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인도 여행을 마치고 나는 상하이의 화동사범대학교 중국어 어학연수 과정에 입학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공부를, 그것도 ‘언어’라는 한 가지 과목만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에게 있어서 공부란 언제나 다양한 과목을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것이었다.
서양 문화권이 아닌 아시아 문화권에서 살아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미국과 프랑스에서 살아본 적은 있지만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사는 ‘외국’에서 살아본 적은 없다.
중국어라는 완전히 낯선 외국어를 성인이 되어 처음 배운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영어는 어렸을 적부터 접했기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서울보다 더 국제적인, 상하이라는 도시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서울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상하이에는 이전에 두 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그 두 번의 경험은 나에게 상하이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충분했고, 상하이로 어학연수를 가도록 나를 이끌었다.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한국 사람이 너무 많을까 걱정했고, 로컬 언어가 공식 중국어가 아닌 상하이어라 걱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울보다 더 화려해 보이는 상하이를 동경했기에 (이름조차 뭔가 이국적인 상하이!다) 상하이를 선택했다.
상하이에 도착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첫번째로, 구글맵과 페이스북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기숙사에 짐을 풀자마자 인증샷을 업로드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눌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연결이 안되는 거다. 나는 내 와이파이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까 ‘중국’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중국 정부에서 막았다고. 이럴수가. 구글맵만 믿고, 중국어 못해도 충분히 상하이를 돌아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나는 21세기에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 특정 페이지를 못 들어가게 막았다고? 못 들어가게 한다고 사람들이 안 들어갈 수가 있나?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구글맵과 페이스북을? 이건 과거 우리나라 독재 정권 시절에 하던 검열이 아닌가?
어떻게 중국에 오면서 이 사실조차 모르고 올 수가 있는지, 나도 참 대단하다. 결국 나는 차단을 우회하기 위해 vpn을 설치했는데, vpn을 사용하면 속도가 좀 느려지기 때문에 점점 나도 모르게 더 '편리한' 중국 어플들로 갈아타게 되었다. 특히 sns의 특성상 주변사람들이 다 사용하는 것을 나도 사용해야 네트워킹이 되기 때문에 중국친구들과 커넥트를 하기 위해서는 중국 sns를 사용해야 했다. 구글 대신 바이두를, 유튜브 대신 요우쿠와 투도우를, 카톡과 왓츠앱, 인스타그램 대신 위챗(웨이신)을 사용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중국 어플들 특히 위챗은 그 당시 카카오톡이나 왓츠앱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편리했다. 하지만 그 편리함 뒤는 언제나 검열이 있다.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두번째로 충격적이었던 것은 ‘국제도시’의 면모와는 다르게 영어가 의외로 찾기 힘들다는 거였다! 심지어 학교 구내식당에도 영어 따위는 없었다. 온통 중국어만 써져 있는 메뉴판 앞에서 나는 좌절했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로다. 이렇게 ‘중국어’만 있을 줄 몰랐다. 구글맵이 안되는 대신 바이두맵을 사용하면 되는데, 바이두 맵은 영어 검색이 안됐다. 무조건 중국어여야 했다. 택시를 잡으려면 우버 대신 디디다처라는 중국어 어플을 써야 됐는데, 이 어플도 물론 중국어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지금은 영어도 쓸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가 신분상승의 상징인 것은 상하이도 한국 같았다. 영어조기교육의 열풍이 광적이었고, 그 와중에 '백인 선생님'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갈망도 엄청났다. 만나는 외국인 친구의 대부분이 상하이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고 있었는데 말도 못하는 아기를 엄마 무릎위에 앉히고 하는 수업조차 엄청나게 인기가 많다고 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도 '백인'으로 보이는 선생님들( 심지어 러시아 사람일지라도!) 은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세계 사용인구 1위인 중국어도, 아직까지 영어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세번째로 충격적이었던 것은, 중국에서 스마트폰의 위력이었다. 은행계좌를 오픈하자마자 위챗페이와 알리페이를 연동시켰다. 중국에서는 현금은 물론이고 카드조차 꺼낼 필요가 없었다. 그냥 무조건 핸드폰 결제였다. 당시만 해도 애플페이나 삼성페이가 아직 자유자재로 상용화되기 전이었는데, 중국에서는 위챗(웨이신쯔푸)과 알리페이(쯔푸바오)가 결제의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쇼핑은 물론이고, 택시 결제도, 심지어 노숙자에게 돈을 줄 때도 모바일 결제가 가능했다.
이미 중국, 특히 상하이에서는 공유경제 사업이 급속도로 활성화되고 있어 자전거, 전기 킥보드 등등 모든 것이 스마트폰 하나로 접근 가능했다. 온라인 쇼핑도 웹사이트 기반이 아니라 모바일 기반으로 운용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온라인 쇼핑이 웹사이트 기반에서 모바일로 넘어가고 있다면, 중국은 애초부터 웹 사이트 구축 단계를 뛰어넘고 바로 모바일 시장을 노리고 시작한 것 같다.
상하이라는 대도시에서 나는 스마트폰으로 도시의 삶이 주는 즐거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배달 어플 같은 것. 온갖 종류의 음식을 거의 모든 식당에서, 없다시피한 배송료를 내고도 주문할 수 있다. 나는 미국과 프랑스에서 느끼지 못했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사는 외국 생활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쇼핑도 그렇다.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이 제조되는 ‘중국’에서, 너무나 저 렴한 가격으로 나온 물건들을 주문하면 이틀 내에 받을 수 있었다.
풍부함.
상하이에서는 모든 것이 풍부해 보였다. 사람도, 물건도, 돈도, 노동력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풍부함이 두려워졌다.
사람들이 많은 만큼, 음식점과 배달음식과 택배에서 나오는 포장 쓰레기는 어마어마하다.
물건이 저렴한 만큼, 쉽게 쓰고 쉽게 버려져 나간다.
공유경제를 핑계로 산더미처럼 쌓여져 나가는 자전거 더미.
배송료가 저렴한 만큼, 배달원들의 시급과 인권에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빌딩과 후미진 뒷골목처럼 차이가 심한 빈부격차.
해킹에 대한 안정성 보다는 편리함만 앞세우는 기술발전.
지하철과 거리의 그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자신들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 풍경, 과도한 스마트폰에의 의존.
‘돈’과 ‘성장’을 앞세워 사람들을 ‘정치’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정부.
이것이 과연 경제발전으로 상쇄될 수 있는 것들일까?
어학연수를 하는 일 년동안, 나는 상하이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새롭게 만난 친구들은 내가 기대했던 ‘중국인’ 친구들이 아니라 오히려 유럽인 친구들이었다. 상하이에서 확실히 느꼈던 것은 한국에 비해 미국인보다 유럽인, 그리고 러시아와 아프리카계도 훨씬 많다는 것이다.
우연히 지지라는 내 나이 또래의 정말 힙해보이는 여자애가 시작한 스타트업을 알게 되었다. 지지는 지금은 자기 회사가 파티 플래닝을 하고 있지만 미래 계획은 뮤직 페스티벌까지 여는 거라고 했다. 지지의 거대한 비전에 나는 혹했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사업 보조(?)알바를 하기로 했다.
물론 처음부터 페스티벌을 열 수는 없으니까 우선은 마케팅용 행사들을 지지가 따오면 진행하는 것인데, 그 행사라는 것이 파티 형식이라 장소, dj, 모델, 사진작가 등등을 섭외해야 했고 물론 행사 홍보도 해야 했다.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정해진 업무가 없다는 것이라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행사를 기획히야 하는 일이라 장소 물색을 위해 상하이의 나름 힙한 바, 클럽, 라운지를 다녔고, 오너들도 만났다. 의외로 외국인 오너들이 많았다. 외국인이 중국에서 마음대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는 걸까, 생각했는데 대부분이 중국인 배우자가 있었다.
그렇게 3개월정도 했던 파트타임은 점점 월급 정산이 제대로 안되면서 막을 내렸다. 나는 지지의 현란한 말솜씨에 혹해서 계약서도 제대로 안 쓴채 어이없이 나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었고, 그녀의 사업은 실패로 가고 있는게 분명해 보였다. 파티를 기획하는 일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나는 사람들을 끌어모을만큼 외향적이거나 발이 넓지 않았고, 클럽 파티 같이 밤에 진행되는 행사는 더더욱 체력적으로 맞지 않았으며 사교파티와 페스티벌에 경험이 많거나 힙스터적인 감성을 가진 아티스트/인플루언서도 아니었다. 어찌되었건, 그 스타트업은 지지의 꿈이었지 나의 꿈이 아니었다는 걸, 노동력을 착취 당한 후에에야 알았다. 그렇다면 나의 꿈은 뭘까. 화려함에 눈 멀지 않은 나의 꿈은.
화려함.
나는 상하이의 화려함에, 페스티벌 사업의 화려함에 혹했다. 중국 자본의 풍부함을, 내가 상하이에서 만난 수많은 외국인 DJ와 모델들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화려함은 언제나 그 뒤, 그늘을 동반하고 있었다. 풍부한 자본으로 인한 빠른 성장은 또다른 사회,경제,정치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었고, 그렇게 쿨해보이고 멋져보이는 사람들도 다들 각자의 열등감과 고민에 시달리고 있었다. 세상에 그늘이 없는 화려함은 없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