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계절학기를 준비하며
한 시간 째다, 한 시간 째.
한 시간 째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항공사 서비스 센터와 통화를 하려고 시도 중이었다. 한시간이 넘게 기다려도 아무도 전화를 받을 기미는 보이지 않고, 여전히 지금은 모든 상담원이 통화중이오니 기다려 주라는 답변만 반복될 뿐이었다. 비싼 통화요금 때문에 무제한 요금을 쓰는 친구 핸드폰까지 염치 불구하고 한시간 넘게 빌려 쓰고 있는 중이었다.
“쑤…나 이제 가야 되는데…”
“아 그래?! 핸드폰 빌려줘서 너무 고마워! 끝까지 전화 안받네.”
“내일 오전에 나 도서관에 다시 오니까 그때 다시 빌려줄게, 한번 더 해봐.”
“고마워, 내일 보자!”
그렇게 전화 상담을 포기하고 페이스북 메신저, 아이메신저, 왓츠앱 메신저로 항공사에서 답변이 온 것이 있나 확인했다. 답변을 목 빠지게 기다린지도 어느덧 4일차, 월요일부터 시작한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이 목요일까지 지속되고 있었다. 내일은 최후의 요일, 워킹데이의 마지막 날 금요일이다. 내일 오전까지도 답이 없으면 나는 직접 암스테르담 센터나 공항 오피스로으로 1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를 기차 타고 쳐들어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답이 없는 메신저를 오분마다 껐다 켰다를 반복하며 나는 한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반복했다.
초조함이 나도 모르게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왜, 왜 나는 이 모양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쉽게 해결되는 일이 없는걸까.
어째서 항상 나는 뭘 하려고 하면 항상 예상치 못했던 문제에 마주하는 거냐고!
내가 이번 여름에 과감하게 도전하기로 한 일은 바로 ‘우간다로 계절학기 들으러 가는 것’이었다. 전공관련 계절학기를 들을 것이 있나 검색하던 와중에, 우연히 이 프로그램을 찾게 되었다. 원래 계획은 당연히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졸업 전 마지막 여름방학을 학생으로서 해볼 수 있는 마지막 공부를 해보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난 그저 다른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옆에 있던 프로그램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우간다에서 진행되는 유니세프의 리서치에 보조 연구원으로 참여하는 것이었다. 제 3세계 국가에 장기 투자의 일환인 고등교육 지원 프로그램이 얼마나 현지의 젊은 지식인, 청년사업가를 길러내어 지역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연구하는 것으로, NGO 취업에 한참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나의 시선을 한눈에 끌었다. 거기에다 꿈만 꾸고 감히 시도도 못해봤던 아프리카 국가라니. 이번이 나에게 온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 아프리카에 가서 연구활동을 해보겠어. 그렇게 해서 단순히 ‘다른 학교’ 수업을 들어보고 싶었던 나는 덥석 이번 여름, 우간다 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우선 프로그램에 등록하기 위해 자소서를 써야 했는데, 자소서를 써서 보내는 것만 해도 꽤 귀찮은(?)일이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였다. 자소서가 인정 받아서 참가 확정을 받으면 좋겠지만, 확정된다 해도 안 그래도 가난한 유학생의 자금에서 어떻게 우간다 리서치 가는 비용까지 마련한단 말인가. 확실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규모의 도전이었다. 운이 좋게도 오케이 이메일을 받았는데, 참가비는 내 한달 방세에 맞먹었고, 왕복 비행기 값이 코로나로 가격이 오르기 전이었는데도 방세 세달치였다. 거기다 숙소비까지. 이 때부터 많은 고민을 했다. 이만한 투자 가치가 있는걸까. 내가 너무 오바 하는 거 아닐까. 진짜 갔다 와서 하루에 식빵 하나만 먹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
어쨌든 나는 최악의 결과 식빵만 먹고 산다에 베팅을 걸었고, 그렇게 큰 마음 먹고 우간다 행 비행기표를 샀다. 그런데, 논문이다 뭐다에 너무 바빠 본격적인 우간다 준비를 6월 말에서야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내가 이만큼이나 돈 내고 가는데, 뭐 이렇게 준비할 게 많아?!
우선 황열병 예방접종.
이 서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유는, 내가 몇 년 전에 언제든 남미 여행을 가기 위해 미리(?) 한국에서 황열병 예방접종을 했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바로 가지도 않을 거면서 예방 접종 먼저 다급하게 해 놓는 나란 사람…) 소중하게 간직한 노란색 예방접종 카드를 볼 때마다, 나의 꿈을 되새겼었다. 언젠가 남미와, 아프리카에 가야지. 문제는 그 이후에 내가 여권을 잃어버렸다가 새로 발급받는 바람에 내 예방접종 카드에 적힌 여권 번호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 예방접종 카드는 온라인 재발급이 안되고, 내가 발급받은 장소에 반드시 찾아가서 대면신청을 해야 했다. 문제는 내가 접종을 받았던 곳이 인천공항 이었다는 거다. 예방접종 카드 재발급 받으러 한국 다녀 올 수도 없고 미치겠네.
사실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 재발급을 받으려고 했었는데, 검역소 여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내가 출국하거나 입국하는 시간은 항상 그 시간을 벗어난 시간대였다. (싼 비행기만 타니까….) 그래서 미루고 미루던 것이 지금 화근이 될 줄이야. 차라리 예방접종을 한번 더 하겠다는 의지로 네덜란드에서 황열병 접종을 알아보았다. 돈도 돈이지만 8월 말까지 예방접종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이 사람들 전부 다 아프리카/남미 가는거야 뭐야! 네덜란드 전역을 샅샅이 뒤지고 전화를 해댔는데 일/이주 내로 예방접종이 가능하다는 곳은 아예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과거 확인서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위임장을 쓰고, 서울에서 출퇴근 하는 동생을 강제로 반차까지 쓰게 만들고, 인천 공항까지 가서 예방접종 확인서를 대리 발급 받아오도록 부탁했다. 그나마 동생이 해줬기에 망정이지, 이 때 한번 포기할까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환불 받자.
그 다음 우간다 입국 전에 비자신청을 온라인으로 해야 하는데, 이 때 비행기 표, 황열병 접종 확인서 등이 필요하다. 온라인으로 신청한 비자가 길면 일주일까지 걸릴 수 있대서 이번 주 내로 신청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번엔 비행기 표가 문제였다. 분명 5월달에 비행기표를 샀는데, 내 계좌에서 돈까지 나갔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예약 확인도 안되고, 아무런 메일도, 문자도 없었다. 뒤통수를 맞은 듯한 나는 다급하게 항공사에 연락을 했는데, 현재 항공사는 코로나 여파와 여름휴가 성수기로 서비스센터가 미어 터지는 상황. 항공사에 나오는 모든 연락처로 연락을 하고 문자를 보냈으나 답이 없었다. 심지어 카카오톡을 통해서도 연락을 했지만 도대체 인공지능이 아닌 ‘사람’과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제발, 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을 좀 불러줘!
연락은 안되고, 비자를 신청해야 하는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비행기 표는 심지어 예약이 된 건지 안된 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만약 비행기표가 어떠한 이유로 취소가 되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사야 하나, 가격은 배로 뛰었을 텐데. 포기할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가운데 나는 초조함에 시달렸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마음 한 구석이 돌덩이를 얹은 듯 묵직했다. 알고 있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일 뿐이고, 정 안되면 금요일 오후에 암스테르담으로 직접 찾아가는 일 뿐이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초조함’과 ‘불안함’은 내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오랜만에 느끼는 초조한 감정의 소용돌이.
이런 일들을 나는 수도 없이 겪었다. 언제나, 대부분의 도전에 시행착오가 따랐다. 예상치 못했던 복병들과 그에 맞서 끊임없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와 함께, 약간의 자책도 항상 뒤따른다. 왜, 나는 미리 확인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인제야 서류 준비를 시작한 걸까. 여러 나라를 이사 다니고, 이직을 하고,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시작할 때마다 언제나 느꼈던 감정이기에 나는 이제 익숙해 진 줄 알았다.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조금 나아지긴 했다. 적어도 이제는 명상이나 요가, 마사지 등을 하면서 진정하려고 하긴 하니까.
뉴질랜드 워홀을 갈 때, 워홀 신청 시기를 놓쳐서, 추가 신청을 받기도 한다는 말에 매달려 밤낮으로 매일 같이 비자 신청 페이지에 들어가서 혹시 신청이 가능한지 확인했었다. 호주에서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인터뷰 후 결과 발표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려서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대고, 다른 곳에 면접을 다니고 난리였지. 여기서 집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몸 누일 곳 하나 구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심지어 겨울에 스페인 여행을 갈 때도 코로나 확인서와, 비행기 연착 때문에 예상보다 두세배로 힘들었었다.
왜 이러는 거에요 나한테! 이 세상아! 난 그저 열심히 살고 싶을 뿐인데!
새벽 두시 반이 넘어서, 갑자기 한국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한국인 서비스 담당자였다! 우연찮게 나는 바로 그 메시지를 보았고 (원래는 자고 있을 시간인데!), 빠른 답장을 할 수 있었다. 진짜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줄이야. 그리고 친절한 상담원 덕분에 얼마 걸리지 않아 예약확정 비행기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간다 비자를 신청하는데,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 했다. 목요일 까지만 해도 그렇게 죽을 것 같았는데, 금요일에 나는 너무나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한치 앞도 모르고, 현재 가지고 있는 패에만 매달려서 일희일비 하며 산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안풀리는 일 앞에 무릎 꿇고 왜, 왜 이렇게 나에게 쉬운 일이 없냐고 울부짖었다. 어쩌면 ‘쉽게 풀린 일’은 쉬운 일이었기에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대신 고생고생하며 풀려갔던 일들은 참으로 강력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대체 무슨 깡으로 왠만해서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해보자고 한 건지도 모르겠다. 오기일까. 지금와서 물러날 수 없다는 근성. 그렇다고 해서 결과물이 항상 만족스러운 것도 아닌데.
고생스러운 시기 또한 결국 지나고 나면 과거의 추억이 되는걸 이렇게 알고 있는데도, 막상 고생을 겪을 때면 정신이 하나도 없고, 심적으로 참 힘들다. 막상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써놓고 돌아보니, 그다지 별일 아니었던 것도 같은데, 왜 그렇게 정신이 없었지. (이 일에만 매달린게 아니라 또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 두가지 정도 더 있어서 그런것 같기도). 원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고생하면서 사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쉽게 뭐든 생각하고 덤비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프로는 굉장히 어려운 것을 쉬워 보이게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너무나 가볍고 우아하게 점프하는 김연아나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는 댄서들처럼.
남이 하는 걸 보는 건 참 쉬운데, 직접 해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하지 못할 일도 없다. 이번에도 나는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안되면 말자,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해서 방법을 찾는 와중에 일이 풀렸다. 지금까지도 항상 그래왔다. 더 흥미로운 건, 고생을 하면 할 수록, 내가 할 이야깃거리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래, 앞으로는 이렇게 생각해야 겠다. 이건 고생이 아니라, 언젠간 다른사람에게 흥미진진하게 이야기 해줄, 이야깃거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