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가보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인도 - 레와 스리나가르를 거쳐

by ClaraSue

봉사활동이 끝나고, 남은 한 달은 여행자로 보냈다.


https://brunch.co.kr/magazine/resignandindia


마날리를 출발한 버스는 로탕 패스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높은 길로 올라갔다. 안개가 너무 짙어 그야말로 한치 앞도 안보인다. 갑자기 맞은편 안개 속에서 큰 트럭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데 온 몸의 털이 쭈뼛 일어선다. 버스가 서서히 언덕을 내려오는 도중에 갑자기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더니 히말라야 설산의 웅장한 모습이 창밖으로 나타났다. 버스 전체에 감탄사가 퍼졌다.


나도 모르게 그 장관을 보고 눈물이 왈칵 났다.

사람들이 정말 멋진 걸 보면 눈물이 난다고 해서 무슨 감성 폭발하는 소리냐고 믿지 않았었는데. 정말로, 내가, 그런 경험을 했다. 모든 인간의 안에는 신성함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본인은 알지 못하지만, 까마득하게 잊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장엄하고 위대하고 신성한 것을 보면 마음이 움직인다고 한다.

로탕패스에서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을 보면서 내가 이걸 보러, 이 멀리까지, 이 고생을 하면서 왔음을 깨달았다. 히말라야는 네팔에만 있는게 아니냐고 물었던, 한없이 좁은 나라에서 살던 이 무식장이가, 여기에 와서 끝도없이 이어지는 거대한 산맥을 마주한다. 세상에 이렇게 큰 산들이 있다니. 그리고 그 밑에서 인간은 얼마나 하잘것 없고 작은 존재인건지.이런 산맥 아래 사는 사람들은 종교적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신이시여..'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된다.






레로 가는 길은 눈이나 비로 산사태가 나 수시로 막힌다. 운 나쁘면 가다가 길이 뚫릴 때까지 밥도 못먹고 버스 안에서 버티고 있어야 하는 상황도 온다. 다행히 나는 그런 상황까지는 겪지 않았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가는 인도인 젊은 여행자들의 무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정치와 사회에 관련된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나누었는데, 인도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경쟁이 정말 치열하다고 한다. 그 와중에 펀자비(펀잡지역의 시크 교도)이라고, 무슬림이라고, 힌디(힌두교도)라고 서로서로 싫어하고 편 가르기 하느라 정신 없다고.

세상살이란, 어딜 가나 비슷하구나.



버스는 밤에 멈췄다가 새벽 4시부터 짜이 한잔 마시고 다시 출발한다. 여전히 하늘에 닿아있는 산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경이로웠지만 이틀째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풍경 구경만 하다 보니 너무 피곤해져서 교통 수단 안에서 잠 못자는 나조차 조금 졸았다. 새벽 4시부터 밤 8시까지 버스를 타고 가니 다들 지쳐서 죽을 맛이었고, 그래서 1박 2일간 버스여행을 함께한 모든 사람들은 여정이 끝날때즈음 동지애같은게 생겼다.


드디어 고생 끝에 도착한 레. 다행히 나는 고산병 증세는 없었다. 판공초는 레에서도 또 다시 차를 타고 올라 가야 하는데, 가려면 추가 퍼밋까지 비용을 지불하고 받아야 한다. 그냥 가면 되는 줄 알았지 그렇게 판공초 가는 길이 멀고 힘든 줄 몰랐다.


다행히 날씨는 엄청 좋았고, 실제 파란 호수를 만났을 때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판공초는 내가 인도에 온 가장 큰 이유였으니까.

세 얼간이라는 인도 영화를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그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곳이었다.

왜 하필이면 판공초에 꽃혔는지 모르겠다. 수많은 영화와 수많은 배경 중에서. 나의 버킷 리스트 1,2위를 다투었던 판공초. 나에게 판공초는 꼭 가보고 싶은 곳과 동시에 나는 아마도 영원히 저 곳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불가능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여기에 있다.

판공초는 상상한 것 그대로였다. 고원 지대에 펼쳐진 새파란 물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지만, 실제 물 맛은 조금 짜고 이상했다. 호수를 바라보고 별을 보는 일밖에 할 일이 없는 아주아주 조용한 곳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거기 가서 호수 한번 보고 사진찍고 오는건데, 무엇하러 그 고생을 해서 거기까지 가냐고. 무슨 의미가 있냐고. 여기서 레전드 샷을 찍었다고 내가 갑자기 sns스타가 된것도 아니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내 인생의 모든 문제가 다 풀린 것도 아니고, 내 앞에는 여전히 돌아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


어쩌면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된다는 걸.

세 얼간이의 란초처럼.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오래된 미래'라는 라다크에 관한 책을 읽으며 레에 머무르다가 스리나가르로 항했다. 스리나가르의 달 레이크는 아름답고, 평화롭고, 조용하고, 모든것이 호수에 비치는 곳이었다.

시카라라고 부르는 배를 타고 호수 안에 있는 숙소로 들어간다.


이태백이 달 잡으러 물 속으로 들어갔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

호수에 비친 세상이 너무나 선명해서 나도 거기 들어가도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카슈미르는 나같은 여행자에게나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이고, 사실은 분쟁 지역이었지만 운이 좋게도 내가 갔을 당시 잠깐의 평화가 온 상태였다.


카슈미르는 중국, 인도, 파키스탄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지역이다.

나는 인도 여행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굉장한 앙숙이라는걸. 그 저변에는 종교가 깔려 있다. 파키스탄은 이슬람교, 인도는 힌두교도의 나라로 서로 대립하고 있으며 그 경쟁 구도 속에서 각각 핵무기까지 가지고 있는 상태다. (이웃 나라끼리는 원래 친하게 지낼 수 없는 걸까?) 카슈미르 지역은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로 인도가 아닌 파키스탄으로 편입되기를 원하며, 당연히 넘겨주기 싫은 인도는 대치하고 있고, 그 와중에 중국까지 카슈미르의 동쪽을 침공하여 중국의 영토로 편입시켜 버렸다.

달 호수의 평화로움은 말 그대로 호수에 비친 그림자였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판공초 호수도 인도와 중국(티벳)의 국경에 걸쳐져 있어 각각의 보트가 호수를 순찰하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테러가 일어났네 전쟁이 났네 하는 소리를 지금껏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하지만 내가 다녀온 바로 그 곳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이제 캐시미어 100%라고 쓰여 있는 스카프를 볼때마다 나는 스리나가르의 달 호수와 카슈미르 사람들(캐시미어는 카슈미르 지방의 특산품이다), 그곳의 분쟁에 대해 생각한다. 미국에서 터번을 쓴 시크교도들이 이슬람교도로 오인받아 항상 곤혹을 치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펀잡 지역에서 만난, 친절히 예배 참여를 허락해 주었던 시크교도들을 떠올린다. 아니 언제나, 중국과 파키스탄과 인도와 티베트가 국제 뉴스에 등장 할 때마다 이제는 유심히 보게 된다.


인도 이후 네팔로 이동할까 계획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시기에 네팔에 대 지진이 일어나 네팔행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서로 다른 종교, 문화, 계층, 언어, 사회체제뿐 아니라 심지어 자연재해까지도, 평화를 너무나 쉽게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누리는 평화는 사실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진실을, 이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