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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모 Mar 25. 2021

니모의 상담 일기 #2

새로운 상담 선생님을 만났다. 첫 만남의 그 1초 동안 정말 많은 것들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는 것 같다. 지난번 선생님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그 1초의 느낌이 상담 회기 내에서 이어지고 증폭되고 있다.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명상을 공부하면서 에너지는 광, 음, 파로 전해진다고 배웠는데 목소리의 파동만으로 그 사람이 에너지가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진다. 수련을 계속 해와서 이런 것에 더 예민한 탓일 수도 있겠지. 


1시간 동안 정말 많은 얘기를 했다. 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오래전 정신분석 상담을 받았을 때는 내 마음을 열기 싫어서 한 시간 내내 고집부리다 겨우 몇 마디 하고 끝난 회기도 많았고 그냥 울기만 하다가, 아니 수치심에 억지로 울음을 참다가 지나가버린 시간도 많았다. 오늘 선생님이 나의 이야기가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쉽다고 말해주신 것을 통해 내 마음의 힘도 그동안 많이 자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문자를 받으면 슬프고,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등 에너지가 떨어지면 아빠나 새엄마와의 관계, 애인과의 관계에서 불안감이 심해지는 불편함이 있다. 내가 나쁜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불편한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나는 이렇게 외롭고 슬픈데 나를 도와주지 않고 이런 나를 미워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선생님과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다뤄보고 싶다. 그럴 수 있을 거란 마음이 들 정도로 편안한 분이었다. 나를 키운 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여서 그런지 상담 선생님들에게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느낌이 나면 마음을 놓게 된다. 이런 전이의 과정이나 형태가 상담사와 내담자 간의 케미가 어떤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엄마를 대하는 방식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식이 될 수 있는지, 멀어진 동생과의 사이를 어떻게 봉합할 수 있는지 너무너무 궁금하다. 어떻게 보면 정말로 엄마나 아빠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나도 동생도 다 피해자이고 가해자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이 굴레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 아빤 아빠 나름대로 새엄마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 충족되지 못했던 애정을 채워가고 있고, 나도 마찬가지로 노력하고 있으니까. 내가 더 튼튼한 사람이 되어서 엄마의 슬픔에도 잠식되지 않고 그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 자식에게 엄마는 영원한 존재이니까.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애정만큼, 어쩌면 그것보다 더 조건 없이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아빠에게는 엄격하고 무뚝뚝한 아버지였지만 나에게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지.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할아버지의 사랑 때문이었다. 힘든 와중에도 나를 돕는 사람들을 딛고 여기까지 왔다. 그 사랑이 아깝지 않게 나도 힘껏 일어나 보고 싶어. 언젠가 모든 마음이 다 사랑이었다는 것을 가슴 깊이 깨닫는 날이 오겠지. 매일 그 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나는 그 기다림의 날들을 최대한 즐겁고, 기쁘게 보낼래.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시간에는 엄마가 내게 보내는 문자의 구체적인 내용, 내가 반응하는 방식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왜 엄마는 내가 그를 이용한다고 생각하는지 풀어보고 싶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그리고 다음 주 상담이 무척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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