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모 Mar 20. 2021

니모의 상담 일기 #1

요즘의 나는 애정에 매달리고 있다. 내면의 어린아이가 아직 해결이 안 됐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동안 꽤 나아진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상하게 올해 들어 내 안의 상처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아주 힘든 것들이 걷히고 나니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구립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상담을 신청해서 2회 정도 온라인으로 상담을 했는데 상담사 선생님이 나의 트리거를 너무 자극했다. 일단 엄마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이어서 첫 만남부터 부담감이 있었는데 첫 회기에서부터 교정적인 목표를 잡는 것, 나에 대해 직접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 회기가 끝날 무렵 어떤 답이 정해져 있는 것만 같은 질문을 받은 것이 특히나 불편했다. 상담사를 바꿔달라고 바로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하다 일주일을 기다려 2회기 상담에서 직접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나는 후련할 줄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고 선생님과 나 사이의 간극도 거의 좁혀지지 않았다. 내가 10년 전 처음 상담을 받았던 선생님이 정신분석가여서 그랬는지, 이번 상담이 단기 온라인 상담이어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상담의 분위기와 환경 자체가 너무 달라서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선생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긍을 하셨다. 어쩌면 선생님이 나에 대해 내린 평가, 목소리에 자신감이 부족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사소한 것일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와 오버랩되는 것이 심해서 더 자극적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2회기 이후에 센터에 전화를 걸어 리퍼를 요청했고 나의 첫 상담 선생님이었던 정신과 선생님께도 전화를 드렸다. 10년 전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선생님은 할아버지였다. 지금 선생님은 그때보다 더 할아버지 셔서 상담을 하기는 어렵고 다른 분을 연결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전화만 했는데도 왠지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아마도 선생님이 할아버지여서 내가 그분을 더 편하게 느꼈던 걸지도 모른다. 내 마음 가장 안쪽 바운더리에 있는 사람이 우리 할아버지이니까. 이따금씩 선생님이 내 말을 듣고 있는 건지, 나에게 공감해주고 계시는 건지 느껴지지 않아 짜증도 냈지만 가기 싫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을 다닌 걸 보면 그 시간이 나에게 참 소중했나 보다. 


지하철에서 내려 언덕을 올라가면서 아 너무 일찍 가면 안 되는데 하고 계단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근처 공원에서 서성거리다가 가기도 했다. 정리가 된 듯 안 된듯한 작은 오피스텔 소파에 앉아 선생님 뒤편으로 보이는 창 밖 나무들을 왠지 원망스럽게 쳐다본 세월도 길었다. 거실에 어지럽게 널려있던 서류 뭉치와 아령, 브리타 정수기도 있었나. 침대에 눕는 건 영 불편해서 싫다고 소파에서 10분에 한 번씩은 자리를 바꿔 앉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사람은 그렇게 움직여야 맞는 것 같아."라고 말했었다. 


우는 게 너무 싫어서 억지로 참아도 새어 나오는 눈물을 빨리 없애려고 열심히 닦기도 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했다. 그때 선생님은 경제적으로 내 삶을 책임지는 것에 대해 알려주셨다. 이제 나는 내 한 몸 정도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나를 부를 때 ~씨와 반말을 섞어서 부르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다시 들으니 여전히 작은 아이를 돌보는 듯한 마음이 전해졌다. 


우리가 헤어질 때 즈음 나는 선생님 앞에서 바이올린을 켰다. 서툰 연주였지만 선생님은 생음악을 들으니 좋다고 하셨고 그때 내 마음은 꼭 할아버지에게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잘 크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따금씩 아빠를 통해 나의 안부를 물어오는 선생님을 생각하면 귀엽게 굴고만 싶었지만 선생님은 언제나 선생님의 자리에 있으니까. 상담심리 수업에서 들었던 '상담자는 보호자와 같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아주 오랜 침묵 속에 녹아있던 애정과 경청과 돌봄의 마음이 나는 익숙해져서 마음건강지원센터에서 하는 단기상담이 잘 적응이 안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새로운 선생님을 잘 만날 수 있을까. 다음 주에는 새로운 선생님을 두 분이나 만나기로 했다. 나는 여전히 엄마를 찾아 여행 중인가 보다. 이번엔 어느 만큼 클지, 지금은 어느 만큼 컸는지. 궁금하다. 


나는 나를 잘 키워보고 싶어. 언젠가 선생님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때엔 나도 좋은 보호자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