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다람살라- 봉사활동
사실 인도에 무작정 혼자 여행 가기는 좀 걱정되기도 해서, 봉사활동을 신청해서 한달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현지 적응(?)을 한 후에 정보 수집과 분위기 파악 후 여행을 해 보자, 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내가 신청한 봉사활동은 맥그로드 간즈와 가까운 다람콧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학교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었는데, 아이들과 놀아주기, 학교 수리하기 등이었다.
문제는 다람콧이 맥그로드 간즈에서 20-30분 정도 걸려 하이킹을 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산등성이'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것이다. 허위허위 헉헉대며 간신히 숙소에 도착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다람콧의 산은 한국의 산과는 차원이 다르게 거대하다. 과연 히말라야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다람콧에서 느끼는 산은, 장엄하다. 하루 날 잡아 뒷산을 올라간 적이 있다. 아침부터 올라갔는데도 정상까지 올라가는데만 5시간이 걸렸고, 내려올 때는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나름 가파른 하이킹 코스를 매일같이 반복하다보니 놀랍게도 처음에 비해 훨씬 수월해진 것이 느껴졌다. 아침부터 밤까지 책상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던 내가, 초등학교 이후로 산이라는 곳에 가본적이 없는 내가 매일같이 아침 저녁으로 하이킹을 하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난 뒤의 상쾌함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변함없이 헥헥거리면서 다람콧으로 올라가는데, 한 무리의 야생 원숭이 떼가 산길을 가로막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인도, 특히 북인도 히말찬 지역에서는 원숭이가 흔해서 점점 별로 신기하게 느껴지지도 않지만, 따지고 보면 인도에서 원숭이 무리를 만났을 때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야생동물'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티비에서만 보던 원숭이들이 사는 모습을 동물원의 창살 뒤가 아니라 실제 눈 앞에서 보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가슴 뛰는 일이었다. 원숭이 무리의 대장의 몸집은 실제로 내가 겁 먹을 만큼 컸고, 아기 원숭이들이 엄마 원숭이들의 등 뒤에 딱 달라 붙어 있는 모습은 정말로 귀엽고도 신기했다. 그들이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먹을 것을 찾는 모습은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한번은 생각없이 시장에서 구운 옥수수를 사서 들고 가다가 원숭이 무리에게 둘러싸여 옥수수를 강도당했다! 나름 안 줄려고 버텼는데 너무 많은 원숭이들이 점점 나를 둘러싸고 , 결국 대장도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하자 더 이상 버틸수가 없었다. 한마리가 나에게 점프하는 순간 나는 옥수수 봉다리를 내던지고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갔다. 큰맘 먹고 (먹고 혹시 배탈 날까봐 못 샀었다) 산 내 소중한 옥수수들을 빼앗기고 다시 터덜터덜 산길을 오르는데 나도 모르게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났다. 힐 신고 여의도 빌딩 숲을 거닐던 내가, 여기와서 원숭이들에게 강도를 당하다니! 원숭이들 귀엽다고 한 것 취소다 취소!
다람살라, 그리고 그 곳에 있는 맥그로드 간즈가 유명한 이유는 이 곳에 티벳 망명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도와 티벳, 두 개의 문화가 뒤섞여 있는 곳이다.
봉사활동은 늦어도 오후 3시면 끝났고, 나는 매일같이 맥그로드 간지로 내려가,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봉사활동 그룹과 함께 티벳 청소년들이 전통문화 공연 연습하는 것을 보러가기도 했고,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도 방문했다. 수행자들이 그 유명한 모래 만다라를 작업하는 모습도 구경했다. 모래 만다라 뿐 아니라, 티벳 불교의 예술 작품들은 대부분 엄청나게 섬세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 같다. 작품을 만드는 자체를 수행으로 본다. 모래 작품의 완성이 곧 허무한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을 들으며 퇴사 전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우리가 가는 이 길은 모두 결국, 무덤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하지만 아무리 결국 한 줌 모래로 사라질 것이라 해도,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인간의 삶인가.
인도 음식보다도 티벳 음식이 너무 입에 맞는다. 만두와 비슷한 모모, 그리고 수제비와 비슷한 뗌뚝을 며칠마다 한번씩 꼭 먹는다. 놀랍게도 티벳 문화는 중국이나 인도 문화보다 한국 문화와 참으로 비슷한 점이 있다. 티벳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티벳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한국에서만 아등바등하던 내가 얼마나 좁은 시야를 가지고 살아왔는지 알게 된다. 알려고조차 하지 않고, 혹은 골치 아프니까 일부러 외면하던 다른 나라 이야기들. 내가 다람살라에 머무르던 시기에도 중국 감옥에 갇힌 라마들을 풀어달라는, 큰 시위가 있었다. 현재 달라이 라마 다음으로 존경받는 판첸 라마는 환생 후 중국 정부에 의해 납치되었고 대신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임명'한 가짜 판첸 라마를 내세우고 있다. 같은 상황이 일어날까 염려해서 현재 달라이 라마께서는 본인이 죽고 나면 더이상 환생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중국 정부가 다음 달라이 라마를 찾았다고 제멋대로 공표할까봐.
운이 좋게도 티벳의 정신적 지주, 달라이 라마께서 머무르실 때 나는 맥그로드 간즈에 있었고, 법회에 참석할 기회도 가졌다. 거의 5시간을 넘게 하루 종일 법회에 참석했는데, 법회날은 거의 티벳 축제나 마찬가지였다. 법회가 끝나고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고, 티벳 커뮤니티에서 준비한, 마당극이나 전통 춤같은 각종 행사가 열렸다. 본인들의 종교와 전통과 문화를 다 빼앗기고, 본래의 땅에서 쫓겨나 눈 덮힌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에 망명정부를 세운 티벳 사람들을 보니 과거 일제시대 우리 나라 망명정부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 마음이 아팠다.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우리가 과거로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하는 시기를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현재로 겪고 있다.
다람콧에 거의 한달 가까이 머무르며 나는 전통 빈야사와 하타 요가 수업을 처음으로 들어봤다. 나는 요가가 그렇게 땀나는 운동인줄 몰랐다. 마을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이 엄청 많이 오는) 명상센터도 처음으로 가 봤다. 명상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었다. 믿지도 않았다. 가만히 마음을 비우는 것의 중요성에 대하여. 지금까지 나의 마음과 나의 삶은 언제나 가득 차 있었으니까. 처음으로 마음 수련과 마음 챙김에 대해 알게 되었고, 처음으로 생각을 '안'해 보려 노력하면서 내 마음속의 코끼리가 얼마나 야생으로 날뛰고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명상 수업에서는 코끼리와 원숭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그 당시에 무식하게도 왜 동물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숙소에 돌아와서 명상 관련 책을 이북으로 다운받아 읽고 나서야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다. 코끼리는 욕망이었고, 원숭이는 널뛰는 마음이었다.
아무리 이론을 배워도, 잡념을 버리고 명상에 빠져들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요가 수업에서 동작 자체에 빠져들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땀을 흘리며 온전히 '현재'를 보내는 수련을 마치고 매트에 누워 눈을 감았는데, 처음으로 진정한 '명상' 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나의 원숭이가 사라졌다. 어째서 요가와 명상을 함께 수련하는지, 그 때 알았다.
우기라 산등성이를 따라 구름이 내려와 마을을 뒤덮는다. 요가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그 구름을 바라보며 원없이 멍을 때린다. 인도에는 '기'를 수련하는 레이키 수련이라는 것도 있고, 허브티와 아로마 오일로 상징되는 전통 의학 아유르베다도 있다. 인도 사람들은 별자리와 점성술 이야기도 많이 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사주를 보듯, 별자리를 읽는다. 어디까지가 사이비 믿음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숙소 앞 발코니에 대자로 뻗어 이런 저런 상념과 함께 이따 뭐 먹을지, 내일은 뭐할지 괜히 끄적여 본다. (내 머릿속 날뛰는 원숭이는 여전하다...꾸준한 명상 연습이 필요할 듯 싶다)
그러다 차 한잔을 끓인다. 글쎄,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상관 없다. 내가 뭐 스케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케줄.
그러고 보니 나는 난생 처음으로,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도 되고, 반드시 해야 할 어떤 일도 없으며, 가야만 하는 곳도 없어졌다. 연락해야만 하는 사람도 없고, 나를 꾸며내 보일 사람도 없다. 내가 신발을 안 신고 다녀도 상관 없고, 내가 백수로 누워만 있어도 혀를 차며 조언해주는 사람도 없다. 내가 어딜 가야겠다, 하고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나랑 어디 가자고 나를 데리고 갈 사람도 없고, 내가 뭘 해먹어야겠다, 하지 않으면 누가 밥 먹으라고 해주는 사람도 없다.
더 이상 학생도, 회사원도, 큰딸도, 언니도, 누나도, 친구도, 연인도 아닌 그냥 나.
그냥 ‘나’로서, 혼자 삶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 나는 이제껏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고 배운적도 없다. 자유도 자유롭게 살아본 사람이나 누릴줄 안다고, 나는 이제야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서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을 위해 저녁에 일찍 자는 법을, 알람 없이도 스스로 이른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법을. 하릴 없이 동네를 어슬렁 거리고 괜히 헤매고 돌아다니고, 시간을 낭비하는 법을. 괜찮은 채소 가게를 발견하고, 야채를 사다가 손질하고 냄비 밥을 지어 맛있는 한끼를 혼자 해먹는 법. 낯선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법. 하루를 무엇인가 특별한 일 -근처에 있는 티벳 사원을 가 본다든지, 시장 구경을 한다든지, 저번에 지나가면서 본 까페에 가본다든지 하는 것 - 로 채우는 방법을.
나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것들 - 학교와 회사와 인간관계와 그런 모든 것- 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 두려웠다. 한번도 아무데도 소속되어 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의 인생은 '명상클래스'로도 비워지지 않는 나의 머릿 속 처럼 언제나 가득 차 있었고, 운 좋게도 나는 항상 '명함' 이 있었다. 어디 어디 다니는 학생 아니면 어디 어디에서 일하는 직장인으로서. 아무데도 소속되지 않은 '백수'가 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나는 나를 대체 어떤 사람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학교와 회사와 인간관계를 빼고 나면.
그런데 아무런 수식어 없이 내 이름 석 자만 가지게 되니, 오히려 그 모든 것에 가려졌었던, 진짜 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기대와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나 온전히 '내'가 원하는 나의 삶.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그렇게 집착해 왔었던 다른 수식어들이 굳이 없어도, 나는 그냥 나 자체로 충분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나 자체로 충분하다는 걸, 혼자도 충분히 행복하고 씩씩하게 삶을 꾸릴 수 있다는 걸, 내가 직접 알아보기 위해 필요했던 자유. 처음으로 용기내서 쟁취한 자유는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