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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e Kang Mar 02. 2019

미국 병원에 갔다

출장 1주일쯤 되었을까, 갑자기 왼쪽 사랑니가 엄청 아팠다. 으레 그렇듯 지나갈 거라 생각했지만, 아직 시차 적응 등의 컨디션이 문제였는지 참을 수 없이 아팠다. 혹시 몰라 가져온 진통제를 4알이나 먹고서야 이건 도저히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먹는 것을 그만두었다.


사무실 동료들로부터 병원에 가볼 것을 추천받았지만, 나에겐 보험이 없었다. 출장을 왔으니 당연하게도 의료보험은 없었고, 그 흔한 여행자 보험 하나 들지 않았다. 7주간 출장 가면서 보험 하나 들 생각을 안 하다니. 과거의 나에게 돌아가면 반드시 여행자 보험을 들라고 하고 싶었다.


잇몸은 물론 목까지 부어서 입을 여는 것도, 뭔가를 삼키는 것도 힘들었다. 심지어 침조차 넘기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끼니를 거르게 되었고, 조금씩 더 피폐해져 갔다. 그렇게 침대에 드러누워 이대로 생을 마감하는 게 아닌가 하며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때에, 호스트가 돌아왔다. 


호스트 Anna는, 정말 친절하고 마치 친가족 같은 사람으로, 그녀 역시 한국인 출신의 미국인인데. 그녀는 내 상태를 보더니 바로 병원에 응급으로 예약을 했다. 다만 그녀는 저녁 약속이 있어 동행해주지 못했지만, 내 보스에게 연락해서 병원까지 라이드 해주기를 부탁했다. 


저녁 일곱 시, 나는 보스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다른 것보다 무서웠던 것은 역시 병원비였다. Anna와 선생님이 내 증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못해도 1천 달러 정도의 치료비가 나오지 않을까?'라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다. 세상에 1천 달러라니. 회사 계단에서 넘어져 인대가 나갔을 때도 차 40만 원밖에 내지 않았는데. (심지어 실비보험을 통해 대부분 환급받았다) 1천 불이라는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우리가 도착한 병원은 한국인 출신의 미국인이 운영하는 곳이고, 선생님은 친절하게도 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해서 최대한 진료비를 아낄 수 있도록 진료해줬다. 잇몸이 부어 입을 잘 벌릴 수 없어 정확하게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항생제와 진통제를 처방해주며, 2-3일간 부기를 가라앉히고 다시 보기로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치료비는 고작 60불밖에 나오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몇 월에 귀국하는지 물어봤고, 자신의 처방이 돌아갈 때까진 아마 효험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완벽하게 개런티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당장은 좀 괜찮을 것이라고. 한국에 돌아가면 꼭 병원에 내원해서 치료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약국에 가서 약을 처방받고, 이것을 조금씩 먹고 있다. 식사와 함께 약을 먹으라고 해서 억지로라도 뭔가 먹게 되었다. 뭔가를 먹으니 조금은 낫는 것 같았다. 


한인마트에 들려 레토르트 죽이 없나 살펴봤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의 이용객들은 죽을 먹지 않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죽보단 인스턴트 떡볶이가 훨씬 먹고 싶었다. 지금처럼 잇몸이 부어있을 때 매운 거 먹으면 쥐약이겠지. 생각하며 떡볶이를 집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생각을 했다. 근데 이렇게 아픈데 비행기를 타고 돌아갈 수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너무 아프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했다. 헬기 같은걸 타고 빠르게 한국으로 이송되면 어떨까. 어마어마한 헬기 이용료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대통령쯤 되어야 그렇게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미국에서 치료하는 비용이 더 저렴할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근처에 일하는 친구가 죽을 사서 병문안 와준다고 했다. 대학 4년 내내 친하게 지내던 친구인데 내 출장지와 그녀의 일터가 겹치는 행운이 있었다. 그녀는 내 소식을 듣고 바로 죽을 사서 오겠노라고 연락을 줬다. 그녀 역시 타지에서 고생하는 사람인데, 친구가 아프다니 두말 않고 도와준다고 해서 너무 고마웠다. 세상에 참 고마운 일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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