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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e Kang Jun 29. 2018

나에게로 온 꽃

지난 2017년은 나에게는 매우 지독한 한 해였다. 이직 이후 많은 업무에 시달리고 치여 피로가 매우 높았고, 그로 인해 번아웃 증상까지 나타나고 있었다. 일을 계속해도 괜찮을까?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며 회사에 보란 듯이 죽은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집에 오면 방문을 꼭 닫고 죽은 듯이 잠을 잤다. 


타의에 젖어 회사에 출근하면 당연하게도 일이 손에 안 잡혔고, 수시로 회사 계단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나의 인생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고, 가족도 친구도 나에겐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모두가 내 고통을 알아줬으면 좋겠지만, 동시에 나는 모두로부터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내가 없어서 이 세상이 굴러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죽고 싶었다.



시한부 인생처럼 나는 곧 죽을 예정이었고, 다만 언제 어떻게 죽느냐는 것이 내 고민의 전부였다. 내 삶의 희망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벼랑 끝으로 밀려나던 도중 주변의 조언을 받아 상담치료를 받게 되었다. 몇 번의 약물을 동반한 상담치료 후 내 우울증은 어느 정도 차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으로부터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트러블에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쁜 소식이었다. 어느 날, 상담치료 도중 조심스럽게 선생님에게 물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저에게 도움이 될까요?"

그러자 선생님은 내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해줬다. 그래서 가족들에게도 물어봤다. 아버지는 원래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엄마도 예상외로 흔쾌히 수락했다. 정말 데려오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모든 상황이 나에게 "YES"라는 대답을 해주었지만 그래도 나는 섣불리 반려동물을 들일 생각을 못 했다. 내가 곧 죽을 건데 동물을 키운다는 행동 같은 걸 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이 반려동물을 키워도 괜찮은가? 이건 꽤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고민이었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자는 시간이나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었고, 집은 대부분 비어있었다. 또 사료며 간식이며 살 것 들은 많고, 유지하는 비용은 얼마인가. 놀아주는 것과 같이 관계 형성도 해야 한다. 그리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아이의 생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어야 했다. 나는 그 모든 것에 자신이 없었다. 나는 여 태 꽤 많이 동물을 키웠던 것 같은데, 내 곁에서 생을 마무리한 친구는 별로 없었다. 그런 점이 나를 더 부족하게 보이도록 한 것 같았다.

'예뻐하기만 할 거라면 인형으로 만족하자.'

그런 마음으로 나는 귀여운 인형을 사다 모으며 시간을 보냈다.  아니 인형을 사는데 집착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 방의 한편은 내가 산 인형, 사서 뜯어보지도 않은 인형, 구석에 처박아둔 인형,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다양한 베리에이션의 인형. 그렇게 사 온 인형들로 가득했다.

고양이를 데려온다면 어떤 고양이를 데려오게 될까? 이왕 데려올 거라면 예쁘고 귀여운 어린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다. 성별은 큰 상관없겠지? 털은 많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귀가 크고 끝이 동그랗게 생겼으면 좋겠다. 모래는 두부 모래라는 게 있던데 이걸 쓰면 좋겠다. 벤토나이트라는 모래는 먼지가 많이 날린대. 사료는 정말 좋은 것으로 해주고 싶다. 뭐든 잘 먹으면 좋겠지만 밥을 제일 잘 먹었으면 좋겠다. 조그맣고 꼬물꼬물 거리는 아기 고양이는 아주아주 사랑스럽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남들이 키우는 고양이, 분양하는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를 보고 또 봤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놀다가 평소 사진을 찾아보곤 했던 펫샵을 방문하게 되었다. 약속 장소가 우연히 그쪽에 잡힌 것이긴 하지만 그 펫샵 근처를 지나게 되면 꼭 들러보리라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쁜 카페 같은 인테리어와 그곳엔 어린 강아지, 고양이들이 칸칸이 들어가 있었고 하나같이 예쁘고 귀여웠다. 나를 맞이해 주는 하얀 강아지도 너무 귀여웠다.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케이지 속의 고양이들을 보았다. 

펫샵을 방문했으니 마치 입양이라도 할 것처럼 이것저것 물어봤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준비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언제 태어났는지. 접종은 어디까지 되어있는지. 얼마에 데려올 수 있는지. 언제쯤 데려올 수 있는지. 그런 것들만 물어봤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좀 더 많이 알아보고 더 많이 물어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싶다. 

나는 그냥 구경만 하러 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한 아이에게 마음이 끌렸고, 그냥 그렇게 고양이를 분양받겠다며 예약금을 걸었다. 분양을 받기로 되자 펫샵에서는 그 작은 고양이를 내 품에 안겨줬다. 나는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그 작고 털 부숭부숭한 고양이가 내 두 손 안에서 심장을 두근거리고 있던 그 순간.

그날, 춘수는 내 마음으로 찾아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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