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베이징; 인도네시아-자카르타, 발리
상하이에서 한참 마음이 뜨고 있을 때쯤, 같이 공부하다가 베이징 대학으로 진학한 엘레나가 함께 여행을 하자고 했다. 안 그래도 요즘 일도 없는데(롯데 사드 사태 때문에) 과감하게 공휴일과 연차를 몰아 붙여 이번 기회에 베이징 구경을 하고, 엘레나와 함께 인도네시아까지 다녀 오기로 마음 먹었다.
베이징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베이징 대학교 구경과 만리장성 캠핑이었다.
북경대. 중국 최고의 대학은 어떤 대학일까. 캠퍼스 자체보다는 도서관과 교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인상깊었다. 좀 무섭기도 했다. 이렇게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우리는 이길 수 있을까? 물론 공부와 창의력 그리고 성공은 다른 문제긴 하지만.
화동사범대에서도 느꼈지만, 중국 대학생들은 한국 대학생들에 비해 덜 노는 것 같다. 술도 덜 마시고, 파티도 덜 한다. 물론 개인차, 그룹차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봤을 때 ‘재미있는 학생들’ 이라는 느낌 보다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이랄까. 더 보수적인 것 같기도 하고, 더 진지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나는 한국이 훨씬 재미있고 다이나믹하다고 느꼈다. 혹 이런 사회적 분위기도 정치체제의 영향을 받았을까?
그렇다고 해서 중국 학생들이 공부만 하려는 건 아닌 것 같다.
나와 친구가 참가한 만리장성 캠핑 프로그램에도 많은 중국 학생들이 참여했다. 작은 투어 그룹이긴 했지만 절반은 외국인, 절반은 중국학생들 이었다. 웃긴 건, 참여한 중국 학생들이 다 여학생들이었다는 건데, 내가 그녀들에게 왜 남학생들은 참여를 안 했을까 물어보니, 다 폰으로 게임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하더라. 그런 면에서는 한국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만리장성은 물론 여러 포인트에서 투어가 가능하다.
우리가 가는 곳은 덜 유명한 곳으로, 성벽 위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 캠핑을 한 후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프로그램이었다. 각자 일인용 텐트와 침낭, 먹을 것, 버너 등을 이고 지고 조를 나눠서 신나게 출발했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만리장성이 말 그대로 ‘산 꼭대기’에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어째서 나는 돌 성벽 위에 아기자기한 일인용 텐트가 펼쳐져 있는 로맨틱한 모습만 보고, 만리장성 캠핑을 그리 쉽게 생각해 버렸던 것일까. 그 성벽까지 짐을 지고 등산 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꽤 가파른 하이킹이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려고 열심히 올라갔지만 장성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아서 라이트를 켜고 허둥지둥 텐트를 쳐야 했다. 다들 어설프게 버너에 불을 붙여 대강 컵라면만 끓여먹고, 별 구경을 하다가 추워서 텐트로 들어갔다. 잠이 드는둥 마는둥 할 때쯤 일출을 보라고 투어 가이드가 깨워댔다.
해 뜨는 것에 관심 없다고 투덜거리며 나는 침낭을 뒤집어 쓰고 밖으로 나왔는데, 그 때 만리장성에서 본 일출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부옇게 밝아오기 시작하는 새벽, 그리고 여명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끝도 없이 이어진 산맥과 장성.
굳이 고생하며 짐을 지고 산 꼭대기에 올라와서 거의 노숙하다시피 밤을 보낸 보람이 있었다. 해가 뜨고 간단히 요기를 한 후에 우리는 장성을 따라 다른 하산 루트가 있는 곳까지 이동했다. 어떤 구간은 굉장히 가팔라서 거의 기어가다시피 올라가거나 서다시피 내려와야 했다. 그래도 관광객으로 가득 찬 만리장성이 아닌, 실제 만리 장성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만리장성 투어가 끝난 다음날 우리는 자카르타로 떠났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자카르타까지 엘레나를 따라 간거나 다름 없었다. 엘레나 친구가 우리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카르타 공항에서부터 이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운전기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차도 심지어 삐까번쩍한 차였다. 오마이갓. 엘레나, 너의 친구는 대체 어떤 사람인거니.
엘레나의 친구는 인도계 인도네시아 사람이다. 인도네시아의 중상류층은 중국계, 인도계가 많다고 한다. 잘 살기도 하지만 워낙 노동력이 싸다 보니 물론 도우미를 많이 고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엘레나와 나에게는 너무나 어색한 일이었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시중 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운전기사님은 물론, 으리으리한 3층집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짐을 받으러 나오는 아주머니, 정원사, 차와 함께 간식거리를 내오는 내 또래의 도우미까지, 내가 중세시대의 귀족이 된 건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심지어 식사를 할 때조차 옆에 시중을 드는 분이 계셔서, 더 먹고 싶다면 음식을 더 내다 주시고, 소스가 필요하다면 소스를 갖다 주셨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거실에 앉아서 티비를 보면서, 과일 좀 갖다 주세요! 하면 내 앞에 과일이 대령 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이들의 시중을 받는 이 집 식구들을 보며 나는 대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다. 월급을 주고 고용한 것일 테니 이들의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지만 나는 고용주 보다는 고용인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는 자카르타에서 가장 크다는 쇼핑몰에 가서 쇼핑을 하고(서울과 상하이의 쇼핑몰보다 별로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낮에는 비치 클럽에 가고 저녁에는 루프탑 바에, 나이트 클럽에 갔다. 장 같은 걸 볼 필요도 없이 식사 때면 음식이 준비되었고, 거실에는 고급 술 컬렉션이 있어서 아무거나 골라 마실 수 있었다.
남이 모든 '귀찮은 일'을 대신 해 주고, 나는 편히 '즐기기'만 하면 되는 삶.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크고 넓고, 아름답고, 비싸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삶, 내가 목표로 해야 하는 삶이 이런 삶인가?
그렇게 살짝 부자의 삶을 맛보고, 우리는 발리로 넘어갔다.
처음으로 서핑을 배웠고, 오랫만에 스쿠버 다이빙을 했고, 락 바에서 노을을 보면서 엘레나와 수다를 떨었다. 발리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힌두 문화를 보고 느끼는 것도 좋았고, 필리핀이나 태국에 비해 조금 더 고급스러운 리조트가 많은 것도 색다르게 느껴졌다.
고래상어 스노클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관광객을 위해 먹이를 주는 고래상어 투어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포기했다. 적어도 이 관광상품은 코끼리나 돌고래 쇼 처럼 고래상어를 붙잡아둔 것은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만나고 싶은 것은 실제 고래상어지, 관광객을 위해 길들여진 고래상어가 아닌걸.
조금 더 발리에서 머무르고 싶었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 아쉬웠다. 우리의 예상보다 발리는 커다란 섬이었고, 은근히 여기저기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여행을 다녀와서 부족한 돈을 좀 메꿔볼까 하고 상하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기웃거리다가 뜻밖에 프리랜서로 고용이 되었다. 이 스타트업 회사는 상하이에 사는 재정적으로 넉넉한 외국인들을 주 고객층으로 삼은, pet sitting – 반려동물 돌봄 대행 회사였다. 나는 여기에 파트타임 펫시터로 고용이 되어, 내가 가능한 날짜, 가능한 시간에 고객들의 집에 가서 그들의 반려동물들을 돌봐주면 되는 거였다.
내가 사는 지역에 외국인 주재원들이 많아 나는 꽤 괜찮은 수익을 올렸다. 회사에서 고객과 매칭을 해주면, 그들의 집에 직접 방문해 반려동물도 만나고 미팅을 한다. 고객들은 나에게 집 키를 주고, 나는 약속된 기간동안 꼬박꼬박 방문하거나 혹은 며칠간 머무르면서 반려동물들을 봐주면 되는 거다. 사업성이 꽤 있어 보였는데, 만약 펫 시팅을 하다가 사고가 나거나, 절도 등의 문제가 벌어지면 회사에서 어떤 보험을 들어 놓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동물도 좋아하고, 물건을 훔칠 생각도 없을 뿐더러 대부분의 개들은 잘 훈련이 되어 있고 고양이들은 뭐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되니 큰 걱정을 하지 않긴 했다. 하지만 단 한번, 사회성 떨어지는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는 이 개가 줄을 끊고 달려나가 다른 개를 물까봐 너무 걱정이 되었다.
대부분의 외국인 주재원들이 반려동물까지 키우면서 머무르는 집은, 대개 상하이에서 아주 비싼 거주지에 속한다. 나는 펫시팅을 하면서 다양한 고객들의 집에 방문했는데, 펜트하우스부터 고급 아파트까지 정말 다양했다. 가끔은 내가 정말로 이 강아지와 고양이와 함께 이 집에 사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드라마 주인공이 된 느낌이랄까. 강아지를 데리고 마치 정말 여기 사는 사람처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건물 관리인에게 인사를 받을 때면 (물론 그 관리인은 '진짜 주인'을 알고 있겠지만) 나도 모르게 리플리 증후군이 절로 생겼다. 정말로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반면에 그 경험은 미래의 나의 삶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진짜 '내 것'이 된다면, 언젠가 나는 이 집과 개의 주인처럼, 남편과 아이와 함께 비싼 펜트하우스에서 오손도손 살 것인가. 아침저녁으로 개를 산책시키고, 화분을 돌보면서.
물론 내가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이런 집에 언젠가 살아볼 수나 있을것인가,는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것이 그것인가? 어떻게 해서든,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것이 이 삶인가?
상하이에서 최대한 정을 붙이고, 최대한 재미있게 살기 위해, 나는 열심히 도시 생활을 즐겼다.
가끔 루지아주이에 즐비한 고급 호텔들에 가서 테니스 수업도 받고, 수영장도 갔다. 루지아주이와 난징동루의 쇼핑몰에 가면 명품 숍들이 시즌별로 예술적인 디스플레이를 화려하게 자랑하고 있으니 윈도우 쇼핑도 좋다. 화요일이나 수요일 저녁에는 레이디스 나잇이라고 여성들에게 무료로 칵테일을 제공하는 분위기 좋은 바에 놀러가 ‘나는 멋진 도시 여자’ 놀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어떤 것으로 포장한다 할 지라도, 상하이의 생활은 또 다시 서울 직장 생활의 반복이었다. 서울에서 지옥철을 타기 싫다고 욕하던 내가, 서울 지옥철보다 두세배는 심한 지옥철을 타고 (다행히 두 정거정만 가면 되긴 하지만) 매일 출근했다. 루지아주이는 마치 여의도처럼 금융사들이 많이 있고, 여의도 공원같은 공원도 있다. 나는 여의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점심 먹고 공원을 산책했다. 퇴근 후 옆 빌딩의 꼭대기 층에 위치한 상하이의 뷰가 멋지게 보이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지만, 어쨌든 서울과 마찬가지로 퇴근 후 헬스장이었다. 기획 컨설팅이라는 이전과는 다른 일이었지만, 결국 컴퓨터 뒤에서 9 시부터 6시까지 앉아 있어야 하는 것도 변함이 없었다.
누군가는 꿈꾸는 빌딩 숲에서의 삶도, 사람들도, 네모난 사무실도, 나는 지긋지긋했다.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맞다.
어떤 사람은 내가 너무나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진짜 어려움을 겪지 않아 철 없는 소리를 한다고 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것을.
아무리 도시에서 행복하려 해도, 나는 행복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내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대체, 나는 왜 이럴까. 왜 나는 '이상할까'.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던 자카르타 보다 해변에서 뒹굴거리던 발리에서, 나는 행복했다.
상하이의 고급 펜트하우스보다 만리장성의 텐트 속에서, 나는 행복했다.
물질적인 삶을 꿈꾸지 않는다면, 굳이 도시에서의 삶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본격적으로 떠남을 준비했다.
야생의 고래를 볼 수 있다는 뉴질랜드로.
내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 그 끝을 확인해 볼 수 있을 때까지 가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