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저는 미국으로 갑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귀국 날짜를 파이널 바로 다음날 아침으로 잡은 덕분에 나는 역대급으로 혼란스러운 대련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새벽같이 집주인들을 만나 보증금을 환급받고, 짐을 빼고, 학교에 반려식물을 맡기고, 룸메이트의 배웅을 받으며 게이트로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사실 내가 영영 중국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했다. 유학 사기로 시작했던 중국에서의 유학이지만, 사실 그곳에서 지난 2년 동안 많은 인연을 만났고,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마치 언제고 다시 돌아와 학생 식당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위샹로쓰를 먹고, 기숙사 문 근처의 노상에서 마라촬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년 내내 탈중국을 외쳐댔건만 떠날 무렵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 늦어도 1월 13일에는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마냥 추억과 아쉬움 속에서 헤매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모든 준비를 주어진 한 달 안에 다 해치워야 했다. 우선 제일 급한 것은 한국 집에 우편으로 도착한 I-20를 가지고 미국 대사관에 가서 학생 비자를 발급받는 일이었다.
우선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동안 와이파이 기능이 망가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낡은 노트북을 대신할 컴퓨터를 보러 갔다. (내 손으로 해먹은 노트북만 2년 동안 세 개였다) 아무래도 80만 원짜리 싼 노트북을 사서 그런 것 같다고 이번엔 비싼 걸 사주겠노라며 엄마가 나를 데려간 곳은 애플!!!
저장공간을 업그레이드하고 마우스와 CD롬까지 200만 원을 넘게 주고 산 맥북에어로 제일 처음 한 일은 바로 비자를 신청하는 일이었다(정말 내가 생각해도 돈 많이 드는 딸내미라는 것, 나도 안다). 이전 학교에는 2학년을 마치고 본교로 넘어가는 학생들을 도와주는 담당자가 따로 있었는데, 나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인터넷을 뒤져가며 정보를 찾아야 했다. 은행에 찾아가 MRV Fee 수수료를 납부하고 DS-160 비자 신청을 완료했다. 정해진 날짜에 서울 종로구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가서 심사를 받아야 했다.
모든지 가장 안 좋은 결과부터 떠올리는 건, 중국에서 워낙 많은 일들을 겪었기 때문인가. 모든 경우의 수를 예상해두고 가야 안심이 되는 성격 탓에 인터넷에서 온갖 종류의 인터뷰 후기들을 읽어댔다. 어떻게 대답했더니 통과가 되더라, 자기는 거절돼서 울고 싶을 지경이다, 참 다양한 후기들이 널려있었다. 혹시나 거절당해서 미국에 가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그럼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간다더니 왜 다시 왔냐는 눈초리들을 받을 생각을 하면 아찔했다.
부모님이나 어른의 도움 없이 그 경계도 삼엄한 대사관에 들어가는 것도 내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울에 가기 직전까지 수십 번 빠진 서류는 없는지 살피고 또 살폈다. 전자기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떨리는 마음을 엄마와의 전화통화나 친구들과의 수다로 진정시킬 수도 없었다. 18살의 클라라는 그렇게 오돌돌 돌 떨면서 몇 시간을 기다리다 겨우 대사관 직원 앞에 섰다.
"음. 편입 서류는 문제가 없는데... 네 학교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가 없어."
콰콰쾅. 번개가 치는 기분이었다. Missouri State University가 미국에 있다는 건 알겠는데 도대체 왜, 어떻게, 무슨 이유로 중국에 있다 왔느냐는 질문이었다. 이렇게도 대답해보고, 저렇게도 대답해 보다가 LNU-MSU라고 구글에 치면 나오지 않겠냐며 체념하듯 말했다.
"아아, west plains. 정보 찾았어. 자 통과, 미국 가서 공부 열심히 해."
2년 동안 학교에서 수없이 들었던 Missouri State University - Dalina Campus는 사실 통용되는 이름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West Plains(사실 지금도 성적표 뽑을 때 보면 westplains로 설정을 해야 하긴 하더라)니, 중국 본교인 Liaoning Normal University니, LNU-MSU니 여러 이름을 가진 모양이라, 옆 사람들이 슝슝 통과를 받고 나갈 때까지 장장 20분가량을 유리창 앞에 서서 이것저것을 설명해야 했다. 여행비자를 받아서 입국한 뒤 학교 담당자와 이민국에 가서 복수비자로 바꿔주던 중국과는 사뭇 다른 삼엄함과 까다로움이었다(지만 나중에 스페인이 더 힘들었다).
그로부터 약 2일 뒤 미국 비자가 붙은 나의 여권이 집으로 날아왔다. 지금은 누가 미국에 가고 싶다고 하면 총 맞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이 먼저 나가는 나라가 되었지만, 이때의 내게 미국은 마치... 가기만 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같고,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 같은 곳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만 보던 높은 건물과 (아님) 넘쳐나는 교통체증도 (없음) 다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커피도 안 마시면서 한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사람들 사이를 누비는 상상도 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나는 그렇게 미국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