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에 들이 받힌 우리 차 중고 시세는 잠시 눈 감고 있어.
'딸 우리 차 엄청 많이 받아음.'
오늘만 버티면 주말이라는 생각에 피곤한 몸에 카페인을 주입하며 가까스로 힘을 내고 있던 평소와 다름없는 금요일 아침이었다. 원에 행사가 있어 이것저것 정리하고 준비한다고 정신없는 와중에 받은 엄마의 문자. 생각 없이 '음? 어디서 차(tea)를 받아왔나?' 하고 생각 없이 '올'이라고 답장하곤 무심하게 뒷주머니에 핸드폰을 찔러 넣고 다시금 일에 집중할 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없으면 못 사는 차, 마시는 tea가 아닌 자동차였고, 그때부터 나의 심장박동은 미친 듯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어딜 가다 그랬는지, 엄마가 받은 건지, 아니면 다른 이가 와서 박은 것인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보름 전에도 트렁크 쪽이 와장창 부서져 공장에 들어갔다 왔는데, 3월에 재물손괴 수라도 들었나, 이번 달 들어 벌써 두 번째 사고였다. 결국 자리를 잠시 빠져나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신호음이 가는 몇 초의 시간이 마치 수십 분만 같았다.
'엄마 괜찮아? 안 다쳤어?'
'아, 엄만 차에 없었어. 위에 주차장 공사하는데 시멘트 차가 와서 차를 밀어버렸지 뭐니.'
'주차된 차를 그런 거야?
'응, 이게 무슨 일이니.'
이번 달 들어서만 벌써 두 번째 사고라서 그런지 엄마는 의외로 담담했다. 엄마가 괜찮은 것을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다음은 보험, 수리, 그리고 렌터카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보험은 어떻게 처리됐는지 차례로 물었다. 주택가가 밀집해 있는 동네 특성상, 누가 어디에 차를 대는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는 주민이 아니라면 좁은 골목에서 운전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승용차도 힘든데 크나큰 화물차로 골목을 다니기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으리라. 과실을 인정하고 수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걸 보면서, 미국이나 중국처럼 다른 나라에 사는 것도 아닌데 그 자리에 함께 있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과, 이런 걸 잘 모르는 엄마가 당했던 사기 아닌 사기 (눈 뜨고 코 베이는, 100:1이 6:4 가 되어 버리는 마법이라던가)가 차례로 떠오르면서 실없이, 속없이 웃기도 하였다.
그렇게 퇴근 시간. 밖에서 저녁을 먹을 요량으로 국화빵 한 봉지를 사들고 차를 기다리는데, 어디서 처음 보는 차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이 차가 왜..? 하고 있는데 사고 난 것이 떠올라 부랴부랴 차에 올라탔다. 아니, 타려 했다.
"아 엄마!! 문 좀 열어 봐."
"어어, 야 이게 왜 잠겼냐. 나 이거 문 여는 거 몰라."
"그럼 창문을 열어봐!!"
"앞 창문을 눌렀는데 왜 뒷창문이 열리니!"
"아오 빨리!!"
신호는 이미 파란 불로 바뀌었는데 차 문을 못 여니 뒤차 운전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어색하게 웃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가까스로 창문은 열었지만 이번엔 문 여는 손잡이를 못 찾아서 더듬거린다고 또 한참을 보내고 우여곡절 끝에 차에 올랐다. 차 폭도 넓이도 비슷해 운전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렌터카를 빌리거나 남의 차를 운전해도 이제까지 큰 어려움 없이 역경과 고난을 이겨냈던 내가 보기에도 버튼들이 너무 많았다. 거기다 번쩍거리는 불빛까지, 운전하다가 불빛에 정신이 팔려 사고가 날 것만 같은 화려함이었다. 10년을 동고동락한 나이 먹은 이쁜이(우리 차)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형형색색의 기술과 화려함이었다.
"근데, 누가 사고를 낸 거야? 화물차 운전자가 할아버지였어?"
"아니, 젊은 애였어."
"내 또래야?"
"음.. 그런 거 같은데?"
"에? 그렇게 젊은 사람도 시멘트 차 운전 한단 말이야?
"그렇더라."
어릴 적 아빠 아는 분이 레미콘 트럭 기사셨고, 그래서인지 레미콘 트럭은 아빠 또래의 중장년층 아저씨들이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이래서야 어린 내가 아저씨라고 생각했던 건지, 아니면 젊은 친구들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며, 과거 아빠들이 했던 걸 이어받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엄마의 젊은이와 내 기준의 젊은이는 충분히 다를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까.
하지만 사고를 낸 것이 젊은이였다는 사실은 나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보름 전 우리 차 뒤를 박았던 2톤 트럭 기사도, 레미콘 기사도 모두 2-30대의 젊은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죄송하다며 엄마에게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숙이고 사과하는 모습은 뉴스에서 보았던 무례하고 철없는 20대의 모습이 아니었다. 차를 치고도 '화물차라 너무 커서 (그렇게 작은 승용차가) 옆에 스치는 지도 전혀 몰랐다'며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던 50대 아저씨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엄마는 차가 망가진 우리보다도 더 울상이 되어 어떡하냐고 발을 동동거리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서 안타까울 정도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오늘 사고 때문에 막... 잘리고 그런 건 아니겠지?"
갑자기 든 생각에 엄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앞도 뒤도 다 갈려서 똥값이 되어 버린 나이 먹은 우리 차는 그렇다 쳐도 30대 젊은 청년이 ( 나이도 모르고 본 적도 없지만) 우리 때문에 직장을 잃는 것은 아닌가 하면서 잠시 멘붕이 왔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혹시나 해고한다면 (공사한 회사 이름도 모르는 데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사장님에게 전화라도 드리겠다며 우리는 괜찮으니 선처해달라고(?) 전화를 해주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차폭도, 번쩍거리는 내부도 어느 하나 적응이 되지 않는 렌터카. 차가 출발하면 자동으로 문이 잠기고, 주차 브레이크가 잠겨 있는데 도대체 어디에 버튼이 있는지도 몰라 허둥대며 집으로 향하는 길, 밤 10시 늦은 시간에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보험회사와 전화하고 있는 남편을 다독이던 내 또래의 애기 엄마와 이른 아침부터 먼지 날리는 공사판에 시멘트를 갖다 나르던 청춘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리고 밝은 미래를 만들어 보겠다고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하고 퇴근하고는 논문에 매진하느라 바깥공기 쐴 시간도 없는 또 다른 20대의 청춘인 나도 차례로 떠올랐다.
얼마나 많이 망가진 것인지, 차는 최소 다음 주 수요일에나 나온다고 한다. 금요일 오전에 들어가서, 다음 주 수요일까지. 비록 차는 똥차가 됐지만, 그 속에 얽혀있는 청춘들은 결코 부서시지 않았음을, 똥차가 아님을, 이번 시련을 이켜내고 한 단계 더 커갈 수 있음을 믿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