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말이야. 자꾸 물건을 떨어트려.
대학교 시절 내가 맺어준 묘연으로 고양이를 키우던 선배 오빠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고양이가 자꾸 서랍이며 책상에 있는 물건을 바닥으로 하나씩 떨어트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혹시 오빠 뭐 하고 있을 때 그래요?”
“과제 하고 있으면 그러지.”
“오빠가 뭐라 하면 멈춰요?”
“응. 근데 계속 내가 뭐라 할 때까지 그래.”
“오빠, 고양이랑 많이 놀아줘요. 애정 결핍인가 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 프로그램을 떠올리며 내 나름 솔루션을 제시했던 것 같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문제행동을 하는 어린아이가 나오는 장면이 떠올랐다. 부모가 화내는 것조차 부모의 관심으로 받아들인 아이가 계속 부모의 화냄(관심)을 받기 위해 문제행동을 일으킨다는 내용이었다. 고양이도 비슷한 게 아닐까? 내 조언이 오빠와 고양이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문제 행동이 보호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이었던 건 맞는 것 같다.
대학생 시절 인기 있는 교양으로 ‘심리학의 이해’가 있었다. 이 강의는 워낙 인기가 많아서 신청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3학년 1학기가 되어서야 겨우 신청할 수 있었고, 나에겐 두고두고 기억나는 좋은 강의로 남았다. 그 수업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자라 점점 성인이 되기까지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발달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그 수업을 계기로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그중 올바른 애착 관계의 형성에 관한 수업이 기억난다. 애착이란 사람이나 동물 등에 대해 특별한 정서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이야기한다. 낯선 공간에 아이와 보호자가 있는 모습을 관찰카메라로 지켜보는 실험이었다. 이 실험에서 애착이 잘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은 보호자가 있거나 없거나 상관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했다. 하지만 애착이 잘 형성된 아이는 보호자가 있을 때는 활발히 움직이지만, 보호자가 사라지면 모든 행동을 중단하고 보호자를 우선 찾는다. 이를 ‘분리불안’이라고 한다. 애착이 형성되는 시기에는 분리불안이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 시기를 지나 오랫동안 분리불안이 나타나는 것은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분리불안은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증상이다. 보호자와 떨어져 있을때 안절부절 못하거나 여러가지 문제행동을 하기도 한다. 아마도 어릴 때 부모로부터 떨어져나와 보호자와 함께 살면서 사회화 교육 및 혼자 있는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해 발생하는 것 같다. 이 증상은 비단 개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를 포함한 다른 동물들도 보호자와 애착을 바르게 형성하지 못하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증상이다.
교수님은 자신의 아이를 키우며 인격이 발달하는 과정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춘수가 어린 고양이일 무렵, 춘수가 행동하는 이런저런 것을 보며 나 역시 교수님처럼 고양이의 심리가 발달하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아주 어려서 내 옆에 붙어있는 것, 신나게 놀다가도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두리번거리며 사람이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것. 이런 행동으로 미루어봤을 때 춘수는 애착이 잘 형성된 고양이 같았다.
한번은 밤늦게 춘수가 혼자 놀고 있길래 방에 먼저 들어와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춘수는 신나게 뛰놀다가 갑자기 사람이 안 보인다는 것을 알았나 보다. 애절한 목소리로 야옹거리는 게 방문 너머로 들렸다. 그리고 벌컥 하고 내 방문이 열리더니 고양이는 내가 방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자 다시 밖에 나가더니 장난감을 아예 입에 물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 침대 옆에서 다시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기 시작했다. 심리학 수업에서 봤던 그 영상이 떠올랐다.
사람이 집을 떠날 때, 그러니까 출근 등으로 집을 비울 때 쫓아 나오지 않는 것 역시 애착이 잘 형성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처음에는 나한테 딱 달라붙어 가지 말라고 하길 바랐고 그러지 않아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내가 밖을 나섰을 때 춘수가 나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문가를 서성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참 가슴 아프다. 지금은 쫓아 나와서 가지 말라고 하지 않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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