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한 자녀 넷이 전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몇달 전, 박사(PhD) 과정을 위해 미국으로 간 셋째가 잘 도착했다고 그룹 영상 통화를 했다.
한국에서 초,중,고,대학, 대학원까지 나온 토종 한국인 셋째가 미국에서 어찌 박사 공부를 할까 우리는 다들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고양이를 데리고 혼자 장거리 비행을 하고, 낯선 집에 입주해서, 새로운 교수님과 연구실 동료들을 만난 셋째는 우리의 걱정이 무색하게 너무 잘 적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는 너무 행복해!'
그 말을 듣고 우리는 모두 안심했고, 각자 언젠가 셋째를 보러 미국에 놀러갈 준비(?)를 시작했다.
셋째의 미국행까지.
그러고 보니 우리 4남매는 각자의 길을 걷느라 집을 떠나 4개국에 살게 되었다.
나는 첫째, 문과 출신으로 네덜란드에서 조직 문화와 글로벌 정책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둘째는 공대(컴공, 자동차 공학)출신으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대기업 자율주행 연구원의 삶을 살고 있다.
셋째는 자연과학대 출신으로 한국에서 연구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국비 유학생이 되어 미국 인디애나에서 박사를 시작했다.
넷째는 간호대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다른 집을 보면 그래도 형제 자매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비슷한 공부를 하고, 같은 나라로 유학을 가거나 이민을 가고 그러는 것 같은데, 우리 집은...뭐지? 사실 나도 동생들이랑 가까운 곳에 살고 싶다. 낯선 타지에서 의지할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심지어 우리 부모님은 서울, 수도권도 아닌 지방 토박이로, 그나마 광역시에 살다가 현재는 읍/면/동 규모로 더 내려가셨다. 한국 갈때마다 부모님 집까지 찾아가기 힘들어 죽겠다.
우리 가족은 이제는 다 같이 모이기도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는데, 언제 이렇게 글로벌한 집이 된거지? 실제 집안 분위기는 전혀 글로벌 하지 않은, 아주 걸쭉한 지방 사투리가 난무하는, 한국 가족인데 말이야.
특이한 것은 또 있다.
우리 부모님은 요즘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좋은 집안'도 아니고, 금수저도 아닌, 말 그대로 결혼 할 때 전셋집 하나밖에 없었던 자수성가 유형이다. 그렇다 보니 두분 다 고학력자도 아니다.
아빠는 장남이었기에 가난한 집안에서 지원을 받아 지방대 졸업을 하셨지만, 사무직이 아닌 기술자로 평생을 살아오셨고, 엄마는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옛날 그 시절의 검정고시 고졸 에서, 40대가 넘어서야 전문대 졸업장을 받으셨다.
우리 부모님은 네명의 자식을 키우면서 아무도 의사, 판사가 될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애는 없다는 것을 일찍부터 느끼셨고(?) 그래서 대학조차 굳이 가고 싶지 않다면 된다고 하셨다.
그랬는데, 우리 넷이,
전부 석사까지 받고 (막내는 석사 준비 중) 셋은 유학, 그리고 박사까지 한다니????!!!! 아직도 엄마 아빠는 자랑스러워하시면서 동시에 여전히 '우리는 상상조차 못했다'라고 하신다.
두살 터울로 90년생, 92년생, 94년생, 96년생.
이렇게 넷을 낳고 키운다는 것만으로도 남들은 혀를 내두르고, 존경 받을만한 일이라고 하는데, 넷이 아무도 부모님의 아픈 손가락이 되지 않고, 사고 없이 모두 무탈하게 장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운이 좋고, 감사하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렇게 치열하게 치고 박고 싸웠던 네명 모두 자아 실현을 해 나가고 있고, 서로 멀리 떨어져 독립적으로 살면서도 부모님과, 형제 자매와 화목하게 지낸다. 서로에게 낯간지러워 하면서도 꼬박꼬박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의외로 굉장히 흔치 않은 일이다.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그래서 이 글 모음집을 쓰게 된 계기가 된 것은,
20대, 30대 가장 정신없고 혼돈한 시기를 지나고 있을 장성한 자식들 네명 모두 하나같이 입을 모아
'행복하게 살고 있어' 라고 진정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다, '자식을 낳는다면, 될 수 있다면 다자녀로 낳고 싶다', '엄마처럼 애를 키우고 싶다'라고 말한다. 건강하지 않은 부모 자식 가족 관계로 평생을 상처를 치유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 부모님을 존경하며 나도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라고 말하는 자식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우리 부모님이 흠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언제가 행복하기만 하다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4남매의 일원으로서 각자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고,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너무 힘들어'라고 말한 시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4남매는 대체적으로 건강한 관계, 건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 부모님, 특히 주 양육자였던 우리 엄마의 자식 교육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있어도 자식이 불행하면 아무 소용 없다.
어떻게 키우든 결국 부모는 궁극적으로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니까.
이 글들은 나를 돌아봄과 동시에, 우리 부모님, 우리 엄마를 돌아보고, 그리고 결국에는 엄마에게 모든 것에 감사하다고 말하기 위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