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동물이 식탁에 오르기 전에
거기가 전남 순천이었던가, 아버지가 한때 가족들과 떨어져 일하던 때가 있었다. 명절 즈음 한 번은 가족들이 다 같이 아버지를 찾아간 적이 있다. 아버지는 사택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마련해줬다는 사택은 조그만 빌라의 2층 끄트머리의 방 두 칸짜리 집이었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라 자그마한 빌라며 주택들이 있었다. 건물들이 대체로 낮아서 시야가 넓었고, 2층임에도 불구하고 집은 밝았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을 때 처음 맡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요 근처에 양계장이 있어."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 이 처음 맡아보는 누린내 같은 것이 양계장에서 나는 냄새란다. 나는 이 냄새가 썩 달갑지 않았고, 그래서 시골의 신선한 바람마저 들어오지 못하게 창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그 냄새는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혔다. 그렇게 기억을 잊어버렸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까맣게 잊고 있던 양계장의 냄새를 일깨워준 책이 있다.
닭, 돼지, 개 농장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쓴 이 '노동'에세이는 저자가 직접 양계장, 양돈장, 그리고 개농장에서 일하고 겪은 일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이 농장 동물들은 생물이라기보다는 공장의 생산물에 가깝게 취급된다. 사룟값과 수익을 비교해 효율과 필요에 따라 동물들을 가감 없이 처분했다.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수평아리들은 산채로 쓰레기가 되고, 못생기고 발육이 나쁜 닭들은 무참히 목이 분질러지며, 폐사한 돼지들은 죽어서 혹은 죽어가는 채로 분뇨장에 버려진다. 처음에는 저자도 살아있는 것을 죽인다는 자체에 망설였다. 생명을 앞에 두고 망설이는 시간은 곧 일거리가 되어 돌아왔고, 점점 " 생명을 죽임"에서 "일거리를 줄음"으로 행동하게 된다. 저자가 특별히 나쁘거나 무감각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힘든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변한 것이다.
농장 동물은 "생명"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상품이며 재화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식탁에 고기가 끊임없이 오를 수 있듯,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비된다. 하나하나의 생명으로 취급되기보다는 하나의 물건과 같이 취급된다. 그나마 닭이나 돼지는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닭과 돼지의 사육은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도 다루었지만 식용으로 길러지는 개들은 (엄밀히 따지면 분양을 목적으로 키워지는 개들도 비슷하지만) 법의 테두리 밖에서 아무런 보호도, 규제도 없이 키워지고 잡아먹힌다. 비인도적이고 비위생적인 도축과 사료와 깨끗한 물 하나조차 지급되지 않는 삶을 산다. 태어나 맨바닥 한번 밟아보지 못한 채 뜬장에서 태어나 일생을 보낸다.
야생의 (특히 멸종위기종의) 동물과는 너무 거리가 멀고, 반려동물과는 사는 곳이 달라 결국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쉽게 들지 않는 것이 농장 동물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장에서 혹은 마트에서 집어 든 이 스티로폼에 랩핑 된 닭고기나 돼지고기가 어떻게 자랐는지 중요하지 않다. 심각하게 음식의 위생을 해치거나 건강을 위협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쇼팽의 교향곡을 듣고 자랐는지 구둣발에 걷어차이면서 자랐는지 안중에 없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아직 농장 동물들에게는 동물 복지의 실현이 요원하기만 하다.
이런 사실들은 알면 알수록 불편하다. 하지만 한번 알게 되면 모르는 때로 돌아갈 수 없다. 동물을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상관없이 동물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시야의 사각지대에 있는 동물들을 볼 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개농장에 관한 이야기라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하재영 지음>에서도 다루고 있다. 관심 있다면 이 책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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