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지만 먼 나라, 중국으로 가다!

(feat. 빵빵! 지나갈... 지나갈게요! 지나..지나갈...ㅠㅠㅠ)

by 환한

아침 8시쯤 떠나는 북경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은 정적이 흘렀다. 매 순간 쉬는 적이 없던 나의 입도 그 날 만큼은 예외였다. 운전을 하는 아버지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엄마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님은 열여섯 밖에 되지 않는 딸을 홀로 외국에 보내야 한다는 걱정에, 나는 난생처음으로 부모님의 품을 떠나 홀로 날갯짓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유학의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같이 가는 선생님이 다 잘 알아서 챙겨주실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응."

"인터넷이 연결되면 바로 메일 보내야 한다. 알겠지?"

"알았어."


벌써 몇 번이나 이야기했던 당부사항을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아빠에게 나 또한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지금처럼 너도나도 스마트폰을 썼던 시대도 아니고 (스마트폰이란 게 있다는 것도 몰랐다) 카톡이나 페이스타임도 없었던 이때, 가장 저렴하고 쉬운 소통 방법은 단연 메일이었다. 혹시나 메일 보내는 방법을 모를까 봐 요 며칠 옆에 딸을 붙들어놓고 메일 쓰기 교육을 하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던 것인지 아빠는 한 얘기를 또 하고, 또 했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그날따라 매우 짧았다. 바로 전 해 개통한 인천대교 덕분에, 심지어 인천에 살고 있는 나에게 인천공항은 겨우 30분이 걸릴까 말까 한 거리가 되어 있었다. 인천대교 개통 이전에 공항 가던 것만 생각하고 그래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리겠거니 하고 안심하고 있다가 부모님이랑 떨어질 시간이 눈 앞으로 다가오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같이 가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말도 안 통하고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살아내야 하는 건 나였기 때문에.


이 전까지 공항은 새로운 곳에 나가는 설렘 가득한 공간이었지만, 이 날을 기점으로 나에게 공항이란 '눈물 쏙 빼는 이별의 장'이 되어 있었다. 겨우 2시간 떨어진 경기도에 위치한 학교에 갈 때에도 주말마다 눈물 콧물 다 쏟았는데, 하물며 다른 나라였다. 북경에서 대련으로 목적지가 바뀌면서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부모님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입국장으로 들어갈 때가 되자 결국 내 눈에서도 닭똥 같은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나와 함께 중국에 들어가는 선생님 손에 이끌려 비즈니스 라운지에도 들어갔다가,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도대체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나는 중국에 와 있었다. 고작 한 시간여의 짧은 비행시간에, 이륙해서 간단히 뭘 좀 먹고 나니 도착이었다. 이래서야 제주도보다도 가까운 것 같기도 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이제는 그리운 중국의 냄새가 풍겨왔다. 청도보다도 가깝다는 대련. 부모 품을 떠나 처음으로 날갯짓을 한 그리운 제2의 고향으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택시를 타고 선생님 아는 분이라는 집에 입학시험을 볼 때까지 머물게 되면서 나는 잠시나마 크지 않은 짐가방을 풀었다. 선생님이 일 보러 나가신 후, 가만히 소파에 앉아 기다리면서 깊게 생각에 잠겼다. 이전에도 연길이나 북경, 제남 등지로 공연하러 갔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 온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 체감은 이전과는 천지차이였다. 현지 가이드를 따라 공연장과 숙소, 관광지를 오가거나, 심지어 한국 대표로 중국을 찾았을 땐 번쩍번쩍한 버스에 올라 현지 공안의 경호 아래 도로까지 통제되어 정말 편안하고 안전한 중국 여행을 했었는데 그때 내가 보고 겪은 중국은 중국이 아니라는 듯,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나라는 작은 존재 하나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중국의 첫인상은, 어떤 의미도 실로 대단했다.


택시 밖으로 보이던 페인트가 다 벗겨진, '저거 곧 쓰러지나?' 싶은 외관의 아파트들... 사람과 차가 한 몸이 되어 한꺼번에 도로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풍경. 쓰레기 더미 위에서도 사람이 자고, 다리 위에는 걸인이 있으며, 횡단보도고 신호고 할 것 없이 길을 막 건너 다니고, 굴러간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세 발 택시 (오토바이 위에 케이스 끼워 놓은 것 같지 박으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차라리 티코가 안전하겠다 싶을 정도인 통통이)까지.


결국 호기롭게 나갔다가 길 한 번 건너는 데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곤, 얌전히 집으로 돌아왔다. 한 삼십 분을 멍하니 서서 기다리다가, 신호 따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옆 사람에게 빌붙어 (라고 쓰고 '방패 삼아'라고 읽는다) 겨우 한 번 건넜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나의 첫날이 훅 가버렸다.


그렇게 저녁시간. 아주머니께서 해 주시는 밥을 먹고, 난 생 처음 스스로 싱크대에 밥그릇을 넘기고는, 조심스럽게 아주머니의 070 전화기를 빌려 전화를 걸었다. 반나절 만에 듣는 보고 싶은 엄마 목소리. 그리고 아빠 목소리. 무사히 도착했다는 한 마디에, 내색은 하지 않아도 안도하고 있음을 어린 마음에도 느낄 수 있었다. 학교가 정해지면 070 전화를 사던, 핸드폰을 사던 하자며 짧은 전화를 끊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짧은 하루가 너무나도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