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Project T Volume 2를 기약하며

by 환한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소리를 부르며 각각의 노래가 가진 의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땐 선생님께 정확한 음정과 화려한 기교를 배우기 바빴고, 커서는 노래보다도 공연의 분위기를 띄우거나 멘트를 적재적소에 잘 던지는 데에 더 집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국악을 좋아한다, 좋아한다 했지만 결국 노래가 품은 스토리와 화자와 청자의 마음을 헤아린 적 없이 24년이 흘렀다. 번역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서야 비로소 한 구절, 한 구절의 면면을 들여다보았다. 예쁜 한복을 입고, 화려한 화장을 하고, 앵무새처럼 입만 벙긋거리는 것이 공연이 아니며, 소리꾼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던 선생님들의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 기분이다.


작곡가나 작사가가 살아있다면 좀 달랐을까. 아니면, 수많은 민요 가사들을 채집한 벽파 이창배 선생님께 물어볼 수 있다면 좀 달랐을까. 일제강점기도, 한국 전쟁도 겪지 않은 황금시대에 태어난 90년대생 젊은 소리꾼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역사적 배경을 입혀 상상하는 것뿐이다. 이 시대에 군밤 장수들은 이런 삶을 살았구나, 그렇다면 아마도 이 가사들은 호객행위를 위한 것이었겠지, 아니면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는 밤길에 추위를 잊기 위해 부르던 노래겠지, 역사적 사실과 상상 한 스푼을 섞어 군밤 장수가 되어 보기도 하고, 음반을 녹음하는 가수가 되어보기도 하고, 혼마치 거리를 걸으며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작곡가나 작사가가 되어보기도 한다.


100살 생일을 맞은 아리랑처럼 축음기 산업과 함께 태어난 다른 신민요들도 이제 백 년 가까운 세월을 우리의 곁에 살았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권번이 사라지고, 한국 전쟁이 일어나 ‘음악’이 사치가 된 순간 속에 통속민요로 남을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을 여러 신민요와 향토민요들을 생각한다. 1930년대에는 불렸으나, 변화된 시대 속에 채집되지 못하고 없어졌을 가사들을 생각한다. 명맥이 끊길 위험에 처한 수많은 위기의 순간에도, 입에서 입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낸 스승들의 정신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약 5만 자 분량의 이 시리즈를 집필하는 데 딱 한 달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중심이 되는 ‘번역’의 완성에는 약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10년 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거라며 만류했던 사람들 몰래 노트에 끄적였던 나의 초안. 5년 전,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있는 외국인 언어 학습자를 위한 교안에라도 사용하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두 번째 초안, 그리고 한국인과 외국인 모두에게 민요를 더 풍부하게 접할 수 있게 하겠다는 마음을 담아 만들어진 완성본까지, 약 10년의 시간에 걸쳐 완성된 이 글을, 다섯 곡의 민요를 끝까지 읽어준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 글을 일고, 라이크를 눌러 준 독자가 있기에, 이제는 ‘아무도 관심 없고 궁금해하지 않는’ 글이 아닌 글들이 되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민요가 있다. 우리는 고작 경기민요 중에서도 통속민요 중에서도 초, 중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등장한, 그래서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적어도 한 번은 만났을 민요 다섯 곡을 접했을 뿐이다. ‘아리랑 시리즈’, ‘잡가 시리즈’, ‘지역 민요 시리즈’, 나아가 가곡, 정가, 판소리까지. 불가, 무가와 같은 종교적인 노래까지. 앞으로 기획될 수많은 시리즈도,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해 주시길. 그래서 ‘과연 누가 읽을까?’ 하며 주저했던 10년 전의 나를 나와 함께 가차 없이 비웃어주길 바란다.


무형유산과 유형유산의 차이는 ‘생명력’에서 온다. 무형유산이 지닌 가치는 세대에서 세대로 계속해서 사람들 곁에 살아있음으로써 유지된다. 더 이상 아무에게도 의미가 없고, 더 이상 연행될 이유도, 장소도, 필요도 없을 때, 무형유산은 존재의 가치를 잃는다. 손으로 논을 메지 않고, 나무를 베지 않게 되면서 사라진 기능요와 노동요들처럼. 그 자리를 트로트가, K-pop이 채웠던 것처럼(시간이 흐르면, 그들이 바로 ‘통속민요’가 되지 않을까. 29세 직장인 A 씨가 키보드를 칠 때 들었던 노래. 37세 자영업자 B 씨가 두바이 쫀득 쿠키(일명 ‘두쫀쿠’)를 굴릴 때 흥얼거리는 노래, 와 같은 이름으로.)


그리하여.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는 민요가,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순간에는 조금 더 오래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앞으로도 ‘더 환한’의 민요 번역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시리즈가 끝난 것이 아쉬운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 (아마도 내가 제일 아쉽겠지)

이 글을 읽으며, 노래 또는 시리즈 속에 등장한 배경이 실제로 어디였는지,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는가? <조선팝, 영어를 입다>를 마무리하기 전, 민요의 여운을 느낄 수 있는 더미 챕터 몇 개를 준비했다. 그 시작은? <경복궁타령>의 배경인 '종로'와 '경복궁/광화문'! 노래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여러 장소와 공간에 대한 정보를 준비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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