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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Jan 05. 2022

네덜란드에서 다양성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2021.12월 둘째주]


가끔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한다.

만약 내가 네덜란드로, 튈부르흐 대학으로 석사를 하러 오지 않았다면.



유학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가보고 아님 말지 뭐! 할 수준의 일이 아니다.

돈도, 시간도, 나의 노력도 그만큼 투자해야 할 일이다.

나는 ‘최고의 결정’을 내리고 싶었다.

어느 나라로 가서, 어느 학교에 입학해, 어떤 공부를 하는 것이 나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인가.

그 결정을 내리는데 3년, 아니 3년이 뭐야, 5년 넘게 걸렸다.

한국, 중국, 뉴질랜드, 호주를 다 거치고 나서야, 드디어 결정이 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선택지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 중에서 결국 모든 걸 따져서 틸부르흐에 지원했고, 입학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던 공부고, 내가 원하던 전공이라

심지어 논문 읽는 것도 너무 재미있고 공부하는 것 자체는 신이 나지만

그래도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튈부르흐 대학은 암스테르담 대학만큼 나의 학교 이름값이 높지 않고,

그리고 여기서도 경영,경제 학부가 유명하다 보니 온통 이쪽에 애들이 몰려 있다.

나도 경영으로 갔어야 했나. 

나도 어떻게 해서든 더 ‘유명한 대학’으로 지원했어야 했나.

만약 내가 미국의 아이비리그나 영국의 유명 대학으로 갔었다면(몇년을 더 투자해서라도)

그럼 나는 더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을까.

졸업 후 세상이 날 더 알아주려나.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로 갔더라면, 해리포터같은 성에서 공부할 수 있었을텐데.




스쳐 지나가는 아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꽤 여기에 만족하는 편이다.

내가 원했던 ‘대도시’가 아닌 중소도시에서의 조용한 생활,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무엇보다 내가 찾아 헤맸던 그 어떤 전공도 바로 이 전공처럼 내가 원하던 수업을 뭉뚱그려 제공하지 않았다.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어찌보면 한편으로 너무 포괄적이 될 수 있다는 거)

언어학, 종교학, 사회 담론과 미디어, 인사(경영학), 젠더, 인류학, 철학, 사회과학 그리고 문화다양성과 불평등에 관하여 다 맛을 보여주고(?) 이 중에서 네가 관심 있는 것을 골라서 더 깊게 공부해봐 라는 식이기에 나의 자유도가 높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바로 

‘내가 공부하고 싶은 건가 아닌가’ 였기에 (그리고 재정적으로도...) 

나는 나의 현재가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어떤 선택이든, 우리의 선택은 되돌릴 수 없고, 미래는 현재에 달렸다.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으며 좋은 결과와 나쁜결과는 새옹지마처럼 번갈아가며 찾아오기에

인생의 갈림길들 중 어느 길이 나은지는 서로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선택을 믿고 나아가는 수밖에.






내가 배우는 수업이 인문계라 그런지, 네덜란드라 그런지, 달달 외우는 것은 요구되지 않는다.

간간히 교수님들이 중요 논문과 저자, 년도는 외우라고 하지만 

시험이나 테스트 방식은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얼마나 활용해서 나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차별’이 무엇인가에 대해 배웠다면

시험으로는 구체적인 케이스를 주고 이게 왜 ‘차별’인가를 여러 논문을 참조하여 논하시오, 라는 식이다.

이게 바로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상상하던 ‘대학’의 공부였다고!


나는 대학교 가면 진짜 이런 공부를 할 줄 알았다.

그래서 한국 대학교에서 참 실망했었는데, 어쩌면 그냥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나의 핑계일 수도.




수업은 진짜로 발표와 토론이 많다.

흥미롭게도 나는 반강제(?)로 토론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서른명 즈음 되는 우리 수업에서 유일한 동아시아계/아시아계 여자 이기 때문이다. 

(한명이라도 나는 아시아계-남아시아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없네? 허허)


이렇다보니 내가 어떤 이슈에 대해 발언하지 않으면, 아무도 ‘유럽,코카시안,크리스천’ 이외의 ‘동양, 불교, 아시아인’ 의 관점을 대변할 , 혹은 알려줄 사람조차 없는 것이다. 

나도 발표하기 싫은 사람인데 나도 모르게 가끔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입이 근질근질 해 진다.


사실 이 다양성의 부족이 우리 코스에서 가장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부분인데,

‘문화다양성’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교수진은 전부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야!

여자 한명, 그리고 터키계 교수님 한명. 그게 끝이다.

그리고 학생 들은 대부분 백인 더치, 남자는 셋밖에 없고, 외국인 학생은 5명 그것도 다 유럽, 미국계다.

색깔이라고는... 아프리카계 이민자 출신 한 명, 미국계 혼혈 유학생 한 명, 그리고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뭐야.

이러니 결국 주류 백인들이 문화적 다양성을 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올 수밖에.

하지만 적어도 작년, 재작년 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고하니 흥미로운 일이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도 특히 수업 분위기가 자유로운 편인데

가끔씩 나는 무섭다.ㅋㅋㅋㅋ

교수님이 질문 있어요? 하는데 손 들고 교수님, 쉬고 싶습니다 라고 당당히 말하는 학생들.

무슨 일만 있으면 쪼로록 이메일을 보내고 따져대는 학생들.

한국과 달리 시험이나 과제에 fail하면 한번 더 시험을 보거나 과제를 재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한국은 가차 없이 다음학기 재수강인데 말이야.





지난번 수업에는 교수님이 학생의 ‘젠더’ 호칭을 무시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일어 조금 시끄럽기도 했다.

줌 수업에서 분명이 한 학생이 ‘그/그녀’ 로 불리고 싶지 않다고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이 자기도 모르게 자꾸 그 사람을 ‘she’라고 불렀다.

그리고 반 전체를 지칭할 때 ‘guys’ (남자무리를 지칭)라고 한다, 는 걸로 교수님께 건의가 들어갔고

다양성이 전공인 수업에서 어째서 젠더 다양성을 무시하느냐 라는 걸로 다들 들고 일어났다.

(한편으로 다양성을 전공으로 하는 수업에서 '논란'이 생기고 시끄럽지 않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결국 교수님은 사과메일(?)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교수님은 이 사건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우리 수업은 민족지학적 방법 (한마디로 같이 살면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 에 대해 배우는 것이었는데,

교수님 자신을 ‘이 사람이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했는가’ 에 대해 분석하는 주제로 삼았다.

자신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어디어디서 태어나 젠더이슈가 한번도 논의되어보지 않은 사회 분위기에서 자라나고 교육받아....등등)

학생들에게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인터뷰 할) 기회를 주고

자신의 답변을 어떻게 분석할지에 대해 다같이 토론했다.



나는 그 권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현명하게도 자신을 변호하면서 수업 자료로 활용하는 교수님의 방식에 깜짝 놀랐고 감명받았다.

옥스퍼드 출신에 4개 국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는 교수님이 자신을 맥스라고 부르라고 할 때부터 프리하신 분인건 알았지만....

모든 교수님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네덜란드에 와서 진정한 ‘오픈 마인드’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생들이 학교의 고객'이라는 마인드가 있는 것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으면 큰일나기는 커녕, 스승을 반박해서 눌러버릴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이 

제자의 목표, 교육의 목표인 문화니까.

또 학생은 학교의 '서비스'가 맘에 안들면 바로 고객센터에 연락하거나 학교를 바꿔버리고, 교수님과 학과 피드백을 최저점으로 줘 버리는 것이다. 이 모든 '점수'들은 교수평가, 학과 평가, 대학평가에 들어간다. 한국보다 훨씬 더 투명하고 공정한 평가를 위하여. 그러니 학생들에게 잘 해줄 수밖에.




그래서 나는 네덜란드로 유학을 오고 싶었다.

한국과 다른 이러한 예시들을 직접 보고 느끼고 배우기 위해서.

여기서도 불합리하고도 불평등한 일들이 많지만 그럴 때면 반면 교사삼아,

한편으로 배울 만한 놀라운 것들은 이렇게 나의 것으로 흡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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