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 인도 _ 델리
사실 나는 인도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누군가는 마음속에 불이 나면 가는 곳이 인도라는데, 왜 굳이 인도여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더럽고 위험하다는 말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인도가 예전부터 내 꿈의 여행지 목록에 들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럼 내가 인도에 간 이유는? 세 얼간이라는 인도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온 판공초를 한번 직접 보고 싶다고 인도에 간거다! 내가 생각해도 좀 어이가 없는 이유긴 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 안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그 이유가 내게는 굉장히 중요했다. 내가 영화를 보던 때, 나는 한참 우울했었다. 뭔가 인생이 재미가 없어서. 그래서 한번도 보지 않은 인도 영화를 시도해 본거다. 제일 유명한 인도 영화 중 하나가 ‘세 얼간이’라고 추천에 뜨길래 봤는데, 꽤 재미있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산에 둘러쌓여 있는, 눈이 부시게 파란 해변에서 극적인 재회를 했다.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도대체 저곳이 어딜까. 세상에는 정말 내가 상상도 못했던 곳이 많구나. 이국적인 영화에 등장한 이국적인 장소. 검색을 해보니 인도에 있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 판공초라는 호수라고 했다. 저렇게 새파란 호수가 있다니. 나는 죽기 전에 저곳을 가볼 수 있을까. 그래서 판공초가 그렇게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어딘가 정말 먼 곳인것만 같아서. 내가 감히 가볼 수도 없는 곳. 그래서 판공초를 보러 간다는 건 내가 감히 가보지 못할 것 같은 곳에 가보는 것, 감히 해보지 못할 것 같은 것에 도전해 보는 것이기도 했다. 인도에 가자고! 그렇게 인도 델리 행 비행기에 올랐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만큼 인도에 대해 아주 무지한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거기다 퇴사하자마자 가는 거라, 나는 지쳐 있었다. 여행 계획이고 뭐고 우선 아무데나 한국을 나가서 좀 쉬고 싶었다. 인도에서 한달동안 로컬 봉사활동 하면서 작은 마을에서 여유롭게 쉬고, 재충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정보도 얻고, 그렇게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고 나서 나머지 한달을 여행하기로, 그렇게 마음먹었다.
나의 야심찬 계획은 좋았는데, 방콕에서 델리행 비행기를 타자마자 훅 끼쳐오는 낯선 느낌.
이 비행기 안에서 아시아인이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똑같은 사람들 틈에 섞여 답답하다고 느끼다가, 갑자기 나 혼자만 너무 눈에 띄는 이방인이 되었다. 다들 나보다 짙은 피부에 까만 머리카락, 그리고 그에 대조되어 더욱 눈에 띄는, 그들의 눈빛.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구나.
델리공항은 인도 수도 공항 답게 최신식에 모던하고 멋졌다.
나는 델리가 생각보다 꽤 괜찮네? 라고 생각했으나 곧 그것이 나의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공항 철도를 타고 델리역에 도착해 밖으로 나오자 마자 온몸으로 델리를 느낄 수 있었다.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 훅 하고 나를 덮쳐오는 온갖 매연이 뒤섞인 텁텁한 바람, 정신이 하나도 없는 강렬한 소음, 그리고 냄새. 나라마다 냄새가 다르지만, 델리의 냄새는 정말 강렬하다. 온갖 향신료와 땀과 매연, 오물과 향내가 뒤섞인 냄새. 만약 이 냄새를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통에 담아 기념품으로 두고 싶다. 그 냄새를 맡으면 델리에서 느꼈던 감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훅 기억날 것만 같으니까.
델리역에서 빠하르간지 메인 바자르에 위치한 나의 숙소를 찾아갈 때까지, 나는 혼이 쏙 빠져버렸다. 이미 공항 철도 기차표를 타는데서부터 역무원에게 사기 당해서 100루피를 날렸다. 서울에 가면 눈뜬 채로 코 베어가는 것도 모른다는데 델리는 코 뿐 아니라 손가락, 발가락, 속눈썹까지 뽑혀가게 생겼다. 델리역 앞은 그야말로 자동차, 릭샤, 달구지, 소, 사람, 개, 자전거가 다 뒤엉켜서 난장이었다.
델리가 혼잡하다,라는 건 인터넷에서 읽긴 읽었는데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무식해서 용감하게 델리에 입성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뒤돌아갈 수도 없다. 이왕 온거, 그래, 가 보자!! (쉬고 싶다…그냥 얌전히 휴양지나 갈걸..)
델리역과 빠하르간지에서 어리버리한 초행길 여행자들을 상대로 사기꾼들이 활개를 친다고 해서 여기서 잡혀가면 정말 끝장이다, 라고 생각하고 앞만 보고 걸었다. 델리역 2층 플랫폼으로 올라가서, 기차역을 건너 역 뒤편으로 넘어 가라고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2층으로 올라가야 하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보안 검사를 하고 들어가야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에 힘 빡 주고! 배낭 딱 메고! 그렇게 기차역을 건너 가는데 사람이 정말 너무너무너무 많고, 정신 하나도 없고, 날씨는 더워서 땀은 주륵주륵 나고, 육교는 끝이 없이 길었다.
숙소까지 가는데 많은 블로거들이 조언해 주신 대로 역시나 ‘꾼’들이 엄청나게 따라붙었다. 뭔가 내가 어리버리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어디선가 나의 틈만을 노리고 있던 인도 아저씨들이 등장해서 말은 건다. 안녕? 어디서 왔어? 인도 처음이야? 너 어디가니, 뭐찾니, 어디서 왔니, 거기 아니야 저쪽인데. 날 따라와봐 등등.
이 와중에 또 다른 릭샤꾼이 지나가면서 나에게 자꾸 따라오라는 사람 조심하라고, 이렇게 친절하게 조언도 해주고 간다. 허허, 이 험한 델리 시장바닥에서 누굴 믿고 누굴 믿지 말아야 할지 정말 모르겠네.
숙소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는 색색깔의 장식과 조명을 파는 가게가 있었고, 좁은 골목 바로 안쪽에 간이 칸막이 같은게 있었는데 그게 뭔가 했더니 남자들이 소변 보는 곳이었다. 웁! 어쩐지 지린내가 진동하더라. 그런데 또 그 옆에서는 꼬치를 구워서 팔고 그걸 또 맛있다고 사먹고 있다. 위생 관념이 좀 떨어지긴 한다. 숙소에 들어가서 누웠는데 창밖으로 쉬지않고 들리는 자동차 경적소리. 이런 거리에서는 경적을 울리긴 울려야 할것 같은데, 그 마음 이해가 가긴 가는데, 그래도 너무나 시끄러운 것은 변함이 없다.
나는 내가 처음 도착해서 익숙치 않아 이렇게 정신이 없고 이 곳이 특히나 더 번잡한 곳이라서 그럴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여기는 델리 여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나 다른 나라, 인도.
델리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부랴부랴 ebook으로 인도에 대한 책을 다운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대체 인도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인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배우기 시작했다.
시중에 나와있는 수많은 인도 여행기를 제외하고, 나에게 가장 도움을 주었던 책은
-12억 인도를 만나다(김도영) ,
-이야기 인도사(김형준),
-또다른 인도를 만나다(공영수),
-인도, 신화로 말하다(현경미) 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들 덕분에 인도의 역사, 지리, 신화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인도의 문화와 사람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이 내가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 더 열린 마음으로, 더 여유롭고 너그럽게 이 나라를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여행 내내 도대체 여기는 왜 이래? 이 사람들은 왜 이러는 거야??를 연발하며 헤매고 다녔을 수도. 우리나라의 지리적 위치상 주변 강대국을 논할 때 대부분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꼽는데, 아시아 권에서 인도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던 시기, 경영 수업시간에 비즈니스를 아시아로 확장할 때, 거점을 인도로 둘 것인가, 한국으로 둘 것인가 라는 질문이 나왔었다. 내가 충격 받았던 것은 한국인인 나 빼고, 반 친구들 모두 다 인도에 거점을 둔다고 했던 것이었다. 왜? 시장이 크고, 인프라가 좋고(그 당시만 해도 인도가 한국보다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IT인재도 많고, 영어를 잘 하니까!
나는 혼자서, 한국은 빠른 인터넷 망을 포함한 인프라가 훨씬 좋고, 시장 반응도 빠르고, IT강국이고, 영어도 왠만큼 한다 라고 주장했는데 다들 딱히 공감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 때까지 나는 인도랑 한국을 어떻게 비교하냐고 한국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었는데.
한국인인 나만 몰랐던 인도의 강점이 대체 뭔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알아가는 거다! 인도 여행기의 마지막에는 나 나름대로 인도는 어떤 나라라고, 인도 사람들은 어떻다고 어렴풋이나마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