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간편 결제 시스템 '페이코(Payco)'에서 '니나노 클럽'을 론칭했다. 일명 '사는 게 니나노.' 독특하고 개성 있는 목소리를 가진 싱어송라이터 '이진아'를 필두로 '지코'와 '우쿨렐레 피크닉'이 새롭게 해석한 <태평가>가 페이스북을 비롯한 다양한 SNS채널과 티브이 광고에 등장했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바치어 무엇하나', <태평가>의 시그니처라고도 할 수 있는 1절의 가사가 통통 튀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흘러나왔다. 어릴 때부터 국악은 '고리타분하고 오래된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큰 내게 <태평가>가 주류 세계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이것 봐! 오래된 것도 통한다니까!*
*어쩌면 나에게만 통한 걸지도. 하지만 '니나노'가 된 <태평가>는 이듬해 넬(Nell)의 목소리로 한 번 더 매스컴을 탔으니, 대중에게 먹힌 것이 아닐까? 원래의 이름을 잃고 '니나노'가 된 것은 아주 조금 아쉬웠지만.
https://www.facebook.com/watch/?v=520301971452812
나의 이 쾌재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2021년 11월, <태평가>는 또 한 번 예기치 못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무대는 내수용 광고가 아닌, 한국관광공사의 공식 유튜브 채널 'Imagine Your Korea'였다.
당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의 하늘길이 꽉 막혀 있던 시기였다. 앞서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가 포함된 <Feel the Rhythm of Korea> 시즌 1(2020)이 "한국을 이렇게도 힙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라는 찬사를 받으며 각광받은 직후였다. 그 폭발적인 열기를 이어받아 공개된 시즌 2(2021)의 주인공으로, 전주(Jeonju)의 풍경과 함께 낙점된 곡이 바로 <태평가>였다.
래퍼 원슈타인의 목소리로 세련되게 리믹스된 이 노래는, 마스크 뒤에 숨어 답답해하던 사람들에게 다시 열릴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1930년대의 유행가이자 1950년대의 위로가였던 노래가, 2015년의 CM송이었던 노래로, 2021년에는 전 세계 힙스터들을 위로하는 'K-칠링 송'으로 거듭난 것이다.
우리가 아는 명곡들은 대부분 시대를 타며 진화한다. <태평가> 역시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으며, 수십 년에 걸쳐 당대의 감각으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다듬어지며 비로소 완성된 노래다. 굿판의 멜로디가 모던 보이의 왈츠가 되고, 다시 피란민의 응원가가 되기까지. 그 질긴 생명력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 1935년: 경성 댄스홀의 왈츠, <태평연>
1935년, 폴리도르(Polydor) 레코드사에서 발매된 이 곡의 원제는 <태평연(太平烟)>이었다. 플루트를 전공한 작곡가 정사인은 당시 가장 인기 있던 경기민요 <창부타령>의 선율을 가져와, 서양의 왈츠 박자인 3/4박자를 입히는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했다. 노래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기생 출신 가수, '선우일선'이 맡았다.
익숙한 민요 멜로디에 세련된 서양의 왈츠 박자를 얹었으니, 반응은 폭발적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노래의 뼈대가 된 <창부타령>은 이미 검증된 히트곡이었다. 원래 서울 굿판의 '창부거리'에서 무당이 부르던 노래가 전문 소리꾼들의 입을 통해 대중가요처럼 전국적으로 퍼진 것이니, 멜로디의 중독성은 이미 보장된 셈이었다. (아마, 한창 대장금이 인기였던 2000년대 초반에 피날레 곡으로 '오나라'를 부르던 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시의 가사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눈물만 흘려서 무엇하나, 한숨만 쉬어서 무엇하나...
어떤가. 짜증 낼 필요도 화를 낼 필요도 없다는 지금의 가사와 달리, 어딘가 수동적(Passive)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나라를 빼앗긴 설움, 아무리 노력해도 취직도 독립도 되지 않는 암울한 현실. 1930년대의 <태평연>은 흥겨운 왈츠 리듬 속에 '눈물'과 '한숨'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 억지로라도 정신승리를 해보려는 식민지 청춘들의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른다.
# 1950년: 폐허 위에서 춤을, <태평가>
이 노래가 <태평가>로 다시 태어난 것은 한국전쟁 때였다. 경기민요 명창 故 이은주는 피란지 대구에서 이 노래를 다시 불렀는데, 이때 가사의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바치어 무엇하나...
'눈물'이 '짜증'으로 바뀐 것이다. 고작 '단어 하나'지만 필자는 이 변화가 '태평가'를 '수동적'인 노래에서 '능동적'인 노래로 바꿔 준 킥이라고 생각한다. 1930년대 식민지 청년들의 감정이 타인/외부세력에 의해 유발된 '슬픔'의 감정이었다면, 1950년대 전쟁터의 생존자들에게 필요한 건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힘'이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며 대구로 피란을 갔어요. 좁은 방에서 피란살이하다 보니 시름을 잊게 해 줄 만한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요. 그래서 옛 가락에 내가 직접 가사를 지어서 불렀는데 이후 큰 인기를 끌었죠. 그 노래가 바로 태평가입니다." (이은주 명창 인터뷰 발췌, 2007)
이은주 명창은 생전 인터뷰에서 옛 가락에 가사를 붙여 태평가를 복원한 것을 70년 소리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일로 꼽았다. 어제 친구였던 자가 적이 된 현실 속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통에서도 음악은 흐른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에서, 울고 있어 봐야 바뀌는 건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아, 짜증 나네. 화나네!' 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나 싸울 (또는 도망갈) 추진력을 얻는 것이 더 현실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슬픔과 한숨 뒤에 숨어 현실 도피하는 대신, 죽음의 공포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가장 능동적인 생존 본능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이은주 명창의 손을 빌어 1935년 모던보이들의 낭만적인 왈츠는 1950년의 폐허 위에서 추는 처절하고도 신명 나는 '생존자들의 춤'으로 완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태평가>가 단순한 유행가를 넘어 여러 시대를 관통하는 '멘털 관리' 노래인 이유다.
부제: Why bother? (인생무상)
짜증은 내어서 무엇 하나 성화는 바치어 무엇 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번역: What is the use of getting upset? Why would you get mad, what is the gain? Troubles will come and disappear, so spend time on things you like, enjoying life.
<태평가>의 숨겨진 스토리를 알기 전까지 나는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를 가사의 포인트로 생각했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짜증 나는 일도, 화가 나는 일도 '어차피' 계속 생길 테니까 좀 쉬어도 가고, 좀 놀기도 하면서 살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냐는 것이 아이디어의 골자였다. (... spend time on things you like, enjoying life!)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평화로운 태평성대에 살고 있으니, 그렇게 성가신 일에 마음을 쓰고 감정소모를 하기보다는 보다 중요한 (가사에서는 '인생을 즐기는 일/노는 일') 것에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라는 가사가 일제강점기의 한숨으로부터 태어나 한국 전쟁의 슬픔 속에 사람들이 시름을 잊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가사라는 것을 알게 되니, 가사의 뒷부분보다는 앞부분이 더 눈길을 끄는 것 같다. 이미 짜증 나고 화나고 속상한 일은 이미 벌어졌고, 정든 고향을 떠나 저 멀리 타지에 피난을 왔다. 언제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질지 모르는데,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감상에 젖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일이 또 있을까.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것보다 멘털을 다잡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자, 굳은 의지를 다지는 것이야말로 생존확률을 단 1프로라도 더 올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니나노~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씨구 좋다
벌 나비는 이리저리 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번역: Ninano~ Nililiya, Nililiya, Ninano, Eol-Ssa, so good! Eolssigu, all good! Bees and butterflies, high and low, dancing around to find the rose.
후렴을 번역할 땐 두 가지에 집중했다. '얼싸 좋아, 얼씨구 좋다!' 부분의 반복이나 '벌나비' 부분의 라임이다. 다른 민요와 마찬가지로 '니나노', '늴리리야', '얼싸/얼씨구'와 같은 부분은 의태어에 가깝거나, 고유의 추임새로 취급하여 음역 했고, 그 외의 부분에서는 듣는 이로 하여금 후렴의 '벌나비'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모양이나 '꽃을 향해' 가는 방향성 같은 것을 최대한 표현해보고자 했다.
벌나비: Bees and butterflies
'벌나비'처럼 '하나의 단어'가 가 되지는 못했지만 ' 두 단어 모두 알파벳 B로 시작하는 단어인 덕분에 의도하지 않은 라임을 노릴 수 있었다.
좋아, 좋다!: 'so good, all good!'
'So good' 또는 'all good'을 두 번 반복할 수도 있었지만, '좋다'와 '좋아'의 서로 다른 어미의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Good'이라는 핵심 의미를 유지하는 한편, 전체적으로 비슷한 형태를 가지며, 'so'와 'all'로 '-아'와 '-다'의 다름을 표현해 보았다.
청사초롱에 불 밝혀라 잊었던 낭군이 다시 온다.
공수래공수거 하니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번역: Light up the lantern, red and blue. Your long lost lover comes back to you. You come and return with empty hands, so why not play before we go?
'청사초롱불 밝혀라, 잊었던 낭군이 다시 온다.'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이 가사를 보고 <늴리리야>를 떠올렸다면, 맞다! 많은 민요들이 비슷하거나 같은 가사들을 가지고 있다. '에'가 붙거나 하는 식으로 음률에 따라서 조사 따위가 붙거나 없거나 하는 차이를 갖고 있지만, 결국 같은 가사이다. 때문에 2절 첫 부분의 가사는 <늴리리야>와 완전히 동일하다.
*혹시 늴리리야를 다시 읽고 싶다면 여기 클릭!
'공수래공수거': come and return with empty hands
개인적으로 태평가의 가사가 여타 민요(타령)들 보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공수래공수거'와 같은 가사의 등장 때문이다. '공수래공수거'란 불교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인생의 허무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태평가>는 이전에 다뤘던 <군밤타령>이나 <늴리리야>의 비교적 직관적이고 쉬운 가사들 ('개가 짖네, 개가 짖네' 혹은 '어제 청춘 오늘 백발') 보다 좀 더 깊이 있고 스토리가 있는 가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늴리리야>도 사자성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불교 용어'는 좀 새롭지 않은가?
https://www.youtube.com/watch?v=QEXPYsaWRZA
꽃을 찾는 벌 나비는 향기를 쫓아 날아들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버들 사이로 왕래한다.
번역: Bees and butterflies chase the scent, finding flowers, heaven sent. Golden birds in willow trees, coming, going, in the breeze.
<태평가>에서 제일 좋아하는 가사를 꼽자면, 아무 고민 없이 이 가사를 꼽을 것이다. 우선 1) (공연하는 입장에서) 후렴구와 비슷해서 가사 암기가 쉬웠고, 2) 벌나비와 꾀꼬리가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지는 가사이기 때문이다.
Bees and butterflies chase the scent, finding flowers, heaven sent.
영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달라서 '벌나비는 꽃을 찾는다'와 같이 '행동하는 주체'가 문장의 서두에 위치해야 좀 더 자연스러운 문장을 구성할 수 있다. 때문에 벌나비(Bees and Butterflies)를 주어로 만들고, '향기를 쫓아'를 동사로, 그리고 '꽃을 찾는' 행위를 동사가 아닌 분사구문의 형태로 (부수적인 액션으로) 구분했다.
1) Chase the Scent (향기를 쫓아): 원래 가사는 '꽃을 찾는'이 '벌나비'라는 명사를 수식해 명사화된다. 쉽게 말하면, 가사에서 말하는 것은 그냥 '벌나비'가 아니라 '꽃을 찾는 벌나비'가 '향기를 쫓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래의 멜로디에 이 모든 것을 욱여넣기에는 가사가 너무 길어져, 자칫하다가는 랩을 해야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향기를 쫓는' (진짜 동사) 행위를 하다가 '꽃을 찾는' (향을 쫓다 보니 찾아진) 행위로 이어진다.
2) Heaven Sent (하늘에서 보내준): 본 가사에 **없는** 이 문구는 태평가의 멜로디를 빠짐없이 채우기 위해 추가되었다. Scent 와의 라임을 맞추기 위해 'Sent'를 사용해 빈 부분을 채웠다. 벌나비, 그리고 이후에 나오는 꾀꼬리 모두 '날아다니는' 곤충 및 동물이라 'Heaven'이라는 공간감과도 잘 어울렸다. (딱 세 글자에 불과한 '벌나비'가 Bees and Butterflies로 번역되면서, 너무 많은 음표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Golden birds in willow trees, coming, going, in the breeze.
1) Golden Birds: '황금 같은' 꾀꼬리를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golden oriole (유럽 꾀꼬리)의 골든을 가져와 'Golden Birds'로 바꾸었다. Oriole 대신 Birds를 쓴 이유는 한국인들이 어려워 R과 L이 섞여있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래의 박자 상으로는 Golden orioles in willow trees..로 바꿔도 문제가 없으니 참고하자.
2) Willow Trees & in the breeze: Willlow의 i 발음과 Coming & Going을, Trees & Breeze의 -ee- 발음을 의도적으로 반복해 라임을 만드려고 했다.
개다리 진달화 만발해도 매난국죽만 못하느니
사군자 절개를 몰라주니 이보다 큰 설움 또 있으리.
번역: Wild flowers bloom so bright, but you don’t want plum, orchid to lose the light. If you don’t know their noble grace, sadness will fill the empty space.
4절의 가사는 ‘개나리 진달화(들꽃)’와 ‘매난국죽(사군자)’의 대비감을 느낄 수 있는 가사다. 개나리와 진달화는 대표적인 ‘들꽃’이다. 반면, ‘매난국죽’은 ‘매화(梅花), 난초(蘭草), 국화(菊花)와 대나무(竹)를 이르는 사자성어로, 사군자(四君子)를 뜻하는 또 다른 말이다. 이들 사군자는 봄(매화), 여름(난초), 가을(국화), 겨울(대나무)을 상징하며, 각 식물 특유의 장점을 ‘덕’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하여 ‘군자’라 칭했다. 다시 말하자면, 매난국죽은 ‘선비정신’의 상징인 셈.
개나리, 진달래,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노래의 멜로디가 끝나기 전에 꽃 이름만 부르다가 끝날테다. 개나리와 진달화는 과감히 ‘들꽃’만을 취하고, 매난국죽에서는 Orchid와 Plum만을 가사에 녹여내었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내용은 들꽃이 아무리 밝다(Bright)한들 매화와 난초가 그 빛(light)을 잃지 않는 것이다. ‘큰 설움’은 다소 직관적인 ‘sadness’(슬픔)을 사용해, ‘grace’, ‘space’와 비슷한 라임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다.
따뜻한 봄이 되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동산을 뒤덮으면 가만히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따뜻한 바람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 왔구나, 하고 우리에게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고마운 꽃들이다. 하지만 혹시 알고 있는가? 봄을 여는 것은 개나리가 아니라 매화라는 것을. 매화는 2월 말에서 3월 초에 개화를 시작한다. 겨울의 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매화는 그 추위를 이겨내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운다. 난초는 깊은 산중에서도 자신의 향기를 멀리까지 퍼트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가을을 상징하는 국화는, 추위가 스며들기 시작하는 늦가을에 피어난다. 대나무는 마치 소나처럼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한다. 따뜻한 봄에 잠깐 피었다가 사라지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예쁘다고, 사시사철 우리의 곁에 있어주는 매난국죽의 아름다움을 잊는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Key Vocabulary:
개나리: forsythia
진달화(진달래): Korean rosebay
매(매화): plum blossom
란(난, 난초): Orchid
국(국화): chrysanthemum
죽(대나무): Bamboo
사군자: Sagunja, the Four Gracious Plants (사군자(四君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절개: integrity, fidelity
거짓말 잘하면 쓸데 있나 진정을 한들 소용 있나
한번 속아 울어 봤으니 다시 속지는 않으리라.
번역: What’s the use of telling lies. What’s the use of truth in eyes? Once I’m fooled, I’ve cried my tears. I won’t be fooled in future years.
혹시 사기를 당해본 적 있는가? (없길 바란다) 필자의 경우 10여 년 전 돈도 없고 직업도 없던 시절, 도움이 필요하다는 지인의 간절한 설득에 500만 원을 빌려 준 적이 있다. 결과는? 예상했다시피 500만 원은 공중분해가 됐고, 이제는 그 지인이 어디에 사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이 가사는 한 때는 믿었던 이들의 청산유수에 속아 심장을 내어줬다가 다치고 만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 같다.
이미 직관적인 가사지만, 직역보다는 의역을 선택했다. 번역된 가사를 Back Translate 하면 다음과 같은 의미를 품고 있다.
What’s the use of telling lies. (도대체 거짓말은 왜 하는 거야?)
What’s the use of truth in eyes? (눈앞의 진실은 무슨 소용인가?)
Once I’m fooled, I’ve cried my tears. (이미 한 번 속아서, 울었으니까)
I won’t be foolled in future years (다음엔 속지 말아야지.)
국문 가사 ‘거짓말 잘하면 쓸데 있나, 진정을 한들 소용 있나?’가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느낌이라면, 영문 가사를 번역할 땐 좀 더 직접적인 감정을 담아보고 싶었다. 말하자면,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약!' 하고 화도 좀 내보고, 다신 속지 말자고 다짐도 해보고.
https://www.youtube.com/watch?v=DtrgpRyBlH8
시대는 바뀌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전쟁 같은 매일을 산다. 나라를 빼앗긴 것도 아니고,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지지도 않지만, 꽁꽁 언 채용시장과 내일이 보이지 않는 매일을 버텨내야 한다. 뉴스에서는 '2030 쉬었음 청년이 역대 최고'라고 꼬집지만, 딱 30분만 채용 사이트를 들여다보면 알 것이다. 채용 공고가 정말 씨가 말랐다는 걸 (아니면... 열심히 쌓은 경력으로 혼자 10인분 하면서 월급은 고작 215만 원을 받고 매일 야근을 담당하고 버티다가 병을 얻거나.)
4050의 현실은 어떤가? 2030은 결혼과 출산,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알바나 부모님의 도움을 통해 숨이라도 쉴 수 있지만, 책임질 배우자와 자식이 있는 40대에게는 '희망퇴직'의 피바람이 불고 있다. 2030대에 겪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제일 화려하게 꽃 피울 나이이건만. 나이라도 어렸던 2030은 몸값도 낮(없)고, 딸린 식구도 없어서 어떻게든 붙기만 하면 악으로 깡으로 버틸 수 있지만, 이미 경력도 있고 몸값도 높아진 4050에게는 이것도 저것도 쉽지 않다.
상황이 이런데 6070이라고 속이 편할까. 늦둥이 딸을 30년 동안 잘 키워서 대학도 대학원도 졸업시킨 나의 70대 어머니도 아직 주머니 속이 쏙 들어가 나가지 않은 아기 캥거루를 품고 계신데. 이쯤 되면 나이, 세대 상관없이 모두에게 잔인한 시대가 아닐까.
1935년의 식민지 청년들이 그랬듯 취업난에 시달리고, 1950년의 피란민처럼 불안한 미래에 몸을 떤다. 간절한 마음으로 돌린 수백 장의 이력서과 지원서에는 답신조차 오지 않고, 때로는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내 500만 원처럼!). 열심히 피운 꽃이 누군가의 화려함에 가려져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태평가>는 우리에게 짓궂게 말을 건다. "야, 거 짜증 내서 뭐 하냐? 그냥 춤춰, 놀아!"
이 노래는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떼 먹힌 돈을 찾아주지도, 불안한 미래를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다만, 그 문제에 함몰되어 나 자신을 갉아먹지 않도록, 잠시 숨 쉴 틈을 만들어준다. '니나노'하고 흥을 돋우는 그 짧은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지옥 같은 현실에서 로그아웃하여 '나'를 지킬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당신의 삶이 고단할 때 이 100년 묵은 처방전을 꺼내 보길 바란다. 1935년의 왈츠, 1950년의 응원가, 2015년의 CM송, 2021년의 랩, 그리고 2026년. 이제 이 노래는 당신의 것이다. 가사의 뜻을 곱씹어도 좋고, 그저 '니나노'하고 리듬에 몸을 맡겨도 좋다. 어떤 형태로든 이 노래가 당신의 오늘을 '태평'하게 만들어준다면, 나의 이 부족한 번역도 쓸모를 다한 것이리라.
그 벌나비가 꽃을 찾듯, 당신의 마음에도 평화가 깃들기를. 얼씨구, 좋다!
<태평가> 새로운 모습의 태평가를 몇 개 찾았다.
1. 신승태 & 손승연이 꾸민 한일톱텐쇼 58회 속 태평가
2. 트로트 가수 김용임이 꾸민 가요무대 220912 방영 태평가
3. 두번째달의 세련된 반주가 돋보이는 송소희 & 딩고의 태평가
4. 25현 가야금 반주가 듣기 좋은 신정하의 태평가
5. 제대로 된 경기민요 레슨이 궁금하다면 강효주의 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