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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Jan 12. 2022

안달루시아, 낭만을 찾아갔다가 이야기를 안고 오다

[2021.12월 셋째주]

 

시험과 페이퍼가 마무리 되고 슬슬 학기가 정리 되어 가는데, 코로나 변이 오미크론이 퍼진다고 하면서 락다운이 시작되었다. 락다운 이야기가 다시 퍼지고 정신 없이 무언가 바쁘고, 답답고, 스트레스가 가득 쌓여서 도저히 이대로 있을 수 없겠다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에서 헤맬 때 온 몸의 감각이 곤두서서 호르몬이 솟구쳐 나오는 그 느낌이 그립다.


에인트호번에서 가장 싼 비행기는 말라가 행이었다.

말라가? 말라가가 대체 어디지?

남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휴양도시 말라가.

여름이 아니라 빛나는 푸른 바다를 즐기지는 못하지만 유럽과 이슬람이 뒤섞인 양식의 건물들이 나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바로 며칠 후, 나는 틸벅에서 기차를 타고 에인트호번 역으로 출발했다.

비행기를 타는 것부터가 여정의 시작이었다. 기차타고, 또 버스타고 그렇게 구비구비 에인트호번 공항에 도착했는데 비행기가 연착되어 5시간을 공항에서 대기했다. 대기하는 것 까지는 괜찮은데 하필 내가 맨체스터에서 경유하는 비행기표를 끊은 거다. (왜 그랬니 나 자신)

밤 9시에 맨체스터에 도착했더니 물론 다음 비행기는 놓쳤다. 저가 항공이 친절하게도 다음 말라가행 비행기를 태워준단다. 그런데 그 비행기가 다음날 오후 5시였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반강제로 맨체스터에 머무르게 되었다.



나의 첫 영국여행을 맨체스터에서 하게 되다니. 이미 말라가 호스텔은 돈 날렸고, 부랴부랴 맨체스터 숙소를 구했다. 내가 예상치 못했던 난관은 환율이 달라 내 유로 현금을 쓸 수 없다는 것과 전원 어댑터가 필요하다는 것! 다행히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고, 트램을 타고 맨체스터 시내에 도착했다. 굉장히 영국스러운 방에서 한숨 돌리면서 컵라면을 먹으며 티비를 켰는데 크리스마스 로열 쇼를 하는 거다.

이건, 혹시 몰라 컵라면 하나 챙겼던 오늘 아침까지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인생은 참 이상하고도 신기하게 흘러간다.



공항에 3시까지 도착하면 될테니 그 때까지 맨체스터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내가 잡은 숙소가 바로 대성당 앞이고, 시내 한가운데라 오전11정도부터 본격적으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또 반강제로) 구경하게 되었다. 요즘 영국에서 코로나 급증으로 난리 법석이던데, 실제 현지에서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길거리 음식을 사먹고 마시고 있다. 하긴, 크리스마스다. 작년에도 크리스마스를 잃었는데 올해까지 포기하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맨체스터 시티 도서관까지 구경하고 드디어 다시 말라가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번 여행은 '헤맴'이 테마였기에 죽어도 택시를 안타겠다는 다짐에 맞추어 트램, 공항철도를 구비구비 갈아타면서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는데, 공항 체크인이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체크인 수화물 검사를 할 때 액체류를 무조건 다 꺼내서 투명비닐백에 모아 담으라고 하는 거다. 이런 요구사항은 또 처음이었다. 파우치에서 분명 다 꺼내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걸렸다. 시큐리티랑 한참을 내 가방을 뒤졌는데 알고보니 엄지손가락만한 일회용 치약을 내가 꺼내지 않은 거였다. 아오!



드디어 말라가 공항에 내리니 저녁 8시였다. 시내 가는 버스를 탔는데 사람들 다 내릴 때 멍때리고 있다가 한 정류장 늦게 내리고 말았다. 그래도 그 덕에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고 크리스마스 레이저 쇼까지 구경했다. 한 정류장쯤 지나치는게 여행을 더 다이내믹하게 만들어주는 법이다.


예정에 없던 맨체스터 여행으로 인해 원래는 하루 말라가에서 쉬고 갈 예정이었던 왕의 오솔길 하이킹을 다음날 바로 가게 되었다.  다행히 늦잠자지 않고 투어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왕의 오솔길을 시작으로 말라가 시내 투어하고 우연히 사람들을 만나 함께 론다로 가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여행 일정이 없었다. 하지만 드디어 마음의 결심이 섰다.

이번 여행은, 휴양보다는 미친듯이 돌아다니기로.

론다에서 세비야, 세비야에서 코르도바와 그라나다까지, 한 곳에 오래 머무르고 싶어하는 나로서는 특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막상 오니까 욕심이 생기는걸.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고 싶다.



세비야를 사실 빼고 코르도바에서 좀 더 머무르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세비야를 거쳐, 코르도바는 하루밖에 머무를 수 없었다. 알고보니 내 여행 계획 자체가 특이한 거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대도시 세비야에 더 오래 머무르고 코르도바는 많이 생략한다. 하지만 나는 왜인지 모르게 코르도바에 꼭 가고 싶었다. 코르도바의 모스크와 대성당이 합쳐진 그 교회를, 그 아치들을 꼭 보고 싶었다.


론다, 세비야에서 열심히 관광객 역할을 하다 보니, 한계에 부딪혔다.

내가 보는게 멋지고, 좋고, 아름다운데,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이 건물의, 도시의, 길들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을 텐데, 그걸 모르고 돌아다니니 답답했다.


세비야에 하루 머무르고 나서 바로 ebook으로 스페인 역사에 관한 책 2권을 구매했다.

그러고 보니, 스페인하면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밖에 모르고, 친구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나는 듬성듬성 배운 스페인어와 문화를 제외하고 스페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내가 여행 온 스페인 남부 지방이 안달루시아라고 불리운다는 것 조차, 한때 거대한 아랍 왕국이 이 곳에 있었다는 것 조차 몰랐다.

어째서 내가 그나마 아는 유럽 역사는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위주였을까? (물론 스페인 역사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도 알게 되었다)


코르도바에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도착해,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내가 가고싶던 대성당에서 크리스마스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크리스마스였다.

미사를 드리고 코르도바 구시가지를 헤매고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아 폭우가 쏟아졌다.

지금까지 비가 흩뿌리고, 흐리고, 개고 하긴 했지만 이렇게 쏟아진 적은 처음이었다.



문을 연 까페를 찾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쉽게 그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비오는 코르도바를 뒤로 하고 그라나다로 향했다.

사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은 내가 반드시 가고 싶은 리스트에 있진 않아서

그라나다를 뺄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워낙 모든 사람들이 좋았다길래, 꾸역꾸역 그라나다까지 여정에 넣고, 대신 말라가의 피카소 뮤지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알함브라 궁전은 놀랄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시국에서 관광객이 많은데 관광시즌에는 얼마나 사람들로 미어 터지고 더울지 상상이 되어서

지금 온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그라나다의 날씨는 아름다웠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알함브라를 흠뻑 누비고, 시내구경도 조금 했다.

사람들이 와글와글 광장에서 깔깔대며 마술 구경하고 커피를 마시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코로나 시국 전으로 돌아간 것 같고, 즐겁고 흥겨웠다.



스페인 여행하면서 내내 원없이 맛있는 스페인 음식들을 맛봤다.

빠에야와 각종 타파스들, ㅊ샹그리아까지 배 터지게 먹었다.

음식에 있어서는 네덜란드보다 사람사는 동네같다. 마지막으로 그라나다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국 음식점에서 마지막으로 돼지고기김치찌개를 먹으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여행하면서 다운받은 스페인 역사책 2권과 워싱턴 어빙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까지 독파했다.

스페인 역사에 빠져서, 잔뜩 영감을 받고 현실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공항가면서 탔던 택시기사가 'corruptted government'(부정부패한 정부) 라고 했던 말도 귀에 쟁쟁하다. 안달루시아는 너무도 아름답고,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도 멋지지만 경제와 정치가 파탄이고, 북유럽권은 칙칙하고 음식도 별로지만 경제와 사회구조가 탄탄하다.

한국의 지방과 수도권 간 관계 같다. 한국에서도 지방은 사람도 적고 땅값도 싸지만 일자리가 없고, 수도권은 정신 없고 물가도 비싸지만 그만큼 일자리가 많다. 수도권 사람들이 지방으로 놀러가서 돈을 쓰듯, 유럽에서도 윗동네 사람들이 아래로(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으로 내려와서 돈을 쓰고,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가 그들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코로나 국경 봉쇄도 심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관광객을 막으면 경제가 파탄나니까. 이미 작년에 손해를 입을 대로 입었고, 도저히 올해까진 버티지 못할 상황이다. 감염병 컨트롤을 위해 국가 문을 닫을 수 있는 나라와 닫지 못하는 나라. 코로나는 현재 세계의 경제와 사회문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혹시 몰라 여행 후 3일간 자가격리를 했지만 증세도 없고, 테스트도 계속 음성으로 나왔다.

리스크를 안고 여행을 다녀온 보람이 충분히 있었다.

이 여행 기억으로 또 올해를 버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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