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났다. LSAT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공부가 도무지 안 된다. 미쳐버리겠다.
사실 JPO 결과가 어젯밤(미국 시간 일요일 밤, 한국 시간 월요일 오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2025 JPO 준비 오픈채팅방에서 사람들이 외교부로부터 받은 합격 소식을 공유하면서부터 어지럼증이 시작됐다.
몇몇 기구의 합격자들에게 외교부가 월요일에 일괄 통보를 보낸 듯했다. 내가 인터뷰를 본 UNDP도 합격자가 이미 추려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톡방을 계속 확인하게 되고, 혹시 합격 이메일을 받은 사람이 있는지 두어 번 물어보기도 했다. 다행히 아직 UNDP는 합격 통보를 받은 사람이 없는 듯하다.
그렇지만 이번 주 안으로, 어쩌면 오늘이나 내일 안으로 결과가 다 나올 가능성이 높아서 도무지 집중이 안 된다. 다한증 환자처럼 손에서 땀이 줄줄 난다. 마우스에도, 키보드에도 내 손가락이 닿은 자리마다 물방울이 맺혀 있다.
작년에는 불안 증세가 훨씬 심했다. 지원한 두 곳 모두 서류를 통과해서 기대가 더 커서였을까? 아니면 간절함이 지나쳐서였을까. 나는 하루빨리 유엔에 몸을 담고 싶었다. 지금 회사도 나쁘지 않지만, ‘내가 있을 곳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커서였을까. 내 아이덴티티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그 마음이 앞서는 바람에 JPO 절차를 밟는 석 달 내내 시달렸던 것 같다. 팔을 조금만 더 뻗으면 닿을 듯 말 듯한 그 밀당이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내가 이렇게 예민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었나?’ 싶기도 했다.
무던하게 살아온 인생이었는데, 마치 선로를 이탈하기 직전의 거대한 기차 위에서 조종간을 붙잡은 사람처럼, 시달리는 만큼 그 불안 에너지가 고장난 엔진을 바로잡아주기를 바랐다.
DC를 벗어나 뉴욕으로 가고 싶은 마음도 컸다.
DC는 내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그런 곳 같다는 생각이 작년 이맘때쯤에 강하게 들었던 것 같다. 자칫하면 꿈도 희망도 없이 애매한 안락함 속에 안주하게 될까 봐, 그게 가장 두려웠다.
YPP에도 합격한 내가 JPO에 붙지 못할 리 없다고 작년의 나는 자신했다.
서류 통과 이메일을 확인한 뒤, 유니세프 JPO로 일하고 있던 대학원 동기 오빠에게 ‘곧 뉴욕에서 보자’는 카톡까지 보냈다.
참… 어리석었다.
돌이켜보면 인터뷰 준비를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땐 나름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늘 그렇듯 지나고 보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싶은 것들이 많다.
2024 JPO 면접도 그중 하나였다.
그닥 잘한 것도, 망한 것도 아닌 면접을 끝내고 결과를 기다린 4주 동안 흰머리가 열 개는 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외교부 국제기구 인사센터 사이트를 새로고침하고, 지메일을 들락날락하고, 단톡방을 확인했다.
지 코가 석자인 친구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하소연을 해봐도 내가 기대한만큼의 공감과 위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다 땡스기빙이 시작되는 11월 25일, 루틴처럼 눈뜨자마자 클릭한 외교부 기구센터 웹사이트 상단에 합격자 명단이 올라온 게 보였다. 숨을 죽이고 클릭했다.
합격자 이름에 중간 글자를 생략한 ‘김X영(여)’ 형식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럴 확률이 얼마나 될까하며 나는 전혀 신빙성 없는 계산기를 머릿속에서 돌리기 시작했다.
김씨 성을 가진 한국인은 전체 인구의 대략 20%...여자일 확률은 50%.....마지막 글자가 영일 확률은...어쩌면 5%...나 말고도 다른 김땡영씨가 하필 이 포지션에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볼 확률은....이걸 다 곱하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일 확률은 매우 희박해보였다.
내 성이 김씨인게 원통했다. 내가 옹씨나 갈씨였으면 단번에 알았을텐데.
하지만 보통 합격자 명단을 공개하기 전에 외교부나 국제기구에서 개별 통보를 한다.
나는 그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외교부에게 바로 확인 이메일을 보냈다.
명단에 적힌 김땡영씨가 제가 맞나요?
비교적 빨리 이에 대한 답장을 받을 수 있었는데 허무하지만서도 동시에 속시원하게도 아니었다.
나 말고 다른 김땡영씨에게 JPO의 영광이 간 것이었다.
내가 석 달 동안 시달렸던 히스테리와 스트레스와 불안증을 허무라는 휴짓조각에 똘똘 싸고 있는 동안 다른 김땡영씨는 부모님과 친구들의 축하 속에 드디어 붙었구나 하고 쾌재를 부르고 있었으려나. 대학원 동기 오빠도 김땡영이 나인 줄 알고 축하 톡을 보내려다 내가 지원한 부서에서 일하는 다른 한국인이 그 김땡영이 그 김땡영이 아니라는 걸 컨펌해줬다는 소식을 들려줬다. 참, 하늘의 농간은 무자비하다.
이건 작년의 이야기이고 어느덧 1년이 흘러 오늘이 왔다.
올해 서류는 두 군데 중 한 군데밖에 붙지 않았다. 그치만 오히려 집중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거 같기도 하다.
마침 원서를 넣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전 동료이자 다른 대학원 동기 언니가 있어 커피챗을 신청하면서 여러가지 정보도 얻고 그 언니가 소개해준 다른 JPO 합격자 분께도 도움 되는 팁들을 얻었다.
나름 면접 스크립트를 다듬고 준비하고 UNDP의 Annual Report랑 Funding Report도 읽고 작년보다는 훨씬 더 효율적이고 알찬 준비를 했다고 생각한다.
면접 분위기 또한 나쁘지 않았다. Follow up 질문들이 많았고 몇몇 답변에 대해서는 Thank you for the detailed response/thoughtful response등과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도 받았다. 면접 시간도 짧지도 길지도 않은 45분에서 50분 정도였고 내가 예상한 질문들이 나와서 엄청 절지도 않았다. 결정적으로, 인터뷰 끝에 인사담당자가 두 가지의 질문을 했는데 하나는 "언제부터 일 시작 가능하냐"였고 "미국 영주권이 있냐"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유연하게 일 시작 가능하다고, 현 직장에는 2주 전만 통보하면 된다고 답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영주권이 있다고 했다.이게 문제가 될지 안 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몇몇 사람들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고 다른 사람들은 문제 없다 그래서 외교부측에도 이메일로 문의를 해봤지만 확답을 못 받았다. 어쨌든 솔직하게 영주권자라고 하니까 인사담당자가 "Perfect"라고 대답했다. 왜 퍼펙트인가? 혹시, 호오오옥시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패널들 사이에서 아 얘 마음에 든다!하고 결정을 내렸고, 사실은 영주권을 소지한게 문제가 되지도 않을 뿐더러 여러 행정 절차를 줄여주는 편리한 신분이어서 perfect이라는 긍정어를 쓴 것이 아닐까?? 하는 희망 가득한 망상을 이 순간까지도 하고있다.
더더욱 나를 안달나게 하는 건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JPO를 합격하고 난 후 펼쳐질 상황들이다. 그 상황들이 내 머릿속에서 감히 연출된다. 이메일 앱을 켰는데 인박스 상단에 외교부로터 온 합격 이메일이 눈에 보이고 나는 들뜬 마음으로 그걸 클릭하고 내가 그렇게 고대하던 합격했다고 축하한다는 다소 딱딱한 글이 써져있고, 바로 엄마 아빠한테 전화해서 나 JPO 됐다고, 이제 드디어 뉴욕 갈 수 있다고, P 포지션으로 유엔에서 일할 수 있다고, 유엔으로 입문하는 모든 제도를 나는 뚫었다고, 내가 몇 년간 완성하지 못했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비로소 끼워 맞췄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부모님은 너무 잘 됐다며 상기된 얼굴로 나를 대견스러워 하고, 디씨에 있는 친구들, 뉴욕에 있는 친구들한테도 차례 차례 소식을 전하고, 목요일에 볼 엘셋도 훨씬 가볍고 자신 있게 볼 수 있을 것 같고, 남은 3일 동안 잡생각 하지 말고 엘셋에만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고, 로컬 드라이브에서 이력서를 불러와 조만간 추가하게 될 내 부서와 타이틀을 구상해보면서 씩 웃고, 링크드인 포스트에 합격 소식을 올리면서 동시에 유엔 입문기가 담긴 내 브런치 카페 링크도 공개할 생각에 또 설레고, 몇 개월 후엔 유엔 빌딩앞에 서서 정갈한 차림의 양복을 입고 엄지척을 날리며 누군가 찍어준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고......그냥 이 많은 것들이, 생각만해도 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이 실체 없는 행복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어젯밤엔 너무 간절해서 몇 년 만에 예수님께 기도를 드렸다.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간절히 바랄 때면 예수님께 부탁하곤 했다.
이런 간절함이 있기에 종교가 존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 밤이 오면 또 몇 건의 합격 소식이 들려오겠지.
하필 그 시기가 LSAT과 겹쳐버려, 가뜩이나 약한 내 집중력은 공중분해됐다.
공부에 매진하려고 2주 휴가를 낸건데 애석하게도 공부가 손에 안 잡혀 이 생생한 감정을 글로 기록하기로 했다. 글쓰기는 참 여러가지 순기능을 한다. 글을 쓰는 이 순간만큼은 나에겐 누구도 침략할 수 없는 도피처다.