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모 Jun 08. 2022

니모의 명상 일기

어른이 되면, 말할 수 있는 것보다 그렇지 못한 것들이 많아진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곁의 단 한 사람에게만큼은 무엇이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요즘 팀장님은 몇 번이나 내게 물었다. 대체 여기서 왜 일하냐고. 그러게 말이에요 팀장님.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구구절절 내 인생의 경로들을 말씀드렸다.

 

목적 없이,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삶보다 더 괴로운 게 또 있을까. 왜 살아야 하는지 우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방향성을 모른 채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야만 하는 삶이란 정말 죽은 것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그냥 내게는 그에 대한 답과 그 답의 방향성만 납득 가능하다면 다른 건 다 견딜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조건과 환경이 맞다. 나는 그렇다 쳐도 선생님들은 대체 어떻게 일하시는 건지. 요즘엔 정말 부끄러울 때도 많고 이곳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더 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어떻게 이토록 자기 발을 스스로 걸고넘어질 수 있나. 이따금씩 나조차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워질 때가 있다.


퍼포먼스를 내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팀장님이나 다른 선생님으로부터 많이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가고 싶은 곳이 없고,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서 그 자원을 쓸 만큼 매력적인 곳이 있는지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승진, 연봉, 영향력. 다 좋은데 그게 1순위가 되기엔 내 가슴이 다 죽어버릴 것만 같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내가 정말 재밌으면 되는데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은 내가 성장하는 것이고 그 성장은 목적과 수단이 일치했을 때 생긴다. 그리고 그것의 방점은 오직 밝고 가벼워지는 것에 있다.


인류학을 배우면서 나는 인간의 매트릭스에 대해 배웠다. 만들어진 역사, 만들어진 정치, 만들어진 모든 이름들에 대해. 무상을 인류학은 그렇게 설명한다. 무상을 알고 나서 어떻게 무아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근본적인 방향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림과 영화와 사진을 보면서 잔뜩 구경해버린 삶에는 희로애락이 가득했다. 그 희로애락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그것. 아무리 봐도 못생긴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은 그런 다이나믹을 입은 실체이지 않을까.


플라톤은 동굴의 그림자를 통해 인간이 진아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수련을 하면서 느끼는 에너지의 감각이 진아의 그림자인 거겠지. 실체를 맨눈으로 볼 수 있다면 아마 우린 다 눈이 멀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인디언들은 맨눈으로 해를 늘 바라보다 시력을 잃어갔던 걸지도 모른다. 태양빛을 받는 순간 충만해지는 것은 우리가 그 빛을 닮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고 따뜻해지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덜 상처받아야 하고 더 강해져야 한다. 나는 아주 작은 것들에도 크게 놀라고 금방 움츠러든다.


부모님이 헤어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가족이란 연결고리가 언제든지 해체될 수 있는 거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족을 꾸리고 싶으면서도 그것이 정말 두렵기도 하다.


나만큼이나 나를 잘 아는 사람과 삶을 함께하고 싶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나에 대해 천천히 말하고 싶다. 누군가 그걸 기다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은 그런 것인데 어쩌면 그냥 다 신기루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참 모순적이지. 희노애락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희노애락을 함께할 사람이 있다면 내 삶의 목적과 가치에 대해서도 상대방과 충분히 협의하고 싶다. 내 삶이 만약에 그에게 고통을 주는 거라면 차라리 난 내 기쁨을 포기하는 편을 선택할 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걸 보는 것은 정말이지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와 있어도 친절하고 겸손한, 누구를 만나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갈 길은 멀지만 잘 해내고 싶어. 누구를 만나도 기쁘게 대화하고 내게 소중한 것들을 그에게도 소중하게 전해주고 싶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보고 싶고, 사랑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과 함께 그저 이 망망대해 같은 대자연 속에 쾅 하고 떨어져 버린 어이없고 경이로운 순간을, 느껴보고 싶다.


오늘은 이만 죽고 내일 다시 태어나서 살아야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것처럼, 단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살아봐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만월도전님의 혼궁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