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이란, 할 때마다 참 쉽지가 않은 것이다
나의 피같은 돈을 쏟아부은 석사 유학의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갖가지로 정신없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마지막이 다가오면서 가장 고민하는 것은 다음 스텝에 대한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미래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았었고,
모든 상황을 타진해보았음에도 여전히 답을 모르겠어서 우선 공부나 하자,하고 생각을 미뤄두었었다
.
좀 천천히 생각하려 했는데, 2,3월에 여름방학 인턴십을 대거 채용하는 기간이라
주변에서 사람들이 다들 지원서를 정신없이 넣길래 나도 갑자기 너무 초조하고 불안해져서
미친듯이 자소서를 날려봤다.
그리고 지난 한 달간 사정없이 떨어졌다.ㅋㅋㅋㅋㅋㅋsorry sorry sorry sorry (내가 미쳐미쳐미쳐)
엊그제 마지막 인터뷰 탈락 전화를 받은 것으로 1차 네덜란드 취업 시도를 마쳤다.
다시 본격적으로 7,8월부터 구직을 할 예정인데,
이번 1차 시도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내가 해외에서 취업하고 싶은지, 한국에서 취업하고 싶은지부터.
한국도 상관 없다 생각했는데, 막상 구직을 하게 되니 그래도 유럽에 좀 더 있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안되면 올해 말에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가는 한이 있더라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
두번째로 나의 구직 rule을 어디까지 타협할 것인지에 대해서.
아무 job이든 마구잡이로 지원할 것인가, 진짜로 내가 하고 싶은 포지션에만 지원할 것인가. 현지 한국 조직도 지원할 것인가, 무급 인턴까지 지원할 것인가.
세번째로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이 '취업'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한번도 취업을 안 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 본 적이 없다.
그게 그냥 제일 쉬운 길, 단순한 길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사업이나 프리랜서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아이템도 없고, 기술도 없다)
조직에 속하는 것이 제일 낫다는 부모님의 말과 나의 사주(?)를 맹신했다.
부모님 두 분다 자영업자라 조직에 속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한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너무 잘 알고 계셨고, 나 또한 그 어려움을 옆에서 보았기에 감히 상상도 하지 않았다.
누구 핑계 댈 것도 없이, 나 혼자 뭘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과 열정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쉴새 없이 다양한 조직에서 월급 받는 생활을 하다가
온전히 내가 자유롭게 모든것을 나 혼자 계획하고 실행하고 책임지는 지금의 생활을 해 보니
나는 꽤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을 잘 하는 것 같고,
바쁘고 정신없어도, 다른 의미로 충분히 행복하다.
특히나 코로나 전의 한국 조직을 상상만 해도, 죽어도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가거나 거기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거기다 요즘 회사들이 서류통과를 해도 무의식 심층 검사를 하기만 하면 자꾸 나를 리젝하는데,
그 리젝의 이유가 왠지,'이 인간은 회사와 맞지 않는 인간이다' 라고 결과가 나와서 인 것 같다. (실제로 내 인적성 검사, 성격 검사 등등은 전부 '예술가'형이다ㅠ )
내가 조직형 인간이 아니라는 걸 회사도 알고 나도 아는데,
입사를 해봤자 내가 불행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쉽게 떠날 거라는 걸 회사도 알고 나도 아는데,
왜 나는 그놈의 '조직'에 들어가는데 이렇게 목을 매는 걸까?!
나는 창의적이고 융통성이 뛰어나고, 스케줄 짜서 프로젝트도 잘 해낸다.
나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내가 잘 해낼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어느 정도 나에게 주도권과 자유가 허락된다면.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믿어주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니까 뽑아주지도 않고, 회사 들어가도 시키는 일이나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발버둥치고, 뭐든지 허락받고, 회사의 '주인'을 위해 일하는 것도 이제 지겹다.
재정적인 면만 조금 욕심을 포기하면, 조직이 없는 삶도 괜찮지 않을까?
차라리 나 혼자 서기 시도를 해보는게 나의 가능성의 지평을 넓힐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요즘 한국에서는 다들 회사를 넘어선 제 2의 삶을 준비하고 있지 않나? 나는 지금부터 제 2의 삶을 시작하는거지. 좀 더 일찍. 혹은 '회사원'이라는 계단을 건너 뛰고.
이와 함께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박사'/ '연구원' 의 길.
나는 가르치는 것도, 리서치 하는 것도, 글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감히 '박사'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몇년씩이나 '공부'를 하는 투자는 나에게 과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도 나의 '재정적 안정'만 좀 포기하면 가능한 거다! 박사과정 동안은 어떻게든 또 연구비 지원받고, 가르치면서 돈이 나오긴 나온다. 모을 수가 없을 뿐이지... 하루살이처럼 사는거지.
이후에? 어디서 뭐라도 하겠지. 지금 당장 돈을 엄청나게 모으고 싶지도 않은 마당에, 그냥 행복하게 현재를 산다고 생각하면 가능하다! why not?
나의 마지막 인터뷰는 사실 엄청 긍정적이었다.
그 job 인터뷰는 내가 상상치 못한 곳에서 온 제의였고, 되도 갈까 말까 고민하는 포지션이었지만
인터뷰 연습이라도 한다는 생각으로 오케이를 했다.
막상 인터뷰를 할 때 분위기가 너무 좋고 팀도 좋아서, 내 마음이 혹했는데 다음날
지금 당장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미안하다는 전화가 왔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서,
일하러 오라고 해도 어차피 안 갈거라 생각했던 곳인데도 오지 말라 하니 좀 씁쓸했다.
하지만 그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
'대면 인터뷰'에는 충분히 자신이 있다는 걸.
그리고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 나의 독특한 이력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인터뷰를 한 리크루터가 베트남에 살았는데, 그래서 롯데에 대해 안다고 했다!)
아무리 내가 완벽한 사람이라도, 그 회사에서 최우선으로 원하는 요구사항( 내일부터 당장 출근에 예스라고 할 수 있는가)이 맞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고용된다는 사실. 어쩔 때는 그것이 나의 능력과 전혀 상관 없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거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이 나보다 뛰어날 때도 그런 부분 때문에 내가 오히려 뽑힐 수도 있다.
그래서 취업이라는 건 마치 연애처럼,
나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타이밍과 인연, 운명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상상치도 못했던 방식으로.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나의 취업도 다 그랬다.
이번에 자소서를 다시 쓰면서 되돌아봤더니
32살까지 5개 국가, 5개의 분야에서 다양한 조직에 취업을 해봤고,
이번이 7번째 공식 취준이다.(ㄷㄷ 징하다)
1) 물류
2) 비즈니스 분석&기획
3) 관광&서비스
4) 농업
5) 교육
1)대기업 2)중소기업 3)스타트업 4)프리랜서
1)한국기업 2)해외 한국지사 3)외국기업
1)한국대학 졸업 후 한국 취업위해 미친듯 자소서 날림
2)중국 어학연수 후 중국 취업위해 미친듯 자소서 날림
3)뉴질랜드 취업위해 미친듯 자소서 날림
4)호주 취업위해 미친듯 자소서 날림 (이때가 진짜 힘들었다 ㅋㅋㅋ)
5)호주 워홀 세컨비자 위해 농장/공장 지원서 날려댐 (자괴감이 가장 가득했던 취준ㅋㅋㅋ그리고 3개월 만에 비자 포기ㅋㅋ)
6)유학 전 한국에서 돈 모으려고 미친듯 자소서 날림
7)유학 후 네덜란드 취업위해 미친듯 자소서 날리는 중
그간 각국에서 들락거렸던, 취준 사이트들이 몇개이며, 업데이트했던 자소서가 몇장인가.
끊임없이 취업하고 때려치고 또 취업을 준비해 본 사람으로써
이때쯤이면 이제 취준이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싶건만
여전히 취준은 참으로 지긋지긋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할 때마다 운다)
결과만 놓고 보면 난 참 취직 잘하면서 사는 사람인데,
실제로 그렇게 취직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한 번 한 번이 전부 누가 시켜서 한다고 하면 스트레스 받아서 죽어도 못할,
그런 지난한 여정들의 합이었다.
취준은 반강제로 나의 이력서를 업데이트 하게 만들었고
내가 세상에 대체 나의 무엇을 어떻게 내세울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게 했다.
그러면서 내가 원하는 삶, 커리어와 나의 현실과의 괴리를 끊임없이 자각하게 만들었고,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나를 계속 노력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력서를 꾸미기 위해 자격증을 따보고, 교육을 들어보고, 인증 시험을 쳐보고
매번 자괴감에 몸서리치고, 반복되는 거절로 자신감을 바닥을 치던
그 6번의 취준 경험들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 주었다.
웃긴건 그런 힘든 경험 이후 취직이 되면 한 두달 좋다가 다시 깨닫는다,는 거다.
아, 취직이 끝이 아니구나, 라는 사실을.
요즘 유행하는 자기계발 중 personal resilience 라는 게 있는데 (회복 탄력성)
그걸 기르고 싶다면 자존감을 기르니 뭐시기 하는 책을 읽는 대신 취업 경험을 여러번 겪어보라 말하고 싶다.
취업이 안되면 어떡하지..돈이 떨어지는데...왜 또 떨어졌지...뭐가 문젤까...해도 안될것 같은데...나는 취직도 못하는 사람인가...언제까지 이게 반복될까...이길이 맞나 틀리나..다른 길을 알아봐야 하나...왜 남들은 다 행복하게 사는데 나는 안될까..등등
불안감, 초조함, 의구심, 스트레스, 희망고문, 자괴감, 이 세상에 대한 환멸 등등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아주 다양하게 겪고 버텨낸 '생존자'가 될 수 있다. 생존자(survivor)라는 단어가 참으로 어울릴 만큼, 취준기간은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일곱번째도 또 이 상황을 반복하고 있는 나에게도, 엄청난 경력을 가지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남들이 보기에는 하버드 나온 스펙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내 귀로 직접 들은 이야기)
그러니 이 세상의 모든 취준생분들께,
'생존'에 포커스를 두고, '운 때'를 기다리며 계속되는 거절에도 주눅들지 말고 계속 도전하시길.
이번 일곱번째 취준이 어떻게 끝날지 나는 여전히 모른다.
난생 처음으로 진짜 어떤 곳에도 취직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취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생을 전환시킬 수도 있다.
어찌됐든 계속 i'm sorry 를 보는 것은 짜증나는 일이지만,
사실 나는 모든 job에게서 okay를 받을 필요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의 okay.
내가 원하고, 그 회사가 원하는
우리 둘이, feel 맞는 단 하나의 job.
내가 배웠듯이, 취직이 끝이 아니니까.
나는 취준 다음 단계에서도 이제 내가 몇년간 계속 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job을 찾고 있다.
20대의 나는 뭐든지 시작해봤지만, 이제 어느정도 내가 원하는 것과, 원치 않는 것을 알았다.(드디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보지 않아도 조금은 알게 된 것이다)
good things take time.
초조해 하지 말고, 조급해 하지 말고,
이번에 안 걸렸다 싶으면 다른 곳에 한번 더 낚시대를 던져 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