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잘하는 게 도대체 뭘까요?
2012년이 시작되면서 달라진 것은 나이뿐만이 아니었다. 풋풋한 신입생이었던 나는 어느덧 2학년이 되어 있었고, 가방 속 교과서들도 한층 더 무거워져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에서 6학년,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이 되던 것과 대학교 1학년에서 2학년이 되는 것은 사뭇 느낌이 달랐다. 이제 '적응한다는 핑계로 대충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나 '제대로 보여줘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겨우 학부생 때의 일이지만, 적어도 그 때의 나는 대학에서의 한발자국이 졸업 이후의 생계와 직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 더 조심스럽고, 모든 것이 어려웠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친구들에게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1학년 때는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학교, 새로운 환경이라는 공통분모와 더불어, 공부할 것은 많지만 그래도 신입생으로서의 들뜸, 혹은 분위기에 취할 수 있었다면, 고등학교 2학년은 수험생 만큼은 아니지만 대학교 입시를 위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시기였다. 1학년 2학기가 되면서 카톡이라는 세상에 뛰어든 나와 달리, 나의 친구들은 단톡방은 커녕 있던 핸드폰도 2G폰이니 수험생 폰이니 하면서 스마트폰 그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이미 대학생이 되어버린 나의 고민은 그들의 고민과 같을 수 없었고, 서로 공감해주고 싶지만 공감해줄 수 없는 부분도 하나씩 늘어갔다. 나는 친구들에게 수리영역을 이렇게 풀어라 하고 조언해 줄 수 없었으며, 그들은 내가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 지 공감해 줄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 고민 속에 2학년이 되었다.
2학년 1학기부터는 보통 중국어 - Chinese 101, 외국학생을 위한 니하오부터 배우는 학점 거저 먹으라고 떠먹여주는 과목인 느낌이랄까 -, 컴퓨터, 미국 역사나 사회학과 같은 교양과목 외에 '준전공'과목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학, 회계학 수업을 수강하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학생들은 한 학기에 15학점 또는 경우에 따라 16학점 (4학점 짜리 수업이 있는 경우) 정도의 수업을 듣곤 하는데, 나는 이 때, 환경과학, 거시경제, 비즈니스 통계학, 영문학(에세이 수업), 그리고 종교학, 이렇게 다섯 개의 수업 총 16학점을 수강했다. 2학년 1학기는 학부 4년을 모두 통틀어 제일 재미있게 학교 생활을 하지 않았나 싶은 학기 중 하나였다. 단 하나의 B도 없는 올 A의 쾌거를 이룬 첫 번째 학기이자, 편입 및 전과라는 중대 결정을 내리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내가 경영학 전공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느끼게 해준 수업은 바로 경제학이었다. 경제학이라는 분야에서 첫 발을 떼는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거시경제 ECO 155 수업은 말 그대로 정말 폭탄이나 다름 없었다. 우선 너무 체격이 커서 웃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별명을 가진 교수님은 정말 형편없는 - 미안하지만 사실이다.. - 강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 이 때만해도 모든 교수님들은 모두 훌륭한 선생님일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 덕분에 한 학기 내내 내가 거시 경제에 대해서 기억하는 거라곤 교수님 여자친구가 어떻게 생겼고,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 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했으며, 경제학은 나와 맞지 않는 분야라는 것 뿐이었다.
비즈니스 통계학 수업은 중국어도 예쁜 사람이 하면 저렇게 예쁘게 들릴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한 교수님이 가르쳐 주셨다. 필자는 선생님에 대한 애정에 성적이 따라가는 케이스로, 줄곧 퀴즈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밖에 없도록 피나는 노력을 한 결과로 점수를 받-았었는데, 함께 공부하던 오빠가 칭찬해주시길래 '감사합니다'했더니 '너 자만해서 다음 시험 못 보라고 말한 건데 감사하다고 하니 당황스럽다'라는 말이 돌아와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너무해)
영문학 수업은 1학년때 들었던 글쓰기 수업의 심화 버전으로 더 길고 더 어려운 페이퍼를 써 내야 하는 수업이었는데, 교수님께 내 생각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지 못해 내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마음에 남는다. 대충 '민요를 통해 교과서에서 다 담고 있지 못하는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배울 수 있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레포트를 써서 제출했었는데, 민족의 얼과 한에 대한 부분에서 점수가 깎였길래 그 이유를 물으니 내가 든 예시가 와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점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교수님은 '우리는 노예제도라는 뼈아픈 역사가 있고, 이로 인해 남북전쟁이라는 그나큰 갈등을 겪었다.' 라고 덧붙여 설명해주셨는데, 이 때 '한국은 미국의 몇 백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긴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천민이라고 불리는 노예계급을 포함한 계급사회를 구성하고 있었고, 불과 몇십년 전에 남북이 갈리는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은 국가'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으나, 몇 번의 시도 끝에 내뱉은 내 대답은 '오케이'였다. 하와이도 아니고, 유럽도 아니고 중국에서 한국인과 이야기를 하며 '본인들은 남북전쟁을 겪었지만 너희는 아니'라고 하는 미국인 선생님은 또 얼마나 우매한가....
대학 수업은 원래가 전 뒤집듯 생겼다가 없애는 것이 자유로운 편은 아니지만, 교과서 수급 등의 문제로 정말 한정적인 수업만이 제공되는 학교 특성상 우리학교는 강의 신설 가능성이 가뭄에 콩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시기를 잘 탔는지, 아니면 그 말이 거짓부렁이었는지 몰라도, 2학년 1학기 때 자그마치 두 개의 수업이 신설됐는데, 그게 바로 종교학과 환경과학이었다.
종교학 수업은 1학년 때 심리학을 가르쳐주신 교수님이 진행하신 수업으로, 역사적으로 여러 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종교 전반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수업이었다. 초등학교때부터 천주교 학교를 다니며 세례에 견진까지 받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기독교 등장 이전 있었던 여러 종교 (e.g., 힌두교, 불교, 조로에스터교)와 신생 종교들을 바라보는 것은 꽤나 흥미있는 일이었다. 학기 중간에 근교에 있는 도교와 불교 사원에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는데, 그 때 봤던 박물관과 콘크리트로 정리되어 유리관에 장식된 해골은 아직도 충격이다.
종교학은 '문화'에 대한 나의 관심을 일깨워 준 수업으로, 미국에 가서도 종교 관련 수업을 지속적으로 선택하여 다문화 자격증을 취득하게 하는 데 일조한 과목이라고 할 수 있다. 수업은 교과서도 없이 교수님이 만드신 ppt에 의존하여 한 학기 내내 진행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제 때문인지 재미있게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환경과학 또한 내가 2학년일 때 처음 도입된 수업으로 여러 외국인 학생들- 이라고 하지만 그냥 모든 외국인들 - 이 들었던 수업으로, 나는 물리와 화학을 듣기 싫어서 선택했던 수업이다. 약간 물리와 화학 그 어딘가 지구과학 느낌의 수업. 정말 너무 힘겨운 타입의 교수님이었는데 이 수업을 수강한 이후로 어쩐 이유에서인지 나를 너무 좋아해주셔서 2학년 2학기때에는 다른 수업의 감독관으로 들어오셨다가 '잠깐 시험 다 보고 나면 내 사무실에 들를래?' 라던지, 다른 감독관 교수님들을 불러 '너 얘 알아? 아, 같이 수업 했었어? 얘가 있잖아 15살인데 - 12년도였으니 만으로해도 17살이었다 - 내 수업에서 A받았어' 라던지, '중국인 아니고 한국인이야.'와 같은 TMI를 남발해 시험장 분위기와 나의 집중을 한껏 흐트려놓은 적도 있었다.
새로 신설되는 과목을 수강한다는 것은 어쩌면 좋은 평판을 만들어 다음 학기에도 강의가 개설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좋은 점수를 뿌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교수님 스스로도 어떤 내용을 넣을지, 수업을 어떤 식으로 진행할 지, 과제의 난이도같은 것은 어떨지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본인이 조금만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다섯 과목들과 사투를 벌이면서 나름대로 괜찮은 대학생활을 하고 있긴 했지만, 나의 머릿속은 하루하루 여러 고민들로 가득찼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며 본인이 무엇을 해야 좋을지, 어떤 것을 전공해야 할지 고민해 볼 시간이 있었을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저 눈 떠보니 이미 경영학과에 들어와 공부를 하고 있었던 나는 상황이 달랐다. 그저 언젠가 '문화컨텐츠경영컨설턴트'가 되어야 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심지어는 대학에 어떤 전공이 있는지와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경영학도로써 공부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 것인지 계속해서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건지 조차 이해할 수 없는 경제학 수업, 그리고 다음학기에 들어야 하는 - 무슨 숫자가 그렇게 긴 지 한국어로도 못 읽을 것만 같은 - 회계학 수업도 모두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하나도 재밌지 않았다.
하루하루 고민이 깊어지고 생각이 많아졌던 그 때,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서 우연히 학과장이었던 Mike 를 마주쳤다. 마이크는 캐나다 출신의 교수로, 학과장이기도 하지만 Algebra를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했다. 요즘 학교 생활은 어떤지 근황 토크를 하다가 문득 그가 왜 '수학과'교수가 되었는지가 궁금해졌다. 란위지에로 통하는 교문앞에서 작별인사를 하려던 그를 돌려세운 건, 나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마이크, 마이크는 왜 수학을 전공했어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지도 않고 그는 잠시 생각하듯 저녁 하늘을 올려 보다가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무엇때문에 그런 질문을 했는지 알겠다는 얼굴이었다.
"클라라, 내가 처음에 대학을 입학할 땐, 수학 전공이 아니었어. 나는 여러 번 전과를 했고, 그 여정의 끝에서 나에게 맞는 전공을 찾은 거야. 네가 경영학과에 왔다고 해서 꼭 경영학과에 갈 필요는 없어. 미국 본교에는 경영학 외에도 많은 전공이 있으니까 충분히 다른 것을 공부할 기회가 있어. 그러니까 천천히 네가 뭘 공부하고 싶은지 생각해봐."
교수님들은 처음부터 그 분야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또 정답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것 처럼 갑자기 구름으로 가득하던 머리 속이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감사 인사를 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포스트잇을 집어 들었다. '내가 뭘 공부하고 싶은지' 와 '전과'를 적어 벽에 붙이고 한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쇼핑의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