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언제까지고 엄마가 칭찬할 일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프롤로그_ 히말라야

by ClaraSue


스물 다섯. 회사를 그만두고 갈, 두 달 간의 여행지로 결정한 곳은 바로 히말라야였다.

대학의 마지막 1년을 취준에 올인하고, 졸업하자마자 당당하게 한국의 대기업에 입사한 지 2년하고도 6개월만에 나는 퇴사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추후 계획을 물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마스터 플랜.


마스터 플랜, 목표가 있는 삶.

나의 목표는 슈퍼카도, 강남의 집도, 남편도, 아이도, 안정된 은퇴도 아니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은, 그냥 하고 싶은 것 해 보면서 사는 것인데, 왜 그렇게 살면 안되지?

버킷 리스트는 꼭 죽기 전에,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을 때만 할 수 있는 건가?

그래서 나는 거창한 인생 계획 따위는 없이, 버킷 리스트를 따라 사는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인도 여행은 나의 버킷리스트에 있던 여러가지를 동시에 체크해 낼 수 있는 기회였다.

‘가성비’를 여전히 재고 따지는 나에게는 굉장히 좋은 선택지였달까.

한 달 동안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내가 꼭 보고 싶었던 판공초를 보고,

짧은 기간의 관광이 아닌, 한 나라에 오래 머무르는 장기 여행을 해 보는 것.


히말라야 산 밑 마을에 도착해서, 나는 요가와 명상도 시작했고, 인도 음식 만드는 법도 배웠다고 신이 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뜬금없이 나에게 인도에 갔으니 쓸데없는 거나 배우지 말고 차라리 힌두어나 배워오라는 말을 했다. 무언가, 써먹을 수 있는 걸 배우라고. 거기서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엄마는 항상 나에게 뭘 하라고 했다. 자기가 순식간에 이 나이가 되고 말았다며, 그러니까 나도 순식간에 내 인생이 지나가기 전에, 더 열심히, 더 최선을 다해서 나의 젊은 시절을 살아내야 한다고 다그친다. 더 노력해야 하고 더 이루어야 하고, 결과(돈)와 연결되지 않는, 쓸모 없는 일들로 낭비하기에는 너무나 빨리 지나갈 너의 젊음이 아깝다고.


나도 그 말을 믿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항상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는 그 압박감과 조바심 속에 살았다. 시험을, 교환학생을 ,장학생을, 스펙을 항상 준비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회사원이 되었다. 이게 내가 바라던 ‘열심히 사는 삶’의 결과인가? 앞으로도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결국 내가 얻을 것은, 승진과 결혼과 육아. 그것이 내가 바라는 ‘열심히 사는 삶’인가? 내가 아니라 엄마가 바랐던 거 아니야?


결과조차 상상할 틈도 없이, 더 바쁘게, 더 열심히, 더 최선을 다해서 살라는 말은 끝이 없었다. 그렇게 나 자신을 피곤하고 지치게 하는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한국을, 회사를 뛰쳐나왔는데, 또 엄마랑 통화하자마자 다시 ‘열심히’의 망령과 마주하게 되자 짜증이 치솟았다. 물론 걱정어린 말이라는 건 알지만, 나는 이정도만 해도 충분하고 행복한데, 뭘 더하라는 거야?





하지만 나도 이제 그만 엄마의 말에 휘둘릴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걱정해서 하는 말이지, 라고 생각하고, 그냥 받아 넘기고, 나는 내 생각대로 살면 되는것을. 엄마가 한마디 했다고,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아무래도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엄마의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은 착한 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말한 적이 있다.

너는 정말로 내 의견을 묻는거냐고, 아니면 잘한다, 라는 말을 바라는 거냐고. 엄마도 자신의 생각이 있으니까 엄마의 생각을 말하는 것 뿐인데 너는 엄마가 널 지지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고. 엄마가 보기에 안정된 직장을 때려치고 힘든 길로 가는 것만 같은 자식을 어떻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칭찬만 해 줄 수 있냐고.


생각해보니 정말로 난 답정너였다. 엄마에게 듣고 싶은 답이 있었다. 나도 내 선택에 대해 확신이 없어서 누군가에게라도, 특히 나와 가장 가까운 부모님에게 확신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나는 엄마 치마 뒤꽁지를 꼭 잡고 엄마 입만 바라보고 있는 다섯살배기 어린애가 아니다. 엄마가 무조건 내 결정을 인정해주고 지지해주어야 할 이유도 더이상 없고, 내가 엄마가 하라는 대로만 해야 할 이유도 더이상 없다.


부모님이 못마땅해 할 일은 평생 안 할 건가.

진정한 독립은 과연 언제 이루어지는 것인가.

나는 과연 정말로 부모님의 뜻을 거스를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일까? 결국에 엄마아빠 말 안들어서 이 모양 이 꼴이 됐다,는 이야기나 듣게 되면 어떡하지?





할 수 없다. 그건 내가 감수해야 할 리스크. 이제 나도 엄마의 조언은 듣되, 결정은 내가 내리고 스스로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엄마 아빠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이고, 아무리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나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엄마가 칭찬할 일들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죽기 전에 엄마 아빠 말 잘 들어서 나는 참 행복하게 살았다, 라고 눈감지는 않을 거 같으니까.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지는 삶. 어른이 되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건 줄 알았다.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였다.


버킷 리스트를 시작한 김에, 완전 금발로 탈색하기, 첫 타투 하기, 코 피어싱 해보기까지 해 버렸다.

남들이 볼 때는 때늦은 사춘기가 왔다고 수군거리겠지만, 뭐 어때.

나는 퇴사했고,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살아보자.

다른 사람들 눈치 보면서, 인정 받으려고 전전긍긍하지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