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샤우키?”
홀리는 얼굴에 반가운 기색을 띠면서 인사했다. 샤우키라고 불린 남자는 잠시 세르시우스들을 둘러보더니 그들이 있는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는 허리를 깊숙이 굽혀 인사하고 자신을 소개했다.
“제국 기사단 ‘검은 수리’의 샤우키입니다. 평민 출신이라 성은 없습니다만.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세르시우스입니다.”
세르시우스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샤우키는 정중하게 그의 손을 맞잡았다.
“저는 시링크스고 이쪽은 레스휘나예요.”
시링크스도 자신과 레스휘나를 소개했다. 레스휘나는 고개를 까딱하는 정도로만 인사하고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아무데서나 의자를 집어 와서 털썩 앉고는 안 그래도 단정하지 않은 차림의 셔츠의 단추를 몇 개 풀고 ‘후우-’하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야?”
홀리가 물었다.
“아아, 복잡한 일이라서. 내가 온 걸 보면 알잖아.”
샤우키는 삐딱하게 앉아서 몇 마디 투덜투덜거렸다. 기사들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면 황제의 명령을 받아 그 지역에 가서 조사를 하고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높은 나으리들의 자제들이 직접 사건에 발 벗고 뛰어들 리가 없으니 이런 일은 결국 평민 출신의 기사나 지방의 낮은 귀족들이 모조리 떠맡아야 했다. 샤우키 역시 평민 출신의 기사이기 때에 여기저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녀야 했다. 물론 홀리 역시 낮은 귀족의 자제이기에 샤우키와 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다를 바 없었다.
샤우키는 맥주를 시켜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일부러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가 반란군의 근거지라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아서 우리 황제 폐하의 귓가에도 들어갔거든.”
말없이 맥주 컵을 닦고 있던 가게 주인이 이상한 눈빛으로 샤우키를 쳐다보았다.
“샤우키. 소리가 너무 컸어.”
홀리가 그에게 주의를 줬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충고를 듣는 둥 마는 둥 귓등으로 흘려버리면서 조심스럽게 가게의 분위기를 관찰했다. 가게의 분위기는 그의 큰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조용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 시선은 샤우키를 향해 있었다..
“그게 거짓말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세르시우스가 샤우키에게 질문했다.
“물론 가능하지요.”
샤우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제국은 굉장한 정보를 손에 쥔 거죠.”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럼 이 곳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세르시우스가 또 질문했다. 샤우키는 잠시 두 손을 비비다가 엄숙한 목소리로 입술을 떼었다.
“아마 끝장나겠죠.”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오라버니. 잠깐 산책 좀 해.”
계속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려고 딴짓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애쓰던 레스휘나가 갑작스럽게 시링크스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뭐야 갑자기.”
시링크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레스휘나와의 산책보다 샤우키와 세르시우스의 대화를 더 듣고 싶었다.
“게다가 비도 오고 있잖아.”
“우산 쓰고 하면 되잖아. 산책하자고.”
레스휘나가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시링크스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시링크스의 손목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시링크스는 한숨을 포옥 내쉬고는 힘없이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그러자 레스휘나는 그대로 성큼성큼 시링크스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레스휘나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세르시우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다시 샤우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 정보가 거짓 정보 라면요?”
“그럼 거짓 정보인 거죠. 그 이상은 없습니다. 어차피 황제폐하는 이런 마을 한 두 개정도에 세세하게 마음 쓸 만큼 한가하신 분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불순분자 제거에 도움을 주는 영예를 누릴 수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하지 않아요?”
샤우키는 맥주잔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말했다.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눈웃음을 지었다.
“난 저 사람 맘에 안 들어.”
“왜?”
시링크스의 질문에 레스휘나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투덜투덜거렸다. 그리고 우산을 지지하고 있는 시링크스의 오른팔을 자신의 두 팔로 힘껏 휘감았다.
“시스. 나 맛있는 거 사줘.”
“뭐야 억지로 끌고 나왔으면 네가 사."
시링크스가 인상 쓰며 말했다.
“사줘. 사줘. 오빠면 동생이 사달라는 거 다 사줘야 하는 거 아냐?”
“그런 게 어딨어.”
시링크스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그의 표정을 무시하고 사정없이 떼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고집부리는 모습이 이목을 끌자 시링크스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래 사줄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스휘나는 근처의 카페로 시링크스를 이끌었다.
달콤한 초코시럽이 잔뜩 뿌려진 푸짐한 파르페 두 개가 시링크스와 레스휘나의 앞에 각각 하나씩 놓였다. 레스휘나는 숟가락을 쥐기가 무섭게 파르페를 휘휘 저었다.
“아까 그 질문은?”
시링크스가 파르페를 한 숟갈 입에 떠 넣으면서 물었다. 레스휘나는 손을 멈추고 시링크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시링크스가 무표정하게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이상한 기분이 자꾸 들어서. 어디서 본 거 같아.”
레스휘나는 눈을 낮게 내리 깔았다. 그녀는 잠시 모든 행동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분명 지난번 속옷 세일할 때 가게에서 같은 옷을 집었다가 싸웠던 게 분명해.”
레스휘나는 단호하게 말하고는 다시 파르페를 향한 집념의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링크스는 과연 그녀와 속옷 다툼을 할 만큼 한가한 사람일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가 그가 남자이고 기사였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현란한 손놀림으로 파르페를 먹어치우고 있는 하나뿐인 여동생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응시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샤우키. 말이 거칠어.”
홀리는 그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사실이잖아.”
그녀의 경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샤우키는 바로 반박했다. 그리고 그는 세르시우스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곧 이곳에 군대가 들이닥칠 겁니다. 그들이 반란 분자이건 아니건 말이죠. 어쩌면 교회에선 그들을 순교자 명단에 올려줄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그리고 샤우키는 남은 맥주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불쾌한 이야기를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아 술이나 가볍게 하려고 온 거였는데.”
그는 너스레를 떨면서 기지개를 쭈욱 켰다.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샤우키는 홀리에게 살짝 인사하고는 뚜벅뚜벅 걸어 나가 버렸다.
“죄송합니다. 원래 입이 거친 성격이어서.”
홀리는 그를 대신해 세르시우스에게 사과했다. 세르시우스는 잠시 혼자 무엇인가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보다 샤우키 경의 말, 사실인가요?”
홀리는 머뭇거리다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마 그런 소문이 있다면 사실입니다.”
“막을 수는 없겠죠?”
“제국을 적으로 돌릴 생각이 아니라면 없을 겁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세르시우스는 ‘그렇군요.’라고 중얼거리면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비가 그치려는지 구름이 잔뜩 낀 사이로 햇빛이 살짝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