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과컨닝,미국대학에서 절대 하면 안 되는 두 가지

시험과 함께한 크리스마스와 새해

by 환한

학기가 시작되면 우리가 교수님에게서 받는 제일 첫 번째 강의는 바로 그의 '강의계획서'에 대한 것이다. 섹션별로 해당 학기에 들어야 하는 수업의 스케줄이 정해져 있는 중국 학생들과 달리 외국학생들은 자신의 수업 스케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는데, 학기 초반, 강의 계획서를 받고, 훑어보고, 첫 두 강의 정도를 듣고 나서는 수업을 계속 들을지 아니면 철회할지, 한 학기 자신의 안녕을 책임질 중대 결정을 내리는 시기 또한 바로 이 학기 초의 첫 주라고 할 수 있다.


교수님이 어느 대학 출신이며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와 같은 부분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제일 관심이 가는 부분은 아무래도 몇 개의 시험이나 발표가 있는지, 수업 성적은 몇 퍼센트의 비율로 매겨지는지가 제일 큰 관심 시가 아닐까 싶다. 교수님이 어느 대학 출신인지, 어떤 논문을 냈었는지 따위의 것은 학부생보단 대학원생에게 어울리는 관심사가 아닐까.


강의 계획서 말미에는 항상 따라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바로 '표절과 컨닝(치팅 cheating)'에 대한 것.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4학년 2학기쯤 되니까 교수님이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이라고 운만 떼도 무슨 말이 나올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컨닝이 영어인 줄만 알고 있었던 내가 '치팅'이라는 말을 처음 배우고 전자사전을 톡톡 두들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 1학년 1학기 때는 스마트폰이 없어서, 전자사전을 가지고 다녔다 ㅋㅋㅋㅋ - 이때만 해도 표절과 치팅때문에 내가 골머리를 썩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대학을 다녀본 적이 없어 똑같이 '리포트 작성법'따위의 수업을 듣는지, 아니면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쌓인 내공으로 척척 해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제일 놀랐던 것은 바로 끝없는 '글쓰기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커뮤니케이션 발표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 접했던 참고문헌 작성법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머리 아픈 것이었고 - MLA고 APA고 Chicago고 무슨 법칙이 그렇게 많은지 - 표절을 피하고 싶다면 더욱더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참고문헌'을 얼마나 정확하고 빠짐없이 채워 넣었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도용하면 안 된다'라는 말이 얼마나 당연한 것인지는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 뉴스들만 봐도 잘 알 수 있지만, 표절을 안 하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일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가 이름, 출판 연도, 출판사, 제목, 이탈릭체, 따옴표와 계속 씨름해야 한다는 말이었으니까.

기말고사 기간에 조금의 위안이 되었던(?) 크리스마스 트리

1학년 2학기에 들어 역대급으로 많은 신입생 언니 오빠들과 복학생 언니 오빠들까지 합세해 바글바글하고 시끌시끌한 학기를 보내며 여러 리포트에 참고문헌을 잘 써내고, 이사에 파티에 병치레까지 치르고 나니 어느덧 시간이 흘러 기말고사 기간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1학기가 끝날 무렵 한국으로 급하게 귀국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한 주 빠르게, 한창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대학 입학 후 첫 기말고사를 치렀기 때문에, 마치 내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시험기간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 채 눈을 잠깐 감았다가 떴더니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고 해도 맞을 정도로 정신없이 해치웠었다면 1학년 2학기의 기말고사는 이제야 진짜 대학에 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보여 시끌시끌하게 준비한 '진짜 기말고사'와 같은 느낌이었다. (기말고사에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겠느냐만은)


같은 수업을 들은 사람들과 함께 노트를 비교해가며 공부를 하다 보면, 내가 놓쳤던 부분,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을 확실하게 체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조금만 떠들자 싶었는데 몇 시간이 훌쩍 지나 공부할 시간을 다 낭비하고 만 어처구니없지만 매우 '카페 가서 공부하자고 하고는 수다 삼매경에 빠진 대학생'과 같은 순간을 만끽할 수도 있기 마련이다. 미국에서는 보통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었지만, 중국의 학교는 크나큰 캠퍼스 안 맨 꼭대기에 있는 학교 건물 하나만 미국 학교인 느낌이라 학교 내 큰 도서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들어가 보거나 공부해본 적이 없다. 다만, 언제부터였는지 확실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국제학생회 일원으로 있었을 무렵 (아마도 회장 언니 혹은 부회장 오빠의 푸시로) International Student Room이 마련되어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교실이 마련되었는데, 그 전까진 카페는 고사하고 - 학교 옆에 공부할 만한 카페가 없기도 했지만 - 서로의 집에 모여 공부를 하는 일이 일상적이었다.


우리 학교는 2년 동안 중국에서 공부한 뒤 나머지 2년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통 미국으로 넘어간 후 전공을 정하기 때문에 대련의 학교는 모든 학생들이 General Business 단일 전공생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다.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수업이 한정되어 있고, 심지어 개인 교과서를 살 수도 없어 학교에 보증금을 내고 매 학기 교과서를 학교로부터 '빌리는' 형식으로 수업을 했기 때문에 서로 수강하는 수업들도 많이 다르지 않아서 사실 학년이 1학년 1학기와 2학년 2학기처럼 차이가 나지 않으면 겹치는 수업이 여러 개 있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여러 유학생들의 집 중에서도 꽤나 컸던 우리 집 거실은 바로 이 점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거쳐가는 공부/과제 방이 되기도 했다.


당시 공부하던 과목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꽤나 힙했던 - 절대 학교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은, 끼(?)가 넘치고 흥(?)이 넘치는 - 젊은 교수님이 가르쳐주셨던 정치학개론 수업이다. 결국은 수강 철회를 하고 말았던 화학이나 재미없는 수학 - 필자는 찐 문과이다 - 말고 언젠가 뉴스에서 볼 것만 같은 흥미로운 내용을 다루고 있는 데다 - 예로, 미국의 대법관의 수는 어떻고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이 있다는 것과 같은 것 - 꽤나 적성에 잘 맞아서 정치학으로 전과를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만들기도 했던 과목이다.


이 수업은 여러 방면에서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첫 번째, 아침 9시에 1교시 수업을 들었다.

두 번째, 교수님이 매일 아침 비빔밥, 불고기 맛있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나 때문인 것 같다.

세 번째, 내 요점 노트를 다 풀어 시험공부를 했었는데, 돌아온 건 마상뿐.

네 번째, 중국 학생이 내 시험지를 베껴서 교수님과 1대 1 면담을 했다.

다섯 번째, 기말고사를 준비하다가 학교 언니가 튀겨준 한국에서 공수한 팝콘이 진짜 맛있었다.


첫 번째, 우리 모두가 아는 절대 대학생으로서의 우리가 할 수 없는 일 한 가지는 바로 '이른 아침에 수업을 듣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학생으로서의 생활 루틴이 몸에 박혀있던 아침잠 없는 애늙은이였던 이 소녀는 좀 더 늦은 시간대에 수업을 듣는 언니들과 달리 호기롭게 9시 수업을 선택했고, 이는 여러 인도네시아 친구들과 친해졌다는 점에서는 훌륭했지만 일주일에 두 번, 텅 비어 있어야 했던 나의 위장에는 참으로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4년간의 대학 생활 중 제일 열정적으로 공부했던 정치학개론 수업


두 번째, 교수님은 몇 번 한국에 와보신 적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 때문인지 항상 비빔밥과 불고기가 참 맛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처음에는 오오 하고 반응해드렸지만, 매일 아침 비빔밥 이야기가 반복되니 사실 학기 마지막쯤 되니 나도 지쳤더랬다. 9시 반 수업에는 총 다섯 명의 외국인이 있었는데 인니 친구 네 명,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나였다. 분명히 나 때문에 계속 반복한 게 분명하다.


세 번째, 유학을 시작한 이후 하루하루 나의 영어에 자신감을 잃어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나의 제1원칙은 교수님이 하는 모든 말을 받아 적는 것이었다. 괴발개발로 다 적고 난 뒤, 집에 가서 피피티에 깔끔하게 정리하고, 요점 노트를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만들어 시험 기간에 훑어보는 방식으로 공부했는데, 나중에는 교수님이 어떤 설명을 하면서 무슨 농담을 했는지만 떠올려도 모든 내용이 기억나는 기적이 발생하기도 했다. 시험 기간, 나름대로 두 번의 시험을 치르며 어떤 내용이 분명 시험에 나올 거라고 함께 공부하는 언니들에게 2시간가량 내가 가진 모든 정보를 모두 풀었는데, 돌아온 건 '네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아팠어'라는 말과 웃음이었다. 그날 룸메에게 달려가 속상한 마음을 2시간은 더 얘기했던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


네 번째, 표절도 표절이지만, 그 보다 더 기본이자, 간단하고, 우리가 모두 당연하게 알고 있는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규칙은 바로 커닝이다. 사실 커닝이라는 게 시험 볼 때 당연히 다른 사람 시험지 베끼면 안 되고, 속닥속닥 암호를 주고받으면 안 되고 쪽지 같은 것을 날리면 안 된다는 것 정도지만, 사실 학창 시절 영어학원에서 지우개에 영어 단어 안 써본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근데 201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중국 학생들, 혹은 중국 학교에서 이 '컨닝'에 대한 문제는 그다지 새롭거나 크게 타부시되는 일도 아닌 듯했다. 반면, 미국 학교에서는 이 치팅에 대한 문제를 표절에 버금가는 큰 문제로 받아들이곤 했는데, 이 때문에 누가 컨닝하다 들켜서 문제가 생겼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하나 걸러 하나에게 어쩌다 듣곤 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남의 얘기로 남아있을 때만 웃어넘길 수 있는 법. 평화로운 1학년 2학기를 보내고 있던 내가 바로 이 치팅 문제 때문에 교수님과 면담을 해야 한 사건이 이때 바로 발생하고 말았다.


본 수업은 기말고사까지 포함하여 총 세 번의 시험을 치러야 했했는데 바로 이 사건은 '두 번째 시험 직후'에 발생했다. 시험을 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갑작스럽게 교수님께서 '수업이 끝난 뒤 본인의 오피스에 오라'고 말씀하셨고, 왠지 모르게 차갑게 변한 교수님의 태도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혹시 너 옆자리에 있는 친구에게 답안지를 보여줬니?"


교수님 책상 앞에 있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귓전을 울리는 말소리는 내가 교수님께 들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말 중 하나였다. 너무 당황하여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게 무슨 말이냐는 눈빛을 보내자, 정확하게 말해주길 바란다며 좀 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런 적 없어요, 교수님. 저는 제 옆에 누가 앉았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걸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교수님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수업과 달리 시험은 같은 수업을 듣고 있는 전교생들을 한데 모아 큰 강의실에서 치르곤 했는데, 학생들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 교수님께서는 A, B, 그리고 C 세 가지 버전의 시험 치를 만드셨는데 - 이 부분은 서로 옆에 앉은 사람의 시험지 버전이 다르니 커닝할 생각 하지 말라고 시험 시작 전에 누수히 말씀하신 부분이었다 - 내 옆에 앉아 있던 학생이 너무도 당당하게 심지어 나의 오답까지 똑같이 베꼈고 그것을 교수님께서 현장에서 잡아내신 거였다. 다만, 평소 수업 시간에 나의 태도와 첫 번째 시험의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내가 그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 내가 시험을 모두 마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나중에 따로 말하기를 선택하셨노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나는 정말 벙 찌고 말았다. 다음부터는 너의 답안지를 잘 지켜내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더 귀에 쏙쏙 들어왔다. 버전이 다른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왜 그랬는지도 아직도 의문 투성 이이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던지 간에 교수님의 우호적 태도와 지지를 받기 위해서 더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겠노라, 좋은 학생이 되리라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 이 다짐은 나중에 역효과를 발생시키기도 하는데, 나를 너무 좋아했던 교수님이 시험 감독관으로 들어왔다가 반가운 마음에 자꾸 말을 시켜서 나의 집중과 시험장의 고요를 와장창 깨트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집으로 공부를 하러 왔던 언니가 시험공부하면서 먹으려고 아껴놓았던 것이라면서 품 속에서 꺼낸 팝콘은 내가 지금껏 먹었던 팝콘 중에서 제일 달고 맛있었다. 역시 시험 기간엔 간식이 최고다. 머리에도 당분이 필요해.


눈 오는 연말,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난생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보내면서 무사히 치러낸 1학년 2학기의 기말고사 기간. 그저 앞으로 나의 대학생활에는 적어도 표절과 치팅 이슈로 교수님의 사무실로 '불려 갈' 일은 다시없길 바라면서 이렇게 또 클리어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