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여행자는 환경운동가가 될 수밖에 없다

통가-통가나푸, 바바우

by ClaraSue


드디어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통가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의 버킷리스트 맨 위에 자리잡고 있던, 고래와의 만남을 위해.

돌고래떼를 자주 만날수 있는 밀포드에도 가끔 고래가 오긴 온다. 가끔은 orca, 범고래가 왔다는 무전도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멀리서만 볼 수 있었고 한번도 가까이 가 보지 못했다.


통가 왕국은 남태평양의 섬나라 중 하나다. 이 곳에서는 야생 혹등고래를 실제로 보고, 함께 수영도 할 수 있다. 야생의 고래들은 끊임없이 이동하기 때문에 물 속에서 관찰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통가에서 가능한 이유는 이 곳이 혹등고래들이 새끼를 낳아 돌보는 장소로, 엄마와 아기가 한 곳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호주로 스쿠버 다이빙을 갔을 때, 누군가 나에게 통가에 가면 고래와 수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때부터 통가에 가는 것은 나의 꿈이 되었다. 통가의 고래 시즌은 7,8,9월이고, 그 시즌에는 비행기표도, 물가도, 고래 투어 가격도 참 만만치 않다. 동남아 물가 생각했다가 큰코 다쳤다. 뉴질랜드에서 거의 1년차가 되었을 때, 나는 과감하게 혹등고래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통가는 하나의 섬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처럼 여러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메인 섬은 4개다. 국제 공항은 Tongatapu, 통가 왕국의 수도가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대부분 고래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북쪽에 위치한 바바우(Vava’u)에 가는데, 나머지 섬들에서도 가능하긴 하다고 한다. 나는 통가나푸에 3일정도 머무르면서 고래를 기다리다 초조한 마음에 국내선을 타고 바바우로 이동하기로 했다.


남태평양 주민들은 – 특히 통가 남자들은 - 덩치가 커서 나도 모르게 쫄게 된다. 아쿠아맨에 나오는 제이슨 모모아 같은 느낌. 실제로 이야기해보면 오히려 다들 다정한데, 그들은 그저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것일 뿐 인걸 나 혼자 괜히 주춤거리고 멀찍이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혼자 통가나푸의 호스텔 주변을 쭈뼛거리고 다니다가 우연히 뉴질랜드에서 유학중이라는 현지 여자애들과 친해지게 됐는데, 그 여자애들 뿐 아니라 통가에서 만난 모든 여자들이 나에게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했다. 한국 남자 배우들 이름을 술술 읊는데 깜짝 놀랐다. 한류가 여기까지 수출 되고 있다니, 상상도 못했다.


통가 뿐 아니라 남태평양의 문화에는 타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타투까지는 감히 도전 못하고(진짜 아프다고 했다) 나도 통가에 온 김에 타투를 하나 하기로 했다. 호스텔 주인 분이 추천해 주신 타투이스트에게 별 기대 없이 찾아갔는데 알고 보니 엄청나게 유명한 아티스트였다. 운이 좋게도 그 분께 타투를 받게 되었는데 내 인생 가장 아름다운 결정 중 하나였다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후회하지 않는다.




바바우의 숙소는 이미 꽉꽉 차 있었다. 고래 시즌이 확 느껴진다..

바바우에는 관광객들이 머무는 거리가 하나 있고, 그 곳에 바, 레스토랑, 숙소, 다이빙 업체들이 거진 몰려 있다. 예상보다 훨씬 덜 관광지화 되어 있었고, 그래서 현지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게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잘 찾아온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별게 없다. (후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가본 많은 관광지 거리, 화려한 리조트들이 들어서 있는 곳들을 돌아보면 다 비슷비슷해서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오로지 관광지가 아니었던 바바우 같은 곳들만 기억에 남아있다. 언제까지 그렇게 남아있으려나. 왜 나는 별게 없었던 그 곳이 그리운 것일까. 관광객들이 아닌 평범한 통가 사람들이 일상을 꾸려나가고 있던 곳.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면서 나를 보고 까르르 웃으며 부끄럽게 인사를 하고, 흙먼지가 이는 길을 땡볕 아래 한참을 걸어야 했던 곳. 온수샤워가 되는 곳은 '비싸고 특별한' 곳이고 대부분 찬물 샤워만 있다. 마당에는 병아리와 아기돼지들이 엄마를 쫓아 다니는 시골마을.



고생끝에 바바우까지 도착해서, 다시 숙소를 잡고, 드디어 혹등고래를 보러가기 위해 작은 배에 탔다. 우리의 그룹은 선장님, 가이드를 포함해 약 10명 정도. 고래를 찾기 위해 배를 타고 거의 한시간 가까이 바다를 누볐다. 말 그대로 야생 동물이기에 언제 어디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보장은 없다. 운이 좋으면 많이 보는 거고, 운 나쁘면 못 보는 거고. 운 좋으면 오랫동안 수영하는 거고, 운 나쁘면 허탕치는 거고.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3일이상 투어를 예약한다.

대체 고래는 어디 있는 거야…하고 서서히 지쳐갈 때쯤, 첫번째 고래를 찾았다.



가이드가 먼저 물에 들어가 고래를 확인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그러면 두 세명씩 스노클을 끼고 바다로 조용히 뛰어든다.(고래를 자극하면 안되니까)

고래를 본다는 생각만 가지고 무작정 통가에 왔던 나는, 바다에 들어가기 전 그제야 공포를 느꼈다. 지금껏 내가 해 본 스노클링은 산호가 사는 얕은 바다였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는 적어도 장비라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뛰어들어가야 할 바다는 시꺼먼 색이었다. 그야말로 깊이를 알 수 없는 망망대해 한복판에, 오리발만 끼고 들어가는 거다. 뉴질랜드 찬 바다에서 수영 제대로 안한지도 거의 1년인데, 이렇게 바로 들어가라고? 왜 나는 이 생각을 못했을까. 무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무섭건 어쨌건, 나는 지금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고래는 저기 있고, 사람들은 벌써 저만치 가고 있고, 여기까지 와서 못하겠다 할 수 없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나는 스노클을 끼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깜깜한 밑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속에서 나는 방향 감각도 잃을 지경이었다. (한 마디로 패닉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어푸어푸 하고 있었다는 말) 고래고 뭐고 사람 살려 라고 말하려는 순간, 내 시야에 엄마 고래와 하얀 아기고래가 나타났다.


혹등고래는 막 태어났을 때 하얀색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몸통 색이 짙어진다고 한다. 하얀 아기 고래는 태어난지 몇일 되지 않은 고래였다. 그들은 이동하는 중이라 금세 내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나보다 빨리 갔던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긴 시간동안 고래들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바다에 들어가는 감각이라도 익혔으니 됐다.


두번째로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 드디어 나는 혹등고래를 제대로 보게 되었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엄마고래였다. 처음에 봤던 고래는 아마도 멀리에서 지나가고 있었는지 작아 보였는데, 눈앞에서 본 혹등고래 엄마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내 눈앞에서 수유를 하기 위해 세로로 우뚝 서 있는 혹등 고래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물 속에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바로 눈 앞의 고래를 보느라 넋이 나가 있는 나를 가이드가 뒤에서 툭툭 쳤다. 뭐요? 하고 돌아보니 나보고 발 밑을 보라고 손짓한다. 가이드의 손끝을 따라 내 밑을 내려다보니 엄마고래보다 훨씬 더 큰 고래가 바로 내 밑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확실했다 나를, 아니 우리를 쳐다보는 것이. 그 거대함에 나는 압도되어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너무 커서 고래 전체가 내 시야에 담기지가 않았다.

그 고래는 엄마고래와 아기 고래를 에스코트 하는 수컷 고래라고 했다. 그 수컷은 우리가 엄마와 아기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우리가 위험한 생물들은 아닌지 확인하고 있던 거라고 후에 가이드가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고래가 수면 아래에 있다는 것을, 수면 위에 뜬 커다란 공기방울을 보고 알 수 있다.

고래를 찾아 바다를 돌아다니다가 한번은 가이드가 공기방울을 보고 물 속으로 들어갔지만, 금세 나와서는 수컷 고래가 심해에 있어서 모습은 볼 수 없다고 했다. 보이지도 않는데 수컷 고래인지, 확실히 있긴 한건지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니 그가 물 속으로 한번 들어와 보라고 했다.


물 속에 머리를 넣은 순간, 바닷속 전체를 웅웅 울리는 고래의 노래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아니, 그것을 단순히 ‘듣는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 소리의 파동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경험.

구애를 위해 이렇게 바다 멀리까지 퍼지는 노래를 부르는 것은 수컷 고래라고 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고개를 들면, 물 밖에서는 그저 평화로운 바다 위를 스치는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물 밑에서는 밖의 고요함과는 정반대 되는 웅장한 파동이 일고 있었다. 숨을 참고 물 속으로 고개를 넣지 않았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몰랐을, 전혀 다른 세상.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서부터 쭉 느꼈었다. 내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이 지구에는 있다는 걸.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건 겨우 물 밖 땅 위, 거대한 자연 속에서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혹등고래에 비하면 작고도 작은 존재인 인간은 어쩌다 이렇게 이기적이고 욕심많은 생명체로 모든 것을 우리의 뜻대로 사용하면서, 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바다에서 거대한 고래를 마주하고 그 눈을 본다면,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텐데.


내가 떠나고 바바우에 도착한 다른 친구는 고래를 거의 만질 정도로 가까이 갔다고 했다. 나는 아쉽게도 이번에는 정도로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 (위험하기 때문에 금지되어 있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물 밑에서 그리고 물 밖에서 고래를 정말 여러번 관찰할 수 있있던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고래 관광이 유명하긴 하지만 통가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답게 바다와 해변 자체가 아름다운 곳이다.

해변을 따라 이어진 블로우 홀들은 파도가 칠 때마다 거대한 분수가 치솟아오르듯이 바위 틈으로 물을 뿜어냈다. 하루 종일 앉아서 구경해도 질리지 않을 만큼 멋진 장관이다. 투명한 크리스탈 블루의 해변 그리고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적어서 보존이 잘 된 산호초들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다이빙까지 할 필요도 없고, 스노클링을 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이후 바바우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섬의 호스텔에서 머물면서 며칠간 현지 생활을 즐겼다. 거의 민박 느낌의 숙소에서 매일 주인집이 해주는 말 그대로 현지 집밥을 먹었다. 통가의 메인 주식은 쌀이 아니라 타로다. 고구마 같은 타로를 쪄서 혹은 삶아서 매시 포테이토처럼 으깨 준다. 코코넛이 먹고 싶다고 하면 주인집 꼬맹이가 바로 마당 코코넛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칼로 코코넛을 따왔다. 말 그대로 싱싱한, 하지만 시원한 맛은 덜한 코코넛! 아 그립다.

가족모임에도 어쩌다보니 참석해서 말 그대로 아기돼지 통구이를 얻어 먹었다. 해변에 모닥 불을 피워놓고 돼지 한마리를 정말 통째로 막대기에 꽃아놓고 돌리면서 몇시간을 굽는 걸 처음 봤다.


호스텔은 바로 해변에 위치해 있는데 스노클링을 끼고 몇미터정도 수영해 나가면 곧바로 산호숲이 자리잡고 있다. 먼저 묵고 있던 뉴질랜드 애가 있었는게 하필 직업이 카약킹 가이드라고 했다. 나는 그 친구를 따라 카약을 타고 섬을 누볐는데, 엄청 큰 과일 박쥐 서식지를 찾아내기도 하고 (나는 새 떼인줄 알았다!) 옆의 고급 리조트에 가서 맥주를 얻어 마시기도 했다. 그 작은 섬은 섬 전체가 고급 6성급 리조트고, 건물 자체도 예술 작품처럼 만들어 놨다. 우리가 섬에 카약을 대자 섬을 지키는 개 두마리가 왈왈거리며 뛰어 나와서, 리조트 주인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출신 미국 부자였다. 섬 전체를 사서 리조트 차려 놓고, 매니저 고용해 놓고, 보트 하나 사서 맨날 놀러 다니고 있었다. 세상에는 섬을 산 사람이 정말로 있군.


일요일에는 교회에 따라갔다. 통가의 대부분 원주민들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종교가 대체 뭐길래, 이 외딴 섬나라까지 크리스천 선교사들이 와서, 현지 문화를 바꿔버린다는 말인가. 하긴 나도 과거 대한민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 다녔고, 그들이 선교한 종교를 믿고 있으니 놀라워할 것도 없긴 하다. 동아시아의 끝에 있던 한국이나 남태평양의 섬이나 유럽인들에게는 같은 ‘오지’였을테니까.




일본과 중국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던 것도 놀라웠다. 두 나라 다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에 나름 공을 들이고 있었다. 인프라 지원 – 학교, 전기/인터넷 시설, 도로 건설 등 – 을 해주는 것이 많이 보였다. (한국은 남태평양에 관심이 없나?) 그 대가로, 아마도 이곳에서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키우겠지. 그와 더불어, 어마어마한 자원을 가져가고 있었다. 해양 자원을. 통가 사람들은 원래 먹지도 않던 해초류를, 중국 기업들이 들어와서 다 쓸어가면서 그 해초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지속 가능할 정도로 소비되던 바다 먹거리들이 ‘해외 수출’을 하게 되면서 말 그대로 씨가 말라가고 있다. 관광객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고래들은 사라지고 산호는 파괴될 것이다.


통가 왕국이 세계의 자본주의에 편승하여 더 부자 나라가 되기 위해 최대한 수출을 늘리고, 해외 자본 투자를 받고,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하는 것이 과연 맞는 길일까. 혹은 그들이 그 방향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다른 선택지가 있긴 할까. 이 세계화의 시대에.



통가나푸에서 한국 분들이 운영하는 작은 한식당도 발견했다. 통가에도 한국교민들이 계실 줄이야! 그 분들께서 확실히 과거에 비해 고래가 줄었다고 하셨다. 안타까운 일이다. 통가에서 만난 친구들을 따라 해변 쓰레기 줍기에도 참여했다. 태풍이 오고 나서 온갖 쓰레기들이 해변을 뒤덮고 있었다.


언젠가, 반드시 다시 가리라 다짐한다. 통가로, 다시 한번 더 혹등고래를 만나러. 그 때까지 혹등고래들이 사라지지 않아야 할 텐데.


바다를 다니면 다닐수록, 관광이 아닌, 진짜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해양 생태계와 환경 보호에 관해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고, 바다/환경 관련 다큐멘터리들을 열심히 보게 된다.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대해 생각한다. 환경 파괴에 대해 책에서 티비에서 배워서, '옳은 일'이라 믿고 작은 것들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내가 산호가, 고래와 상어와 거북이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그렇게 하게 된다.



혹등고래와의 수영이라는 나의 탑 버킷리스트까지 체크하게 되면서, 나는 '버킷리스트 달성'이라는 인생의 방향이 조금 바뀌는 것을 느꼈다.

가고 싶은 곳을 가고, 하고 싶은 곳을 한다.

그 이후에는, 내가 마주한 이 세상의 문화적 다양성과, 생물학적 다양성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