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인 남인도행

[인도-방갈로르, 마이소르]

by ClaraSue


비행기표를 보니 가격도 얼마 안되겠다, 숙소비 식비 안든다는데 한번 가 볼까.

모든 이유를 다 떠나서, 나는 지쳤고 외로웠다.

원래 히말찬 지역이 아니면 인도 여행을 딱히 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런지 라자스탄 지역 여행도 별로 신이 나지도 않고. 그래, 한번 가보자 갈데까지. 남인도로.



9시 비행기인데 늦잠을 자서 7시에 일어나 버렸다. 국내선이니 빨리 가면 되겠지, 하고 택시 불러달라고 400루피를 줫더니 릭샤를 불러주는 거다. 너무 화가 나서 당장 100 다시 돌려달라고 따져서 받아냈다.

내가 왠만해서는 안따지는 사람인데 여기와서 따지는 기술만 늘었다.

그냥 넘어가면 내가 너무 호구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차라리 완전 고급 호텔이면 이렇게 돈 뜯어내려고 안할텐데, 저렴하게 지내려고 하니까 오히려 더 바가지를 씌우는 것 같다. 어쨌든 정말 이런 상황들이 다 싫고 떠나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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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다고 여기로 왔는데 여기도 또 떠나고 싶은건 마찬가지다.

머무를 때는 떠나고 싶더니 이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보니 이제 또 마음 둘 곳을 찾아 머무르고 싶다.

인간의 간사한 마음이 이런 것인가.

머물러야 하는가, 떠나야 하는가.



엄청 짜증나는 일이 많았는데 이전에 만난 정윤이가 얘기해 준 '개판 오분전 나라' 라는 말을 생각할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면서 기분이 조금 풀린다. 맞아, 짜증나지만 그건 이 나라가 개판 오분전이라 그래. 그러니 어쩌겠어. 이렇게 웃어넘길 수밖에. 웃음의 힘이란 그 어떤 부정적인 감정을 이겨내는 마법이다.


자이푸르도 나름 라자스탄의 주 도시라 공항을 조금 기대했는데 왠걸 공항은 기억에도 남지 않을 만큼 평범했다. 늦지 않게 9시 비행기를 타고 정신없이 졸았더니 2시간만에 뱅갈로에 도착했다.


IMG_0247.jpg 공항 천장의 무늬


뱅갈로는 영어 이름이고 이제는 방갈루루가 공식 이름이다. 나는 뱅갈로랑 방갈루루가 같은 도시인지도 처음 알았다! 당연히 뱅갈로인줄 알았는데 그게 영국 식민지 시대 이름이었다니. 하긴,인도도 우리와 같은 식민지 시기를 겪은 나라였다.훨씬 긴, 대영제국의 식민지 시절.



텐진이 말해준대로 공항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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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버스는 생각보다 비쌌다. 220 루피나 하는데 비싼 만큼 에어컨도 있고 우리나라 공항버스처럼 쾌적하다. 중간에 고가도로에서 버스가 멈춰서 왜 여기서 멈추나 했더니 같이 버스 타고 있던 인도 할머니가 멀리해서 토를 하느라 내린 거다. 버스가 아무리 좋아도 여기는 인도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주었다.

1시간이나 공항버스를 타고 방갈루루 시내를 구경했고, 드디어 기차역에 도착해서 3시 마이소르행 표를 샀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구경하니, 지금껏 내가 방문했던 어느 인도 도시들보다 꽤 나무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검색해보니 역시나 별명이 garden city라고 한다.(정원의 도시)


bangalore.jpg 출처 구글
IMG_0989.jpg 구름낀 기차역


기차역에서 표 파는 아주머니가 나에게 혼자서 여행하냐고 헐...그러면서 혀를 내두른다.

그래도 기차표를 90루피 주고 저렴하게 사서 기분이 좋았다.

거지소굴같은 델리역보다 훨씬 나았다.

짐 맡기는 곳도 따로 있어서, 나는 맘편히 짐을 맡기고 남은 2시간 동안 기차역에서 일기 쓰고, 샌드위치 사먹고, 드디어 핸드폰 유심도 샀다. 아 진작 데이터 충전할걸. 무슨 돈을 아끼겠다고 쌩쑈를 한거지.



기차역 주변을 구경하다 보니 확실히 남인도는 북인도와 너무도 다르다.

풍경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냄새도 다르다. 사람들은 더 키가 작고 피부도 더 어둡고,

북쪽보다 나에게 덜 관심을 보인다.

기차를 막상 타서 어디 앉아야 하는지 헤매다가 앞쪽에 대충 앉았다.

에어컨 따위는 없고 천장에 선풍기가 달려 있다. 창문을 여니 나름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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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의 풍경을 구경하며 2시간만에 마이소르에 도착했다.



마이소르에서 택시를 타고 2시간동안 또 달리면 텐진네 마을이라고 했다.

기차에서부터 읽던 소설을 계속 읽느라 시간 가는줄 몰랐다.

다행히 도착하니 친구들이 마중 나와 있다 . 그 잠깐이라도 인연이 있었다고 어찌나 반가운지.



텐진네 삼촌 집은 정말 좋았다.

티벳 사람들이 남인도까지 내려와 정착한 마을이었는데 야자나무, 바나나 나무, 코코넛 나무와 옥수수밭이 어우러진 곳이었다. 마당에는 망고나무와 구아바나무가 자라고 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물이 안나오면 안나온다고 말씀해주시면 될것을 굳이 데워서 물을 갖다 주셨다. 덕분에 따뜻한 물로 샤워도 했다. 저녁밥은 티벳식으로 차려주셨는데 티벳 밥은 너무 한국식 밥 같다.

정원에 앉아 맥주마시며 노닥거리다가, 산책 갔다가,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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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걸려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까지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

북인도에서 남인도로 이렇게 덜컥, 아무 계획 없이 내려왔다는 사실이.

여전히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이래도 될까, 너무 예상을 벗어난 길인데.



나중에 알아보니 내가 간 곳은 Bylakuppe라는 곳으로 다람살라 다음으로 큰 티벳 망명지였다.

북인도 다람살라에서 남인도 빌라쿠페까지

나는 티벳과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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