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마무리

by 환한

편입이 확정되고 나니 이제 남은 것은 2년간의 중국 생활을 잘 마무리하는 것뿐이었다. 편입을 한다고 해서 2학년 2학기에 수강하던 과목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여전히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해야 했고, 좋은 점수를 받아야 했고, 열심히 살아가야 했다.


편입을 하면 기존에 다니던 학교의 미국 본교로 가게 되면 받을 수 있는 장학금도 없어지는 데다 더 비싸지는 학비 때문에 고민을 했던 것도 한참. 결국 새로운 학교로 가기로 결정한 뒤 교수님들께도 이를 알렸다. 우리 학교에는 내가 편입하게 될 (그리고 졸업한) 대학교 출신이 몇몇 있었고, 그들은 소식을 듣고 본인과 동문이 된다는 사실을 반가워하면서도 한결같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 이유는 '정말 공부만 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며 여러분 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그저 가면 알게 될 것'이라는 마찬가지로 한결같은 대답이었는데, 이 뜻을 알게 되는 덴 정말 얼마 걸리지 않았다).


DSC_0211.JPG 눈이 참 많이도 오던 대련


언제나 '돌아올 곳'이었던 이곳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곳'이 되면서 몇 가지 해야 할 일들이 생겼다. 첫 번째는 교과서를 빌리기 위해 학교에 냈던 보증금 500위안을 돌려받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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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011년. 세 번의 이사를 하는 중에도 용케 잃어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던 이 영수증은 무려 500위안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종이였는데, (좀 더 여유를 두고 살면 좋으련만) 한국에 갈 생각에 항상 기말 보는 당일에 비행기표를 끊던 과거의 나는 당일 환급을 받지 못해 500위안을 날릴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내려준 한 줄기 빛과 같이, 사막에서 찾은 오아시스 같이 나를 구원해준 것은 바로 같은 학교에 다니던 동생이었는데, 그는 선뜻 지갑에서 500위안을 꺼내어 주며 자기가 돈을 먼저 줄 테니 그 돈을 가지고 들어가라고 했다. 17살의 동생에게 500위안은 그래도 적지 않은 돈이었을 텐데, 혹시 돌려받지 못하면 내가 보내줄 테니 꼭 말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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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했던 일은 생일 선물로 받았던 화분을 학교에 기증(?) 하는 일이었다. 백신을 맞추고 한국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반려동물과 달리 화분은 한국으로 가지고 갈 수 없어서 그냥 길거리에 놓고 갈 위기에 처한 딱한 내 반려 식물. 어떻게 해야 할지 키워주겠다는 사람도 없고 곤란하던 차에, 눈에 들어온 학교 1층의 화분들. 보증금 처리를 도와줬던 동생에게 부탁해 경비 아저씨에게 키워달라고 하면 안 되겠냐고 말해달라고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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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잘 안 통해도 서로 인사를 주고받던 사이라 내 얼굴을 알고 있었던 수위 아저씨는 그렇게 하겠다며 나중에 다시 돌아왔을 때 꼭 찾아가라고 작별인사 아닌 작별인사를 해줬다. 아직까지 잘 크고 있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이렇게 또 놓고 온 작은 조각이 마음에 밟히는 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짐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정리해놓은 자료와 아직도 쓸만한 두툼한 이불은 딱딱한 침대 위에 깔고라도 자라고 루미 언니에게 넘겨주고, 어느덧 낡은 옷들은 주저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무로 만들어진 젓가락은 버렸지만 그래도 쓸만한 그릇들은 다음 세입자가 쓸 수 있도록 넣어두었고, 2년 동안 내 가족보다 더 많이 보고 지낸 사람들과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CAM00701.jpg 지금 생각해도 짐이 너무 많아서 한숨도 못 자고 정리만 했던 대련에서의 마지막 밤


좋은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잘 마무리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사람들과의 첫 번째 이별. 찬바람이 부는 밤이면 집 앞 푸민 공원에서 루미 언니와 산책하던 날들이, 바로 옆 양광 아파트의 작은 배드민턴 코트 같은 곳에서 빙글빙글 돌던 밤이 떠오른다.


내 나무가 잘 자라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어졌는지 다시 보러 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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