모두 읽은 당신은 이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파른 고개 앞에 주저앉아 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끝끝내 그 고개를 넘어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1926년 나운규 감독의 손에서 탄생한 노래를 넘어, 이제는 우리가 답할 차례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만의 가사로, 2026년의 아리랑을 부르며 눈앞의 고개를 넘어가자.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끝끝내 넘어갈 것이고, 그 고개의 끝에 화려하게 꽃 피운 풍년을 맞이할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