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나도 모르게 나를 얽매고 있었던 것들이 있었다

뉴질랜드 - 남섬

by ClaraSue


내가 밀포드에 도착한 10 초는 밀포드의 겨울이 끝나고, 봄으로 접어드는 시기였다. 12월과 1월은 한여름이고, 관광객이 가장 많이 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남반구의 반대되는 계절을 경험하게 되었다. 계절이 반대일 아니라 위도도 반대였다. 밀포드 사운드는 뉴질랜드 남섬에서도 남쪽에 있는 편이라 물이 차다. 빙하가 녹은 물이 합쳐져 차갑기도 하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남쪽이 춥다는 건지 한참을 생각했었다. 나의상식으로는 남쪽으로 내려갈 수록 따뜻할 건데. 박자 늦게, 나는 깨달았다. 남반구에서는 적도가 북쪽에 있고, 추운 극지방이 남쪽에 있으니 북쪽으로 수록 따뜻하고 남쪽으로 수록 춥다는 것을!

거꾸로 뒤집힌, 남반구의 지도를 본다. 뉴질랜드와 호주가 위에 있고, 한국이 아래에 있는 지도.

내가 아는 나의 상식’조차 저 곳에서는 맞았는데 이 곳에서는 틀리다. 무엇이 ‘평범한 것’ 이고 무엇이 ‘이상한 것’인가. 여기서는 맞는 것이 저기서는 틀리고, 저기서 맞는 것이 여기서 틀릴 수 있다.

여행을 수록 느낀다. 나는 결국 내가 아는 세상에서만 살아왔다는 것을.






나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란, 까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바를 찾아 다니면서 술을 마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노는 법'은 자연에서 더 다양했다.

숨겨진 하이킹 코스를 찾아 다닌다. 한국의 등산로나 밀포드 하이킹 루트처럼 관광객을 위한 '길'이 나 있는 산행이 아닌 말 그대로 '길'을 찾아야 하는 등산. 물론 위험하기 때문에 무전기와 위치 추적기는 필수고 누군가에게 우리가 가는 곳을 꼭 알려야 한다. 올라가다 보면 길이 끊기는데, 대신 나무에 대강 방향을 알려주는 리본이 묶여져 있다. 그렇게 리본을 따라 올라가는 건 괜찮은데, 내려갈 때, 말 그대로 울창하고 거대한 나무 뿐인 뉴질랜드의 산에서 대체 내가 어디로 올라왔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리본이 달린 나무로 가까이 가 주변을 살펴보면 반드시 다음 리본이 보인다. 길을 잃으면 당황하지 말고, 리본이 묶인 곳에서 서서히 둘러보라고 했다. 그렇게 길이 없는 숲에서 헤매고 다니면 정말로 모험을 떠난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 흔치 않으니 해가 뜨면 무조건 '밖'에서 놀아야 한다. 카약킹을 하러 가거나 패들보드를 하러 나간다. 카약은 밀포드 카약 회사에서 공짜로 빌릴 수 있고, 패들보드는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아웃도어 스포츠가 발달한 뉴질랜드에서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다 다양한 아웃도어 용품들을 가지고 있었다. 자전거, 스케이트 보드, 심지어 활과 화살까지 있었다. 클라이밍 장비가 있는 친구들을 따라 실외 클라이밍을 가기도 했다. 실내가 아니라 실외에서부터 시작하는 클라이밍이라니. 물론 나는 몇번 시도 하고 나의 상체, 팔 힘이 거의 바닥 수준이라는 것만 깨닫고 돌아왔지만.

밀포드는 비가 많이 오는 곳이다 보니 절벽에 물이 고인 숨겨진 장소들이 있다. 날씨가 좋으면 폭포 밑에 가서, 숨겨진 연못에 가서 수영을 하고 햇볕에 몸을 말린다. 분기별로 우리끼리만 작은 배를 띄워 뱃놀이도 간다. 해변에 불을 피우고 바닷가재를 구워먹었다.

밤에는 불을 피우고 앉아서 맥주 마시면서 하염없이 별이나 보고, 별이 없을 때는 대신 glowwarm(반딧불이 처럼 불을 내는 벌레) 을 구경하러 간다. 돌아보니 참 낭만적으로 들리는데 대자연 속에 티비도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이 살면 저절로 그렇게 살게 된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레저 테마파크나 화면 속에만 존재하는 디지털 세상과는 차원이 다르다. 모든 것이 깨끗하고 완벽하고 안전하고 통제된 실내의 삶. 나는 그런 것을 누릴 수 있는 삶이 최고의 삶인 줄 알았고, 그런 것들을 누리기 위해 돈을 벌었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은, 실제 자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더 위험할 수도 있고, 더 더러울 수도 있고, 더 힘들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게 더 재미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째서 나는 자연을 이렇게나 즐기면서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어째서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인 줄도 모르고 모던하고 화려한 도시의 삶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일까.





일을 쉴 때는 테아나우나 퀸스타운으로 나가서 휴일을 보냈는데, 액티비티로 유명한 퀸스타운에서는 승마, 루지, 스카이다이빙, 번지점프, 그리고 호수에서 하는 각종 워터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가을에는 퀸스타운과 가까운 애로우타운의 단풍구경을 가고, 체리 시즌에는 크롬웰로 가서 배 터지게 체리를 따먹었다. 겨울에는 스키장 시즌권을 끊어서 다닐 수 있는데, 윈터스포츠가 발달해 있는 뉴질랜드의 남섬답게 퀸스타운의 스키장들은 한국과 차원이 다르게 높고, 코스가 많고, 다양하다.


가끔 운이 좋으면 버스를 타고 나가는 대신 밀포드에서 뜨는 경비행기나 헬기를 공짜로 얻어 타고 퀸스타운으로 갈 수 있었다. 헬기를 타면 관광차 밀포드의 만년설 위에 한 번 멈춰서 만년설을 밟게 해 준다. 어느날 갑자기 친구가 자리 남으니까 탈래? 해서 헬기를 탄 나는 그 당시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 결과 맨 다리로 눈밭에서 기념 사진을 남기게 되었다.


밀포드 로드 매니저들은 꼬박꼬박 이런 만년설의 상황을 체크해서 눈사태가 날 것 같다 싶으면 한번씩 길을 통제하고 인위적으로 눈사태를 만들어 내 미연의 사고를 방지한다. 과학기술로 산사태를 통제한다니. 듣도보도 못한 일이다. 산사태 뿐 아니라 밀포드 로드의 나무가 쓰러지는 것도 미리 체크해 방지한다. 예고없이 나무가 쓰러지는 바람에 차가 깔려 사람이 죽은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길 가의 나무들을 체크해 불안하다 싶으면 미리 베어 옮긴다고 했다. 국립공원 내에서는 나무 한그루도 밖으로 내 갈 수 없기에 베어낸 나무는 숲에 그대로 넣어 둔다.


밀포드의 숲에는 앵무새 Kea를 필두로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 덕분에 나는 '버드 워칭'이라는 것도 처음으로 해 봤다. 숲에서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에 대해서도 배웠다. 새의 나라 뉴질랜드에 살아보지 않았다면, 영영 관심이 없었을 것들.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또 다른 세계.





밀포드에서는 파티가 자주 있다. 항상 보는 사람들끼리 매번 똑같이 술 마시고 놀자, 하면 얼마나 지겨운가. 그러니 돌아가면서 테마 파티를 주최한다. 할로윈 파티,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 크리스마스 파티, 새해 파티 같은 ‘당연히 시즌별로 있는’ 파티를 제외하고라도 디즈니 파티(디즈니 주인공처럼 입어야 함), ‘anything but clothes’ (옷 말고 모든 것을 입을 수 있음) 파티, 그리스 파티(토가 입어야 함), 낚시 파티(배에서 낚시 하면서 파티 함) 등등, 파티 테마는 끝이 없다.


몇가지 기억에 남는 이벤트 이야기를 해 보자면, wild food festival 이라고 직접 ‘사냥’하고 채집한 재료들로만 요리한 음식을 먹어보는 페스티벌이 있었다. 뉴질랜드에서는 총을 가지고 사슴, 족제비 같은 동물 사냥이 가능하다. 밀포드에서는 배타고 숲 가까이 돌면서 하는 사슴 사냥, 헬기 타고 위에서 쏘는 사슴 사냥 등을 자주 한다. 네발 달린 동물은 뉴질랜드 토착종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사냥은 장려된다.

나는 밀포드 사람들이 거대한 사슴을 직접 총을 쏴서 잡아다가 거꾸로 매달아 놓고 배를 갈라 장기를 빼고, 장식을 위해 머리를 자르는 걸 보고 기절초풍했다. 도저히 사냥은 나의 취미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야생 버섯 스프라든지, 밀포드 바다에서 잡은 랍스터들, 그리고 홈메이드로 담근 사이다(사과술), 와인 ,맥주 등을 직접 맛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사이다 담그는 법은 나도 배웠는데, 호주와 뉴질랜드 시골에서 시간 많고 할일없는 많은 (특히 남자) 사람들이 하는 취미생활 인 것 같다.



또 다른 기억에 남는 파티는 gender change 파티다. 파티의 테마가 남자는 여자로, 여자는 남자로 분장하고 와야 하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남자인 척’을 해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내가 얼마나 ‘여성스럽게’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남자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수염을 그리고 남자 옷을 입고 남자 목소리를 내는데도, 나의 모든 몸짓이 ‘남자’가 아니었다! 걷는 것 부터가 여자 걸음걸이였다. 손 제스쳐도 여자였고, 다소곳이 앉는 자세도 여자였다. 놀라운 것은 남자인 척을 하려고 하자, 나도 모르게 어깨가 펴지고 목소리가 커졌다는 사실이다. 태도도 좀 더 껄렁껄렁 해졌다.(대체 왜?)


해외에서 나는 LGBT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한국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만 어울리던 나는 퀴어 친구들을 만난 것이 처음이었다. 아니, 나는 LGBT 뭔지도 몰랐다.

LGBT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의 약자로, 현재는 queer or questioning, intersex, asexual, and more 까지 합쳐진 LGBTQIA+ 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다.

나는 젠더는 사람이 이성적으로 선택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또한 강제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다양한 퀴어 친구들은 대개 평범한 사람들이고, 퀴어는 ‘질병’으로 고칠 수 있다 라든가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들이다, 라는 이야기는 적어도 나의 경험 안에서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세상과 대립할 필요가 없었다.(운이 좋게도.) 그래서 내가 이성애자가 아님을 진지하게 의심해 적이 없었는데, 적어도 나도 스스로가 '이상한 사람' 이라 생각해 본 적은 있기에 어렴풋 하게 나마 나 자신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사회적 편견과 싸워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지 짐작할 수 있다.


gender change 파티를 통해 나도 자연스럽게 젠더에 대해 배우고 고민해 보게 되었다. 남자로 산다는 것, 여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아주 단편적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사회적 영향을 받고 있었는지,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부여받지 않는 나의 진정한 젠더란 무엇인지, '나의 사회'를 벗어나서야 생각해 볼 기회를 이렇게 가진다.




물론 수많은 이벤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밀포드 naked 터널 런 이겠다.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하려면 마지막에 밀포드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매년 밀포드에서는 사람들이 말 그대로 naked – 빨개벗고 터널 입구에서 터널 끝까지 달리기를 하는 행사를 벌인다. 다같이 단체로 버스를 타고 터널 입구에 내려서 옷을 벗으면, 버스가 그 옷을 가지고 터널 끝으로 가서 우리를 기다린다. 그러면 다들 미친듯 터널 끝까지 내달리는데 내리막길 경사가 살짝 져 있어 금세 끝에 도착한다. 그럼 허겁지겁(?) 옷을 찾아 입고 다들 낄낄거리면서 행사가 마무리 된다.


왜 빨개벗고 터널을 달리냐고? 와이낫. 왜 안해야 하는데? 그냥. 하고 싶으니까. 남자 여자 나눠서 하냐고? 나누긴 뭘 나눠 다 같이 달리는 거지.


무슨 이런 미친 짓이 있냐 싶었지만, 나도 참가했다. 지금 돌아봐도 미친 짓 같긴 한데, 내가 언제 누드로 소리지르면서 터널을 달려보겠냐는 생각으로 그냥 했다. 딴 사람들이 볼까봐 부끄럽고 창피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다 같이 벗고 있는 건데 뭐. 보라면 보라지. 이게 내 몸인데 뭐 어쩌라고.


밀포드 이후에도 나는 많은 곳에서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몸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맨 몸이 문제가 아니라, 지나치게 인간의 몸을 성적 대상화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어떻게 생긴 몸이든, 모든 인간의 몸은 그냥 몸이고,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어떠한 사회적 관습에 얽매여 있었을 뿐.



자유로운 오픈 마인드.

그것은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방탕하거나 방종한 삶이 아니다.

자신이 얼마나 자신도 모르게 한 가치관을 의심도 하지 않고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다른 가치관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되돌아보는 삶이다. 네가 맞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여지를 열어두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