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 코리아의 어학당 연기를 보고
외국에 사는데도 나의 유튜브에는 한국 쇼츠들이 뜬다. 덕분에 나는 한국 유행 밈들을 그나마 알게 되는 것 같다. 한국 snl 보다는 미국 snl 과 late show, 스탠드업 코미디들을 먼저 보기 시작했고, (원래 미국 snl이 먼저 시작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러고보면 웃긴 풍자를 통해 미국 뉴스와 문화를 더 많이 배운 것 같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거나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들을 자연스럽게 '공부' 하면서 말이다.
예를 들어 Marcello 가 연기한 스페인어 수업을 보면, 히스패닉계 미국인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서 스페인어 수업을 듣는 상황을 개그로 표현해 냈다. snl 크루인 마르셀로의 경험담을 토대로 만들어낸 대본인데, 집에서 스페인어를 써서 2개국어자인 히스패닉계 학생들이 영어만 모국어로 쓰는 '미국인' 스페인어 선생님보다 스페인어를 잘해서 수업 내내 선생님이 진땀빼는 내용이다. 미국에서는 제 2외국어로 학교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 (내 과거 경험이 떠올라서 더 웃겼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영어도 못하는데 스페인어 수업을 강제로 들었던 나 ㅋㅋㅋㅋ) 선생님과 미국 학생들의 영어 액샌트가 심하지만 자신감에 찬 기초 스페인어, '학점'을 높게 받기 위해 기초 스페인어를 수강하는 히스패닉계 학생들, 오히려 학생들이 선생님보다 더 잘가르친다 등등 코미디를 이해하면 그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
https://youtu.be/C25VhUJn038?si=nh_qwdVToXSlWV1a
우연히 snl 코리아의 어학당에서 여자 크루들이 연기한 외국인 학생들을 보게 되었다.
이 코너도 현재 한국사회를 반영한다. 늘어난 어학당 학생들, 특히 동남아에서 온 학생들도 늘어났고, 케이팝을 좋아해서 온 외국인 여학생들도 많다. 열심히 공부하지만 여전히 '외국인'의 발음이 묻어나는 '외국인'들이 '우리 사회'에 어느정도 적응해서 마치 '우리 나라 사람'처럼 욕도 하고 술집도 가는 그런 모습.
주현영, 윤가이 등 능력이 뛰어나고 너무 웃긴 크루들을 나는 너무 좋아한다. 그런데 각자 외국인 학생들을 연기한 그 쇼츠를 보는 순간 나는 나의 한국어 액샌트가 묻어나는 영어를 외국인 친구들이 따라했을 때를 떠올렸다.
내가 십오년 전(젠장 어느새 15년도 넘었네), 처음으로 미국에 혼자 갔던 16살, 인종차별이라는 것이 뭔지도 아무것도 몰랐던, 순진 무구한, 학교에서 유일한 아시안이었던 때였다.
호스트 시스터의 친구들이 놀러와 거실에서 다같이 놀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내 영어 발음을 가지고 놀렸다. 너는 이렇게 말한다면서.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나한테 Garage 와 probably 를 발음해보라고 시켰었다. 그놈의 가라지는 왜 그렇게 발음이 안됐던지.
나는 방으로 들어가 엉엉 울었고 호스트 엄마가 와서 나를 위로해 주었었다. 그 친구들은 내가 그 정도로 반응할 줄 몰라서 당황했고, 나는 그 친구들을 용서했다. 그 당시 나는 영어 못하는 나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지 남을 탓할지 몰랐고, 그 친구들은 정말 놀리려는 의도 없이, 내가 말하는 것이 귀여워서, 그렇게 했던 거니까. 두 번 다시 친구들과 그런 일은 없었는데, 대신 유치원생과 저학년 꼬맹이들에게 비슷한 일을 당하기도 했었다. 뭘 모르는 아이들은 더 잔인하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더 잔인하게 꼬집는다. 메롱메롱 칭총칭총이라고 한대요~ 유치원생한테 발음 교정을 당해본 적이 있는가? 땡큐가 아니라 Th 발음으로 쌩큐야. 엿같다.
미국 이후로 많이 당하진 않았지만, 비슷한 일들은 있었다.
프랑스 액샌트나 독일 액센트 등 유럽 액샌트가 강한 영어는 우와~ 해 주면서 (덜 비하하는 느낌이랄까) 아시안 액샌트로 하는 영어는 무시하는 느낌.
넌 (코리안) 액샌트가 참 없구나 하는 말조차 어찌보면 조금 상처받았다. 왜 내가 코리안이라 코리안 액샌트가 당연히 있을거라 생각했니?
아무렇지 않게, 비디오 마지막에 우리 아시안 고객들이 하는 것처럼 쌩유~ (중국식 영어 액샌트로) 하는 말을 넣자고 하는 '백인' 친구들. 우리끼리 하는 인사이드 조크인데 뭐 어때. 물론 우리(한국인 멤버-차마 중국인 친구한테는 감히 물어보라고도 하지 못했다) 가 반발해서 그 말은 무산되었지만, 진지하게 한 친구가 이게 왜 문제인거야 라고 물을 때 느꼈던 충격.
아무렇지도 않게, 왜 웃으면서 넘기지 못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왜 웃자고 하는데 죽자고 덤비냐고.
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그런 액센트를 쓰는 사람이 많은게 사실이라 사람들이 공감하고 웃는건데, 사실을 표현하는거 가지고도 비난하냐고. 그런 의도가 아닌데 왜 프로 불편러처럼 구냐고.
우리는 액센트를 쓰는 사람을 놀리거나 비하하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귀엽고 웃기게 생각하는 거라고.
나는 그저 , 우리가 동경하던 다른나라에 가서, (마치 어학당의 여학생들이 케이팝을 동경해 한국으로 온 것으로 묘사되듯), 타국의 언어를 열심히 배우고 '현지인'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snl에서는 묘사되지 않았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는 타국에 가서 공부하고 생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영어를 배우고파서 온 한국인 유학생의 어눌한 한국식 영어 억양을 강조한 개그 프로를 그 나라에서 방영하는 것을 보는 것을 상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한단계 더 나아가 나는 어째서 특히나 어학당의 '여학생'들을 귀엽고 웃기게 묘사했는지도 생각해 보았지만 더 길어질 것 같으니 하지 않겠다. 이것도 나의 경험과 관련된다. 한국인 '여자'였던 의 한국식 악센트가 섞인 영어를 '순진하고 귀여운 아시안계 여자' 로 해석하던 외국인들.
나는 다른 나라들을 겪으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도 아닌, 호주+뉴질랜드+영국+ 유럽식 영어가 뒤섞인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영어 억양으로 말한다. 한국식 억양이 섞인 영어를 기대하다가 그 악샌트가 아니면 좀 놀라는 듯한 것도 은근히 거슬린다. 그럴 때면 그래도 나는 '한국인'이니까 이 사람들이 나한테 그걸 기대할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럴진데, 실제 외국에서 나고 자란 아시아계로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볼 때마다 얼마나더 짜증날까.
어쩌면 내가 한국식 영어 억양을 없앤 것이 그것 때문에 겪었던 인종차별적 발언들, 직간접적 차별, 무시, 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너희가 그렇게 '무시하는' 악샌트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고. 이제는 그 단계를 지나, 다시 한국식 악센트를 잃은것이 조금 후회된다. 이게 나라고. 이게 나의 뿌리고, 나의 정체성이라고 당당하게 할걸. (생각해보니 snl처럼 희화화 되는데 당당하게 하겠냐고)
어떻게 포장해도,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액샌트 희화화 개그 소재에는 아주 조금이라도 '조롱'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 너희가 아무리 '우리 나라'를 좋아하고, '우리말'을 잘하고, '우리 문화'를 익힌다 해도, '너희'는 '우리'가 아닌 '너희'이고 그건 너의 악센트가 있을까지, 영원히 따라다닐 꼬리표, 라는 배제도 무의식중에 담겨있다.
우리는 우리가 외국에서 당하기 싫은 일을, 우리 나라에 있는 외국인들에게 그대로 하고 있다. 실제 어학당 베트남 여학생, 일본 여학생에게 물어보라. 이 코너를 보고나서 본인의 한국어 액센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액센트가 너무 귀엽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창피하고 없애고 싶다고 생각하는지.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기 위해 혀까지 늘리는 수술(?)을 이야기하던 한국인이 똑같은 잔인한 잣대를 외국인에게도 들이대다니.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
그런 말을 써 봤자, 욱하는 반발심 혹은 강력한 자기 방어 기제만 불러일으킬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때로는 오히려 자기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주장'을 절대 굽히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참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가끔 강력한 한방을 먹여야 한다라는 말은 이해한다.)
나는 오히려 안쓰럽게 생각한다. 한번도 자신의 겪어보지 못했기에 다른 관점을 상상조차 해볼 수 없었구나. 그래서 몰랐구나. 어떻게 2023년에, 이 코너를 기획하고 방영하는 과정에서,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을 수가 있을까. 근데 이거 좀 문제 될수도 있는거 아니에요? 라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승인까지 받았을까.
나는 이 snl 코너가, 이 글의 시작에서도 말했듯 한국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사회 전반의 숨겨진 차별에 대한 awareness -인식이 낮은 사회. 여전히 스테레오 타입을 인지하지 조차 못하는 사회. 한국 사회가 그렇게 추구하던 '글로벌' 사회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