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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Apr 25. 2022

학생과 선생님의 사이에서-언어수업에 대한 고찰

나는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이고, 또 외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나는 언어학이나 교육학 전공이 아니지만 두 분야에 모두 관심이 많다.

정말 순수하게 나의 적성만 따져서 공부할 분야를 선택했다면, 아마 그 쪽으로 나갔을 것이고, 

아마 나는 잘 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좀 욕심과 야망(?)이 컸고, 돈이 되는 쪽으로 나가고 싶었다.ㅋㅋㅋㅋㅋ

결과적으로 공부가 너무 재미 없어져버리고 말아서 그 부분은 좀 아쉽다. 

하지만 대학에서 하는 공부만 공부가 아니듯,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오히려 언어학, 교육학과 계속 얽히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사와 지식분야를 넓힐 수 있었다. 우선, 영어를 포함한 다양한 외국어를 계속 배웠다. 그리고 내가 잘하는 언어인 한국어와 영어를 가르칠 기회를 계속 가지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언어 수업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언어수업을 하면서, 다양한 언어와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문화에 대해 배우고, 그리고 언어를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1. 먼저 내가 영어를 배울 때를 돌아보면, 나름 어렸을 때 엄마가 노출을 많이 시켜주려고 노력했지만(방탄소년단 RM 어머니가 프렌즈 시트콤을 틀어주셨듯) 영어를 잘 했냐, 하면 별로 그건 아닌 것 같다. 내가 영어로 줄줄 말을 했던 기억같은 건 없다. 그래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파닉스는 뗐다. 영어에 거부감도 없었다('공부'를 안했으니까...). 초등학교 때까지 다닌 어학원은 거의 놀러다녔던 것 같고, 단어같은 것도 많이 외우지 않았었다. 중학교 때부터 내신 영어학원을 다녔는데, 문법은 고등학생이 되도록 무슨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먹었다. 그놈의 성문영어책은 책부터가 보기 싫게 생겼는데, (그림도 없고, 글씨도 작고, 칸도 없는 나와는 최악의 궁합인 책) 학원이든 학교든 맨날 그 책으로 수업을 한다고 하고, 나는 문법 수업만 들으면 잤다.

영어 듣기 <고급>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안들렸다. 선생님이 테이프인지 cd 인지를 구간 반복해서 틀어주면서 외국인이 지금 이 문장을 말하고 있다,라고 설명하는데 너무 빨라서 충격을 받았던 단편적인 기억이 난다. 단어 외우기는 물론 최악이었다. 단어 외우는 요령 자체를 몰랐고, 어거지로 외우려 해도 외워지지도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영어시간에 단어 못 외워서 맨날 맞았는데 억울한 건 난 최선을 다해 외웠다는 것이다. 물론 나의 무대공포증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외운 것도 선생님이 일어나서 말해보라고 하면 생각이 하나도 안났다. 


그래도 영어가 조금이라도 자신이 있었던 이유는 언어적 눈치코치가 빨라서(?) 독해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단어를 몰라도 문맥으로 다 때려맞추고 문법을 몰라도 문맥으로 다 해석해 버리는 능력. 그 때려맞추는 능력은 초등학교 때 영어를 달달 하지 않았어도 한국어 책을 많이 읽어서라고 생각된다. 우리 집은 그 당시에 이미 티비가 없는, 거실 전면이 책장인 집이었다. 어쨌든 무슨 근자감이 있어서인지 나는 내가 미국에 갈 영어실력은 된다고 생각했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자신감이라기 보다는 미국 갈 영어 실력이 되는지 안되는지 시험해보고 싶었고, 멋모르고 영어 못해도 미국 가면 다 잘하게 되는 줄 알았다.


미국생활을 돌아보면, 생활필수 용어와 문장들은 너무 많이 듣고 쓰니까 자연스럽게 습득되었던 것 같다. 무자막(당연하지만)으로 그냥 알아듣지도 못하는 티비를 주구장창 봤는데 당연하게도 그게 쌓여서 어느날 갑자기 내가 귀가 트이고 입이 트이는...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무자막을 많이 보고 영어에 무조건 노출 하는 것이 영어를 잘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부감은 줄일 수 있고, 자연스럽게 그 언어를 어떤 뉘앙스로 어떤 속도로 어떤 악센트로 말하는지 배울 수는 있다. 아마도 아주 어린 나이-막 말을 배우는 아이-때는 습득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더 효과적이다. 단순 미디어를 통한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보다는. 


미국에서 나의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 '말'을 해야 하니까 영어로 문장을 만들려고 노력하면서였던 것 같다. 단순히 가게에서 점원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학교를 다니고 호스트 가족과 살면서 다양한 문장을 사용해야 하니까 문장을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야 했고, 그러면서 나에게 필요한 단어를 외우게 되었고 문장 등을 통째로 외웠다. 한국에서 영어는 항상 나에게 인풋이었지, 아웃풋을 요구하지 않았다. 나는 영어로 내가 생각할 필요가 없이, 써 있는 걸 읽었고, 들려주는 걸 들었고, 외우라는 걸 외웠다. 하지만 '언어'는 내가 '말'을 할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일년동안 영어만 들었으니, 말은 안나올지라도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한국에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영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배우면서 드디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지 몰라 답답했었는데, 문법을 배우니 드디어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단어를 외울때도 '내가 이 단어를 알았더라면 이 상황에 이렇게 쓸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외우니 어찌나 쏙쏙 들어오던지. 


그러면서 깨달았다. 언어가 느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계속 만들어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말을 하는지 모르니까, 단어를 찾아보게 되고, 문법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어설프게 만든 문장을 다른 사람이 '올바른 문장'으로 고쳐주면 '아 이렇게 말하는 거였구나!'라고 깨달음이 오면서 그 문장과 문법은 강력하게 각인된다. 아마 그래서 '영어일기 쓰기'가 유행했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문장으로 만들어보는 연습. 

두번째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연습해 봤자, 비슷한 수준의 문장만 만들게 된다. 실력을 높이고 싶으면 인풋을 늘려야 한다. 어렵고 색다른 문장들을 외우고 따라해야 한다. 나는 수능영어와 자격증 영어를 공부하면서 다양한 독해를 정말 많이 했고, 듣기도 도움이 되었다. 


중급이나 중상급에서 상급으로 수준을 올리기가 참 힘이 든다. 여기서도 엄청난 외우기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수준에서는 자주 쓰는 표현 등을 통째로 외워버리는 게 좋고, 미드나 원서도 열심히 봐야 한다.



2. 두번째로 나는 스페인어를 미국 고등학교에서 배우고,  프랑스어를 한국 고등학교에서 배웠다.

둘 다 공립교육이라 그다지 기대가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초는 둘 다 쌓아 줬다.

다른 점은 미국 학교에서는 매일 스페인어를 1시간씩 했다는 거고, 한국에서는 입시에 쓸모 없다고 무시당하는 제 2외국어를 간신히 일주일에 2번인가 배웠다는 거다. 한국에서는 확실히 달달 외우는 게 많았고, 미국에서는 애들이 진짜 말을 잘했다. 똑같이 배웠는데, 걔네는 스페인어로 말을 하고, 나는 말을 잘 못했다. 하긴 나는 거기서 영어로 말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스페인어까지 할 여유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히 거기는 스페인어 수업 한 반 학생이 10명이 안됐고, 선생님이랑 스페인어로 대화도 많이 했고, 만들기 등의 액티비티도 많았다. 어학원 느낌이라면 한국은...입시학원 이랄까. 

지금 생각해보면 프랑스어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나서 배웠기에 나에게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 했던 것도 같다. 대신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내 뇌 속에서 스페인 단어들을 싹 다 지우고 프랑스어 단어로 바꿔버리는 바람에 스페인어는 나에게 사장된 언어가 되어버렸다...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어/포르투갈어는 굉장히 비슷하다.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나는 영어가 동사변화를 외워야 해서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그 동사변화가 쉬운 거였다는 사실을. 주어에 따라 동사가 6단으로 변하는 언어는 참으로 골치가 아프다. 


프랑스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는 야심차게 불어 실력을 늘린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내가 적어도 혼자서 하루에 두세시간은 불어공부에 투자하고, 그걸 써먹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현지 학원을 가고, 현지 친구를 만들고 하지 않는 이상 언어 실력은 절!대! 거기에서 산다는 이유만으로 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긴 한다. 커피 랑 빵 주라는 말은 참으로 잘 했다.



3. 프랑스에 가서 배운 교훈으로, 중국은 오로지 '어학'을 위해서만 갔고, 하루에 6시간 이상을 오로지 '중국어'를 공부하는데 투자했다. 그 때 처음으로 성인이 되어 '어학원'을 다니면서 외국어 교육을 받아보았다. '성인 교육' 이 달랐던 점은, 내가 이미 제 2외국어를 배운 경험으로 '외국어의 문법적 토대'를 이해하고 있어 문법을 활용한 문장 만들기를 잘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선생님이 '다양한 방식'으로 문장과 단어를 외우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 건 나에게 좀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외국어를 배운 방식은 항상 나 혼자 단어를 달달 외우고, 문장을 달달 외워서 수업시간에 검사 받는, 그런 방식이었다. 물론 숙제가 있지만, 어학원에서는 나 혼자 외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액티비티 등을 통해 외우는 것을 수업시간에 도와준다. 나에게는 소규모 쌍방향 수업이 참으로 효과적이었다. 강제로 내 뇌를 써서 생각하게 하고, 나의 입을 열게 한달까. 외국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4. 최근에 본격적으로 네덜란드 어 수업을 시작하면서 발음부터 힘들었다. 영어로 배운 알파벳을 더치로 바꾸려니 또 골치가 아팠다. 불어 알파벳을 배운 것도 오히려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같은 알파벳인데 읽는 법이 몇가지야 대체. 특히나 온라인으로 수업하면서는 발음도 잘 안들리고 집중도 되지 않았다. 오프라인 수업으로 바꾸고 나서야 중국 어학원에서 수업했던 것처럼, 대면 게임도 하고 다른 학생들과 롤플레잉도 하면서 실제로 내가 입을 열어서 네덜란드어로 '말'을 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재미를 느꼈다. 네덜란드어와 독일어, 영어가 비슷한데, 그래서 그런지 스페인/프랑스어를 배우는 것과 또 달랐다. 확실히 영어와 상당히 비슷하고, 그래서 단어를 외우기가 수월하지만 듣도보도 못한 문법 체계를 가지고 있어 자연스럽게 문장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5. 아이러니하게 내가 성인 제2외국어로 네덜란드어를 배우면서 동시에 성인 제2외국어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나의 학생도 내가 네덜란드 어를 제대로 못읽듯, 영어를 제대로 못읽는다. 나도 내가 네덜란드 단어를 제대로 읽는게 맞는지 틀린지 모르겠을 때 참으로 답답한데, 나의 학생도 그렇겠지. 그럴 때마다 나는 최대한 단어를 많이 읽고 듣고 연습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나의 네덜란드어 공부에도 적용시켜서 많이 듣고 따라 읽으려고 노력한다. 발음 같은 경우 인풋이 쌓여야 어느정도 '감'이 온다. 확실히 네덜란드어 교육자료나 교재는 영어에 비해서 참으로 형편없다. ㅋㅋㅋㅋㅋ

듣기를 할 때도 최대한 연음을 이해하면서 들으려고 노력한다. 스크립트를 보면 이해가 가는데, 말하는 걸 들으면 너무 빨리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특히 초급자는 듣고->정확히 무슨 문장인지 생각해보고->스크립트 보면서 다시 듣고->따라 읽고 -> 혼자 읽고->나중에 다시 들으며 정확히 무슨 문장인지 들리는지 확인 -> 이라는 방법을 쓰는 것이 좋다.



6. 나는 한국어 교원 자격증도 땄는데, 자격증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한 교재에서 기초 언어학 이론과 기초 교육학 이론을 배웠다. 이런 방식, 저런 방식들의 수업이 다 이론이 있는 거였구나, 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어떤 수업과 교육방식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내가 진행할 수업을 가장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방식을 택하면 좋을지도 생각해 보았다. 레벨별로, 성향별로 효과적인 방법이 달라서 그게 참 까다로운 것 같다.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영어를 가르치는 것과 또 다르다. 언어를 쓰는 방식이 너무 내재화되어 있어서 내가 어떻게 문장을 만드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모국어로서가 아니라 외국어, '언어' 로서의 한국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 내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언어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은 색다른 느낌이다. 항상 외국어만 배워왔던 나는 한국어를 다시 배우면서 나의 언어와 남의 언어를 비교하게 되었다. 우리말은 왜 주어가 빠져도 되는지, 시제가 어떻게 표현되는지, 숫자는 어떻게 쓰는지. 영어, 중국어, 한국어는 숫자표현이 나름 단순하다. 예를 들면 61은 60 그리고 1 이렇게 표현되는데, 네덜란드어는 1 그리고 60 이렇게 표현되고, 프랑스어 81은 4*20 그리고 1 이다. 

하지만 한국어는 하나/둘/셋 과 일/이/삼이 있다. 언제 하나를 쓰고 언제 일을 쓰는지 참으로 헷갈릴만 하다. 이걸 문법적으로 어떻게 외워서 쓰지?!! 거기다 한자어는 어떻게 외우는거지?

나는 아직까지 기역니은디귿 수준만 가르쳐 보았다. 아마 내가 한국어 교사가 된다면 엄청난 수업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반대로 그렇기에 무조건 원어민이라고 좋은 선생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발음이 좋은 한국인 선생님이라면 굳이 원어민을 선택하지 않겠다. 한국어 선생님이 훨씬 잘 가르친다. 특히 성인이라면. 



7. 성인 외국어 수업을 듣고, 수업을 하고 있지만 나는 3살부터 16살까지 학생들의 영어 선생님이었던 경험도 있다. 미취학 아동들에게는 학부모가 원하는 것도 '언어 노출'이라는 것을 알고, 그렇기에 '원어민'을 선호하는 것도 알아서 '내가 영어 노출을 엄청 시켜주겠다'는 마인드로 엄청 영어를 쏟아부었었다. 입이 아플 정도로 말을 해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로 낯선 어른이 막 말을 해봤자 하나도 안들린다. 겁먹고, 울고, 입은 다물고 있는다. 놀라운 것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즐겁게 해주고,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면, 무언가 반응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언어'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히 5살 이하는 영어로 하든 한국어로 하든 의사소통이 된다. 상황 자체를 언어 자체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본격적으로 입이 트인 아이들은 좀 더 웃긴데, 나는 영어로 말하고 아이들은 한국어로 대답하는 상황이 된다. 알아들어도, 영어로 말을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초등학생부터는 입시영어 vs 자연영어로 갈리는데, 사실 나는 자연영어 출신이라... 나중에 배워도 나름 잘 할수 있다 생각한다. ㅎㅎㅎㅎ어렸을 때 해봤자, 꾸준히 이어지지 않으면 까먹는다.

초등 어학원 수업도 했는데, 내가 어학원 수업에서 했던 대로, 최대한 게임 등을 통해 단어와 문장을 외우게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여전히, 커리큘럼은 '책'을 읽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애들이 '말'하게는 별로 짜여져 있지 않았다. ADHD가 있는 듯한 학생을 컨트롤 하는 것부터가 힘들었고, 시험이 예정되어 있는 빡빡한 스케줄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8. 나의 석사 수업 중에는 '언어 다양성'에 대한 수업이 있다. 말 그대로 다양한 언어로 사람들이 어떻게 소통을 하는지, 다른 언어를 넘어서 어떻게 소통을 하는지, 어디까지 자신의 언어를 유지해야 하는지, 혹은 남에게 요구해야 하는지를 연구한다. 흥미로웠던 주제는 '한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이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다양한 언어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고, 그 언어들은 반드시 '유창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점점 더 뒤섞여 사는 사회에서, 언어들 또한 뒤섞이게 된다. 우리가 무의식중에 엄청나게 많은 외국어 단어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링구아 프랑카 는 좋은 것일까? 혹은 어디까지 '우리만이 쓰는 언어'를 고집해야 할까.(북한처럼) 




9. 오은영 선생님의 말대로, 너무 비장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는 영어에 너무 비장하다. 해외에서 외국어 수업들을 들으면 느끼는 것은, 하나같이 다들 그리 비장하지 않다는 것이다. 마음이 편해서 말을 더 잘하는 것 같다.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과 비장한 마음은 다르다. 비장한 마음은 시작할 때부터 스트레스를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잘 해야 하는데, 못 해서 어떡하지, 실력이 안 느는데 등등.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다른 나라 언어를 배움으로서 우리 삶의 폭을 좀 더 넓히고자 하는 것이다. 그 언어를 쓰는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면 우리가 보고 듣는것이 한 층 넓어질 것이고, 언어를 통해 타 문화를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다 '영어'가 '공부'로 변질되어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기본을 생각하면서 꾸준히 취미삼아 하면 효과가 없을 이유가 없다. 영어로, 외국인과 이야기 하고 싶으니까. 해외여행가서 더 즐기고 싶으니까, 커리어에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미드를 자유롭게 보고 싶으니까 영어를 배우는 거지 그럴 이유가 없다면야. 

비장함을 내려놓으면 말도 더 잘 나온다. 우리는 '외국인'이니까 원어민만큼 언어를 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냥 뻔뻔하게 말하면 된다. 못 알아들으면 못 알아듣는 네가 이상하다는 반응으로 뻔뻔하게.



9. 아직까지 내 뇌는 3개언어만 간신히 저장되는 듯 하다. 한국어, 영어까지는 괜찮은데 이제 그 다음 언어를 배우려고 하면 자꾸 뇌가 리셋된다. 네덜란드 어로 단어를 생각하려 하면 자꾸 중국어 단어만 생각난다.ㅠ  이 단어가 네덜란드어로 자연스럽게 생각날 때쯤이면 나의 중국어는 기억 저편으로 가버리는 걸까. 한국어로 글도 써야 하고 , 영어도 아직 아쉬워서 더 공부해야 하고, 더치도 새로 배워야 하는데 중국어까지 복습해야 하나. 시간은 없고 할 일은 많다. 

언어에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담겨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한국어로 하던 말 그대로 직역해서 영어로 말을 하려고 하면 뜻은 전달이 되지만 어색한 문장이 되어 버린다. 그런 부분은, 어쩔 수 없다. 그런 부분을 설명해주는 수업을 듣던지, 원어민과 해외에서 부딪히면서 겪고, 내재화시켜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이 문화에서는 이런 상황에 이런 방식으로 말을 하는 구나, 대응을 하는구나, 를 배워나가는 것이고, 그래서 그 문화를 한층 깊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알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간단한 일이 아니고, 한국에서 영어책 보면서 공부한다 해서 뚝딱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당연한 걸 가지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을 편히 먹자.


나 같은 경우는 네덜란드 어 공부에 있어 지금 마음을 너무 편히 먹어서 문제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실 그다지 열정이 없다. 스페인어나 프랑스어를 다시 공부하고 싶다. ㅠ 이 와중에 또 영어수업 준비해야 하는데. 아 힘들어. 언어를 넘나들며 사는게 진짜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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