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율과 의미 사이
이번 챕터에서는 이 시리즈를 집필하는 과정의 ‘어느 순간’ 떠올랐으나, 하나의 챕터로 구성되지 못한 이야기, 본편이 너무 길어질까 봐 잘라냈던 꼭지, 그리고 그 외의 여러 잡다한 생각들을 다룬다. ‘프롤로그’부터 ‘Track 05. 아리랑’까지, 글이 되지 못하고 메모로 남은 작은 조각들을 이렇게나마 남겨본다.
프로젝트 T의 첫 번째 시리즈에 담은 다섯 곡의 라인업을 보며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 다섯 곡(<경복궁타령>, <늴리리야>, <군밤타령>, <태평가>, <아리랑>), 초등학교와 중학교 음악 교과서의 단골손님들이다.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를 제외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필자 스스로가 고등학교 음악 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없을뿐더러, 둘째, '음악'이나 '체육' 같은 예체능 과목들은 특히 시험 기간이 되면 종종 '자습' 시간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굳이 고등학교까지 갈 것 없이 “라떼”의 중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수행평가 기간이 아니고서는 갑자기 ‘자습’ 시간이 등장하는 일이 꽤 흔했기에, 고등학교라고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는 선곡 기준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음악, 경기민요’ 키워드의 인터넷 검색 결과, <아리랑>과 <경복궁타령>이 고등학교 음악 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 교과서라고 해서 특별히 새로운 곡을 다루는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초중고 과정 사이에 유의미한 레퍼토리 차이는 없었던 셈이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dG2pE21doDU (유튜브 채널: 행복티처_투데이, “음악교과서 우리나라 경기 민요 '경복궁 타령 (Gyeongbokgung Taryeong, G key)' 노래 배우기, Korean folk song (자진 타령 장단)”)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경기민요에 입문하게 되면서, 학창 시절 나의 인간관계는 꽤나 좁고, 편협하게 구성되었다. 여러 달 동안 나를 품어 준 엄마도 소리꾼,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 속의 이모 (a.k.a 첫 선생님)도 소리꾼, 베프와의 첫 해외여행도 공연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내가 기억하는 모두는 ‘국악을 하는 나’란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이고, 그들에게 나는 항상 ‘국악 하는 애’인 채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러던 내가 난생처음으로 '국악과 전혀 관련 없는 세계'의 사람을 만난 건 대학 입학 후였다. "저는 경기민요 전공했어요!"하고 소개하자마자 돌아온 대답은 (적어도 나에게) 가히 센세이셔널했다.
"오! 그럼 너 <경복궁타령> 알아? 나 그거 아는데!"
기껏해야 '아리랑' 정도나 나올 줄 알았는데, '늴리리야'도 아니고 '경복궁타령'이라니? 친구의 기억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가 먼저 첫마디를 흥얼거리자, 반가워하며 ‘맞아!!’를 외치던 그 목소리와 순간이 추억 속에 새겨졌다.
이번 프로젝트의 라인업 마지막 한 자리는 그렇게 채워졌다. 번역은커녕 내가 어떤 어른이 될지도 몰랐던 15년 전, 그 친구와 나눴던 5분짜리 대화 덕분에.
<조선팝, 영어를 입다>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약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 시리즈를 처음 기획했던 10년 전, 나의 목표는 단순히 ‘민요의 가사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시의 형태는 시처럼, 구어체 가사는 구어체처럼, 원곡의 음률과는 관계없이 그저 가사의 형태와 내용을 직역해 외국인들로 하여금 곡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약 5년 전, 첫 번째 버전의 번역안이 탄생했을 당시에는 콘텐츠 소비 대상을 한국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으로 확장해 ‘한국어 또는 영어를 공부하는 모든 학습자’를 위한 학습자료로 개발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두었다. 약 4년 여의 영어 교육 경험과 그 과정에서 취득한 TESOL/ 한국어교원자격증이 필자에게 새로운 관점을 부여한 것이다. 여전히 ‘직역’에 그쳤던 시기였지만 가사의 의미에 집착하기보다 원곡의 음에 맞춰서 부를 수 있도록 한 것도, 그를 위해 과감히 불필요한 단어를 삭제하는 등, 나름의 ‘시적 허용’을 시도한 것도 두 번째 기획을 통해서였다.
민요 가사 번역은 ‘직역(Literal (word-to-word) Translation)’이 아닌 의역(Liberal Translation)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한 것은 번역회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게 되면서였다. (그전까지 나에게 ‘번역’이란, 직독직해의 영역에 불과했다.) 나는 일반 번역 프로젝트보다도 각 국가의 번역사들의 주관(그리고 직접적인 인풋)이 반영될 수 있는 문화 컨설팅(Cultural Consulting) 혹은 Copy Adaptation(문화에 맞게 번안하는 작업) 프로젝트를 특히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제아무리 기가 막힌 영문 카피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나라와 문화권에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번역사들의 주관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오는 것도 흥미로웠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이름이 특정 문화권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금기시되고, 다섯 줄짜리 카피가 딱 네 글자로 축약되기도 하고. 단순 번역 작업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긴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보람차고 그 자체로 재미있었달까.
흔히 예술을 배고픈 직업이라고 했던가. 노래하는 사람으로 살다가는 엄마한테 손 벌리는 꼴을 못 벗어나겠다는 생각에 공부를 하고 여러 분야로 눈을 돌려 일을 시작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며, 이제 더 이상 (돈은 없어도) 반짝반짝한 내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생활이 좁디좁은 나의 세상을 넓혀준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속단하지 말자!)
이번 시리즈의 중심이 되는 다섯 개의 트랙리스트는 모두 1) 민요 가사의 번역 2) 리서치 3) 인트로부터 아웃트로까지 순차적 집필 순서로 작업했다. 번역하는 동시에 가사에 사설을 다는 대신 리서치를 끝내고 아웃라인을 잡은 다음, 인트로와 탄생배경 집필을 끝낸 다음 민요의 사설로 넘어갔다. (민요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지 않은 상태로 가사의 해석을 끝내버리면, 아마 다섯 곡 모두 남녀 간의 사랑 얘기로 끝났을 것이다).
다섯 개의 트랙리스트는 모두 ‘키워드’ 하나를 주제로 잡고 출발했다.
경복궁타령: 노동의 고단함(조선판 블라인드)
늴리리야: 유흥으로의 도피
군밤타령: 생존을 위한 몸부림
태평가: 살아남은 자들의 왈츠
아리랑: 빼앗긴 조국과 언젠가는 되찾아올 봄
대부분의 곡은 키워드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늴리리야’의 경우는 ‘도피’라는 키워드는 유지되었지만, ‘유흥으로’ 도피한다는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다.
늴리리야는 빠르고 흥겨운 멜로디를 가진 노래다. 백과사전이나 기존 자료의 ‘정의’를 보면 늴리리야는 ‘임에 대한 상사의 정’, ‘서민적 삶의 애환’, 그리고 ‘세월의 무상함’이나 ‘늙음에 대한 한탄’을 노래하는 곡으로, 밝고 경쾌한 멜로디와는 대조되는 가삿말이 매력적인 곡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 곡을 처음 작업하는 동안에는 삶의 고됨, 걱정, 그리고 흐르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 등을 노래로써 잊는, 말하자면 ‘빠른 비트와 물아일체가 되어 현실을 잊어버리는, 그러니까 ‘현실에 대한 회피’로 포인트를 잡고 집필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며, 노래가 ‘1930년대의 시대상’과 ‘신민요의 탄생배경’이라는 서사를 입고 나니, 처음엔 ‘회피’ 뿐인 줄만 알았던 가사가 ‘다시 도약하기 전 숨 고르기’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저 ‘사랑하는 임에 대한 그리움’이나 ‘뻔한 사랑 이야기’에서 ‘조국’ ‘광복’ ‘희망’이라는 키워드로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21세기 청춘들의 ‘낭군’과 ‘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사랑 이야기’가 너무 뻔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민요 속의 사랑 얘기를 그저 임/낭군에 대한 상사의 정에 국한시키기 정말 싫었던 것도 한몫을 했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수혜를 받는 영역도 분명 있겠지만, 기업도 사장도 아닌 일개 노동자의 입장에서 AI의 등장은 마치 재앙 같기만 하다. AI 등장 이전에 번역 피엠으로 입사할 때만 해도 언젠가 출산과 육아를 위해 자발적/비자발적인 커리어 단절을 겪게 되거나 은퇴를 하고 나면 소소하게 번역 일을 하면서 계속 경제활동을 하는 미래를 그렸지만, GPT의 등장으로 내가 숨을 한 번 내쉬는 순간에도 급변하는 번역업계를 보면서 늘어난 평균수명과 ‘뭐 해 먹고살지’에 대한 걱정이 심화되었다. 사직서를 내는 순간에도, 내가 남들보다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고작 영어뿐이었다는 것에 불안을 느꼈다. 왜 하필 내가 한창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하는 청년기에 AI가 나왔을까, 짜증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이 생각이 바뀐 것은 바로 이 프로젝트를 작업하면서였다. 민요 가사 번역의 초안을 작업했던 당시만 해도 AI가 없었고 Google Translate도 그다지 유의미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 (앞서 말했지만 음악 번역은 직역보다는 의역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 마음에 쏙 드는 문장 하나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선 동의어와 유의어를 일일이 비교하고, 각각의 단어의 용법을 찾아보고, 만들어낸 문장이 문법적으로 적절한지를 계속해서 검열하는 시간에 정말 많은 정성을 쏟아야 했다. 고작 다섯 줄의 가사를 번역하기 위해, 초벌 번역에 몇 시간을 쓰고, 고치는 데에 적게는 수 일, 많게는 여러 주의 시간을 쏟았다.
이런 점에서 AI의 등장은 마치 깜깜한 동굴 속 한 줄기의 빛과 같았다. 틀린 문법을 잡아내고, 정말 네이티브가 아니라면 잡아내기 힘든 어색한 표현을 고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해 주었다. (정말 ‘딸깍’ 그 자체다.) 때로는 나만의 백과사전이 되어주고, 때론 편집자가 되어준 나의 개인 비서 제미나이.
여러 할리우드 영화를 번역한 유명 번역가 황석희는 생성형 AI 구독료만 한 달에 15만 원 이상을 지출한다고 한다.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없애주는 고마운 친구. 2030 청년층의 직장과 기회를 아주 엄청난 속도로 삭제하고 있는 AI지만,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생산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효율적일 수 없는 존재. 마음속 한편에 애증의 관계로 자리 잡은 AI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미 시작되었다 사실…)
<조선팝, 영어를 입다>의 모든 곡을 읽은 당신. 당신이라면 ‘연평바다에 얼싸 돈바람 분다’의 ‘돈바람’을 어떻게 번역하겠는가? ‘bonanza’, ‘windfall’, ‘boatful of fish’ 등 여러 옵션들 사이에서 나는 ‘money wind’ (돈 바람)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만약 당신이 영어 네이티브라면, 선뜻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했을지도 모를 선택.
이번 프로젝트를 작업하며 나는 가사의 원문을 완벽하게 담는 대신 나름대로의 ‘시적허용’을 ‘허용’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군밤타령>의 ‘돈바람’, <태평가>의 ‘매난국죽’에서 ‘국죽’을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개나리 진달화’를 ‘들꽃(wild flower)’로 바꾼 것이 있다.
나의 모든 ‘시적허용’들은 나름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부여되었다. 단어 하나, 하나에 집중하기보다는 가사 전체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또는 독자로 하여금 민요의 박자와 멜로디에 맞춰 (동일하게) 부를 수 있도록 축약하거나 삭제를 ‘감행’했다. 그러면서 <경복궁타령>처럼, 의미의 전달과 운율의 유지를 위해 두 가지 버전을 나눠서 작업하는 결정이 만들어지기도.
곡을 고를 때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곡들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신민요’인 ‘통속민요’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곡을 해석하며 끄집어낸 키워드에서 이렇게 많은 2030 청춘의 이야기를 하게 될 줄도 몰랐다.
<경복궁타령>은 야근, 추가 근무, 포괄임금제에 머리를 싸매는 모든 노동자를 떠올리며 썼다. <늴리리야>는 채용한파에 얼어붙은 2030이 주인공이었고, <군밤타령>은 (특히) 9to6 이외의 시간에 일하는 특수 근로자나 아르바이트생, 그리고 자영업자를 떠올리며 써 내렸다. <태평가>는 2030은 물론, 아직까지 자식의 인생을 책임지고 있는 6070까지 모든 세대가 살고 있는 각자의 전쟁터가 무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아리랑>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넘어야 할 각자의 ‘아리랑 고개’에 집중했다.
다섯 개의 챕터의 주인공들이 얼마나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다 쓰고 나니 다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퇴사 후의 취준생의 심란한 마음이 너무 많이 담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일제강점기’라는 ‘공통점’에 사로잡혀, 너무 ‘조국의 광복’이나 ‘고난’, ‘언젠가 찾아올 행복’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면… 이 ‘챕터 가이드’가 도움이 되길 (다시 읽어주십쇼, 허허).
아직도 <에필로그>와, 덤 챕터 두 개가 남아있지만, <조선팝, 영어를 입자> Volume 1 다섯 주인공의 이야기들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1990년대생의 시각으로 1930년대의 사람들이 사랑했던 노래들을 2020년대의 시대상을 통해 해석해 본 이번 작업. 어떤가. 약 10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어딘가 지금의 우리와 많이 닮은 것 같지 않은가?
나에게 민요는 마치 ‘Jazz’ 같다. 가곡이나 시조 등의 ‘정가’보다 각각의 노래가 태어난 시대의 배경과 역사를 좀 더 밀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만 같다. 1930년대의 이야기만 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고 얘기했지만, 우리는 수십, 수백 개의 민요들 중 겨우 다섯 곡의 이야기를 아주 가볍게 살펴봤을 뿐이다.
‘휘모리잡가’ 중 하나인 <맹꽁이타령>의 ‘저건너 신진사집 시렁 위’도 살펴봐야 하고, 조선후기에 탄생해 20세기 초까지 많은 사랑을 받은 ‘십이잡가’ 중 하나인 <집장가> 속 춘향이 이야기도 세상에 나올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서도소리의 ‘수심가토리’와 경기소리의 ‘경토리’로 불리는 ‘춘향가’. 궁금하지 않은가? (판소리뿐만 아니라 우리 경기민요에도 춘향가 있다!!!) 인생의 끝에서 삶을 회고하며 부르는 <회심곡>도, 사월초파일에 탑 주변을 돌며 부르는 <탑돌이타령>도, 가야금 병창 장르의 대표곡, <꽃타령>도 그 언젠가 내 고막을 뚫고 들어와 성대를 울린 바 있다.
언젠가, 영어가 아닌 제3 외국어로 ‘경기민요’ 그 이상을 담아낼 날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