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받지 못한 2180만 원
내가 흔히들 이야기하는 유학 사기(?)에 휘말렸다는 것을 알게 된 건 2학년 1학기 무렵이었다. 서울 출신의 룸메이트 A와 인천 토박이인 나, 그리고 부산에서 온 루미 언니까지, 고향도, 나이도 다른 세 사람이 한 곳에 모여 공부하고 함께 살게 된 배경에는 바로 K 씨가 있었는데, 당연히 그에게 입금한 돈으로 처리된 줄 알았던 1학년 동안의 등록금과 집세가 사실은 조선족 가디언 선생님의 돈이었으며, 그녀가 아직 K 씨에게 정산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기인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시작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2010년, 내가 대입 검정고시를 끝내고 성적표를 기다리던 8월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4월에 고입 검정고시, 8월에 대입 검정고시를 연달아 끝내고 난 후 일찍 고등학교를 끝내버렸다는 행복감에 사로잡힌 나와 다르게 아버지의 얼굴은 사뭇 굳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5분 만에 다 풀고 잤어" 하는 나와 달리 "존 X 어려웠어 시 X"을 외치며 담배를 꺼내 드는 형형색색의 머리를 한 내 또래의 학생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었다. (엄격한 두발과 복장 규정을 가지고 있는 천주교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다닐 때에도 치마 밑단 하나 줄인 적이 없는 딸만 보고 살았던 경찰관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런 것 정도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와 달리, 세상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볼까 걱정됐던 부모님은 이후 내 거취에 대해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꽤 많았는데, 수능학원을 다니면서 입시 준비를 하는 것, 현재 보유한 수상 경력으로 예술대학교 수시를 준비하는 것, 정규 교육과정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학력인정이 되지 않는 여러 국제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 또는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보통의 고등학교를 가는 것, 등이었다. 아빠는 내가 원한다면 내가 예체능 활동을 잘할 수 있게 협조가 가능한 고등학교를 알아봐 주겠다고 마지막 선택지를 강하게 밀어붙였으나 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기왕에 일찍 졸업한 것 고등학교보다는 대학에 맞추어 나아가고 싶었고, 국공립 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우리는 결국 한국에 있는 국제학교 고등부에 초점을 맞추고 이리저리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무슨무슨 크리스천 스쿨, 골프와 승마를 가르친다는 미국 학교, 중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태국의 무슨 왕립학교도 선택지에 올랐다. 한국에 이렇게 많은 국제학교가 있었는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에도 많은 팸플릿이 모였고, 유학생활에 버금가는 등록금에 놀라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 집 근처에 캐나다 국제학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찾아갔다.
"안타깝게도 저희는 아직 고등부 과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국 북경에 같은 계열의 학교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을 하면서 중국어와 영어를 배우며 대입을 준비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게 K 씨와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나와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마치 교집합처럼 묶어 놓은 선택지였다. 그렇게 나는 검정고시 결과지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출국을 하기로 했다. 안내받은 학교 계좌로 2180만 원을 송금하고, 짐 싸기를 시작했다. 입학 결정부터 출국까지, 약 2주도 걸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성급했고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진행됐지만, 우선 '학교'의 이름에서 오는 신뢰와 믿음이 있었다. 잘못되면 찾아가 이야기할 곳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학년 1학기에 들어 마주한 진실은 쇼킹 그 자체였다.
첫째, 2180만 원을 송금한 계좌는 명백히 학교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학교 소유의 계좌번호가 아니었다.
둘째, K 씨가 그 학교의 직원이었으므로, 학교 측에도 책임이 있음을 시사하였지만, 그는 교사가 아닌 유학원 직원 같은 것이므로 학교 직원이 아니다(?) -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무튼 그랬다.
셋째, 나와 같은 방식으로 돈을 갈취당한 여러 피해자들이 전화를 해서 학교도 '골치가 아프다'라고 했다.
넷째, 2180만 원 중에 천만 원가량을 가디언 선생님에게 지급할 것이고, 나머지 금액은 내가 미국으로 넘어오면 처리해 줄 거라고 약속했지만, 결국 그는 연락을 받지 않았고, 그렇게 연락이 끊겼다.
다섯쨰, 학교에는 나와 룸메이트 두 사람 외에 본인과 본인 언니의 학비 및 하숙비를 떼인 다른 학우가 다니고 있었다.
여섯째, 결국 우리 네 사람 및 가디언 선생님은 그에게 돈을 받지 못했다.
일곱째, 대학 입학할 때 들었던 학교에 대한 여러 정보는 사실 내가 편입 후 졸업한 미주리주립대학교의 것이었으며, 내가 다니고 있던 대학은 이름에 State 가 들어갈 뿐인 4년제 사립대학이었다.
그는 미국 이민을 위한 돈이 필요했으며, 우리 모두는 그의 이민을 위한 도구였던 셈이다.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과 그래도 진짜 미국에 가면 반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 속에서 나는 '편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학교에 대한 모든 정보가 알고 보니 다른 학교의 것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더 이상 그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에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전과하기로 결정한 뒤 본격적으로 학교를 서칭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곳의 학교가 추려졌다. 미주리주립대학교, 일리노이주립대학교, 플로리다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으로 유명하다는 펜실베이니아의 어느 학교와 뉴욕의 학교도 물망에 올랐으나, 살인적인 물가를 감당할 자신은 없었기에 빠르게 내려놓았다. (따지고 보면 시카고와 마이애미도 만만치 않았음을 이제는 안다)
절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주변의 도움도 적극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나와 엄마보다 유학과 대학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이라면 주저 없이 도움을 청했다. 많은 사람들의 정보가 조각조각 모여 좀 더 나은 선택지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중에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며 함께 국제중학교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선생님이 있었다. 좋은 학점을 유지한 덕분에 장학금도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수속 준비를 도와주마고 하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도움을 청했다. 대학 입학 때에도 해본 적 없는 에세이를 준비하고, 혹시 모를 토플 시험의 필요성에 가지고 있던 교재도 들췄다. 생활비도 비싼데 학비라도 장학금을 받고 가야 하지 않겠냐며 사람 좋게 웃었다. 두 번째 선택지는 첫 번째보다는 낫겠구나 하는 생각에 우리 모녀도 초조함을 내려두고 다시 웃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저녁에 장학금 관련해서 미팅을 할 건데, 내 계좌로 300만 원만 보내줘요."
뒤통수에 정을 맞은 양, 머리가 띵해졌다. 손에 닿을 것처럼 가까이 느껴졌던 일리노이가 갑자기 멀어지는 것 같았다. 착수 비조로 300만 원이라.
"아니 학교에 신청하는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무슨 착수비..."
"장학금 받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에요. 다 사람과 사람을 통해 작업이 필요하고 그런 거예요."
"아니요, 안 할게요. 좀 더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무슨 다른 방법? 다른 방법이 어디 있어요. 이게 제일 나은 거고... 3.5 같은 거지 같은 학점으로는 일리노이 같은데 못 넣어. 다 내가 있으니까 이야기라도 꺼내 보는 거고.... 아잇! 하기 싫음 됐어요!"
당시 내 학점은 4.0 만점에 3.6였다. 4.5 기준으로 4.04 정도의 학점은 적어도 '성적이 별로라서' 원하는 학교에 편입할 수 없는 점수는 아니었다. (미주리대를 기준으로 편입 요구 학점은 2.75, 3.3이 넘으면 성적 우수로 Dean's list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충분하다 못해 넘치다던 내 점수는 300만 원을 거절하자 '형편없고 거지 같은' 점수가 되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엄마에게 말했다. 다 집어치우라고.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 혼자 준비하겠다고. 더 높은 학점이 필요하다면 마지막 학기에 더 올릴 자신도 있었다. 그 길로 그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지웠다. 정말 세상엔 믿을 놈 하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