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어느 날, 마음속에 피어나던 꽃 같은 곡이 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가 아니어서 mp3나 스마트폰을 통해 내장된 음악을 손쉽게 들을 수 있지도 못했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레코드판 매장에서 CD 등을 구입해 들어야 만 했다.
당시 규모가 큰 레코드판 매장에서는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음반들을 미리 들어볼 수 있던 서비스가 제공됐다.
어느 날 시내의 큰 레코드판 매장에서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다, 어떤 곡으로 인해 나른히 꽃봉오리 속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음악을 들으며 많은 것들을 상상하고 연상이 되곤 하는데 그때 들었던 음악을 통해 보았던 커다란 꽃들의 형상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소라의 ‘그대와 춤을’ 이곡은 전반적으로는 몽환적인 느낌과 함께 느린 영상으로 서서히 그리고 활짝 피어오르다 어느덧 만개하는 꽃이 연상된다.
그러면서 기분이 매우 황홀해지는데 독특한 목소리를 내뿜는 이소라 씨의 목소리와 어우러짐으로 그 느낌이 더해지는 것 같다.
바람을 머금은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 결은 흩날리는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만져주는 것만 같아 곡과 훌륭한 어울림을 빚어내고 있다.
또한 이곡은 어쩐지 작은 수줍음이 내재되어 있는 듯도 하지만 자유롭고 당당하게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랑스러운 여성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지나치지 않은 관능미와 함께 우아함이 가득한 향기가 묻어난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멜로디가 먼저 들리기 때문에 가사는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한 그 내용을 모르고 지나칠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 곡의 가사가 궁금해졌고 가사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가사의 내용을 모르고 곡이 전해주는 분위기를 통해 상상만 해 왔던 느낌들이 실제 가사와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앨범 타이틀이 [꽃]에다 재킷 그림마저 ‘꽃’인 이 연결성에 대해 과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단지 곡이 주는 느낌과 그 상상만으로 이토록 절묘하게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거짓 같기만 하다.
음악을 통해 상상하는 것들이 현실에서 보이고 느껴지는 순간을 만나는 건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특히 흐르는 듯 유려하게 이소라 씨의 보컬을 받쳐주고 있는 2절 초반의 현악 스트링 진행은 음악에 풍부한 표정을 느낄 수 있어 내가 이곡에서 손꼽는 부분 중 하나다.
예전에 프로듀싱과 작곡 등으로 실력을 크게 인정받고 있는 국내 한 뮤지션이 이곡에 대해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곡인데 너무 잘 만들어진 곡”이라며 “아직까지 이소라 씨 곡 중에 단연 최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음악을 들으며 연상되었던 꽃들. 음악의 분위기에서 연상이 되는 수줍은 꽃봉오리가 서서히 피어오르고 이내 활짝 만개하는 모습의 상상을 통한 형상은 어딘지 모르게 조지아 오키프의 커다란 꽃들과 닮아있는 것 같다.
차분하고도 절제된 그녀의 그림은 커다란 자유분방함과 황홀함을 느끼게 하는데 이소라 씨의 ‘그대와 춤을’을 들을 때면 유난히도 조지아 오키프의 꽃 들이 내 마음속에서 꽃잎을 하늘거리며 춤을 추고 있는 것 만 같다.
‘꽃과 사막의 화가’, ‘미국 모더니즘의 어머니’라고 알려져 있는 조지아 오키프는 1887년 미국 위스콘신주(Wiscinsin)에서 태어나 98살까지 장수를 누렸던 화가다.
어릴 적부터 탁월한 재능과 뛰어난 창의력을 선보였던 오키프는 10살에 이미 화가가 될 것을 다짐하며 미술대학에서 공부를 한 후 상업미술가의 활동과 교사 등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녀가 인생에서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앨프레드 스티글리츠와의 만남이다.
당대 사진계의 거장으로 불리며 왕성한 활동을 하던 스티글리츠는 젊은 화가 지망생이었던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들을 보고 단번에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다.
결국 그녀의 그림들은 뉴욕의 유명 화랑에서 당당하게 대가들과 같이 전시되는 행운을 갖게 되고 이는 그녀를 단숨에 유명하게 해주는 기회이자 계기가 됐다.
하지만 유부남이었던 스티글리즈와의 사랑, 그리고 결혼 등으로 인한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러나 오키프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나 소문에 대해서 오로지 꾸준한 작품 몰두를 통한 독창적인 작품들로 20세기 미국 미술계의 독보적인 여성화가의 위치를 얻게 된다.
조지아 오키프는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 방식을 제안하며 초현실주의에서부터 극사실주의와 팝아트 등 미국의 현대 미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미국 모더니즘 화단의 독보적인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날씨가 너무나 좋은 요즘이다.
이런 날에 꽃을 닮은 이소라의 ‘그대와 춤을’을 들으며 조지아 오키프의 꽃을 감상하는 것을 어떨까!
자유분방한 율동성이 돋보이는 선과 탐미적인 느낌에, 음악이 덧 입혀져 황홀한 계절감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 [분홍색 위에 두 송이 칼라. 1928년] ▲ [하얀 아이리스 1924년]
성지윤 칼럼니스트 claramusic8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