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종소리를 표현한 ‘라 캄파넬라’ - 한국뉴스투데이 투명하고도 빛나는
감수성이 뛰어난 아이인 형찬이는 얼마 전 다른 학생이 치는 피아노곡을 듣고는 ‘이 곡은 얼음 계곡 같아요. 왜 이렇게 차갑죠?’라며 음악에서 받은 느낌을 표현했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었다. 오랜 시간 접해온 음악이지만 추상의 언어인 음악으로 형상을 표현해내는 것은 여전히 신비롭다.
실체가 없는 음이라는 재료로 새소리와 같은 여러 소리는 물론 마치 눈에 보이고 그려지는 것처럼 이미지나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음악이 지닌 재능이다. 쇼팽의 곡 ‘추격’은 말을 타고 누군가 빠르게 쫓아오는 상황을 상상하게 하고 ‘겨울바람’은 추운 날 무섭게 휘몰아치는 삭풍을 연상하게 한다.
이렇듯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음들의 조합과 리듬의 빠르고 느림으로 인해 찬란한 은빛 종소리를 표현한 곡이 있다. 바로 프란츠리스트의 ‘라 캄파넬라’이다.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는 정관사인 ‘라 la'와 '악기로 쓰이는 작은 종'이라는 뜻의 ‘캄파넬라campanella’로 이뤄진 제목의 곡으로 고음 부분이 종을 치는 소리와 같은 느낌을 주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곡은 리스트가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곡들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곡 중 하나로 ‘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집’에 들어 있는 여섯 개의 연습곡 가운데 3번이다.
낭만주의 시대 대표적 작곡가 리스트는 어릴 적 체르니와 베토벤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정도의 대단한 신동이었다. 이러한 리스트도 어느 날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일컬어지던 파가니니의 공연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하여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하루 10시간 이상의 맹연습을 하면서 실력을 쌓아나갔다.
이로써 그는 19세기 전 유럽을 호령할 정도의 실력을 지닌 피아니스트가 됐고 거기에 더한 잘생긴 외모는 많은 여성의 환호를 받게 하였다. 리스트의 곡 ‘라 캄파넬라’는 피아니스트들이 자신의 기교를 자랑하기 위해 자주 연주하는 레퍼토리로 고난도의 테크닉이 요구된다. 고음부에서 가냘프면서도 영롱하게 묘사되는 종소리는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 은빛 종소리의 투명한 울림과 분위기를 탁월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이렇게 음표들이 마치 은빛요정이 되어 빛의 미끄럼틀에 미끄러지는 것 같은 장면이 펼쳐지는 고음부와 후반부 저음들의 웅장한 음향은 서로 강렬한 대비를 이루면서 매력적으로 어우러진다.
고음부의 투명함 그리고 저음부의 웅장함. 그 어울림이 빚어내는 하나의 은빛 세계가 ‘라 캄파넬라’라면 화면을 가로지르는 은빛 물줄기와 함께 강렬한 매력을 뿜어내는 이질적인 세계는 ‘아토미쿠스’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아토미쿠스’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1948년 뉴욕에서 활동하던 사진가 필립 할스만이 당시 절친한 친구였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작업한 작품으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실험 사진으로 손꼽힌다.
점프 사진으로 유명한 사진가 필립 할스만은 라이프지 표지 사진을 101번 찍은 사진작가로 마를린 먼로, 오드리 햅번, 처칠, 닉슨, 아인슈타인, 샤갈 등 당대 유명인사의 인물사진을 찍었다. 그는 달리의 ‘레다 아토미카’라는 작품을 통해 영감을 받은 후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조수 네 명과 힐스만의 아내, 고양이 세 마리 그리고 달리와 함께 사진 촬영을 했다.
[아토미쿠스]Salvador-Dali1948Ⓒ-Philippe-HalsmanMagnum-Photos 출처|위키디피아
이 사진은 현재와 같은 포토샵이 없던 시대에 모든 것을 직접 연출해야만 했던 작품으로 의자를 매달고 고양이를 던지고 물도 직접 뿌리며 달리 스스로 직접 점프를 하는 등 6시간 동안 총 28번의 던지기 시도 끝에 얻은 사진이다.
기인과도 같던 달리와 우정을 지속하면서 힐스만의 작업에도 전과는 다른 경향이 나타나게 되는데 바로 ‘아토미쿠스’가 둘과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새로운 명작이다. 이 작품은 기존의 힐스만 작품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며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나는 이 매력적인 사진을 2014년에 열렸던 필립 할스만의 전시 ‘점프 위드 러브’에서 처음 만났다. 다른 힐스만의 점프 사진들이 주는 자유, 가벼움, 해방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던 ‘아토미쿠스’는 점프를 하는 사물들에서 질량과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리고는 문득 라 캄파넬라가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라 캄파넬라는 도입부가 단조로 시작된다. 그래서 은빛 종소리의 투명함과 마이너 코드의 조화, 거기에 더한 고음부와 저음부의 대비는 음악 전반에 무게감을 실어주며 투명하지만 가볍지 않다. 그렇기에 아토미쿠스 작품 속 점프와 어딘가 닮아있다. 그렇기에 아토미쿠스를 보면 늘 라캄파넬라가 귓가에 맴돌고 라 캄파넬라를 들으면 아토미쿠스가 떠오른다.
점프라는 동작의 운동성에 반하는 기묘한 느낌의 작품 필립 힐스만의 아토미쿠스, 그리고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 이 두 작품을 소개한다.
성지윤 칼럼니스트 claramusic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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