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지방, 중소기업, 그리고 학원 선생님의 삶

대한민국 - 광주

by ClaraSue


지금까지 나의 사회생활은 성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성인들과 교류를 했고, 성인들과 의사소통을 했다. 그런데 어학원에서 일하면서부터 나의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50% 이상이 ‘초등학생’이 되었다. 나는 초등학생들, 아니 아이들에 대해 모른다. 주변에 아이들이 없다. 나이대 별로 발달과정이 어떤지, 그들과 소통할 때는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학습 능력을 기대해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 긴장 반 걱정 반으로 교육 및 수업 준비를 약 2주동안 하고 처음 수업을 하는 날.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오기에, 2시부터 저학년 수업이 진행된다. 어학원의 규모가 커서 통학 버스 수십대가 운행되고, 학원 가방을 졸졸이 맨 아이들이 우르르 버스에서 내려 교실로 들어온다. 열댓명 되는 작은 1학년생들이 익숙하게 책상에 나란히 앉아 똘망똘망한 얼굴로 새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나는 연습한대로 영어로 능숙하게(?) 수업을 시작했는데 곧이어 아이들이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당연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하는 선생님을 탐색하는 것도 잠시, 아이들은 금세 적응해서 한국어로 나에게 조잘조잘 이야기를 했다.


통제 안되는 저학년들을 붙들고 책도 읽고, 게임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그렇게 진땀을 빼면서 수업을 진행하고 나면 3,4학년들의 4시 수업이 시작된다. 3,4학년들 수업은, 수준별 수업이라고는 하지만 한 반에 다양한 영어 실력을 가진 아이들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6시부터는 5학년 수업이 진행된다. 대개 초등부 어학원 클래스는 5학년까지만 진행하고 6학년부터는 본격적인 중학교 입시반으로 넘어간다. 빠르면 5학년부터 ‘사춘기’가 시작되는 학생들이 확실히 보이고, 심지어 키도 나만해 진다.(벌써부터?)

그렇게 정신없이 6시간의 수업을 연달아 마치고 빠르면 8시에 퇴근한다.



나는 처음에 뭣도 모르고 2시간을 빡빡하게 채워서 수업을 했다. 2시간이나 되는 수업을 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못할 짓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아이들의 집중력이 2시간동안 이어질 수가 없을 뿐더러, 아이들을 2시간동안 앉아 있게 시킬 수도 없다. 그런데 점차 2시간을 내내 학습에 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쉴 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준비한 빡빡한 2시간의 스케줄이 그대로 진행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너무 과도하다는 것도.

내가 지금보다 두세배는 천천히 말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을 ‘통제’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도.


그게 제일 힘들었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3학년부터는, 아니 눈치 빠른 1학년조차 이 선생님이 ‘만만한’ 선생님인지 아닌지 알아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딴짓을 해도 될지, 안될지, 떠들어도 될지 안될지.

수업을 ‘진행’하려면 모든 아이들이 동시에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자율성’을 강조하다보면 도저히 수업 진행이 되지 않았다. 열댓명도 이렇게 힘든데 몇십명씩 대체 어떻게 가르치는 거지?! 그래서 군대처럼 규율을 적용시키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말을 안들으니까!





‘자율성’을 가장 중시하는 원어민 선생님 시간에 우리 반 애들을 엿보니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참여하는 애들만 참여하고, 아닌 애들은 그냥 놀고 있다. 떠들고 날뛰어도 원어민 선생님은 대부분 통제를 포기하고 수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한국인 선생님이라면? 특히나 호랑이 선생님들로 유명한 반을 엿보면 그렇게 애들이 얌전하기 짝이 없다. 나도 모르게 우리반 애들을 비교하게 된다. 아니 저 반은 저런데 우리 반 애들은 왜 이래?!(모든 선생님이 느끼는 감정일까)

나도 호랑이 선생님처럼 하려고 해 봤지만, 불가능했다. 아이들마다 성향이 다른데 어떻게 언제나 ‘얌전히’ 하라는대로 하도록 만든단 말인가? 부드러우면서 엄격한 선생님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공부만 잘 가르치면 되는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같이 있으면서 투닥거리며 싸운다. 왜 싸우냐고 혼내면 서로 억울하다며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한다. 이럴 때면 대체 내가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공평하게 싸움을 결론지어야 하는지, 나는 정말 골치가 아팠는데 자칫 하다간 꼭 한명이 억울하다며 울면서 끝났기 때문이다. 아이들마다 학습 능력도 달랐는데, 잘 하는 아이를 계속 시키는 것도 반 분위기를 흐렸고, 그렇다고 못 하는 아이를 다그치는 것도 아이의 자신감을 하락시키는 일이었다. 욕심이 많은 아이는 게임을 해서 지면 울었고, 받고 싶은 '칭찬 스티커'를 못 받으면 울었다. 어디까지 단호하게 해야 할지, 어디까지 감싸안아야 할지 온통 혼란스러운 것 투성이었다. 어째서 엄마가 우리 4남매가 싸울 때 속 시원한 판결을 내려주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았다.


수업에서 가장 무서운 학생은 바로 ADHD가 있는 듯한 아이들이다. 일학년 남자아이 한명이 정말 심각했는데, 나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혼도 내고, 무시도 해보고, 협박도 해도 다 그 때 뿐,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결국 어머님에게 너무 전화를 자주해서 아이가 학원을 관뒀는데, 팀장님이 오히려 나를 탓했다. 내가 아이를 품어주지 않아서 원생 한명을 잃었다고. 나는 목구멍까지 그 어머님한테 애 병원에 데려가라고 말씀 드리려다 참았어요, 라는 말이 나왔으나 참았다.




학생이 관두면 그것이 내 월급에 영향을 끼친다. 그것이 이 학원이 ‘돈을 좀 더 준다’는 대신 내세운 계약조건이었다. 이 때도 내가 욕심을 부렸다. 그냥 맘 편히, 좀 낮더라도 고정급여를 받았어야 했는데 덜컥 학생당 월급계약을 해 버린 것이다. 문제는 매번 3개월 마다 한번씩 레벨테스트가 있다는 거였고, (아니 동화책으로 재미있게 가르친다면서 레벨테스트가 왜 있어?!) 그 레벨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학생은 다른 레벨, 다른 선생님 반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내 학생 수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내 학생들을 무조건 레벨테스트를 통과시켜야 했다.



첫 레벨테스트를 마치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 때까지 나는 아이들이 영어에 노출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 와중에 무엇인가를 배워가면 된다 생각했다. 청소년과 성인을 교육하듯, 최선을 다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전수해 주는 그런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는.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부분 부모님이 가라니까 포기하고 온다. 그래도 영어에 재미를 느낀다면 좋은거지!


그런데 우리 반에서 시험에 탈락한 애들이 우수수 나온게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선생님들은 레벨테스트에 나오는 내용을 특히 강조해서 수업시간에 가르치고 복습을 시킨다고 했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시킨다고. 나는 팀장님에게도 혼났고, 학부모들에게도 죄송하다는 전화를 드려야 했고, 월급도 깎여야 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내가 너무 ‘즐겁게’ 가르쳐서 애들 시험을 통과 못 시켰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후로 나도 모르게 ‘학습적인’ 수업을 하게 되었다. 달달 외우게 하고, 숙제는 더 내주고, 레벨테스트에 대비하는 수업.


이런 수업을 하기 싫어서 어학원에 온 거였는데, 여기서도 똑같은 수업을 하고 있다니.

함께 읽는다는 영어 동화책은 정말 죽도록 재미 없는 책이었고(대체 이 재미없는 이야기를 어떻게 일주일씩이나 읽으면서 애들이 공부를 하는지 오히려 존경스럽다. 아이들은 이것도 재밌다고 여기는 걸까?) 자유로운 스피킹을 장려하는 대신 여전히 나 혼자 칠판 앞에서 설명만 하고 애들은 문제만 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수업을 만들어 내려면 거의 수업자료를 다 뜯어 고치고 내내 수업 준비만 해야 하게 생겼다. 그 정도까진 못한다. 심지어 학부모님들도 레벨테스트 통과를 가장 중시 여기고, 실제 영어 실력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만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 것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저학년 레벨에서 아이의 영어 실력은, 학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부모님이 얼마나 관심있게 가르치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저학년에서 나눠진 영어 실력은 대개 이후에 쭉 이어진다. 아마 그래서 저학년 때부터 필사적으로 영어 고레벨을 만들려고 하나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영어를 잘 하지 못했어도 고등학교 이후에 성장했기 때문에 그렇게 미친듯이 어렸을 때부터 영어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교육 현장에서 일 해보니 다시 한번 왜 출산율이 떨어지는지 느낀다. 부모의 책임이 너무 크다. 돈이든 정서적인 면이든. '최고의 교육 루트'라고 여겨지는 영어 유치원 - 사립 학교 - 어학원 뿐 아니라 어학원 숙제 및 레벨테스트를 위한 개인 과외까지 돈을 쓰는 걸 보면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많은 '워킹맘'들은 돈을 벌어 퇴근 할때까지 아이를 학원으로 돌리면서 직장을 유지하지만, 결국에 아이가 학원이든 학교에서든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걸 보면 눈물을 머금고 직장을 관두고 아이 교육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집에서 엄마가 숙제와 영어 공부를 챙겨주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확 티가 났다. 아직까지도 엄마의 직장과 가정은 양립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학원에서 일하면 ‘저녁’이 있는 삶이 없다.

그나마 나는 초등부라 8시에 일을 마치지만, 중고등부는 당연하게도 10시 넘어서까지 수업이 진행된다. 저녁 약속은 대개 잡지 못하고, 심지어 주말에도 출근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을 때 학원은 운영되니까.

주 5일을 넘어서 주 4일을 주장하는 내가 상상치도 못하게 주 6일을 일하게 되었다. 장기 근속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에 주 6일을 타협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절대 지속가능한 직장일 수 없었다. 주말 2일도 놀러가기에 짧은데 1.5일이라니?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대신 저녁에 놀 일, 주말에 놀 일이 없으니 그만큼 돈을 쓰지 않을 거고, 그만큼 모을 수 있으니까.


말 그대로 집과 어학원만 반복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다. 대신 가족이랑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름 행복했는데, 그래도 3개월마다 한번씩 답답증과 작은 우울증이 찾아오긴 했다. 남들 놀 때 놀고, 남들 일할 때 일 하는게 좋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대신 ‘아침’이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시간. 늦게 퇴근하니 늦게 저녁을 먹고 늦게 잠자리에 들게 되어 아침에 자연스레 늦잠을 자게 된다. 내게 주어진 아침시간을 활용해 한국에 돌아오면 꼭 하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려고 필라테스와 우쿨렐레 수업을 등록했는데, 부랴부랴 아침에 수업 갔다가 점심 다급히 먹고 나면 어느새 1시, 출근시간이 되어 버린다. 수업 준비하라고 2시 수업이 시작하기 전, 1시간만 주는 것은 너무하다. 나머지 시간은 말 그대로 ‘돈도 못 받으면서’ 내 시간을 투자해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수업이 비는 시간이 4시간 정도 추가로 있긴 하다. 내게 주어진 수업 준비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외에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 부분들이 있었다. 특히 제대로 된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것. 공식 수업 스케줄은 2시부터 4시, 4시부터 6시, 6시부터 8시 까지다. 저녁’간식’으로 학원에서는 김밥 한 줄을 제공한다. 거의 있지도 않은 쉬는시간에 김밥을 급히 쑤셔넣고 다음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고용되어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소’기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악명높은 한국의 중소기업 근무환경답게 인건비와 부대비용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추가 근로 인정 안되는 것, 수업자료 비용도 지원 안되는 것, 일년에 한번 하는 회식을 냉동 삼겹살 집으로 간 것, 그리고 휴가를 쓰지 못하는 것.


아, 휴가! 한국의 선생님으로 살 때 가장 힘든 것이라 들었었다. 아무리 아파도 ‘학생을 위한 책임감’을 가지고 수업을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 부득이한 사정으로 수업을 빠지게 되면 그 시간에 수업이 없는 다른 선생님들에게 직접 수업을 대신 해줄 수 있느냐고 부탁해야 했다.

이 부분도 내가 지속가능한 강사생활은 불가능하겠다고 느낀 부분이었다. 사무직일때도 내가 내 연차 쓰는데 왜 눈치를 봐야 하냐고 큰소리를 빵빵 쳤던 나인데 도저히 학원에서는 불가능했다. ‘공휴일’이 강제로 연차차감이 되어 심지어 남은 연차도 없는 지경이었다. (이 부분은 2021년인가 2022년부터 법으로 변했다고 들었다.) 외국에서 나를 만나러 한국까지 온 친구들과 심지어 놀러갈 수조차 없었다. 수업해야 한다고! 심지어 두번이나! 이때 정말 깊은 자괴감을 느꼈다. 대체 ‘돈’을 위해서 나는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



한 선생님의 가족이 불의의 사고로 상을 당하셨다. 그런데 학원에서 단 하루밖에 수업을 못 빼준다고 한 것이다. 그 이후 그 선생님은 퇴사해 버리셨고, 선생님을 사이에서 퇴사 러시가 일었다. 선생님들의 조직에 대한 신뢰도가 완전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나 교육업에서 수업의 질을 판가름하는 것은 강사다. 강사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으면 절대 행복한 수업이 될 수 없고, 수업이 행복하지 않으면 학생들도 행복하지 않고, 결국에는 다 그만두게 된다.


회사의 방침은 ‘네가 나가도 우리는 언제든 대체 강사를 구할 수 있다,’라는 배짱이었는데, (그나마 지역에서 큰 학원이고, 그나마 월급이 조금이라도 높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몇 년이나 이곳에서 가르친 좋은 선생님을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초짜 선생님으로 바꾼다니? 경력 선생님에게 들어가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회사의 HR 전략인걸까? 그래도 100% 영어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자질이 뛰어난 선생님들을 구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을 텐데.


하지만 조직에서 개선될 수 있는 점들을 말할 때마다, ‘원래 이 분야가 이렇다’, ‘딴데 다 가 보세요’, ‘마음에 안 들면 떠나라’, ‘대신 이쪽 분야에서 두 번 다시 고용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 라는 전형적인, 변화하고자 하지 않으며 고압적인 갑질 고용주의 태도를 보이니, 조직은 침체되고, 내가 좋아하던 선생님은 하나 둘 떠나갔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악하다, 라는 ‘성악설’에 기반해 직원들을 다루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고용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적게 일하고 돈을 많이 받는 것일 뿐이다, 더 잘해주면 나태해지고, 더 요구하고, 결국에는 뒷통수를 친다, 라는 믿음이 관리자들과 경영인에게서 강력히 보였다는 말이다.


참 아쉬웠다. 대개 가르치는 일을 선택하신 분들은 열정이 있고, 잘 가르치는데 보람을 느끼셨다.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해 보려고도 하셨고, 아이디어들도 있었다. 적절한 동기부여와 방향성 제시가 잘 이루어 진다면 월급을 올려주지 않아도 충분히 뿌듯함과 성취감만으로도 조직과 교육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선생님들이라 생각했다.

작은 조직이든 큰 조직이든 조직에서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다시 한번 알게 된다. 관리부서나 컨설팅회사에서는 경영학의 갖가지 이론들을 바탕으로 ‘조직 쇄신’을 할 수 있다 말한다. 하지만 내가 다양한 조직을 겪어본 결과 이론과 현실은 참으로 다르고, 리더의 강력한 의지와 현명한 리더십을 찾아보기도 정말 힘들다. 너무 쉽게 포기하기는 싫지만, 결국 ‘개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떠나는 것 뿐.





1년만에 대학원 입학이 확정되었다.

쉬는 날도 없이, 불평도 하지 않고, 나는 1년간 조용히 일하다가 어학원을 그만뒀다. 가장 무서운 고객은 불평하는 고객이 아니라, 아무말도 하지 않고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고객이라 했던가. 오히려 회사에 적극적으로 요구사항을 말하는 선생님이 오래 다닐 생각을 하는, 그래서 회사를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사람이다. 나처럼 가만히 있는 선생님은 회사 입장에서 ‘좋은’ 선생님이 아니다. 조직의 성장에 관심이 없는, 떠날 생각을 하는 ‘무심한’ 선생님이다. 보스들이 이를 이해하고, ‘불만 많은’ 선생님들을 더 귀중히 여기고 그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줘야 할텐데.

내가 걱정하건 안하건, 그 어학원은 여전히 건재하고,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하지만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가면 갈수록 그 곳의 평판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한국의 중소기업 조직문화와, 초등학교 영어 사교육에 대해서 실망만 잔뜩 안고 나는 어학원을 나왔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목이 쉴 지언정 수업을 하고, 수업연구를 하고, 자료를 만들고, 교실을 꾸미고,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성인들과 사회생활을 하는 것보다 훨씬 행복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귀여웠고, 그들이 뭔가를 해내는 것을 보는 것이 신기했고, 나는 내가 언제나 바랬던 선생님 - 최대한 많은 칭찬을 해주는 선생님 이 되려고 노력했다. (내 인생 단 한명 뿐이 만난 적이 없다)

인정하기 싫지만 “너는 선생님이 천직이야” 라고 했던 엄마의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