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미혼이기도 하고, 굳이 독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부모님과 한 집에 산다. 부모님과 같이 산다는 것은 편리하기도 하지만, 때론 귀찮기도 하다. 그래도 성인이 되고 나서는 간섭이나 충돌 없이 잘 지내는 편이었는데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서 조금 그 상황이 곤란해졌다.
당연하게도 부모님은 동물을 가족보다는 가축에 가까운 개념을 가지고 계신다. 동물을 꽤 좋아하는 아버지도 개는 마당에, 고양이는 줄에 묶어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셨고, 어머니는 동물을 집에 들인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 키우던 강아지는 좁디좁은 베란다가 세상의 전부였고, 처음으로 키웠던 고양이는 1미터 남짓한 줄에 묶여 지냈다. 나도 원래 그런 것인 줄 알았다. 동물은 그렇게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 삶에 동물이 끼어드는 일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고양이를 키우기로 마음먹고, 고양이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나는 그게 썩 좋은 양육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양이의 습성이라거나 본능, 내가 이해해줘야 할 부분들을 공부하게 되었고, 그간 묶여 사는 게 당연했던 동물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춘수를 가족으로 맞이하며 그를 위한 식기와 장난감, 화장실 등을 샀다. 나중엔 거금을 들여 캣타워도 샀다. 춘수가 우리 집에 오고 처음으로 한 외출은 종합백신을 접종하기 위한 것이었다. 3-4번에 걸쳐 접종을 하고 항체 검사도 하고, 시간이 지나 중성화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부모님에게는 생소한 과정이었다. 집에서만 키우는 고양이인데 뭐 그리 지극정성이냐는 말도 들었다. 다른 고양이를 만날 일도 없고, 가족들은 모두 깨끗하고 질병이 없으니 고양이가 병에 걸릴일도 아플 일도 없을 것이라며 과잉보호를 한다고 했다. 물론 그랬으면 좋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고양이를 무작정 운에 맡기며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고양이니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모든 과정을 스스로 수순을 밟았다.
부모님의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 부모님이 어려서 동물을 키웠을 때는 특별히 접종 맞추거나 중성화 수술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동물들이 먹고사는데 아무 문제없었기 때문이다. 개를 키우는 경우엔 광견병 접종 정도나 맞췄을까. 밥도 먹다 남은 것을 주는 것이 너무 당연한 분들이었기에 비싼 돈을 들여서 간식이나 사료를 사다 먹이는 것이 이해가 안 될 수 있었다. 화장실은 또 어떤가. 밖에 사는 고양이들은 화장실이라는 게 따로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방팔방 흙과 모래가 널려있는데 굳이 집에 와서 모래를 달라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캣타워며 스크래쳐야 지천으로 널린 나무가 해결해 줄 문제였다. 하나같이 돈 주고 살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돈 주고 (그것도 꽤 비싸게) 산다니, 부모님으로서는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분명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어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대저택에서 소며 돼지며 온갖 가축들을 키우며 살았던 시간이 길었던 분이라 더욱 설득이 필요했다.
춘수는 잘 때 내 침대에서 나와 같이 자는데, 어머니는 줄곧 이 상황에 대해 걱정하신다. 털 때문에 기관지가 상하진 않을지, 어디 몸에 이상이 생기진 않을지. 춘수와 함께 자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반려동물을 통해 면역력이 증강된다는 연구도 알려주며 설명하고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고양이 장난감은 고양이와 놀고 난 후에 눈에 보이지 않게 치워야 한다는 것, 고양이는 사람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 마트에서 사는 저급 사료는 웬만하면 구매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 고양이의 모래는 여러 종류가 있고 고양이의 취향을 고려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 춘수처럼 장모의 고양이는 꾸준히 빗질을 해줘야 한다는 것 등 부모님이 살면서 알고 있던 상식을 새롭게 갱신시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지난한 일이다.
춘수를 위해 구매했던 물건들 중 춘수가 쓰지 않는 물건은 가감 없이 팔아버려야 했다. 하우스 겸 드라이룸으로 이용할 수 있는 하우스는 반품의 위기에 처해졌다가 간신히 남겨놓을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화장실도 2개를 놓고 싶었지만 그조차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부모님은 항상 고양이 용품이 늘어나는 것을 썩 반기지 않았다. 춘수는 빗질이나 그루밍하는 것을 싫어해서 여러 종류의 빗을 돌아가면서 쓰는데, 빗이 하나면 되지 왜 이렇게 많냐고 타박을 듣기도 했다. 결국 잘 쓰이지 않는 빗은 나눔을 통해 집을 떠났다. 아직도 춘수가 좋아하는 빗은 찾지 못했고, 빗은 부모님 몰래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정수기도 그랬다. 처음에는 아주 얕은 그릇에 물을 담아줬다. 고양이는 원래 물을 많이 안 먹는다며 물을 조금만 준 것이다. 중력을 이용해 급수가 되는 급수기를 구매했을 때 부모님은 대형견도 아닌데 왜 이리 유난을 떠냐고 했다. 그릇이 너무 커 고양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그 급수기는 반품했다. 대신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크기도 제일 작은 정수기를 구매했다. 정수기도 물론 크게 반대했다. 하지만 춘수가 물 먹는 모습을 어필하며 원래 이렇게 흐르는 물이 고양이에게도 좋다고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고양이는 '음수량이 적을 경우 갖은 질병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물을 많이 두는 게 좋다.', '이렇게 흐르는 물이 고양이의 호기심을 자극해 물을 많이 먹게 한다'는 등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춘수는 정수기 덕분인지는 몰라도 물을 꽤 잘 먹는 편이었고, 덕분에 정수기도 반품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