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가슴 먹먹해진 개봉기.
십년만에 새 맥북을 샀다.
가장 비싼 '최신식 전자기기'라는 것은 가져본 적도 없는 내가
처음 맥북을 산지 십년만에.
어렸을때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까지는 아니지만
우리 부모님은 별로 전자기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핸드폰은 공짜폰만 쓰신다.
아빠는 '기계'를 좋아하시지만 딱히 '전자기계'에는 관심이 없으시고
엄마의 신조는 '최신기기'란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최신'이 아니게 되기 때문에 살 필요가 없다, 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도 어렸을 때부터 최신 핸드폰은 가져 본적도 없었고,
헤드폰도 구식, mp3도 구식, cd 플레이어까지 다 한발짝 늦은 구식만 가졌다.
한마디로 한번도 '쿨'한걸 가져본 적이 없단 말이다.
아이팟이 나왔을 때, 친구가 산걸 보고 나도 따라 샀는데 짝퉁 중국산 아이팟이었다.
심지어 그것도 나는 걔가 가지고 있는 아이팟과 무슨 차이가 나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지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내가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가서 문화 충격을 받아버렸다.
진짜, 아직 우리나라에는 맥이 널리 퍼지기 전이었다. (아이폰이 2009년에 들어왔고 내가 프랑스를 2010년에 갔으니까. 내 주변에는 아이폰 갖고 있는 사람도 많이 없었다. 아이폰 있다고 하면 구경했다고.)
나는 지금껏 컴퓨터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과모양 컴퓨터를 모든 아이들이 다 가지고 있었다. 나만 빼고.
나는 가지고 다니는 컴퓨터는 다 '노트북'인줄 알았는데(이건 심지어 콩글리시였다. 실제 영어로는 laptop이었음,) 이건 노트북이 아니라 '맥북'이라고 했다.
친구 컴퓨터를 한번 써 봤는데 심지어 클릭도 못할 지경이었다. 어떻게 쓰는지도 감도 못잡았다.
인터넷은 열지도 못했다. (익스플로러가 아닌 파이어폭스, 사파리였으니까.)
그 터치패드와 무게는 진짜, 신세계였다. 신세계.
지금은 진짜 많이 외국도 나아졌는데 한때는 정말 외국 애들 노트북은 다 맥북이었다.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내가 살면서 그렇게 찌질이처럼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 '맥북'이라는 것을 한번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 들어오자마자 엄마한테 돈을 빌려서 강남 매장에서 바로 맥북 에어를 샀다. 그러고보니 그때는 애플 매장도 없었다. (어디서 산거지..?)
가장 저렴하게 샀는데도 100만원이 훌쩍 넘어서 엄마는 충격을 받으셨더랬지.
그때 처음 산 맥북 에어를 혼자 하나씩 인터넷 찾아가며 공부해서 썼다. 부트캠프도 깔았었고, (결국에는 윈도우 노트북 하나 더 사서 혼용했다.ㅠ) 파워포인트 이런것도 호환도 잘 안되고, 공인 인증서, 결제, 쇼핑몰, 각종 보안 프로그램, 은행, 완전 하!나!도! 안됐다. ㅋㅋㅋㅋㅋㅋㅋ한국에서 맥 쓰느라 고생했었지. 아니 한영키부터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축키도 너무 다르고.
몇개의 싸구려 노트북으로 버티던 시간이 지나 이제는 내가 새로운 노트북을 사야만 하는 때가 돌아왔다.
일년 넘게 고민했다.
돈 좀 더 모으면 사자, 조금 만 더 버텼다가 사자....
뭘 사는게 좋을까, 윈도우 기반이 좋을까 그래도 맥북을 사볼까. 얼마나 재고 또 쟀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결국, 엊그제 큰맘먹고 맥북 에어를 사버렸다.
정확히 10년이 지나고 나서
이제는 온라인으로.
그렇게 재고 재다가 많은 노트북 중 왜 이걸 샀냐고?
다른 노트북을 사도 계속 맥북이 생각날 것 같아서.
맥북이 배송되어 와서 처음 박스를 열었을 때, 깨달았다.
지난 10년간, 항상 새 맥북을 사고 싶었다는 걸.
그런데 나는 참아왔던 것이다.
10년동안.
참았다.
가지고 싶었지만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돈이 없다는 거였지만,
돈이 있어도 못 샀다.
항상 고민했다.
이 돈 만한 값어치가 있는 물건인가, 내가 이 돈을 여기에 써도 될까, 다른 노트북이 더 쓸모있지 않을까,
지금 정말 필요한 물건인가, 사치품이 아닌가,
내가, 이걸, 사도 될, 형편인가.
그래서 항상 미뤘다.
언젠가, 더 '형편'이 나아질 날을 위하여.
언젠가, 더 돈이 많아지고, 언젠가 꼭 나에게 더 필요할 그 때를 위하여.
지금도 심지어 이상한 죄책감이 든다.
이걸 내가 써도 되나? 나는 이걸 써도 될 만한 사람인가?
가난한 유학생인 내 분에 맞지 않는 물건이 아닌가..?
더 저렴한 걸 사고 남은 돈은 모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럼 나는 맨날 거지같은 한물간 기기나 싸구려만 써야되는 사람이야?
이래서 사람이 돈 안써본 사람은 돈이 있어도 못쓴다고,
좋은 걸 사도 마음이 가난해져 있으면 좋은걸 있는 그대로 즐기질 못한다.
내가 너무나 갖고 싶었던, 기다렸던 물건을 가지게 되어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마음과
두번째 맥북까지 오는데 10년이나 걸렸다는 울컥함,
한편으로는 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맥북의 가성비를 생각해야 하는 나의 '형편'에 대한 서글픔
이 한데 뒤섞였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쉽게 살 물건인데 왜 나에게는 하나 사기도 버거운 물건인걸까.
왜 나는 돈이 없는가.
(물론 내가 '돈'보다는 '경험'에 치중하는 사람이라 그렇긴 하지만)
여전히 돈에 얽매여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조금 우울하다.
과연 나는 아이패드를,아이폰을, 언제 업데이트 할 수 있을까.
애플 펜슬을 언제 살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건,
새로 산 맥북이 나에게 벌써 엄청 소중해졌다는 거다.
나는 10년, 그래 첫 맥북과의 3년을 빼고 7년동안,
너를 기다려 왔으니까.
예전에는 대강 사서 대강 쓰다가 대강 버리는 게 물건 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하나를 사더라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고민하고, 큰 맘 먹고 사서,
귀중히 여기며 소중하게 아껴 써서 오래도록 손때 묻혀가며 쓰는 것이 훨씬 나은 것 같다.
그게 미니멀 라이프의 핵심이기도 하지 않나?
진정으로 필요한 것만 남기고 그것들을 돌보고 감사히 여기며 사는 삶.
길게 참은 만큼 소중하게 써야지.
p.s
새로 오픈해 본 맥북은 우와, 십년만에 진짜 많이 업데이트 되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칩도 뭐 인텔이 아니고 m1으로 바뀌었고, 팬도 없어지고,
터치패드도 업그레이드, 작업환경 세팅도 잘되있고, 어플도 쓸 수 있고, 이제는 한국 온라인 환경도 거의 다 운영체제 상관없이 가능하도록 바뀌고...
그래도 예전 맥북 쓰던 감각이 남아있어서 아주 익숙하게 새 맥북에 적응했다.
내 새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