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좋아하는 만큼 누군가는 싫어할 권리도 있다
나는 지나친 업무로 인해 번아웃 증후군을 꽤 심하게 겪었다. 내 삶에 내일은 없었고, 그저 오늘 죽지 않고 버텨내는 게 고작이었던 시기였다. 나는 그 시기 상당히 중증의 우울증에 시달렸고, 주변으로 부터 상담치료를 권유받아 지금도 꾸준히 삶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내 주치의이자 상담자인 선생님은 삼촌의 지인, 그러니까 남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소개해 알게 된 사람으로 꽤 유명한 사람인지 상담하려고 기다리다 보면 한 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하는 상당히 바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속내를 다 드러낼 수 있을 만큼 믿음이 가는 사람이기도 했다. 내 아버지의 연배로 보이는 그 선생님은 내가 동물, 특히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마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싫어하는 편에 가까웠다. 그의 집 앞 화단을 길고양이들이 망쳐놓는 게 그 이유였다. 나도 식물을 좋아하고 키우는 사람으로서 그 기분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춘수 역시 아버지가 키우는 난의 이파리를 뜯어놓거나 엄마의 페페를 사정없이 물어뜯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수국의 잎에는 고양이 잇자국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 식물이 고양이에게 위험한가의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식물들에 고양이의 흔적이 남는 것은 꽤 좋지 않은 기분이었다.
어느 날 그는 나와 상담하던 도중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자신의 화단에 고양이들이 자꾸 똥을 싸고 가는데 이게 영 골치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내담자가 고양이 예찬론자라 이 말을 꺼내기 힘들었겠지만, 그에게는 그 나름의 고충이 있었던 것이다. 고양이를 쫓기 위해 식초나 커피가루 등 효과가 있을법한 것들은 대부분 사용해봤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가장 마지막으로 선택했던 고양이가 지나가면 싫어하는 주파수의 소리를 낸다는 기계 역시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는 여러 가지 대책을 세워보고, 찾아보다가 고양이 사료에 부동액을 타서 죽여버리라는 조언을 보고 고양이 쫓아내는 것을 어느 정도 포기했다고 했다. 아무리 화단이 중요해도 고양이를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평범하게 '개나 고양이의 똥이나 오줌은 비료로 쓸 수 없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리고 "정말 고양이 똥이 문제인가?" 질문했다. 근데 정말 고양이가 주기적으로 찾아와 배변하는 장소에만 온갖 화초들이 죽어간다는 것이다. 그로서는 정말 화가 날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상황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대형 고양이 카페에 고양이가 화단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을 방법이 있는가 질문했다. 의외로 해답은 금방 나왔다. 나무젓가락을 땅에 꽂아 고슴도치 가시처럼 세워 고양이의 접근을 막으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곧바로 그에게 이 방법을 알려줬고 그는 언젠가 이 방법이 매우 효과적이라며 만족스러운 후기를 공유해주었다.
언제는 남자 친구와 택시를 타고 가는데, 가방에서 사료 냄새가 나서 남자 친구와 고양이 사료며 동네고양이 밥 주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택시 기사님이 우리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고양이 밥을 준다고?"
그는 재차 물었다. 그래서 그냥 지나다니다가 길고양이들이 보이면 준다고 대답했더니 그는 분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고양이 놈들은 정말 백해무익해. 밤새 차에 오르락내리락해서 발자국을 남기고, 아무 데나 똥을 싸고, 쓰레기봉투를 찢고 하는 것들은 다 깡그리 죽여버려야 해. 아주 씨를 말려야 해."
어지간히 화가 났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화난 모습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고양이가 엔진룸에 숨어들었다가 죽어 차량을 수리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택시기사처럼 차량을 이용해 밥벌이하는 사람들에게는 차량 외관에 흙 발자국을 찍는 고양이가 당연히 불쾌할 것이다. 다만 그는 지나치게 혐오하는 발언을 하긴 했지만 그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동네고양이와 공존을 하기 위해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설득하기엔 내가 좀 지친 상태였기에 그냥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남자 친구는 꽤 당황했고, 택시에서 내린 다음 자신이 미안하다며 나에게 사과했다. 나는 사과하지 말라고 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것을 존중받는 것처럼 싫어하는 것을 존중받을 권리도 있다고 얘기했다. 직접 나서서 동물들에게 해코지를 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싫어하는 것 자체는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일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설명이나 설득을 통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은 있었다. 실제로 동네고양이를 관리하면서 얻는 이득도 꽤 많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유해한 쥐 나 벌레를 잡아먹는다던가 하는 그런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