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를 나오고도 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원통함에 대햐여>>
나는 소위 말하는 미국 명문대* 출신이다. 미주리 (Missouri)주, 세인트루이스에 위치한 워싱턴 대학교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가 내 모교이다. 사람들은 줄여서 워슈 (WashU)라고도 부른다. 내가 대학교를 입학했던 년도, 2014년의 미국 내 대학 순위로는 브라운 대학교와 공동 14위를 차지했다 (US News & World Report, 2014). 2010년에는 12위였고 2003년에는 무려 9위였다. 미국 대학 9위면 한국인들이 쉽게 들어본 최상위권 아이비리그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및 스탠포드, 칼텍, MIT를 제치고 거의 다음인 수준이다. 워슈 의대는 미국 내 탑 10안에 들고 로스쿨도 올해 T14리그에 들어갔다. 노벨 수상자를 무려 26명을 배출한 학교이기도 하고 유명한 미국계 영국인 시인 T.S.Eliot의 친할아버지가 설립한 학교이기도 하다.
이런 스펙을 보유한 학교라면 응당 사람들의 귀에 한 번 쯤 들어가봤을만한데 내가 마주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워싱턴은 들어봤을지언정,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를 들어본 한국인들은 거의 없었다. 워싱턴 대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그나마 미국을 조금 아는 사람들 마저도 '아~ 시애틀에 있는 학교요?'라고 대답하기 일쑤였다. 한국인들의 반응만 이랬더라면 좀 덜 긁혔겠지만 문제는 유학생들 마저도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는 것이다. 워슈에 지인이 있거나 원서를 넣어보지 않은 학생들은 한국인들과 거의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내가 말하는 워슈가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인지 University of Washington인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케이스가 다반사였다.
내가 워슈로 진학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일단 그 당시 (2014년) 합격한 9개의 대학교 중 (UCLA, Emory, Carnegie Mellon, BC, NYU 등 포함) 제일 순위가 높은 학교였고 같은 고등학교에서 워슈로 진학한 한국인 언니 오빠들을 관찰해본 결과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었어서 이미지가 좋았다. 또, 칼리지 투어 겸 워슈를 방문했을 때, 어떤 한 학생이 '올해 읽은 칼리지 에세이 중 가장 기억나는 건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 당시 투어를 맡은 입학 사정관이 '어떤 지원자는 화장실에 대해서 썼다'라고 대답하는 걸 듣고 (화장실에 대한 칼리지 에세이를 썼다) 어쩌면 이것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슈를 입학하고나서도 실망하지 않았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순수하고 똑똑한 친구들을 만났고 제자들을 아껴주고, 수업과 연구에 진심인 교수님들도 만나고, 아름다운 캠퍼스를 거닐며 맛있는 학식을 먹고 안락한 기숙사에서 행복하고 알찬 대학 생활을 보냈다. 동기 중엔 민사고, 외고 출신들도 많은 자랑스런 모교인데도 불구하고 남들에게 학부를 소개하는 순간마다 나는 종종 움츠러들었던 것 같다. 이 사람은 내 학교를 알아줄까?하는 조바심도 때로 들기도 했다. 알아주는 사람들은 반갑고 고마웠고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실망감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대학교 진학에 목메는 이유는 학교 이름이 곧 그 사람을 평생 따라다니는 꼬리표이자 간판이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추가 설명 없이 학교 이름만으로 그 사람의 명석함, 성실함, 잠재력 등을 대변해주는 매개체이기도 해서이다. 분명 나는 좋은 학교를 들어갔는데, 그 학교가 나를 잘 대변해주지 못한다. 워슈가 어떤 학교인지 추가적으로 한 두 마디를 덧붙여야한다. 그리고 그렇게 한 두마디를 덧붙이는 나의 모습이 구차해보일 때면 동시에 막심한 현타를 느낀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쓴 칼리지 에세이며 꾸준히 공부해서 획득한 SAT점수며 무엇보다 딸의 유학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해주신 부모님의 얼굴이 아른거리다가 결국엔 내 가슴을 검게 그을린다.
하지만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이유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미주리 주라는 이름부터 구린, 깡시골 오브 깡시골의 랜덤한 위치, 그리고 터무니없이 긴 학교 이름이 한 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보통 알파벳 순으로 학교 리스트를 짜는게 norm이기 때문에 이름이 W로 시작하는 워슈는 항상 공동 순위라도 맨 밑이다. 또 Washington이 들어간 학교가 한둘이 아니다. 대표적으로는 University of Washington, Washington and Lee University, 그리고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등이 있다. 이 세 곳 말고도 훨씬 많다. University of Washington이나 Washington University나 둘 다 한국어로는 워싱턴 대학교다. 전자 학교와 엮이기 싫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유덥도 훌륭한 학교다), 다만 엄연히 다른 학교인만큼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펜실베니아와 뉴욕대도 비슷한 고충을 겪는 걸 들어서 이런 면에서는 그닥 억울하지도 않다.
어쨌든 이름이 또 쓸데 없이 너무 길다. 최대 3음절 정도가 제일 명료한 것 같다. 워싱턴 유니버시티 인 세인트 루이스 (무려 14-15음절!!)를 다 말하기도 전에 이미 듣는이가 흥미를 잃을 것 같다. 개명을 했으면 좋겠는데 감히 후보군 제안을 해보자면 설립자의 성을 딴 Eliot University를 나는 추천한다.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학교에 개명 신청 이메일을 진지하게 보내볼까도 생각중이다. 이메일의 초안도 사실 이미 써놨다.
학교가 한 사람에 대해 모든 걸 말해주지는 않지만, 많은 걸 말해준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어느정도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각을 갖고 있다보니 더더욱이 나의 학교가 나를 제대로 쇼케이스해주지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될 때면 답답함과 원통함을 느낀다. 나는 워슈를 정말 만족하면서 다녔기에 단번에 인정받지 못 했을 때의 그 괴리가 더 크다.
졸업한지 어언 8년이 넘었지만서도, 워슈는 지금까지도 내게 아픈 손가락이다. 내게 너무 소중하고, 품고 싶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아이이지만 동시에 애틋하고 아쉽기도 안타깝기도 한 그런 자식이다.
나는 워슈를 다닐때부터도 주위 사람들한테 누누히 말하곤 했다. '난 나중에 꼭 크게 돼서 워슈를 빛내는 위인이 될거야.' '꼭 성공해서, 유명해져서 나는 워슈에게 모든 크레딧을 돌릴거야.' '유키즈 인터뷰 섭외되면 바로 워슈 shout out을 할거라고.' 그리고 그 날이 올때가지 나는 포기할 수 없다. 멈출 수 없다. 아니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국 뉴스나 예능에서 60위권 학교도 ‘명문대’ 타이틀을 얻는 걸 보고 이렇게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