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스며들어 열린 새로운 세상
내가 가르치는 10살 희수는 학원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갑자기 악보 위에 그림을 그리곤 한다. 연습하던 피아노곡에서 어떤 영감을 받은 것인지 다양한 그림을 그려나가고 또 가끔은 그림의 스토리도 들려준다. 희수에게 음악은 분명 다른 감각기관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어 그림이라는 형태로 표현되고 있었다. 비단 이 학생뿐이 아니다. 예전에도 이런 학생들은 있었고 음악을 들려주고 그 느낌을 회화로 표현하게 하는 수업은 그동안 여러 교육기관들에서 실행되어왔다. 이렇듯 각 예술들은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아 왔으며 그중에서도 미술과 음악의 상호 영향성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낭만주의, 인상주의 시대부터 이러한 현상은 있었고 이후 몇몇 예술가들은 직관적으로 받은 느낌이나 새로운 시도를 위하여 예술간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 및 상호변환에 대한 가능성을 작품으로 펼치거나 이론화해왔다. 이 중 음악에서 받은 느낌을 미술로 표현하는 작가들로는 칸딘스키와 파울클레, 들로네가 대표적이며 그 외 작품 일부에 있어 음악적 영향을 받은 클림트와 몬드리안이 있다.
이들 중 몬드리안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차가운 추상의 대표이자 선구자이다. 몬드리안을 대표하는 작품인 빨강노랑파랑으로 구성된 작품은 패션과 디자인에 큰 영감을 주고 있으며 그의 그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무척이나 낯익은 그림이자 패턴이다.
위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은 지극히 단순하고 건조하며 추상적이다. 그는 이러한 수평선, 수직선을 이용한 정사각형·직사각형의 순수 기하학적 형태의 구성에 집중한 작품을 무려 20년간 그렸다.
하지만 이러한 몬드리안에게도 작품이 변화되는 계기가 찾아왔는데 바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망명길이었다. 그는 뉴욕에서 처음으로 재즈음악인 부기우기(boogie woogie)를 접했고 이 음악이 주는 경쾌함, 역동성, 즉흥성 그리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스윙댄스에 크게 매료된다. 그리하여 몬드리안 작품에는 흥겨운 리듬감과 운동성이 그려지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바로 또 다른 대표작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이다.
부기우기는 피아노 블루스의 특이한 주법으로, 왼손 리듬을 1마디에 8박으로 잡고 되풀이하는 동안 오른손으로 자유롭게 애드리브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음악에서 짧고 빠른 리듬이 반복되는 것처럼 몬드리안의 그림 속에도 색띠 속 빨강파랑의 작고 빠른 색 점들이 반복하며 등장한다. 그리하여 재즈음악과 같은 발랄한 리듬감이 생기면서 활기를 드러내고 있다.
음악은 영감의 원천이 되어 오랜 시간 차갑고 직관적이던 그의 작품에 율동성과 생동감을 가지도록 해주었으며 마침내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템포감이 살아있는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렇듯 각기 다른 분야의 예술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새로운 지평을 연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들리는 음악을 패턴으로 시각화한 음악작품을 소개한다.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표자 중 한 명이자 현존하는 미국 작곡가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스티브 라이히의 ‘나무 조각을 위한 음악(Music for Pieces of Wood - Visualization)’이 그것이다.
‘나무 조각을 위한 음악’은 멜로디와 반주의 경계가 모호한 음악으로 특히 이 음악을 시각화한 형태로 보여주는 ‘visualization’이라는 곡은 이 음악을 네모 모양의 패턴으로 보여준다.
[Steve Reich - Music for Pieces of Wood – Visualization] 의 동영상
규칙을 깼기에 얻은 새로운 세상 - 한국뉴스투데이
연주는 나뭇조각과 클라베로만 이루어져 있어 멜로디 없이 리듬만으로 구성되어있다. 어릴 적부터 드럼에 관심이 많았던 스티브라이히는 이러한 관심으로 인해 훗날 리듬 중심의 음악을 쓴다. 원래는 철학을 전공했지만 음악가로 전향하여 활동했던 그는 어느 날 새로운 자극을 위해 가나로 음악수업을 떠나게 된다. 이로 인하여 그의 음악은 전환점을 맞게 됐는데 리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스티브였기에 아프리카 특유의 역동적인 리듬을 마음껏 흡수하고 작품에 도입하며 발전을 이뤄 나갔다.
이 시기에 발표된 곡 중 하나인 ‘나무 조각을 위한 음악(Music for Pieces of Wood - Visualization)’은 가장 간단한 악기로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스티브 라이히의 욕구로 인해 작곡되었고 악기가 바뀌거나 박자의 증폭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변화가 없는 연주가 이어진다. 그렇기에 음악이 패턴화된 것처럼 느껴지고 그것을 Visualization이라는 영상을 통해 시각화한 것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이자 리듬 패턴인 테크노 음악의 원조 격으로 현재 많은 대중음악의 리듬으로 발전됐다.
영상을 통해 보이는 것은 기계적인 형태이지만 실제 연주는 나무 소리로 이 둘 간의 부조화가 오히려 매력적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을 보고 들음으로써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두 작품을 소개하며 여러분에게도 어떤 것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시선을 제시하고 이를 통한 흥미로움을 느끼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성지윤 칼럼니스트 claramusic8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