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생으로 산다는 것 II

우리는 해외에 있는 것만으로 대한민국의 얼굴이 된다.

by 환한

살면서 외국인 친구를 사귀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지금에야 서울과 같은 대도시나 송도와 같은 국제도시에 가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게 외국인이라지만, 사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적어도 내가 사는 지역 사회에서 외국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나와 같은 90년대생이라면 2000년대 초반이라고 가정할 때, (보통 백인 여성일) 미국 또는 캐나다 출신의 영어 선생님 한 둘 정도를 학교에서 만날 수 있었을 거고, 영어 학원 등에서도 40분 정도의 회화수업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전화영어 같은 걸 하고 있었다면 미주지역에서 좀 더 벗어나, 필리핀 선생님을 만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선생님이 아니라 '친구'라면? 친구라면 어떨까.


음식, 어쩌면 그 나라에 대한 첫인상


누군가에게 대학 생활의 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에 '공부'라고 대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라고 나는 믿는다. 공부는 그저 학생 신분으로서 무조건 해야 하는 디폴트 옵션일 뿐 꽃이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대학 생활의 꽃은 친구, 그리고 친구와 먹는 밥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우리는 밥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나누곤 했다. 처음 먹어 본 한국 음식. 처음 먹어본 중국 음식. 스몰이라는데 마치 라지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크기의 아이스크림. 친구와 음식은 어떤 나라에 대한 첫인상을 만들어 주는 데에도 적격이다.


몇 년 전, 한국에 소소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탕후루와 많은 한국인들을 마라 홀릭으로 만든 마라탕은 내게 정말 센세이셔널한 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탕후루는 다시 입에도 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셔서(sour), 마라탕(과 그 안에 들어있던 쌀국수)은 너무 맛있어서 그랬다.


살을 에는 대련의 바람을 이겨내고 있던 내게 어느 날 문득 한 친구가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꽂힌 막대를 건넸다. 길거리를 걷다가, 저건 뭘까 하고 여러 번 궁금해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친구의 "정말 맛있어!" 하는 말에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저 설탕을 봐, 얼마나 맛있을까? 빨간 열매는 정말 달콤할 거야. 내 혀는 이미 그 달콤한 맛을 상상하며 즐기고 있었다. 어서 한 입 물어보라며 기대에 찬 얼굴을 하는 친구를 뒤로하고 왕 하고 얼른 한 입 가득 베어 물었다. 슈퍼주니어의 김희철과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를 좋아하던 친구는 그들의 이름을 가르쳐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선물이라고 했다.


"이런... 감사의 선물 같으니라고...."


헛웃음이 터져 나오는 신 맛에 머릿속에 그 두 연예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웃음이 맛있다는 소리로 들렸는지 좋아해 줘서 고맙다고 방방 뛰는 친구의 모습에 애써 몇 개를 더 입에 욱여넣었다. 그 후로 이민호나 김희철의 얼굴을 볼 때면 자동으로 탕후루가 떠오른다. 다시는 먹지 않을 그 맛, 딸기로 탕후루를 만든대도 입에도 안 댈 그 맛.


반면 마라탕은 첫 입을 대는 그 순간부터 머릿속에 폭죽을 터트려준 맛이다. 입안을 얼얼하게 해주는 마유가 그렇게 맛있는 줄 몰랐고, 마라의 매운맛과 양고기의 조화가 그렇게 훌륭한지도 몰랐다. 호형호제하며 지내자던 중국 오빠는 네모난 플라스틱 젓가락으로 미끄덩한 미시엔 면을 건져내지 못하는 나를 빤히 보다가 이런 건 오빠가 해주는 거라고 동생 없는 티를 내며 능숙한 손놀림으로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 내게 건넸다. 학교 근처 마트 위층의 마라탕은 친절의 맛이었다.


그 후로도 친구들과 많은 것들을 먹으러 다녔다. 남방지역 출신의 친구가 집에 와서 고향 음식을 해주기도 하고, 훠궈를 먹으러 가서 처음으로 얼린 두부를 먹어보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입에 대기는커녕 냄새 맡기도 질색하는 가지를 먹어본 것도 친구들과 함께 간 학생식당에서였다.


이처럼 내가 중국의 맛을 배울 때도 있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었다. 유학 초기, 매운 것 1도 없이 달고 기름진 데다가 향신료 듬뿍인 중국음식의 맛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항상 학교 앞 한국 식당에서 비빔냉면을 먹곤 했다. 내가 갈 때마다 그걸 시키자, 중국 친구 Ginger가 너무 궁금했던 모양인지 내가 없을 때 그걸 시켜 먹었던 모양이다. 어땠어? 하고 묻자 친구는...


"너, 너!!!! 내가 맛있는 음식점 많이 데려가 줄게. 아니, 면이 그렇게 얼음장 같은 걸... 네가 아직 어려서 맛있는 걸 많이 못 먹어봐서 그래. 언니가 다 사줄게, 너는 먹기만 해!"


라고 대답해 나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것 말고도 분명히 우리나라 닭볶음 탕이랑 똑같은데 나이지리아 전통음식이라던 닭요리와 쌀은 한 톨도 없이 검은색 콩만 가득했던 밥솥을 마주한 적도 있고, 방학을 맞이하여 인도네시아에 다녀온 친구가 튀김옷을 입은 바나나 음식(?)을 준 적도 있다. 최근에는 멕시코계 미국인인 직장 동료에게 '매운맛 젤리'와 쌀로 만든 음료수를 받아먹고는 표정관리를 영 못한 적도 있다.


이렇게 나에게 중국은 신 탕후루와 매콤한 마라탕의 나라이고, 나이지리아는 검은 콩밥과 닭볶음탕의 나라이고, 인도네시아는 튀긴 바나나의 나라이고, 멕시코는 매운 젤리와 쌀로 만든 음료수의 나라이다. 내 친구들에게 한국은 차가운 비빔냉면의 나라이고, 한 입 먹고 두 병의 물을 마시게 한 치즈 붉닭의 나라일 것이다.




국제학생의 밤 (International Night)


짐 싸기는 유학생의 최대 숙제다. 먹을 것, 입을 것, 필요한 것을 싸다 보면 금세 위탁수하물의 무게 제한을 쉽게 넘겨버리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주지역이 아닌 아시아 노선은 허용 수하물의 개수가 1개였다. 짐가방 1개, 23킬로. 챙길게 많은 와중에도 항상 잊지 않고 챙겨간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한복'이었다.


중국의 한 국제 교회에서 공연했던 날


입을 일이 없을 거라고 모두가 말했지만, 그래도 나는 적어도 한 벌은 꼭 가져다 놔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 내게 외국은 여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연하기 위해서 가는 곳이었다. 분명히 쓸 일이 있을 거라고 고집을 부리며 라면 몇 봉지를 내려놓고 한복을 넣었다. 그리고 공연할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달려 나갔다.



그렇게 중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스페인에서도 무대에 설 기회를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외국인 교회에서 한국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서 노래했고, 미국에서는 설날,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노래했다. 가장 짧게 있었던 스페인에서는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야금 연주자를 만나 주스페인 한국문화원에서 주최하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나 영국 국제학교 문화행사에서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저 몸뚱이 하나 가지고 목소리 하나 달고 다닌 것뿐인데, 한복을 입고 한국어로 노래를 부름으로써 한국을 알릴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고 행복했다.


https://youtu.be/znTgRud7CCg

2014년 Mizzou International Night에서 오프닝 공연했던 것


한 사람 인생에서 몇 있으면 신기한 '한국인' 친구가 된다는 것


어느 날, 인도네시아 친구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몇 가지 한국 제품이 있는데, 한국에서 유명한 것들인지 알아봐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지금 자카르타에서 핫하다는 한국음식에 대한 설명은 덤이었다.


또 언제는 대만인 남편과 결혼해 대만에 살고 있는 중국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국에 갈 계획이 있는데, 한국에 가면 볼 수 있겠냐는 메시지에 나는 '당연히 된다'라고 대답했다.


미국에 있는 동안 두 번이나 집에 초대받아 무전취식이라는 민폐를 끼쳤던 미국 친구는 한국에 올 때면 엄마와 나를 보러 우리 집으로 오곤 한다. 내게 처음으로 가정집 라자냐의 맛과 미국 아이스크림의 거대함을 가르쳐줬던 친구다. 같이 닭발을 먹고,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쓰다 보니, 마드리드에서 만났던 여러 룸메이트들이 떠오른다. 이케아와 미트볼이 제일 유명하다는 스웨덴 친구, 폴란드와 홀랜드(네덜란드)를 어떻게 혼동할 수 있냐며 웃어젖히던 홀랜드 친구, 살사 댄스라는 취미를 가지고 있던 스위스 친구, 그리고 독일에 오면 꼭 연락하라던 현대 티부론을 타는 독일 친구. 내게 그 사람들이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스웨덴 사람, 홀랜드 사람, 스위스 사람, 그리고 독일 사람인 것처럼 나도 그들에겐 몇 없는 한국인 친구일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외국에 산다는 것은 외교관 여권이라던지 어느 기구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는 것처럼 화려하거나 간지(?) 나는 것이 아니라도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얼굴'이 된다는 것. 그러니까 앞으로도 나로 인해 어떤 사람이 한국인데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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