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 밀포드 사운드
20대가 끝나기 전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것은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다만 어디로 가느냐가 문제였을 뿐.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래를 볼 수도 있다는 사실 하나로 무작정 뉴질랜드를 선택했다. (여전히 당돌하고도 대책없다)
내가 간과했던 사실은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신청 기간이 있다는 거였고, 발급 수가 정해져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비자 신청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인터넷 어디에선가 비자 취소가 되면 그 자리를 메꾸기 위해 신청이 갑자기 열리기도 한다는 글을 읽었다. 나는 그 가능성에 매달려 매일같이 아침 저녁으로 비자 신청 사이트를 확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나 ‘지금은 비자 신청 기간이 아닙니다’라는 팝업을 기대하며 클릭했는데 갑자기 ‘비자 신청이 완료 되었습니다’ 라는 말이 떴다.
나는 속으로 미친 듯 환호성을 지르며 비자 신청 비용을 결제했고, 신체검사까지 일사천리로 받았다.
정확히 상하이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한지 일년만에 나는 퇴사했다.
뉴질랜드에 가게 된 건 좋았지만, 나에게는 돈이 없었다.
간신히 모은 돈이라봐야 뉴질랜드행 비행기 값 그리고 약 한 달정도의 생활비 뿐이었다. 나는 이미 한국에서 퇴사하면서 부모님에게 절대 손 벌리지 않겠다는 큰소리를 땅땅 쳐 놔서, 이제 와 돈 좀 빌려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정신 차리라는 말 듣고 있는데) 가장 시급한 것은 취직이었다.
뉴질랜드에 가기로 했을 때, 나는 도시가 아닌 곳에서 살 것이라고 마음 먹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시티잡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클랜드와 웰링턴이 위치해 있는 북섬이 아닌 남섬, 크라이스트 처치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하지만 시티잡 외에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인디드같은 구직 사이트를 뒤지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뉴질랜드 남섬은 관광업이 발달해 있다보니 관광업과 관련된 잡이 꽤 있었다. 출국 전까지 관련된 구인 공고에 되는대로 이력서를 날렸다. 물론 답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거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출국 몇일 전, 기적처럼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뉴질랜드 밀포드 사운드에서 온 연락이었다.
내가 지원한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 한국인 통역사 면접을 보러 올 수 있겠느냐는 메일이었다. 나는 그 메일 하나만을 동앗줄처럼 붙잡고 크라이스트 처치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크라이스트 처치에 3일쯤 머무르다 버스를 타고 퀸스타운으로 이동했다. 퀸스타운에 도착해서 연락하면 면접일과 시간을 잡아주겠다고 했다. 만약 이 면접이 실패하면 나는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었기에 나의 마음은 초조했다. 하지만 나의 마음과는 달리, 뉴질랜드의 분위기는 느긋했고, 남섬의 호수와 산들은 과연 반지의 제왕의 배경이 된 나라답게 숨막히게 아름다웠다.
밀포드 사운드는 국립공원 안에 위치해 있는 피오르드 지형이다. 그 곳에 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퀸스타운-테아나우-밀포드 로 이어지는 밀포드 로드를 따라 가는 것이다.(좀 더 고급스럽게 경비행기나 헬기를 타고 갈 수도 있긴 하다) 밀포드 로드의 끝에 가면 밀포드 사운드 선착장이 있는데, 하루에 세번씩, 약 2시간 동안 진행되는 피오르드 지형 데일리 크루즈를 진행한다. 네다섯개 정도의 회사가 있고, 내가 지원한 회사는 그 곳에서 가장 큰 규모의 크루즈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밀포드 뿐 아니라 퀸스타운, 아니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큰 관광회사로, 특히 중국, 일본, 한국에서 대규모 관광객을 많이 받기 때문에 아시아계 직원들이 필요한 것이었다. 퀸스타운에서 약 5시간 이상 걸리고, 날씨의 영향으로 종종 길이 닫히기도 하기 때문에, 밀포드 사운드 여행을 계획하고 와도 운이 나쁘면 들를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퀸스타운에 도착했다고 연락을 하니, 매니저가 퀸스타운에서 밀포드로 오는 버스를 잡아 주었다.
5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밀포드로 들어갔다. 나의 첫 밀포드 로드 경험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히말라야를 보고 거대함에 압도되었었던 그 감정을, 남섬의 산들을 보고 다시 느꼈다. 꼭대기가 흰 눈으로 뒤덮힌 산과, 그 밑에 펼쳐진 눈이 시리게 푸른 호수와 분홍,보라 루핀으로 뒤덮인 들판. 내가 뒤로 하고 온 것들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드디어 도착한 밀포드에서 매니저와 면접을 보고, 첫 크루즈 보트도 타 보고, 나는 잡 오퍼를 받았다.
몇가지 특이한 사항이 있었는데 첫번째는 이 곳에서 일을 하려면 이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장 가까운 동네가 차로 두시간 반 걸리는 만큼, 출퇴근은 불가능하다. 대신 회사가 숙소와 음식 등을 제공해 준다. 한마디로 돈 쓸 곳이 없어 돈 모으기는 좋지만 회사 사람들, 그리고 밀포드 사운드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총 200명 정도 되려나)과 거의 매일매일 얼굴 보면서 살아야 한다, 이 말이다.
두 번째로 이 곳은 외딴 ‘국립공원’ 인 만큼 와이파이는 커녕 핸드폰도 안 터진다.(2020년 이후에는 터진다고 들었다.) 인터넷이나 전화를 쓰고 싶으면 사무실로 와서 써야 한다.
세 번째로 이 곳의 스케줄은 10일 연속해서 일하고 4일 쉬는 스케줄이다. 관광객이 없는 겨울, 1년에 2-3개월은 무급 휴가가 가능하다. 네 번째로, 통역 일 뿐 아니라 배 안에서 선원 역할도 해야 하기에 트레이닝을 받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첫번째와 두번째, 도시와 떨어져 인터넷조차 안되는,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 이 일을 거절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대도시와 사람들이 지긋지긋해져서 자연인의 삶을 살러 온 사람이다. 나에게는 모든 조건이 꿈만 같았다. 이 전과 180도 다른 삶. 내가 찾던 바로 그 삶.
나는 그렇게 모든 조건에 yes 를 외쳤고, 일주일 후 짐을 싸서 밀포드 사운드 숙소로 입주했다.
밀포드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낯선 장소, 낯선 일, 낯선 사람들.
밀포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랙킹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밀포드 트랙킹을 위시로 한 수많은 아름다운 트랙킹 코스가 있는 거대한 국립 공원이다. 이 곳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강수량이 많은 곳이기도 한데, 비가 올 때 그 아름다움이 극대화된다. 산꼭대기에서부터 흐르는 폭포들이 수백, 수천개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머무르게 된 방 전면에는 낮에는 산과 폭포를, 밤에는 별과 달을 볼 수 있는 통창이 있었다. 공유 주방 그리고 옆 방 사람과 화장실/샤워를 함께 써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막힌 뷰가 보이는 방에서 살아 볼 수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햇볕 한 줄기도 안 들어오는, 창이 벽으로 막힌 곳에서, 이 것이 내 분수에 맞는 집 인줄만 알고 살았던 적도 있는데.
단 한가지 힘든 것은 샌드플라이다. 밀포드는 지독한 샌드플라이 서식지다. 그놈들은 모기보다 작은데 모기처럼 사람을 물어뜯는다. 야외에 있으면 무조건 샌드플라이들이 달라붙는다. 특히나 바람이 불지 않는 해질 무렵, 뷰에 취에 의자를 밖에 내놓고 맥주 한 잔 마시려고 하면 까맣게 모여든다. 처음에는 대체 이런 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지,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그것도 익숙해졌다. 대신 밀포드에서 나가면 샌드플라이가 없다는 것 자체를 너무도 감사하게 여기게 된다. 역시 사람은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것을 잃어 봐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는 것 같다.
처음으로 컴퓨터 뒤에 앉아서 ‘머리로’ 하는 일이 아닌, 하루종일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게 되었다. 스케줄은 대개 6시반이나 7시에 시작한다. 숙소에서 다같이 밴을 타고 배로 이동해서 한두시간 정도 크루즈 준비를 한다. 간단한 청소, 배 내부 까페 영업과 무료 식음료 준비, 점심 부페 준비 정도다.
나는 난생 처음 판매용 ‘음식’을 내 손으로 만들어 보았다. 까페에서 판매하는 샌드위치를 매일 아침 만드는데, 많을 때는 300개도 넘게 만든다. 나는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먹어만 봤지, 이걸 직접 판매대에 올리기 위해 누가 직접 만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공장에서 만드는 거 아니었어?!
샌드위치 만들기 뿐 아니라 셰프를 도와 런치 부페 준비를 하면서도 음식점에서 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 배울 수 있었다. 샌드위치든 부페든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 준비(재고 관리, 주문 포함)와 끊임없는 설거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예를 들어 당근/양파/감자 껍질 까기, 토마토 썰기, 삶은 계란 껍질 까서 으깨기, 김치 썰기, 샐러드용 양상추 씻기 등등. 그런데 아침에 출근해서 배 내부를 바삐 돌아다니고 커피 한잔 마시고 이어폰 끼고 앉아서 30분 넘게 껍질 벗기는 칼로 슥슥 당근 손질을 하는 일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첫번째 크루즈가 시작하기 전 9시-10시쯤에는 다 같이 거한 아침식사를 한다. 일어난지 두시간 정도 지나 일도 하고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할 때 셰프들이 준비한 직원용 부페 음식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접시가 넘쳐라 퍼 담게 된다. 그렇게 배 터지게 식사를 하고 3시까지 크루즈 2개를 마무리 지은 후 점심은 간단히 먹고 싶은 걸 먹는다. 마지막 크루즈가 끝나고 다 같이 보트 청소를 하고 트레이닝까지 가끔 받으면 5시쯤 업무가 끝난다. 그러면 집에 와서 또 간식 먹고, 8시쯤에는 공유주방을 같이 쓰는 사람들과 저녁을 해 먹는다. 이건 거의 뭐 하루에 4끼를 꼬박꼬박 규칙적으로 챙겨 먹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침을 대강 거르고 점심, 저녁만 대강 하루에 2끼 먹으면서 하루 운동량 0이던 내가, 하루 4끼를 먹으면서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니 난생 처음으로 ‘살’이 찌게 됐다.
지금까지 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스케줄 – 8시 전에 아침 식사를 하고 9시부터 12시까지 일하고, 12시에 점심을 먹고, 6시 이후에 저녁을 먹는 – 에 힘들어하는 나 자신을 자책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그저 다른 스케줄을 가진 사람 - 아침식사를 9시나 10시에 하는 것이 맞는 사람- 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지금껏, 다른 사람들이 ‘그래야만 한다’ 라고 정해 놓은 스케줄에 나 자신을 맞추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을까. 어렸을 때 부터, 학교를 다닐 때 부터 (혹은 유치원?) 그렇게 살았으니까. 나는 그렇게 사회에 길들여진 사람이었구나.
매일같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항해(?)를 한다는 것, 그것도 세상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장소 중 하나인 곳이 내가 출근하는 장소라는 것은 매일같이 나를 감동시켰다. 밀포드 사운드의 풍경은 매일이 다르다. 비가 휘몰아치는 날, 해가 눈부신 날, 바람이 센 날, 눈이 오는 날, 각각 볼 수 있는 산과 폭포 그리고 야생 동물들이 다르다. 기대했던 고래는 보지 못했지만 돌고래 떼는 자주 볼 수 있었다. 돌고래들은 배가 만드는 파도를 따라 신나게 서핑을 하고, 매일 같이 바위에서 뒹구는 물개들, 그리고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 펭귄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도시를 떠나 뉴질랜드의 국립공원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국립공원에서의 삶이라는 건, 반대로 자유시간에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심지어 인터넷도 안되니 sns도, 뉴스와도 거리가 먼 삶이다. 밀포드에서는 누군가와 만나고 싶으면 그 친구가 사는 숙소로 전화를 해서 “누구누구 좀 바꿔 주세요” 라고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직접 찾아가서 문을 두드려야 한다. 갑자기 21세기에서 과거로 회귀한 느낌. 퇴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보거나, 다운로드해 놓은 영화를 보거나, 같이 사는 사람들과 수다떠는 것 뿐. 나가서 할 일이 없을 때, 그리고 인터넷이 없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창의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나는 경험했다.
심심하니까, 뭔가를 끄적거리거나, 악기 연습을 하거나 운동을 한다. 모여서 농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스케이트 보드도 타고, 누구는 활과 화살을 사와서 다같이 활 쏘기 연습도 했다. 보드게임을 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 같은 아트활동도 좋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중국, 일본, 한국 뿐 아니라 현지 키위(뉴질랜드 사람) 그리고 호주, 미국, 유럽의 각 나라 등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어색하고 서먹했지만 매일 24시간 거의 같이 붙어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심심하니까, 자연스럽게 사람들끼리 모이는데, 어찌보면 그게 워크숍이 되는 거다. 나 팔찌 만드는 법 아는데, 내가 가르쳐 줄테니까 같이 할 사람! 하면 같이 모여서 한다. 공유 주방이 있으니 같이 새로운 레시피로 요리도 많이 한다. 나는 마시멜로우를 만들어진 걸 사는게 아니라 집에서 직접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항상 같은 회사에서 노는 사람들끼리만 놀면 또 지루하니까 밀포드 사운드에서 일하고 거주하는 모든 회사 사람들이 모이는 이벤트도 자주 열린다. 작은 커뮤니티라 금세 모든 사람들을 서로 알게 된다. 매주 퀴즈 나잇을 해서 팀별로 퀴즈 맞히고 논다든지, 요가 클래스를 한다든지 등등.
사무직이 아닌 삶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인터넷이 없는 삶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그런 시골 마을 생활도 나는 요즘 세상에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다수가 사는 방식대로 살지 않아도,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밀포드에서 알게 되었다. 남들처럼, 아니 남들만큼 이라도 하려고, 내가 원하는 것, 나에게 맞는 것을 알지도 못한채 그냥 달려 가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걸, 한발짝 떨어져 보니 이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