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째주]
일요일이 엘의 생일이었다.
목요일 저녁부터 방에 박혀서 넷플릭스 시리즈 the crown을 몰아서 보면서 집순이 능력만 기르고 있었다.
흐로닝언이 멀지만(그래 봤자 기차 타고 3시간) 그래도 방에만 있는 것 보다 친구가 초대해 줄때 가는게 낫겠다, 하고 토요일 오후에 집을 나섰다.
엘도, 엘의 부모님도 좋아할 만한 선물을 사들고 가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북부 네덜란드에서는 볼 수 없는 남부 덴보스의 보쉬볼을 사가기로 했다.
어차피 틸벅에서 덴보스로 간 후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갈아타는 시간동안 보쉬볼 파는 곳에 가서 대여섯개 포장해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보쉬볼도 제일 유명한 집이 있는데, 그 집이 다행히 기차역 앞에 있다.
덴보스는 스헤르토헨보스라고도 불리는 네덜란드 남부 노르트브라반트주의 주도이다.
틸벅에서 기차타고 20분 걸리는 바로 옆 도시라 구경 와 본적이 있다.
훨씬 도시 역사가 오래되어 그런지 시내는 틸벅보다 더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
도심을 관통하는, 건물 밑으로 통과하는 수로도 있는데 베네치아에서 곤돌라 타고 수로를 지나듯 작은 배를 타고 수로를 따라 갈 수 있는 관광 코스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시내에 있는 성당에 들어갔는데, 내부가 정말 멋져서 깜짝 놀랐다.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대성당을 많이 구경해 보아 웬만하면 큰 감흥이 없는데, 나에게 감명을 줄 정도면 대단한 거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알고 보니 네덜란드에서 손꼽히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으로 내부 오르간이 정말 유서가 깊고 유명하다고 한다. 성모상 앞에서 1유로를 내고 촛불도 하나 켰다.
코로나로 한국에서 너무 심심할 때, 우연히 ANNO라는 게임을 한 적이 있다.
도시 문명을 건설하고 무역항로를 개척하는 게임인데, 도시를 세울 때 항상 시장과 성당 혹은 교회를 가운데 두어야 주변에 거주지를 설정할 수가 있었다. 게임을 할 당시에는 왜 꼭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이 생겨야 하는 걸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우리 정서에는 ‘종교시설’, 그러니까 전통적 종교시설인 ‘절’이나 ‘신당’은 마을과 떨어진 산 속에 있는게 익숙하니까 교회가 도시의 중심에 있는게 어색했다.
그런데 다시 유럽에 오니 왜 게임이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역사적으로 유럽 도시들이 발달할 때는 그렇게 교회 중심으로 도심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성당과 그 앞의 광장(플라자)이 바로 구도심이었다.
이 전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지나치던 것을 게임을 하고 나서 다르게 보게 되었다. 완전히 시간 낭비는 아니었군.
덴보스 시내에 있는 대부분의 까페에서는 보쉬볼을 파는데, 그 보쉬볼을 공수해 오는 가게는 어차피 제일 유명한 ‘그 가게’, Jan de Groot 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맛집 앞에는 항상 줄을 서 있듯 이 베이커리도 항상 줄이 길다.
내가 흐로닝언으로 향한 토요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줄이 길어서 순간 기차 시간을 놓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사람이 빠졌다. 15분 정도 기다린 것 같다. 보쉬볼 말고도 맛나보이는 디저트가 많아 잠깐 고민했지만 가장 베이직하게 볼 6개를 사가기로 했다. 밖으로 나오니 내가 줄 섰던 것보다 훨씬 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와우.
오히려 기차시간이 남아서 역 앞에 있는 와플 포장마차(?)를 기웃거렸다.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멈추어서서 뭘 사먹는다. 뭘 먹나 하고 봤더니 와플, 츄러스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다.
뭐가 맛있을지 몰라 다른 사람들이 사가는 걸 지켜보니, 뭔지 모르지만 동그란 구멍 안 난 도너츠 같은 것을 산다. 나도 같은 걸 주문했다.
이 음식의 정체는 올리 볼이었다. 기름에 튀긴 볼이라는 의미로, 네덜란드에서는 새해에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설탕에 찍어주는데, 호떡같은 맛이다. 그래서 네덜란드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마트에서 파는 올리 볼 반죽으로 호떡 만들어 먹는 레시피가 공유되고 있다.
난생 처음 올리볼을 먹어 보고 흐로닝헌 행 기차에 올랐는데, 내가 지금껏 타본 기차 중에 제일 후졌고 더럽다. 네덜란드 기차들도 종류별로 다른데, 어떤 기차는 와이파이가 되고 어떤 기차는 안되고, 어떤 기차는 전기 기기 충전할 곳이 있고 어떤 기차는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도 조금 급했지만 왠지 절대로 가고 싶지 않아서 참았다.
다행히 엘이 기차역에 마중나와서 금세 엘네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엘네 집 근처에 있는 ‘네덜란드 식’ 중국 음식을 시켜 먹었기로 했다.
그런데 메뉴에 나온 음식 이름은 내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중국 음식이었다.
Babi pangang, Sate ajam, Bami goreng, Foo yong hai, Tjap Tjoi…심지어 나시 고랭이 나오길래 내가 동남아 음식점과 중국음식점을 착각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중국 남부식인가 했더니, 네덜란드에서는 인도네시아 식 중국음식이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인도네시아가 식민지였기 때문일까.
나라가 작아서 종종 잊곤 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 나라도 한 때 여기저기 식민지 많이 가지고 있던 제국주의 국가였지. 그래서 남아시아 음식, 수리남 음식점도 많다.
나는 수리남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카리브해 근처에 있는 남아메리카 국가로, 역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다.
수리남 음식도 남아시아 음식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시켜먹거나 테이크 아웃해 먹기 좋은 음식이다.
엘과 수다 떨면서 토요일 밤을 보내고, 일요일 오전 일찍 일어나 엘의 생일 파티 준비를 했다. 디저트 겸 생일 케이크가 종류별로 3개나 되고, 거기에 내가 가져온 보쉬볼까지 당을 한껏 올리는 조합이었다.
점심 먹고 엘네 친척들과 친구들이 온다고 해서 우리는 근처 ‘산’으로 산책을 갔다.
말이 산이지 작은 동산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그것도 산이라고 나에게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해서 다같이 오른 것이다.
네덜란드 자체도 평평하다 보니 작은 동산에 올라도 흐로닝언 시내 전체가 거의 내려다 보인다. 우리가 새해에 산에 올라 새벽을 맞듯, 여기 사람들은 새해가 되는 밤에 여기 올라 야경을 보면서 폭죽을 터트린다고 한다. 저 멀리서 전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야외 클라이밍 월이 보인다.
흐로닝언에 이렇게 유명한 클라이밍 명소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집에 돌아오니 하나 둘씩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다들 차 마시고 디저트를 먹으며 의자에 앉거나 서서 수다를 떤다.
다들 네덜란드어로 이야기하고 나랑 대화 할 때만 영어로 이야기를 해 준다.
엘이 미안해 했지만 나는 사실 전혀 못 알아듣는 언어 사이에 뻘쭘하게 있는 것이 굉장히 익숙한 사람이라 별 신경 안쓴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오징어 게임 이야기도 하고, 서울같은 대도시의 삶은 어떻냐고 궁금해 하기도 하고.
오랫만에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껴보니, 괜시리 나도 우리 가족이 그리웠다.
돌아올 때는 엘의 친척언니 차에 동승해서 틸벅 근처까지 왔는데 오는 내내 얼마나 수다를 떨었는지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엘네 언니는 대학교 랭귀지 센터에서 외국인들에게 네덜란드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네덜란드어를 배우고 싶은 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반가운 사람이던지. 또 나도 모국어인 한국어를 가르쳐 본 만큼 모국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나이도 한 살 차이밖에 안 나서 30대 미혼의 연애와 결혼, 미래에 대해서도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방문해 본건 겨우 두 번이지만 이제 흐로닝언이 네덜란드 나의 고향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어쩌다 네덜란드 남부로 유학온 사람이 네덜란드 북부까지 섭렵하게 되었는지.
작은 땅이지만 남부와 북부도 언어차이, 문화차이가 있어 남부 사람이 북부가서 사는 것, 북부 사람이 남부 가서 사는 것이 그리 흔치는 않다.
네덜란드를 떠나기 전까지, 흠뻑 느끼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